소설리스트

75화 (7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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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님이야말로 그만 하세요! 성녀님과 전 다른 위치의 사람이라구요. "

성녀는 그녀의 말을 채 다 듣지도 않고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하지만, 히폴리아는 그녀의 태도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 전 성녀님의 위치를 지켜야하는 사명을 가진 기사입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행동하신다면, 신성 제국으로 돌아가야하실겁니다. "

" 흥. 제가 가만히 있을 것 같나요? "

" 그리고 내일부턴 용사님과의 만남도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

내 품에 안겨있던 성녀는 그녀의 마지막 말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벌떡 일어났다.

" 절대 안돼! 그렇다면 당장 성녀를 그만두겠어! 이딴건 하나도 필요하지 않아! "

" 성녀라는 것이 단순히 직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안하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성녀님께서 더 잘 아실텐데요. "

히폴리아는 내가 다 무서울 정도로 이성적으로 대응했지만, 성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그만큼 그녀가 더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뜻이겠지.

" 몰라! 그딴건 몰라. 나에겐 선택권이란 것도 없는거야?! 그렇다면.. 그렇다면 주신이 실수하신거야! "

" 성녀님! "

히폴리아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를 빽 질렀다. 성녀로써 결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나오기 시작하자, 그녀는 심각해진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바라본다. 이대로 나뒀다간 정말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았기 때문일까.

" 용사님은 이만 가주세요. 그리고 내일부턴 성녀님과 만나지 마십시오. "

" 용사님! 안돼요, 가지 말아요. 부탁이에요. "

성녀가 내 옷을 붙잡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이것은 나에게 중요한 선택지일 것이다. 과연 남을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 남는다면 히폴리아를 실망시키는 일일테고, 떠난다면 이렐린을 실망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둘다 만족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니, 있다.

" 좋아. 그러면, 나도 너희들에게 제안을 하지. 둘 모두 서로 주장을 굽힐 생각이 없잖아? "

"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건 부탁이 아닙니다, 용사님. "

" 가.. 가시는 건 아니겠죠? "

둘은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기다렸다.

" 좋아, 떠나지. "

" !! "

히폴리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그에 반해, 성녀의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선명했다.

" 단, 주신께서 거부하신다면 말이야. "

"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덧붙여진 내 말에 히폴리아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물론 성녀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졌지만, 다시 천천히 어두워진다. 솔직히 말해서, 성녀인 자신이 용사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주신께서 허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주신이 대답조차 안해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문제였다. 지금껏 수백 년동안이나 아무런 목소리도 내주지 않았는데, 고작 이런일(?)에 대답을 해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 .. 좋습니다. "

히폴리아가 그것을 상기해냈는지, 오히려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론 조건을 덧붙여서.

" 만약, 주신께서 대답하신다면, 더 이상 성녀님에게 간섭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그 사실을 신성 제국에게 직접 알려, 그에 대한 불미스러운 얘기가 없도록 책임지겠습니다. "

" 좋지. "

" 하지만, 만약 대답이 없다면, 각오하셔야할 것입니다. "

하지만, 성녀는 바닥만 묵묵히 쳐다본채 서있기만 했다. 그녀의 두 눈에서 다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 흑, 흑. "

" 지금이라도 만약 용사님께서 그 제안을 거두어들이고 물러나신다면, 가끔씩은 두분이서 만나도록 허락하겠습니다. "

성녀의 딱한 모습에 히폴리아도 마음이 약간 흔들렸는지, 그녀는 자신의 말을 조금 바꿨다. 그래도 성녀는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다.

" 아니, 계속 하겠어. 자, 이리와 이렐린. "

" 흑흑. "

내가 몇번 보채자 그제서야 성녀는 마지못해 나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 흑흑, 용사님. "

" 걱정하지마. 날 믿지? "

" 흑, 네. 믿어요. 만약, 주신께서 아무런 대답이 없더라도.. 용사님을 원망하지 않아요. 흑, 그래도 인정받을려고 노력했잖아요. "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머리만 몇번 쓰다듬었다.

" 얼른 하시죠. "

" 너무 서두를 필요없잖아. "

내가 한쪽 무릎을, 이렐린은 두 무릎을 모두 꿇고 두 손을 맞잡는다. 나는 한쪽 손을 가슴에 얹고 다른 손은 허공을 향해 뻗는다.

" 주신이시여, 대답하여 주십시오! "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정말로 공기의 변화 한점 없었다. 히폴리아는 나의 당당한 태도에 정말 아주 약간은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자신이 옳았다는 듯이 픽- 웃고 우리들에게 천천히 다가오려고 했다.

" 제 말이 맞았군요. 이제 용사님은... "

그 순간, 갑자기 강한 바람이 나와 이렐린의 사이에서 터져나온다. 히폴리아의 머리카락이 뒤로 확 젖혀지면서 흩날렸다.

" 이.. 이게? "

성녀도 그 순간만큼은 놀라서 엉덩방아를 찍었다. 그녀도 무언가 반응이 올 것이란 걸 전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쿠구구구궁!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친다.

- 꽈광!!

" 꺗! "

히폴리아와 이렐린 둘 모두가 깜짝 놀라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 대답하여 주십시오!! "

그 순간, 눈앞이 번쩍한다. 그리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후의 영향은 만만치 않았다. 성녀는 대답을 받았다는 것도 잊고 히폴리아와 함께 멍- 하게 허공만 응시하고 있었다.

" 어때, 히폴리아. 이것으로 대답은 된건가? "

" 이.. 이건. "

" 그래, 주신의 대답이다. 승낙하신 것이지. "

내 말이 끝나자 그제서야 히폴리아는 자리에 털썩 쓰러진다.

" 말.. 말도 안돼. "

" 자, 이렐린. 이제 넌 자유다. "

나는 이렐린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점점 지금 상황을 이해했는지 입에 미소가 퍼져가기 시작한다.

" 네..! 용사님. "

그 뒤로, 며칠이 흘렀다. 이제 히폴리아는 더 이상 성녀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았고, 나와 사랑을 속삭이는 것도 터치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옆에서서 가끔씩 부러운 시선만 던질 뿐.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렐린만 공략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거의 이틀에 한번씩 히폴리아를 찾아가서 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나머지는 이렐린과 함께 밤을 보냈지만.

그렇게해서, 성녀와 성기사의 공략이 끝났다.

아, 아직 설명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그 괴현상은 무엇이었냐고? 정말 주신의 대답이 맞는건지 의심이 된다고?

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자면,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질문에 대한 주신의 대답은 아니다. 물론 그것이 주신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다.

사실 그 괴현상은, 내가 용사임을 증명하는 게임의 시스템적인 효과였다. 물론 그 시스템이 이 세상의 한 축을 담당한다고 생각한다면, 주신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 증명이 요정인 엘류나크에게도 통했기 때문이었다.

요정인 그녀가 단순한 괴현상과 신의 대답을 혼동할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쩌면 시스템이 주신의 역할을 맡은 걸지도 모르겠다.

" 어쨌든간에 일만 잘 해결되면 되지 뭐. "

그 이후로, 그녀들은 다시 관계가 회복되었다. 히폴리아는 성녀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고, 성녀도 그녀의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너무 과도하게 떼를 썼다는 것을 인정했다.

" 이젠, 마녀의 탑에 들어가면 끝인건가. "

해결해야 될 문제도 이제 다 끝났으니, 남은 것은 최종 목표인 '잠자는 공주'를 구하는 일뿐이다. 아, 공주를 죽지 않고 잠에 들게한 요정 '엘렌'은 어찌되었냐고?

" 아응! 앗, 용사님! 용사님!! "

내 밑에서 헐떡이고 있는 중이지. 요정에겐 용사라는 타이틀은 거의 주인이라고 받아들여졌다. 물론 엘류나크처럼 지배자급에 해당되는 요정은 처음에 완벽하게 굴복하진 않겠지만, 엘렌은 그보다 확실히 급이 낮았는지 용사라는 것에 모든 것을 바쳤다.

덕분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엘렌의 몸을 쉽게 탐할 수 있었지만, 사실 엘류나크처럼 약간 튕기는 맛도 있었으면 했었다.

" 후우, 엘류나크! "

그녀가 떠오른 김에, 그녀와 같이 셋이서 즐기고 싶다는 생각에 그녀의 이름을 부르니 곧이어 아름다운 엘류나크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 역시 엘렌과 거의 동등할 정도의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다.

" ... "

" 뭐해? 빨리 안오고. "

이젠 나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버린 엘류나크는 별 반항도 하지 않고 나에게 순순히 다가온다.

" 호, 갑자기 나긋나긋해진 이유가 뭐야? "

" ... 어차피 당신은 길어봤자 백년정도만 살테니까요. 살아있는 동안만큼이라도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어요. "

그녀는 약간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채로 대답했다.

" 뭐, 그렇긴 하지. 흐흐, 이러니까 정말 귀여운데? 물론 예전도 귀여웠지만 말이야. "

" ... 저에게 그런 말을 하는 생명체는 당신이 유일할 거에요. "

감히 드래곤도 엘류나크를 어쩌지 못하는데(물론 작정한다면 몰라도), 고작 인간이(물론 그 인간이 용사라는 점도 있지만) 요정의 지배자급이면서, 호수의 지배자인 엘류나크를 향해 귀엽다고 한다니. 다른 요정들이 들었다면 깜짝 놀라서 심장마비가 걸리지 않았을까.

" 그럼 더 재밌게 즐겨야겠지? 흐흐. "

" 이런 취미는 없었는데 말이야. "

본의 아니게 황궁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지하 통로로 향하는 위치를 확인했다. 지하통로는 변기의 뒤쪽 부분을 뜯어내면 연결되어 있었는데, 운이 좋아서였는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물론 그 발견이 한 남자(?)에 의해서 밝혀졌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지만 말이다.

지하통로에 대한 소문이 돌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변기가 있는 장소에만 고장 표식을 붙여놓고, 화장실은 계속해서 사용하도록 놔두었다. 어차피 확인은 아무도 없는 밤에 할테고, 여자들과 마주치지도 않을테니 큰 문제는 없다.

" 다들 준비했겠지? "

어두컴컴한 밤. 나를 포함하여, 에덴, 보리, 히폴리아, 이렐린, 엘렌, 그린 드래곤 란, 마지막으로 엘류나크가 황궁 여자 화장실에 집합했다.

"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황당했는데, 이런 곳에 서 있으니 더 이상하네요. "

" 입구가 좁으니까 한번에 한명씩만 통과하도록 해. 일단 첫 순서는 란, 너부터 들어가도록 해. "

그래도 이 중에서 나를 제외하면 가장 강한 존재이기 때문에 제일 먼저 들어가 상황을 판단하도록 했다. 그녀는 변기를 떼어낸 시커먼 지하통로를 향해 천천히 전진했다.

첫 구멍을 몸을 완전히 숙여서 지나가야할 정도로 좁았지만, 들어가면 얘기가 틀려졌다. 계단이 놓여져있는 천장이 높고 폭이 좁은 통로는 어디까지 향하는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길었다.

" 자, 다음은 내가 들어가겠어. 순서는 에덴, 히폴리아, 이렐린, 엘렌, 보리, 마지막으로 엘류나크다. "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순서를 외웠다. 물론 드래곤인 란을 제일 뒤에 두면 든든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감각이 예민했기 때문에 길잡기 노릇을 해야했다. 그렇다고 내가 제일 뒤에 가면 통솔하기가 여간 까다롭지가 않아서 어려웠고. 그 때문에 엘류나크를 제일 뒤로 보내는 수 밖에 없었다.

보리와 함께 있으니 그래도 순식간에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이제 정말로 다들 긴장들 해. 각자 물품은 철저히 준비했지? "

" 네. "

" 얼마가 걸릴지, 무엇이 나올지, 어떤 곳일지는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절대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오로지 앞에 사람만 보고 따라와야해. 이건 절대적인 명령이야. "

나는 다시한번 모두에게 주의를 단단히 주고 란의 뒤를 따라갔다.

드디어, 마녀의 탑에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기나긴 여정을 끝내고 거의 다왔군요.

하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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