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8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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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왔습니다, 도련님. "

너무 외진 곳은 아니지만, 작은 할아버지댁으로부터 꽤 먼거리다. 주위에는 인가가 드문드문 있었고, 사람들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름이 높은 선생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꽤나 몰릴 줄 알았는데, 그의 집은 한산하기만 하다.

" 허험! "

내가 헛기침을 몇번 하자, 누군가가 집을 나온다. 아낙이다. 아마도 허질 선생의 처인 모양이다.

" 누구신지…? "

" 김태황이라 합니다. 혹시 허질 선생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

"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아낙은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곧 허질 선생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방을 나온다. 글을 읽는 선비가 아니라면, 장비 저리가라 할 정도로 험악하게 생긴 얼굴이다. 부리부리한 두 눈과 매우 큰 몸집은, 상대방을 한순간에 압도할만한 기도를 내뿜고 있었다.

" 누구시오. "

" 선생님을 뵈러온 나그네입니다. "

" 얘기하러 온 것이라면 돌아가시오.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으니까 말이오. "

꽤 당돌하게 툭 내뱉고, 그는 다시 방안을 쏙 들어간다. 이건 무슨 해괴한 행동이지?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루에 서있던 아낙을 바라본다. 그녀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죄송합니다. 저희집 양반이 아무와도 만나기를 원치 않으셔서…. "

" 그렇습니까. "

나는 잠시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 그러면 조금만 여기서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

" 예? "

" 기다리는 것은 상관없지 않습니까? 절 만나길 원할 수도 있고 말이지요. "

" 어험! "

방안에서 기침 소리가 들린다. 내 말이 틀렸다는 뜻을 표시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않고 마당에 놓여있는 평상에 앉았다.

" 장아, 미안하지만 조금 기다려야할 것 같구나. "

" 소인은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

아낙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방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평상에 벌렁 누워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 한참 낮이라 해가 쨍쨍하여 눈이 부셨다. 배도 슬슬 고프고. 물론 혹시 몰라서 주먹밥을 싸오긴 했는데,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내가 주먹밥을 우걱우걱 먹는 도중에,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까 보았던 아낙과, 또 다른 처녀였다.

딸인 모양인지, 상당히 젊다. 그녀는 나를 한번 흘깃 보더니 제 어미를 따라서 부엌으로 쏙 들어갔다.

뭐, 나도 사실 허질 선생에게 볼일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별 신경쓰지 않고 장과 함께 주먹밥을 맛있게 먹었다.

내가 주먹밥 마지막 부분을 입에 쏙 넣었을 때, 그들은 상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시선을 아예 주고 있지 않았기에, 그들이 나를 보았는지 안 보았는지 알 겨를이 없었다. 햇빛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나는 장이 건네준 천을 얼굴에 덮고 하염없이 누워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무렵,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얼굴에 덮은 천을 걷어내 나에게 다가오는 인물을 바라보았다. 허질 선생이다.

" 이게 뭐하는 짓이오? 날이 저물었으니 냉큼 돌아가시오. "

" 그럼 오늘은 얘기 나누기는 무리겠군요. 내일 또 오겠습니다. "

" 꿈도 꾸지 마시오. "

" 그럼 이만. "

나는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말에 올라탔다. 장은 말머리를 이끌고 허질 선생의 집에서 천천히 벗어났다. 어쩌면 꽤 고달픈 나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 여기가 '월화루'란 말이지? "

" 예, 도련님. "

" 그래, 넌 그만 돌아가보거라. "

장은 말을 이끌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간다. 나는 잠시 그의 뒤를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돌려 화려한 치장이 되어있는 월화루의 입구를 바라본다. 이제 해는 완전히 져서 사방이 캄캄하다. 하지만, 월화루의 주변에 걸려있는 수많은 초롱불들이 사방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 으흠! "

" 어머, 도련님. 어서오세요. "

" 찾는 사람이 있소만. "

오늘 이곳에 들를 작정을 하고 왔기에, 나는 품에 금붙이를 상당히 많이 가지고 왔다. 아마 왠만한 기생의 몸값은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 누구를 말씀이신지? "

나는 주위를 몇번 둘러보고 천천히 그녀의 눈에 시선을 맞췄다. 여자의 눈매가 보통이 아니다.

" 최고의 기생! "

월화루에서 최고의 기생은 '난설(蘭雪)'이라는 여인이라고 한다. 그녀를 보기 위해서 양반은 물론 벼슬아치들도 문턱이 닳듯이 드나든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첩으로 삼기 위해서 발버둥을 친다는데, 그런 위치의 그녀가 고작해야 아무것도 볼 것없는 나같은 도령을 만날 이유가 없단다. 심지어 품에 있던 금붙이 몇 개를 보여줘도, 고개를 흔든다.

" 도련님, 죄송합니다. "

" 왜 안된다는 거지? "

" 난설이는 워낙 만나고자 하는 분들이 많으셔서요. 도련님을 만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

" 흠. "

흔히 말하는 '클라스가 틀리다'라는 뜻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이정도는 되야 소환수의 격이 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애새끼나 돈만 주면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나까지 자존심이 상할테니까.

" 좋아. 그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뭐지? "

"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도련님. 난설이 말고, 다른 애들은 어떠신지…? "

" 아니, 흥이 깨졌네. 다음에 다시 들르지. 그 땐, 난설이를 준비시켜야 할거야. "

아마 속으로 꼴에- 하고 비웃고 있을테지만, 그녀는 싱긋 웃고 고개를 꾸벅 숙인다.

" 들어가보십시오, 도련님. "

나는 손을 한번 흔들고 월화루에서 나왔다. 어차피 난향루도 이곳과 마찬가지일테니, 오늘은 이만 작은 할아버지댁으로 돌아가야할 듯 싶었다.

' 난설을 만날 수 있는 방법? '

그거야, 뻔하다. 직접 제 발로 기어 나오게 만들면 된다. 그건 어떻게 하냐고?

'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면 되겠지. '

" 음? "

집으로 돌아가니, 누군가가 내 방문 앞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 연지다.

' 호, 늦게 들어와서 걱정된건가. '

" 여긴 왠일이야? "

" 도련님! "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몇번 휘휘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 그… 늦게 오셔서… 걱정했습니다. "

" 걱정 안해도 돼. 일이 있어서 늦었을 뿐이야. "

" 저녁은 드셨습니까? "

" 응. 너는? "

" 저도 먹었습니다. "

그녀는 이제서야 안심되었다는 얼굴로 자리를 옮길려고 몸을 돌린다. 하지만, 이렇게 굴러들어온 떡을 찰 수 없지. 나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내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 도련님? "

" 잠시만, 있어봐. "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촛불을 켰다. 아릿한 불빛이 그녀의 예쁜 얼굴을 살짝 비춘다. 불빛이 발갛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얼굴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 날 연모하느냐? "

그녀는 한참이나 아무말도 없이 고개만 돌린채 묵묵히 서있다. 하지만, 나도 끈질기게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스스로 말해야 일이 쉽게 풀리니까.

" 연… 연모합니다. "

한참을 기다려서야 그녀의 조그만 입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좋아, 날 연모한다는 거지? 그녀와 나는 이루어질 수 없는 배덕한 관계다. 그러기에 그녀가 그리도 연모한다는 말을 머뭇거린 것이다. 즉, 그녀 스스로가 이런 관계를 만든 셈이니까.

" 그래? "

나는 그녀의 턱을 손으로 잡아 천천히 올렸다. 그녀의 두 눈은 불안감에 가득차있다. 아마 우리의 관계가 들통나면 큰일난다는 생각때문이겠지. 하지만, 오히려 그런 관계때문에, 우리는 끊을 수 없는 줄로 이어진 셈이다.

- 쪽

나는 그녀의 뒷머리를 강하게 붙잡고 입을 맞추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키스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벗어나려하지만, 내 혀와 그녀의 혀가 야릇하게 섞이자 저항의 힘이 약해진다. 쮸웁, 쮸웁- 하는 진득한 소리가 나와 그녀 사이에 오간다.

" 하아…, 하아…. "

입을 떼어내자 그녀는 약간 붉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 핫…, 어떡해. "

저질러버렸다. 결코 넘지 말아야할 선을, 내가 한발자국 디딘 셈이다. 하지만, 아직까진 돌이킬 순 있다. 디뎠던 발을 다시 되돌려 놓으면, 원상태가 된다. 그녀는 비록 나를 연모하지만, 심각한 상황에 빠지는 것은 불안한 모양이다.

" 도련님, 안돼요. 우린… 우린 이러면 안돼요. "

" 쉿. 다 내가 책임질께. 걱정마. 넌 내가 책임질거야. "

내가 그녀의 어깨를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진중한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그녀의 입에서 하아- 하는 야릇한 소리가 들린다.

" 그치만, 할아버님께 들키면…! "

" 절대 안들켜. 너만 입단속만 한다면, 아무도 우리 관계를 몰라. "

그녀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 절대 말하지 않을거에요. "

" 그래, 착하네. "

나는 어깨를 쓸어내리던 손을 서서히 내려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녀가 입은 옷이 꽤나 걸리적거렸지만, 그래도 그녀의 아담한 몸매는 손에 그대로 느껴졌다.

" 하읏, 도련님…! "

" 오늘밤…, 괜찮아? "

" 네… 네? "

그녀가 숨을 확 들이마시면서 깜짝 놀란다. 내 말뜻을 모를리가 없다. 그녀는 오른손을 입에 약간 문채로 고개를 떨군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흔들었다.

" 안돼요, 저희 언니가 눈치챌거에요. "

" 그래? "

안타깝게도 그녀는 나를 거부했다. 아마 자신의 언니가 우리 둘 사이의 관계를 눈치챌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감이 빠른 여자라면, 나와 관계를 맺은 후 그녀의 행동을 눈치챌 것이다.

" 그러면 가볍게 하지. "

나는 그녀의 아담한 유방을 두 손으로 살짝 쥐었다. 처음으로 남자에게 만져졌는지 그녀가 살짝 놀라면서 몸을 뒤로 뺐지만, 이미 그녀의 뒤는 벽이다.

" 하읏, 도… 도련님. "

" 가만 있어봐. "

이래서 얼굴이 굉장히 잘생기면 좋단 말이야. 이런 예쁜 여자도 쉽게 넘어오고. 그녀의 가슴은 정말 찹쌀떡처럼 몰캉몰캉했다. 옷위라서 속살을 느낄 순 없었지만, 그래도 그 손맛하나는 일품이었다.

" 으으읏. "

" 후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내일 또 올거지? "

" 흐우…, 네…. "

그녀는 잠시 벽에 기대 숨을 고르더니 내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방을 황급히 뛰어나갔다. 하는 행동거지도 귀여워 보인다.

' 슬슬 애가 타도록 만들어야겠군. '

어차피 시간은 많다.

' 허질 선생도 해결해야되고, 기생도 찾아야되고, 그녀도 먹어야되고… 할일이 무지 많구나. '

물론 이 모든 일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번 게임은 얼마나 복잡해지고, 또 얼마나 길어질지는 예측할 수가 없다.

그저, 꼬이지만 않기를 바랄뿐.

============================ 작품 후기 ============================

참, 댓글과 추천, 그리고 선작 해주신분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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