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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기생집을 하나하나 정복하기를 벌써 18개. 이제 내 '빙화 도령'이라는 별칭은 기생집뿐만 아니라 양반과 평민 사이에서도 상당히 유명해졌다. 나는 그것을 이용해 몰래 이런 소문을 퍼트렸다.
- 월화루의 최고의 기생도, 난향루의 최고의 기생도 빙화도령에겐 한 수 접어야한다.
당연히 월화루와 난향루쪽에서는 화가 날 수 밖에. 어디서 튀어나온 애송이인지는 몰라도, 오랜 세월동안 쌓아놓은 자신들의 이명이 고작 기생집 몇개를 정복했다고 넘을 수 있는게 아니었다고 생각하니까. 그 덕분에 나는 월화루와 난향루에서 동시에 도전장을 받았고, 이를 기꺼이 수용했다. 단, 나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경우에. 조건이 뭐냐고?
' 바로, 하루 한날에 동시에 승부를 가리자는 것이지. '
그렇다. 괜히 시간을 질질 끌 생각이 없는 나는 월화루의 최고의 기생, 그리고 난향루의 최고의 기생과 동시에 승부를 가리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월화루와 난향루는 그 조건을 수락했고, 조금 있으면 그들이 도착할 때였다. 평양에서 가장 유명한 두 기생집에서 최고의 기생 둘이 모인다는 소문때문에, 약속한 장소에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물론 그걸 놓칠 내가 아니었으니, 나는 장을 시켜서 많은 하인을 고용한 뒤에 승부가 잘 보이는 위치에서 자릿세를 받도록 시켰다. 물론 돈 많은 양반들은 기꺼이 자릿세를 내놓았고, 나의 수중에는 금새 어마어마한 돈이 쌓였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직접 음식까지 팔도록 했기에, 내 수중에 있는 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 이런게 바로 꿩먹고 알까지 먹는거지. '
할아버지에게 손을 계속 내밀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으니, 승부를 하는겸해서 돈까지 벌 목적이었달까. 물론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이 모일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평양에서 거의 모르는 이가 없을정도로 소문이 퍼진 덕분이었다. 물론 작은 할아버지도 알게 되어버렸지만, 별수롭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것보단 평양에서도 인정하고 알아주는 두 기생과 승부를 한다는 소리에, 나에게 기대를 건다고 해주셨다.
' 그럼 어디 기다려볼까. '
넓은 정자 한 가운데에 양반다리로 앉아서 그녀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양반부터 평민, 기생, 그리고 길을 지나가는 천민까지 모조리 모여 이 대결을 구경하고 있었다. 꽤 오래 앉아있었다고 생각할 찰나에, 누군가가 소리치면서 시선을 모았다.
" 월화루다! 월화루가 먼저 도착했다! "
" 미인이야, 그것도 어마어마한 미인이야! 정말 눈이 쏙 빠져버리겠어. "
월화루쪽에서 먼저 기생이 나타나 정자 위로 올라갔다. 정말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잠자는 공주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 난향루에서 올 기생이 잠자는 공주일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이 둘중에서 한 곳이 아니라면 정말 찾기가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때마침, 저멀리서 누군가가 말을 타고 오고 있다.
" 난향루야! 난향루에서도 왔어! "
" 둘이 정말 용호쌍박이군. 둘다 너무 아름다워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어. "
난향루에서 온 여인이 정자로 올라와서 나를 보는 순간 우뚝 멈춘다. 그녀는 잠자는 공주와 다르다.
물론 그 때 잠자는 공주는 판타지 세계의 여인이었고, 지금은 조선 시대의 여인이니까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똑같았다. 저번 판타지 세계에서도 지금 이 모습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필연적으로 나와 그녀가 무언가로 이어져있음을 느낀 모양이다.
" 아…! "
" 찾은건가. "
월화루의 기생이 살짝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와 그녀를 번갈아보았지만, 한번 만난 사이든 아니든간에 승부는 자신이 이길 자신이 있었다.
" '빙화 도령'님. 이제 모두 모인 것 같으니, 승부를 시작해보지요. "
난향루의 기생이 나에게 인사를 올리자마자, 그녀는 톡- 쏘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월화루와 난향루의 기생들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 각각 이름을 가르쳐주시겠소? "
" 이름…이요? "
" 난… 난이라고 합니다. "
월화루의 기생은 약간 의아한 소리를 냈지만, 난향루의 기생은 곧바로 이름을 말했다. 난이라, 예쁜 이름이군. 물론 워낙 난, 향, 월, 혜같은 이름이 많았기에 일일이 구분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녀의 이름만큼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 저… 저는 궁이라 합니다. "
" 이제 알겠소. 승부를 시작해보지요, 난, 궁. "
그리고 자리에 공손히 앉은 뒤, 그녀들에게 앉아라고 눈짓을 주었다.
" 당신은 무엇을 가장 잘합니까. "
" 그림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
궁이 자신만만하게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보통 겸허의 말을 꺼내기가 일쑤였는데, 그녀는 그런 것없이 당당히 말했다. 오히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장점으로 승화되었지만,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그림이라, 그건 나도 꽤 자신있는데 말이오. "
" 그렇습니까? 그럼 당장 시작하지요. "
그녀의 두 눈에서 불꽃이 일렁였다. 아마 승부욕에 불타오르는 것이겠지. 곧 하인 두 명이 우리쪽으로 다가와 문방사우를 건네준다.
이번에는 누가 먼저 그리는 것 없이 동시에 그리도록 했다. 나는 무엇을 그릴까- 하고 생각하다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아주 쇼킹한 것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완벽한 사실주의 그림! 나는 종이만 빼고 다른 것들은 옆으로 치워놓고, 하인에게 목탄을 여러개 가져오도록 시켰다.
" ? "
궁이 약간 의아해하는 얼굴을 보였지만, 나는 어깨를 살짝 으쓱하고 하인이 가져온 목탄을 집었다.
"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곧 우리들은 각자의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구경꾼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얼른 나와 그녀의 그림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내가 가장 잘하고 좋아했던 것이 바로 그림그리기와 글쓰기였는데, 그녀덕분에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것중 하나를 하게되어 속으로 기뻤다. 극사실주의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던 것이었으니까 가장 자신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그녀의 그림은 점점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난은 궁의 그림을 보고 감탄의 얼굴이 되었다가 내 그림을 보는 순간 입을 떡 벌렸다.
물론 궁은 동요하지 않기 위해서 꿋꿋이 그녀의 그림에만 신경을 쏟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실력발휘가 되었는지 얼굴에 만족의 미소가 보였다.
물론 나는 평소 이용하던 연필이 아니라 목탄이었기에 그림이 생각만큼 더 사실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이게 실물인지 그림인지 모를 정도로 놀랄 것이다.
" 자, 나는 다 되었소. "
" 저도 다 끝났습니다. "
나와 그녀는 각자의 작품을 천으로 덮어놓고 씩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자신이 충만했고, 나 역시도 그랬다.
" 자신이 있으신가보군요. "
" 물론이죠. "
" 그럼 승부를 내보죠. "
내가 하인들을 향해 손짓하여 그림을 들고가게 했다. 그림은 동시에 공개하기로 했고, 구경꾼들은 숨죽이면서 천으로 덮은 그림 두 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누가 이길까? "
" 월화루쪽이 아닐까? 그래도 그녀의 그림 실력은 한양에서도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대단하잖아. "
" 그래? 그래도 '빙화 도령'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
" 그것도 그렇긴 해. "
하인들도 긴장된 나머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천에 손을 천천히 갖다대었다.
" 자, 공개하겠소. "
나의 말과 동시에 두 개의 천이 땅으로 떨어졌다. 처음에 궁의 그림을 바라본 사람들은 모두 오오- 하는 탄성음을 내질렀다.
그야말로 군계일학의 실력이었다. 길게 뻗은 곧은 난에, 어여쁘게 피어난 난꽃. 그 휘어진 곡선은 아무나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곧 그들의 시선이 천천히 옆으로 옮겨져 내 그림을 보았을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그녀였다.
" 저.. 저 여인이네? "
" 이건… 말도 안돼! "
궁은 내 그림을 보고 혀를 차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엇을 그렸기에 저리도 동요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조선시대에 여인을 그리는 것은 거의 금기시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춘화라기보다는 초상화에 가까웠다. 아니, 초상화였다. 그것도 그녀와 아주아주 똑같은 모습의.
그녀는 결국 너무 궁금한 나머지 정자를 내려와 군중들 앞에 보여져있는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입을 떡-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항상 거울로만 보던 자신의 얼굴이 종이 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의 충격에 빠진 얼굴을 보면서 빙긋이 웃었다.
" 승부는 어떻게 됬소? "
" 이건… 이건…. "
" 내가 이겼소? 아니면 당신이 이겼소? "
그녀는 아무말도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구경꾼들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 바라보고만 있었다. 자존심이 쎈 그녀가 승부의 판단을 허투루 말할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 …이에요. "
" 다시 말씀해주시겠소? "
" 당신이에요. 당신이 이겼어요. 승복하겠어요. 이건… 제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요. "
궁은 다시 천천히 정자 위로 올라오더니 나를 향해 깊게 절을 올린다. 구경꾼들은 그제서야 이 승부가 결코 만만치가 않음을 느끼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저 '빙화 도령'과 두 기생의 승부가 있다고 하니 재미삼아 구경을 왔을 뿐이었는데, 이건 그저 재미삼아 구경하기엔 너무 대단하달까. 그제서야 그들은 자릿세까지 내면서 둘의 승부를 구경하러온 양반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이런 승부가 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 아까 그들을 욕했는데, 이거 정말 돈내고 볼만 하구려. "
" 그렇군. 이제 다음 승부를 봅세. "
아까는 약간 시끌시끌하고 즐거운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긴장되고 기대하는 분위기랄까. 몇몇 양반이 내 그림을 사겠다고 하인들을 통해 말을 전달했지만, 나는 단호히 고개를 흔들고 그 그림을 궁에게 선물했다. 어차피 이럴 목적이었기도 했고.
" 이건 당신을 위한 선물이오. "
" 가… 감사합니다.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
그녀는 그림을 공손히 받아서 가져온 상자 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이제 첫 번째 대결은 끝났다. 두 번째 대결은 난향루의 기생과 해야한다.
" 이제 그대만 남았군요. 자, 그대는 무엇을 가장 잘하시오. "
" 한시를… 조금 쓸 줄 아옵니다. "
" 한시라, 좋소. 부디 최선을 다해주시오. "
" 알겠습니다. "
어차피 나는 마지막이라 생각했기에, 그녀들과 만나기 전에 게임을 잠시 중지시키고 한시를 최대한 찾아보았다. 어차피 이번은 져도 되는 승부였다.
그녀는 잠자는 공주였고, 내가 원하던 여인이었으니까 승부에 지더라도 크게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빙화 도령'이라는 내 별칭에 흠집이 가겠지. 그러기 때문에, 질 수 없기도 했다.
' 아니, 어차피 그녀는 준비 단계에 불과해. '빙화 도령'은 게임 끝까지 가지고 가야할 내 별칭이 될지도 몰라. '
그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이기기 위해서 가장 괜찮은 한시를 적을 수 밖에 없었다. 곧 하인들이 문방사우를 다시 가져와 우리들 앞에 두고 사라졌다.
" 그럼 시작합시다. "
드디어, 마지막 승부가 시작되었다. 우리들은 먹을 갈아서 붓에 먹물을 듬뿍 묻히고 종이 위로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