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8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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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작은 할아버지께 잠시 한양에 들렀다가 오겠다고 말씀드린 뒤에 곧바로 말을 탔다. 밑에 하인 녀석에게 허질 선생을 보고 잠시 자리를 비울 수 있다고 전해라 말한뒤, 나는 말을 타고 터덜터덜 평양을 벗어났다.

" 어? "

이제 막 저멀리 평양이 보이지 않을 때쯤, 장은 누군가를 보고 어- 하고 소리치더니 나를 빙글 바라본다.

" 도련님? "

" 아, 아직 넌 모르지. 장아, 나는 널 믿는다. 부디 입단속을 단단히 하거라. "

" 아,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

그는 대충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눈치채고 씩 웃는다. 그래도 예전부터 그를 잘 대해줬던 것이 그에겐 꽤나 고마웠던 것인지, 나의 이정도 결점정도는 눈감아줄 생각은 있는 모양이었다.

" 연지야. "

" 도련님. "

연지는 자신의 몸종 하나를 데리고 나에게 다가온다. 몸종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는데, 어차피 그래봤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혹여 지금 돌아간다고 해도, 이미 따라나선 다음이라 어쩌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어서 고발은 생각지도 못할 것이다.

" 그래, 가자. 올라타거라. "

나는 그녀를 내 앞에 태우고 다시 말을 움직였다. 물론 조선 시대에 남녀가 이런 식으로 몸을 맞대고 있으면 흉이었을테지만, 지금은 아무도 볼 사람도 없고, 만약 누군가가 온다고 해도 내가 말에서 내리면 끝이다.

물론 그녀가 처음엔 장과 례(그녀의 몸종의 이름이다)가 있는데 그런 짓은 할 수 없다고 뻗대다가 결국엔 말이 한 마리뿐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올라탔다.

" 불편해도 며칠만 참거라. "

" 네,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

그렇게 남의 눈을 최대한 피해서 움직이기를 일주일. 원래는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었으나 연지가 타고있었기에 말을 좀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하루정도 더 늦게 도착했는데, 물론 한양에 가까워졌을 때 나는 말에서 내렸다. 이제 수중에 있는 돈으로 허질 선생의 가족과 연지가 지낼 수 있는 장소를 구해야한다.

비록 기생들의 몸값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만 냥정도면 작은 가옥 두 채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물론 돈을 탈탈 털어야겠지만.

장은 얼른 발품하여 기왓집을 알아보았고, 금새 아담한 가옥 하나를 발견하여 나에게 보고했다. 물론 가격 후리는 것도 보통이 아니라, 6천냥이 5천 5백냥이 되었고, 나는 흡족하게 수중에서 돈을 꺼내 주인에게 넘겨주었다.

" 사람은 살고있소? "

" 예전부터 비워두었던 집입니다. 어차피 이사를 갔기에 아무도 없습니다. 먼지가 조금 쌓여있을텐데요. "

" 그건 걱정마시오. 고맙소. "

나는 그에게 집문서를 건네받고 그것을 연지에게 주었다.

" 이제 여긴 너의 집이다. 여기서 잠시 머물고 있어. 자주 들를테니, 걱정말고. "

" 예, 도련님. "

" 일단 이 돈을 받고 집을 한번 꾸려봐. 그리고 사람도 고용하고. 원하는 대로 해봐. "

" 네, 빨리 찾아오셔야 해요. "

" 그래. 례, 너도 그녀를 잘 보살펴야한다. "

" 여부가 있겠습니까. "

나는 장과 례에게 자리를 물리게 한 다음에 연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다.

" 걱정마, 잘 될거야. "

" 흑, 도련님. "

" 둘이 있을 땐, 서방님이라고 해도 괜찮다고 했잖아. "

" 서방님, 흑흑. "

나는 그녀의 얼굴을 살짝 손으로 들어서 입을 맞추었다.

" 얼른 다녀올테니까, 걱정말고. 내가 실망하는 여인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연지. 너의 가능성을 믿어. 이곳은 이제 너의 공간이야. "

" 네, 걱정마셔요. "

그래도 평양의 가장 부자인 작은 할아버지의 손녀였으니 이정도 집을 꾸리는 것은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 믿었다. 나는 다시 한번 더 그녀와 입맞춤을 하고 집을 빠져 나왔다. 이제, 드디어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야할 시간이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힘든, 그리고 가장 기대되는 시간이랄까.

" 장아, 서두르자. "

" 할아버님, 제가 돌아왔습니다. "

" 들어오거라. "

나는 절제된 몸가짐으로 할아버지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 얻은게 있느냐. "

" 예, 할아버지. "

" 말해줄 수 있느냐. "

" 사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웠달까요. "

" 호. "

할아버지는 기꺼운 눈으로 몇번 허허- 하고 웃으면서 손으로 무릎을 어루어만진다.

" 그래, 계속 해봐라. "

"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십니까. 그저 지금 이 자리에 만족하고 그에 알맞은 위치를 찾아가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이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조금 더 높은 곳을 가려는 사람입니까. "

" 흠. "

그는 자신의 긴 흰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셨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그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지만,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약간 지루해지는 시점에 그는 눈을 번쩍 뜨고 나를 바라본다.

"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냐. 이 할애비를 시험하려 하지 말거라. "

" 제가 어떻게 감히 할아버지를 시험하겠습니까. 천부당만부당합니다. "

" 허허, 고얀놈. 내가 그래도 수십 년을 족제비같은 놈들에게서 살아남아왔다. 너도 만만치 않지만, 아직 부족해. "

" 시험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할아버지의 속마음을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

" 그렇다면 말해주겠다. 나는 그 둘 모두를 바라고 있다. 난 욕심이 많은 사람이거든. "

침이 넘어간다.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 둘 모두를 바란다고 말하다니.

" 이 자리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임과 동시에, 조금 더 높은 곳으로 가려는 의지도 있어야 한다. 조금 모순되는 말일테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유불급이다. "

" 말씀, 경청하겠습니다. "

" 네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한다. 하지만, 그것이 너에게 넘치지 않는다면, 꽉 채울 줄 알아야하는 법이다. 지금의 너는 어떻느냐. 아직 비워져있느냐, 아니면 꽉 차서 흘러넘치고 있느냐. "

" 이렇게 말씀드리기 민망하지만, 아직 한참 비워져있습니다. "

" 그래? 그렇다면 한번 네 그릇을 전부 채워보거라. 물론 그릇된 행동으로 채우는 것은 안된다. "

할아버지에게 절을 했다.

" 할아버지. 제가 할아버지께 일생일대의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

" 그래, 말해보거라. "

나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은 웃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눈을 싸늘하게 빛나고 있다. 확실히 내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지만, 아직도 내 그릇을 가늠해보고 있는 것이다.

" 삼십 만냥이 필요합니다. "

" 장아, 다시 평양으로 가자. "

" 예? 아예. 그런데 일은…? "

" 다 잘되었다. 얼른 출발하자. "

" 안 쉬셔도 되겠습니까? 몸 상하시겠습니다. "

" 괜찮다. "

일은? 다 잘 끝났다. 잘 끝나도 너무 잘 끝났다는 게 문제지만. 할아버지는 나에게 돈을 주셨다.

그것도 무려 오십 만냥. 보통 부자들이라면 집안이 휘청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물론 우리 집안도 오십 만냥이 누구 옆집 개 이름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선뜻 나에게 오십 만냥을 빌려주었다.

그것도 이유 하나 물어보지 않고. 나는 내 계획의 일부를 밝히면서 그 돈을 빌릴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그저 내 요구를 충족시켜주셨다.

' 이번 일로 모든 것을 판단하겠다는 것이겠지. '

그 돈에 파묻혀서 내가 스스로를 잊어버린다면 나는 할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다. 그러면 게임은 끝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러지도 않을 것이다. 오십 만냥이면 그녀들을 모두 사고도 이십 오만냥이 남는다.

말이 이십 오만냥이지, 아껴만 쓴다면 내 밑으로 수십 대가 먹고 살 수 있는 돈이랄까. 할아버지는 너무나도 큰 돈을 나에게 준 셈이다. 한 마디로 하자면, 그의 일생일대 최고의 도박이랄까.

' 하지만, 할아버진 최고의 패를 쥐셨습니다, 크크크. '

일단 그렇게 큰 거금이 한번에 뿅- 하고 나타날 수는 없기에, 그는 돈을 마련하여 평양으로 올려보내겠다고 하셨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았기에, 나는 계획을 조금 수정해도 되겠다 싶어서 말을 타고 평양을 가는 내내 생각에 잠겨있었다.

" 도련님! 큰일났어요. 작은 애기씨가… 작은 애기씨가 사라졌어요. "

평양에 돌아오니, 이미 작은 할아버지 집안은 난리가 났다. 연지가 편지 한 통만 달랑 남기고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건 한참 전의 일이었지만, 그들은 아직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작은 할아버지는 어느 정도 그것에 대해 마음을 비웠는지 얼굴이 평온했다.

" 장손 오셨소. "

" 예, 작은 할아버지. 마음이 불편하시겠습니다. "

" 아니오. 오히려 마음 한 구석으론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들지. 그저 몸만 안 상하고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이오. 어차피 여기선 그저 집안끼리 혼사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으니 말이오. "

생각보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그녀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있었다. 그저 이렇게 떠나 고생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리라.

" 그래서 더 이상 그녀를 찾지 않기로 했지요. 그녀 스스로가 선택한 삶이고, 다음에 그저 몇번정도 집에 왔다가 갔으면 하는 생각 뿐이오. "

잠시 숙연해진 분위기때문에 나는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그래도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린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긴 한다.

' 그럼 이제 다시 그녀들에게 집중해야겠군. '

물론 먼저 허질 선생에게 가서 슬슬 이사갈 준비를 해두라고 말도 해놓고, 궁과 난도 몸값을 지불하고, 그녀들이 기거할 집도 거대한 것을 사야한다. 물론 그것뿐만이 아니라, 이 돈으로 모든 준비를 완료해야한다.

그 후에, 장희빈(물론 지금은 희빈이 아니지만, 지금은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하겠다.)을 만나 그녀를 내것으로 만든다음에, 궁을 장악할 생각이다. 그 후에, 어느정도 일이 끝나면 남원으로 내려가 춘향이를 데리고 오면, 게임은 거의 끝났다고 봐야한다.

' 물론 춘향이를 만나기 전에, 궁부터 장악해서 귀하신 여자들의 몸을 한번 맛봐야지. '

사실 그것이 가장 큰 나의 목표이긴하다. 최종 목표는 춘향이지만, 고작 그녀 하나만 바라보고 갈 생각이었으면 이런 게임은 하지도 않았다. 내 손으로 나라를 좌지우지하고픈 검은 욕망이 있달까.

' 기다려라, 조선아. 그리고, 궁에 있는 모든 여자들아. 왕? 크크크, 나라가 망하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어차피 소환수만 정하면 싸그리 다 리셋되어버리니까 말이지. '

이게 나의 진짜 속마음이었다. 조선이 망하든 말든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게임이고, 나는 그저 즐기기 위해서 게임을 하는 것이니까. 물론 막장으로 하다간 내 목이 먼저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에, 최대한 몸조심, 또 몸조심, 그리고 또! 몸조심을 해야한다. 특히 조선은 더더욱 그런 점이 심하니까.

" 오늘은 쉬고 내일 움직여볼까. 어차피 돈이 오려면 멀었으니까. "

물론 자신의 할아버지정도라면 빠르게 일을 추진할테니 십일 안으로 오십 만냥이 작은 할아버지 댁으로 옮겨질 것이다. 그 전에 또 끝내야할 일이 몇가지 있으니, 오늘 몸을 푹 쉬게 하여 몸상태를 완벽하게 만들어놔야한다.

' 그럼, 게임 시작이다. '

============================ 작품 후기 ============================

와.. 진짜 소설을 두 개나 적으니 몸이 장난아니게 힘드네요.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글만 적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시간이 완전히 사라지군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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