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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단 제일 먼저 들른 곳은, 평양에 와서 가장 먼저 들렀던 기생집이었다. 그곳에 있는 월화를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그녀에게도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 네? "
" 이해 못한 거야? "
" 아… 아니, 그런건 아니에요. 그저 갑작스럽게 그리 말하셔서…. "
" 혹시 이곳에 묶여있다던가, 그런건 아니잖아? "
" 네, 그런 건 아닙니다만…. "
그녀는 잠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결심한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눈에는 힘찬 결심이 들어있었다.
" 알겠어요. 도련님 말대로 하겠어요. "
" 그렇게 말해줄거라 믿었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테니까, 빨리 준비를 끝마쳐줘. "
" 예, 도련님. "
" 나는 다른 곳에 가봐야할 것 같아서 일어나봐야겠네. "
나는 방을 나서기 전에 그녀의 입술에 입을 쪽- 맞췄다. 그 이후로 기생집 18군데를 모두 방문하여 나와 동침을 했던 기생들과 모두 만났다.
몇몇은 사정이 있어서 결국 승낙을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15명은 나와 함께 떠나기로 약속했다. 물론 그 중에서 몸값이 잡혀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월화루나 난향루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기에 흔쾌히 값을 치르기로 약속했다.
" 후, 여기까지 온건가. "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곳은 월화루와 난향루. 먼저 월화루에 들르자 그곳에 있던 루주가 황급히 뛰어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 아니, 이런 이른 시간에 어인일로…. "
" 궁 있는가. "
" 아, 예. 지금 방에 있을 것입니다. "
" 좀 불러주게. "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시간이 꽤 오래걸려서야 궁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왔다는 것 때문에 몸을 치장했는지, 꽤 화려한 모습이었다. 물론 그것에 대해서 꾸짖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마음이 있는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은 여자의 본능이니까.
" 어머, 도련님. "
" 잘 지냈어? "
" 네, 물론 도련님을 생각하면서 지냈습니다. "
" 그래? 음… 일단 일은 잘 끝났어. 네 몸값은 내가 지불해줄 수 있을 것 같다. "
" 네…? "
그녀는 설마 내가 그 엄청난 돈을 마련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무리 부자라도 십오만 냥이나 되는 돈을 고작 기생 하나를 사는데 쓰는 바보는 없을 것이라고, 그녀 또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나는 했다.
" 도련님, 그게 무슨…! 그러시면 안됩니다. 고작 저 하나 몸값을 지불하겠다고 그런 큰돈을 쓴다면 세상 사람들이 비웃을 거에요! "
" 그런건 아무 상관없어. 세상 사람이 모두 비웃는다고 해도, 널 사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어. 잔말말고 서방님 말 들어. "
순간 그녀의 굳었던 마음이 사르르 풀린다. 물론 그가 자신을 위해 바보같은 짓을 했다지만, 그것만큼 감동적인 일도 없었다. 얼굴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 더 예쁘다는 것만 빼면 별 볼일 없는 자신을 위해, 그렇게 큰돈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테니까.
" 도련님…. "
" 그래, 조금만 기다려. 떠날 준비도 해놓고. 금방 끝나니깐 서둘러. "
" 네, 알겠어요. "
" 그럼 가볼께. 아직 할 일이 많아서 말이야. "
나는 그녀와 키스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고 곧장 난향루로 갔는데, 그곳 역시 루주가 이른 시간부터 찾아온 나를 반기며 입을 열었다.
" 어쩐 일로…? "
" 난을 만나고 싶어서 왔소. "
" 아, 알겠습니다. 그녀를 불러드리겠습니다. "
난은 궁과 다르게 금새 나를 만나러 나왔다. 궁과 성향이 약간 틀린지 꾸밈도 별로 없었고, 그저 평소의 모습이랄까. 하지만, 그런 수수함도 그녀에겐 매력이었다. 역시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다운 아름다움이었다.
' 확실히 예뻐. 춘향이와 비교하면 누가 더 아름다울까. '
" 도련님! "
" 기다렸어? "
" 매일같이 전전반측 하였사옵니다. 제대로 눈을 붙인 적이 없습니다. "
" 그렇구나. 어쨌든 일은 잘 끝났어. 이제 떠날 준비를 해. "
" 네? "
그녀는 내 말뜻을 못 알아들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 돈은 준비 되었다고. 너의 몸값을 지불할 돈은 충분해. "
" … 제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지요? "
" 그래. "
" 제가 도련님을 잘못 봤군요. "
갑자기 난의 얼굴이 싹- 굳어진다. 순간 나는 내가 뭘 잘못 말했나?- 하고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내 말을 곱씹어봐도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갑자기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걸까.
" 왜 그래? "
" 고작 저 때문에 그 큰돈을 낭비하다니요. 도련님이 설마 그럴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건 비단 도련님뿐만 아니라 저까지 모욕을 주는 행위에요. "
" 왜 그러는거야? 널 데리고 가겠다는데. "
" 아뇨. 차라리 그 돈을 더 가치있는 곳에 쓰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
설마 난이 이런 식으로 거절할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가장 기뻐하고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이런 반응이라니. 그것은 그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진실로 나를 걱정하는 것이다.
" 난! 날 화나게 할거야? "
" 도련님이야말로 이런 식으로 행동하실건가요?! 어째서 저따위에서 그런 큰돈을…. 십만 냥이라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큰돈입니다. 차라리 그것으로 도련님의 가치를 높이는데 쓰이는 것이 저에겐 더 자랑스럽습니다. "
" 걱정마. 그것까지 다 생각해두었으니까. "
" 아니요, 그럴 순 없습니다. "
" 난! "
" 도련님! "
그녀는 한치의 물러남도 없이 나를 바라본다. 하, 설마 여기서 이렇게 틀어지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설득시킬 자신이 있었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허락할 것이다. 왜냐? 결국 그녀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거든.
- 털썩
" 도련님!!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얼른 일어나세요! 누가 보면 어쩔려고 그래요!!! "
난은 정말로 당황했는지 방방 뛰면서 내 팔을 잡고 위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계속 무릎을 꿇은 상태로 고개를 숙였다.
" 네가 수락할 때까지 이렇게 있을거야. "
" 이건 말도 안되는 짓이에요! 제발 일어나세요, 네? "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 때, 저멀리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지나가는 기생들인 것 같은데, 만약에 '빙화 도령'인 내가 난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기만 해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내 위신은 추락할대로 추락할 것이고, 난은 그것에 굉장히 괴로워할 것이다.
" 아, 제발!! 제발 일어나세요!! 제발!! 제발요!!!!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얼른 일어나요오오옷!! "
거의 발광하듯이 난은 나를 일으켜세웠다. 그녀의 마지못한 수락에 나는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기생 둘이 우리들의 모습을 목격했다. 그리곤 어머, 죄송합니다- 하고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사라진다.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며 안심하는 난을 보면서 나는 그녀의 뒷목을 잡고 입을 맞췄다.
- 쮸웁, 쯉
" 하아, 하아…. "
숨이 막힐 때쯤에서야 우리는 입을 떼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 정말이지… 말은 지독하게 안 들으시네요. "
" 당신을 위해서라면, 백만 냥이었다고 해도, 지불했을 것이야. "
" 피, 말이라도 고맙네요. "
" 정말이야. 내 진심을 모르겠어? 또 무릎을 꿇을까? "
" 아이! 정말. 한번 더 그런 짓을 하면, 정말 어디론가 도망가버릴거에요. "
" 하하하, 그럼 난 너를 영원히 감금할거야. 절대 도망가지 못하도록. "
그녀는 픽- 웃고만다. 어? 장난이라고 생각하는건가.
" 어쨌든 수락은 해버렸지만, 이번 일은 너무 성급하셨어요. "
" 상관없어. 이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성급해도 돼. "
" 피, 도련님은 바람둥이 같아요. 어쩜 그렇게 여자 마음을 잘 다루시는거에요? "
바람둥이가 맞으니깐.
" 일단 해줄 말은 끝났고, 슬슬 가봐야겠어.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거든. "
" 네, 부디 원하시는 것을 꼭 이루시길 빌께요. "
" 잘 지내고. 그리고 준비는 빨리 해둬. "
" 네, 항상 몸조심하셔요. "
그리고, 나는 난향루를 떠났다. 이젠 허질 선생에게 방문할 차례다. 나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곧바로 말을 타고 허질 선생의 집으로 갔다. 그는 반갑게 나를 맞이하면서 방안으로 안내한다.
" 준비를 하라고 했소? "
" 네. 이제 조만간 내려가야할 시간입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챙기셔도 됩니다. 준비가 된다면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
" 알겠소. 적어도 아흐레 정도는 걸릴 것 같은데…. "
"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
아흐레라면 9일이니, 기생들을 먼저 전부 내려보내고 다음에 허질 선생과 같이 한양으로 내려오면 시간이 딱 맞을 것이다. 그 전에 기생들이 살아야할 공간부터 마련해야할텐데 말이지. 그건 연지에게 맡겨보면 될 듯 하다.
물론 이것저것 부족한게 좀 있겠지만, 장을 옆에 붙여서 조언을 주도록 하면 될테니깐. 물론 그동안까지는 장이 없어서 꽤 불편하겠지만, 일단 급한 일부터 해치워야 했다.
" 장아, 부탁할 일이 있다. "
" 말씀만 하십시오. "
나는 장에게 해야할 일을 꼼꼼하게 얘기해주고, 돈이 오자마자 당장 내려가기를 부탁했다. 그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문제없다고 가슴을 주먹으로 몇번 퉁퉁- 쳤다.
" 고맙다, 장아. "
그래도 믿고 맡길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이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나는 굉장히 지친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가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5일이 지난 뒤에, 드디어 작은 할아버지 집으로 돈이 도착했다. 무려 돈 상자가 10개나 되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작은 할아버지는 많은 상자들을 보면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셨지만, 곧 역시 형님의 추진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구나- 하고 허허 웃었다. 나는 몇몇 하인을 시켜 돈 상자를 들게 한 뒤에 곧바로 월화루와 난향루에 돈을 지불하게 했다. 그리고 짐을 챙긴 그녀들은 곧장 가마를 타고 나를 뒤따라 왔다.
이미 15명이나 되는 기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는데, 곧 다들 무언가 이해했는지 묘한 표정을 짓는다.
난과 궁도 처음에는 얼빠진 표정이었다가, 그제서야 상황이 파악되었는지 약간은 어이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 도련님? "
" 자자, 일단 얘기는 다음에 다시 들려줄께. 지금은 내가 너무너무 바쁘거든. 모두들 한양으로 내려가도록 해. 말은 나중에 다 해준다니깐. 걱정말고 얼른. "
몇몇은 약간 꺼림칙한 얼굴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나에게 몸까지 다 바친 상태였는데. 그녀들은 속에서 올라오는 불만을 살짝 누르고 장의 뒤를 따라 한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긴 행렬이었는지,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구경을 했다.
' 이걸로 싸그리 빼내긴 했군. '
이제 나는 허질 선생을 데리고 한양으로 내려가면 평양에서 할 일은 그것으로 마치는 셈이다.
큰 계획 중에서 아주 일부의 것이 대충 완성되었다. 물론 아직 가야할 길은 멀고도 멀지만 말이다.
============================ 작품 후기 ============================
오메, 동화 파괴자도 이젠 100회를 바라보네요.
소설을 적으면서 처음으로 100회 달성을 눈앞에 두다니, 조금 감격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