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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그럼 출발합시다. "
나는 허질 선생의 가족과 함께 평양을 떠나 한양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작은 할아버지께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신세를 많이 졌다고 인사드리고 나오자, 왠지 평양이 조금 정이 든 느낌이랄까. 아무튼 우리는 아무 탈 없이 한양에 도착하여, 장에게 찾아갔다.
역시 그는 내가 맡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나에게 허질 선생이 살 집을 보여줌과 동시에 집문서도 건네주었다.
" 자, 선생님. 이제 이곳은 선생님의 집입니다. "
" 허허, 이거 너무 신세를 지는게 아닌지…. "
" 아닙니다. 이정도는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지요. "
그는 전에 자신이 살았던 집보다 훨씬 좋아보이는 가옥을 둘러보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어쨌든 그는 나를 따라오겠다고 했고, 나는 그에 합당한 물질적 보상을 해준 것뿐이다. 어쩌면 내가 그의 도움을 꽤 많이 받게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절대 그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게 할 생각은 없었다.
" 그럼, 오늘은 집안을 꾸며보십시오. 자, 여기 필요한 은자가 있습니다. "
" 아니, 이것까지 받을 수는…. "
" 아닙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입니다. 알고 계시잖습니까. "
" 허허, 알겠소. 고맙소. "
그는 내가 건넨 묵직한 돈주머니를 받고 고마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앞으로의 생활은 그가 얼마나 이 집을 잘 운영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 저는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
" 예, 정말 이렇게까지 해주어서 고맙소. "
나는 그에게 싱긋 미소를 건네고 빙글 돌아서 집을 나왔다. 이제 하인 두 명정도 넣고, 이리저리 하면 그도 꽤 양반티 나면서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라 나의 여자들이었다.
부디 화합이 깨지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나는 서둘러 장의 안내를 받으며 그녀들이 기거하고 있는 집으로 갔다.
예상 외로, 그녀들이 기거하는 집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물론 그녀들이 모두 들어가고도 충분히 남긴 했지만, 내가 장에게 지시해서 사도록 했던 집의 크기보단 작았다는 뜻이다.
" 그런 것은 매물이 워낙 나오지 않는 터라…. 물론 찾으면 없진 않았지만, 그건 값이 상상을 초월했기에 포기했습니다. "
" 그래? "
물론 그정도라면 확실히 내가 들고있는 돈으로도 힘들지도 몰랐겠다- 하고 생각하면서, 썩 나쁘게 보이지 않는 기왓집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뒷문으로 들어간 것은 말안해도 당연한 것이었다.
" 흠흠. "
" 어머, 도련님! "
내가 데리고 온 기생 중 하나가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달려온다. 잠시 정원을 거닐고 있었는지, 그녀의 차림새는 수수했다.
" 잘 지내고 있었어? 별일은 없었고? "
" 네. 다들 잘 지내고 있어요. 형님, 동생하면서요. "
" 그래? "
그제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쉴 수 있었다. 혹시나 그녀들끼리 싸우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는데 기우로 끝나서 무척 다행이었다.
" 그럼 모두 불러서… 장! 여기 다 모일만한 큰 방이 있어? "
" 네, 있습니다. 그곳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 그럼, 어떤 방인지 알지? 거기로 다 모이게 해줘. "
" 네, 도련님. "
그녀는 종종 걸음으로 빠르게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잠시 그녀의 뒤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장의 안내를 받고 매우 널찍한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기밀을 위해 그녀들의 몸종과 어깨들만 넣은 상태였기에, 집은 한산했다. 나는 몸종 하나가 가지고 온 상에 놓여있던 음식 몇점을 집어먹으며 그녀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에 방밖에서 기척이 느껴지더니, 궁의 목소리가 들렸다.
" 도련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 응. 다들 들어와. "
문이 열리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궁, 난부터 시작해서 월화까지. 가령 그녀들뿐만 아니라 열 다섯의 기생 모두가 방안으로 들어와 내게 큰절을 올리고 자리에 앉는다. 이미 서열이 대충 만들어졌는지, 가장 앞에는 궁이 앉아있다.
" 다들 싸우지 않는 걸 보니, 마음이 놓이네. "
" 어찌 도련님의 여자들끼리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저 약간 놀랐을 뿐이지요. "
" 그래? 하지만, 개중엔 분명히 나를 원망하는 사람도 있겠지. 미리 말을 못해줘서 너무 미안하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나를 이해해다오. 만약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절대 말리지 않으마. "
그녀들은 서로를 힐긋힐긋 바라본다.
" 만약에 그러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중에 날 몰래찾아와서 말하거라. 당장 보내주겠다.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까지 해주마. "
" 아닙니다, 도련님. 여기는 그럴 사람이 없습니다. 그저, 모두 도련님 하나만 보고온 여자들이란 것을 알아주세요. "
궁이 애틋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이미 꺼림칙한 여인들은 애초에 나와 같이 여기로 오려고 하지도 않았다. 물론 이 중에서는 돈을 보고 온 여인들도 있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아직까진 누가 그럴 것 같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물론 모두 정말로 나만 바라보고 여기로 왔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 궁금한 것이 있사옵니다. "
난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 그래, 그게 뭐지? "
" 저희들을 모두 여기로 데려온 연유가 무엇입니까. 그저 도련님의 여인이라는 이유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
" … 그래. 그것때문만은 아니지. 너희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에, 내가 잠시 너희들을 불편하게 했다. "
순간 나의 말을 들은 그녀들은 약간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들을 향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그녀들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일어나 나에게 절을 올렸다.
"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도련님! "
" 도련님, 얼른 일어나세요. "
여인들은 모두 내가 다시 제대로 앉기를 권고했지만, 나는 그저 묵묵히 무릎을 꿇고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 모두 고개를 들어. 이건 너희들을 위한 나의 마음이다. 이것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어. 하지만, 이 이상은 너희들에게 너무나 부담이 되겠지. "
" 도련님…. "
" 내 지론은 이거다. 세상에 태어나서, 천한 사람은 없고, 귀한 사람도 없다. 남자든 여자든 똑같은 사람이고 인격체다. 내가 너희들에게 왜 무릎을 꿇어선 안되는가. 단순히 내가 남자라서? 양반이라서? "
그녀들은 말없이 나를 바라본다.
" 그렇다면 나는 남자라는 옷을 벗고, 양반이라는 옷을 벗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그저 높으신 분들이 백성들을 잘 이용해먹기 위해서 만든 하나의 올가미에 불과하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고, 가치가 있다. "
" 흑. "
누군가 한 명이 눈물을 터트린다.
"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부디 나를 도와다오. "
그리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땅에 머리를 대었다. 그녀들은 놀라면서 나와 같이 땅에 머리를 대고 절을 했다.
" 고개를 드십시오, 도련님! 그래도 도련님은 저희들을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이러시면 저희가…. "
" 어쩌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몰라. 그런 말은 하지마. 너희들도 하나하나가 모두 가치있는 사람이야. "
그제서야 그녀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에 고개를 들자 그녀들은 비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이 사람이라면 내 모든 것을 맡겨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라는 얼굴이 되었달까. 가장 대표격인 궁은, 비장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 도련님이 저희들에게 원하시는 것을 알겠습니다. 도련님은… 세상을 바꿔보자 하시는 거지요? "
" 그래.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할 정도로 위험할 수도 있어. "
" 이미 도련님을 따라온 저희들입니다. 그 정도 위험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습니다. "
" 미안하다. 이런 곳에 너희들을 끌어들여야해서. "
" 그런 말 마십시오. 저희들은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사실…. "
궁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잇는다.
" 도련님께서 저희들을 불러모은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꼭 한 번씩 모여서 그 이유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았습니다. "
" 그래? "
" 네, 그래서 결론은… 도련님께선 아마 기생집 하나를 만들고 싶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
반은 맞았다. 대충이라도, 그녀들은 내 속마음을 읽었던 모양이다.
" 그저 퇴폐적인 기생집이라면, 저희들도 꺼려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도련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대충 어떤 곳인지 짐작이 됩니다. "
" 어떤 거지? "
" 정보. 도련님께선 정보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곳은 몸을 파는 기생집이 아닌, 그저 높으신 분들이 찾으시는, 조선에서 단 한번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곳이 되겠군요. "
" 사실 여긴 기생집이 아니야. "
" … 네? "
나는 싱긋 웃었다.
" 너희들을 기생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어. 물론 정보는 원하지. 하지만, 나는 내 여자들이 다른 남자들을 위해서 웃는 것이 너무 싫거든. 미안하지만, 나는 욕심이 많은 남자야. "
" 후후후훗. "
그녀들은 소리없이 웃는다.
" 내가 원하는 것은, 정보가 맞다. 그렇기에 이곳을 정보를 사고파는 곳으로 만들 생각이야. "
" 역시… 그렇군요. "
" 하지만! "
그녀들의 시선이 나에게 쫙- 모인다.
" 그것을 눈가릴 필요는 있겠지. "
" 눈… 가린다구요? "
" 그래. 정보를 사고파는 곳이라고 떡- 하니 붙여놓을 순 없잖아. 우린 고급의 정보를 취급할거니까 말이야. "
무슨 소리일까- 하고 그녀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연히 그녀들은 예상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개념은 조선 시대에 감히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니까.
" 그래서, 이곳은 오직 재주만 파는 곳으로 만들 생각이지. 그것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공연이랄까. "
" … 그게 무슨 뜻인가요? "
나는 그녀들에게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현대인이라면 이해하기 쉬운 내용일테지만, 확실히 조선 시대라 그런지 내가 말하는 개념을, 그녀들이 이해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즉, 날짜를 정한 뒤에 그 날짜대로 우리는 무대에 나가 재주만 펼치면 된다는 겁니까? "
" 그래. 물론 가끔씩 높으신 분들이 오면, 특별 공연정도는 할거야. "
" 그렇군요. 확실히 저희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
그나마 이런 것과 비슷한 것이 남사당 패거리가 하는 길거리 공연같은 것 뿐이었다. 직접 건물을 잡고, 그곳에서 입장료를 받고 공연을 하는 것은 아마도 조선 시대에서는 내가 최초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곳은 자연스레 인기가 높아질 것이고, 그러면 입장료를 조금씩 높이면 된다.
물론 평민 이하의 사람들은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서 적당한 가격으로 동결을 해줄 생각이지만.
" 확실히 나쁘지 않은 생각이에요. 아니, 저희들에겐 굉장히 좋은 일인 것 같아요, 도련님. "
그녀들도 아마 생각이 있다면, 옆에 남자를 끼고 술을 따르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주를 보여주고, 그 재주를 본 값을 받는다면, 그것은 자신이 여자라는 성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니까. 그녀들은 내가 얼마나 자신들을 생각했으면, 이런 생각까지 다 해냈을까- 하고 생각한 모양인지, 다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 도련님! 평생 당신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
" 도련님! "
나는 미소를 씩 지었다. 좋아, 생각대로 잘 흘러가는군. 이것으로 나에겐 끊임없이 수익이 들어올 것이고, 또 끊임없이 정보가 오갈 것이다. 즉, 돈과 정보 모두 내가 쥐게 된다는 것이었다.
' 시작이 아주 좋군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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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본격 조선 연예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