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9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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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이 나고, 여인들은 큰방을 천천히 나간다. 나는 눈을 슬쩍 돌려 장옥정을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눈은 감동과 놀라움으로 적셔있었다.

" 이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

" 제가 계획하는 일의 일부이지요. "

" 계획이라니요? "

장옥정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 앞으로 이 조선을 뒤바꿀 계획 말입니다. "

순간 장옥정의 눈이 커지더니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누군가가 듣지 않았는지 상당히 무서워하는 눈치였다.

"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그녀가 황급히 손을 빼려고 했지만,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놓지않았다.

" 내가 어떻게 당신을 찾아낸 줄 압니까? "

" 이… 이거 놓으십시오! "

" 그럴 순 없습니다. 사실 전 당신을 이용하려고 했었습니다. "

" …네? "

그녀의 눈에 순간 불쾌함이 떠오른다.

" 하지만, 당신을 보고… 그럴 수 없다고 느꼈지요. 왜냐하면, 이미 내가 한눈에 당신에게 빠져버렸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

" 그… 그런…. "

장옥정은 고개를 돌리고 당황해하며 얼굴을 붉혔다. 좋다. 역시 보기 드물정도로 잘생긴 내 얼굴이 먹히는 모양이다. 또한, 그릇이 크며, 가지고 있는 이상도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아마 장옥정은 나에게 홀딱 빠지지 않을까.

" 당신에게 강요하고픈 생각은 없습니다. 허나,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말이지요. "

" 부담…스럽군요. 일단 이 손좀 놓아주세요. "

나는 그녀의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 그녀는 황급히 손을 빼내서 몸을 휙 돌린다. 아마 얼굴을 보기 힘들정도로 화끈거리는게 아닐까 한다. 물론, 언제나 뒤통수 맞을 수 있을 가능성은 염두해두어야 하겠지만.

" 그래서… 그래서 왜 저한테 접근한거지요? "

" 궁을 손안에 넣어보려는 의도때문이있습니다. "

" … 전 이제 가망이 없습니다. "

" 아니요. 조만간 왕후마마께서… 1년안으로 서거하실겁니다. "

그 때, 장옥정이 눈을 반짝이면서 얼굴을 휙 돌렸다.

"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

" 왕후마마께서 조만간 서거하실거라고 했습니다. "

" 소리를 낮추십시오! 방금 그 말은, 당장 삼족이 멸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

그녀는 깜짝 놀라면서 나의 입을 막으려고 포즈를 취하려다가 차마 입에 손을 가져다대지는 못하고 우물쭈물거린다.

" 오히려 좋지 않습니까? 제가 반역죄에 해당하는 이런 말들을 내뱉었다는 것을 고하면…, 잘하면 기회가 생길지도 모를텐데요. "

" … 전 저에게 손을 내민 사람을 배신하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

" 그렇습니까? 흠… 전 당신이 꽤나 인정사정이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

" 그… 그건 헛소문이에요! "

그녀가 소리를 빽 지른다. 아까는 꽤 기품이 있고 고귀한 면이 있었다면, 지금은 귀엽고 놀리는 맛이 있었다. 어찌되었든, 일단 그녀가 나를 배신하는 일은 당분간은 없을 것 같다.

일단은 내가 가진 능력을 대충 보여주고, 그에 대한 계획에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 보여준다면 장옥정은 틀림없이 내쪽으로 붙을 것이다. 그러면 한층 더 왕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 어쨌든 좋습니다. 일단 저는 제가 가진 능력을 보여주었고, 이제 당신이 저에게 가능성을 보여주면 됩니다. "

" … 전 지금 현재론 보여줄 것이 없습니다. "

" 아까 제가 말했잖습니다. 왕후마마는… 읍. "

" 더 이상 그 발언은 하지 마십시오. 이미 알아들었으니깐. "

나는 내 입을 막은 그녀의 손을 떼내는 즉시 그녀를 품에 당겨 입을 맞췄다.

" 웁?! "

- 쮸웁 쯉

그녀와 나의 혀가 농밀하게 움직인다. 타액과 타액이 섞이고, 혀와 혀가 마구 몸을 뒤섞었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위부터 아래까지 천천히 쓸어내렸다.

" 하우우우움. "

물론 그녀가 처녀임은 확실하겠지만, 남녀간의 관계를 모를리도 없었고 손장난도 몇번 해봤을 것이 분명할 것이다.

" 하아…하아…, 이건… 이건 무슨 짓이에요. "

" 하하, 그 쪽도 꽤나 달라붙던데, 무슨 짓이라고 묻기엔 부끄럽지 않소? "

" 윽…. 전… 전 이만 가겠어요. "

" 배웅은 않겠소. 조심해서 나가시오. "

그리고 장옥정은 다시 얼굴을 가리고 방을 나간다. 내일 바로간다면 주도권은 팽팽할테니, 내일은 그녀의 마음을 살짝 태우고, 모레 다시 그녀의 집에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난과 궁을 안으로 불렀다.

" 도련님… 저 분은…? "

" 아, 내가 잠시 이용해야할 여자지. 그러니 걱정마. 그리고 다음 공연 준비는 잘 되가? "

" 네, 도련님. 한번 겪어봤으니, 이번에는 상당히 수월하게 준비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들도 전부 좋아하구요. "

" 그래. 잘 됐군. 아마 다음이나 다다음번부터 꽤 높으신 분들도 찾아올 수도 있어. 그러니 따로 공연해야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마음의 준비는 해둬. "

" 예, 도련님. "

이것으로 돈과 정보를 서서히 장악해가면 될 듯 싶었다. 문제는, 과연 궁을 어떻게 장악해 나가야하는가- 였다.

어차피 민심은 허질 선생을 통해서 하나하나 잡아나갈 생각이다. 이미 나는 상당히 많은 돈으로 땅을 사두었다.

아직 논이나 밭으로는 전혀 쓸 수 없는 자갈밭부터 시작해서, 지금 당장 논으로 쓰일 수 있는 땅까지 모조리. 물론 돈은 상당히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어차피 조금 있으면 어마어마하게 불려나갈테니까 돈 걱정은 없었다.

' 그 뿐만이 아니지. 일단 돈이 많아야 궁도 장악하기가 쉬워진다. 돈으로 매수하는 방법이 가장 쉽지. '

일단 땅을 모조리 사둔 뒤에, 시장을 독점할 생각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독점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허생전을 떠올리면서 미리 대추나 밤같은 것을 마구 사재기하여 창고에 저장해두기로 했다. 어차피 조금 더 있으면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어머, 도련님. "

" 하하, 선생님은 계십니까? "

" 아, 방금 전에 일이 있으시다고 나가셔서…. "

" 그렇습니까? 흠, 그러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허질의 처가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을 쭉 뻗었다. 나는 손님을 모시는 방에 들어가 조용히 양반 다리로 앉아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곰곰히 떠올리고 있었다.

" 자…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도련님. "

허질 선생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마 잠시 배를 채울 상을 가져온 모양이다. 그녀는 문을 조심스레 열고 내가 앉아있는 자리 앞에 상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갈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

" 아, 잠깐. 앉아서 같이 얘기나 하지요. 계속 이렇게 기다리려니 조금 심심해서 말이오. "

" … 알겠습니다. "

그녀는 방문을 닫고 천천히 내 앞에 앉았다.

" 이름이 혜라고 했지요? "

" 네, 허혜라고 합니다. "

"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오. "

" 열 일곱입니다. "

나는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면서 흠- 하고 무릎을 탁- 쳤다.

" 이제 시집을 가도 될 나이군요. 어디 좋은 혼처가 있어야할텐데. "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 뭐, 마음에 새겨둔 남편감이라도 있소? 내가 한번 찾아보지요. "

" …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

" 사양안해도 됩니다. 저 또한 허질 선생께 은혜를 많이 입었는데, 이거라도 해야지요. "

" … 정말 괜찮습니다. "

그녀의 목소리는 눈치채기 힘들정도로 살짝 떨렸다.

" 아니오. 그대도 이제 남편을 맞이해야하잖소. 정말 없소? "

" …흑. "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어디 빠지는 구석이 하나라도 있다면 모를까, 일단 그녀의 눈에는 나보다 완벽한 남자를 찾기 힘들테니까. 차라리 시집을 안가면 안갔지, 나라는 사람을 만나고 난 후에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라는 말은, 그녀에겐 가혹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 흑… 죄송… 죄송합니다. "

그녀가 황급히 일어나려는 것을 내가 손으로 붙잡았다.

" 미안해, 혜. 이리로 앉아. "

" 흑… 흑. "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그녀였지만, 마치 내가 오빠같고 그녀가 여동생같은 느낌이랄까.

" 어찌… 그리 놀리십니까… 흑. "

" 미안. 사실 네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니 괴롭히고 싶어서 말이야. "

" 너무 하십니다. "

그녀가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들고 나를 바라본다. 그리 예쁜 얼굴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똑똑했고 현명하다. 아마 내가 원하고자하는 일들을 그녀가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전 결혼같은 건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

" 왜 그렇지? "

" 이미 마음에서 버린지 오래입니다. 그저…, 이렇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 나 때문에? "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려버린다. 아아, 나도 참 죄많은 남자인가보다. 주위에서 여자가 끊이질 않으니. 다행이라면 이곳이 조선 시대라는 것이고, 불행이라면 또 역시 이곳이 조선 시대라는 것이다.

" … 알고 계셨습니까? "

" 네가 나를 보는 눈빛이 다르다는 것은 옛저녁부터 알고 있었지. 하지만,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길래 내가 착각했나- 싶어서 오늘 조금 떠봤을 뿐이야. "

" 그렇군요…. 하지만, 저와 도련님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런 미련도 없습니다. "

" 이거 실망인데. "

" 네? "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실망이야-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 나는 혜, 네가 조금 더 용기있고 당찬 여자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야. 실망했어, 혜. "

" … 그치만. "

" 그치만이고 저치만이고…, 내가 누누히 말했잖아. 세상엔 높고 낮음은 없고, 모든 남녀는 평등하다고. 네가 나보다 모자란게 뭐가 있는데? 아직도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거야? "

하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머릿속에 거의 박히다시피한 조선 시대의 악습이니깐.

" 그래도…. "

" 그냥 말해. 내가 좋다고. 나를 연모한다고. "

" 도련님…. "

나와 그녀가 서로를 뜨겁게 바라본다.

" 전…, 전…. "

그녀가 입술을 달싹이면서 무언가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 말해. 얼른. "

" 저는… 저는 도련님을…. "

혜는 이를 악물고 크게 외쳐버린다.

" 저는 도련님을 연모해욧!! "

그 때,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혜뿐만 아니라, 나도 깜짝 놀랐다.

" 아하하하하하! "

그는 허질 선생이었다.

" 이거 갑자기 문을 열어서 실례가 많았소. 내가 순간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만…. "

" 아, 허 선생님. "

" 아니아니, 앉으시오. 혜야, 방금 전의 말…, 다시 해보련? "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나와 허질 선생이 종용하자 울쌍이 된 얼굴로 조용히 속삭인다.

" 도련님을… 도련님을 연모한다구요…. "

" 뭐라고? 혜야. 나는 전혀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가 않는구나. "

" 전 도련님을 연모해요! 연모한다구요! 하지만… 하지만 저 따위가 어찌…. "

허질 선생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 비록 못난 딸이지만 그래도 한 사람의 몫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은 무리겠지만, 부디 나중에 제 딸을 데려가 주시지요. "

" … 알겠습니다, 장인 어른. "

"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

그의 웃음 소리가 집안을 울리고 바깥으로 흘러간다.

============================ 작품 후기 ============================

이것도 선작수 2000을 바라보네요. 물론 보는 사람은 1000명도 안되긴 하지만..

그리고 조만간 100회도 도달하겠네요.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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