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96/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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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좀 주세요! 밥좀 주세요!!! "

" 밥좀 주셔요! 어머니가 쓰러졌어요! 밥좀 주셔요, 제발. "

나는 수북하게 쌓인 밥과 반찬을 싣고 거지촌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모여드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구걸을 하며 제발 밥좀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나는 한줄로 길게 서라고 한 다음에 그들이 가져온 바가지에 밥과 반찬을 퍼주었다.

" 아이고!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모두들 밥과 반찬을 받은 뒤에 꿇어 엎드릴 것처럼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연신 고맙다고 외친 후 서둘러 어디론가 황급히 뛰어갔다. 내 하인들이 거지들에게 밥을 퍼주는 동안, 나는 아이들 중에서 꽤 똘똘해보이는 아이 몇몇을 물색해 놓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말을 붙였다.

" 얘야. 나도 너희 집에 잠시 가도 되겠니? "

" 저… 저희집이요? "

그 아이는 약간 곤란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은인인 나의 부탁을 거부하기엔 마음이 걸리는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알았어요. 따라오세요. "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 아이의 뒤를 따라가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문짝은 문풍지가 거의 다 떨어져나가 다른 종이책이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마당은 빗자루로 쓴지 상당히 오래되었는지 나뭇잎이 가득했다.

" 여기에요. 엄니! 엄니! 궁아야!

그리고 그 아이가 문을 열었는데, 상당히 고약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시켰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표정 변화없이 묵묵하게 그 방을 들어갔다.

" 콜록콜록, 누… 누구세요? "

" 잠시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

" 엄니! 이분이 이곳에 먹을 것을 나눠주었어요! 다들 바가지에 그득하게 밥이랑 나물을 가지고 갔어요! 자, 여기 보세요. "

그 아이의 엄마는 잠시 멀뚱하게 바가지를 바라보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 흑흑… 이 은혜는 어찌해야…. "

" 며칠을 굶으셨습니까. "

" 흑흑… 오늘이 이틀째입니다. "

" 선비님… 이틀 전에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불 땔 장작도 없어서… 궁아를 따뜻한 곳에 눕히지도 못하고… 흑. "

이제 가을에 접어들고 새벽 바람도 꽤나 쌀쌀해졌기에, 따뜻한 불 없이는 버텨내기가 조금 힘들어진 상황이었다. 나는 그 아이가 궁아라고 부른 꼬마를 바라보았는데, 열 세네살로 보이는 삐쩍마른 아이가 눈도 뜨지 못하고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일단 살아는 있는 것 같지만, 이대로 가다간 분명히 시체 하나를 치워야할게 분명했다.

" 위중한 것 같구나. "

" 약만 쓰면… 금방 낫는다는데… 약은 커녕 먹일 밥도 없어서…. "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자신의 어미의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

" 알았다. 조금 있다가 다시 그 장소로 와 주겠니? 내가 밥을 조금 더 챙겨주마. "

" 네! 네!! 알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흑흑, 이 은혜는 어떻게든 갚겠습니다, 선비님. "

아이는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면서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나는 떡이 진 그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방을 나왔다.

' 후, 이거 만만치가 않을 것 같은데. '

그렇게 몇몇 다른 아이들의 집까지 방문했는데, 꼭 한 집에 한 명씩은 아픈 사람이 있었다. 거의 다 한쪽 부모가 없거나 고아였고, 동생들이 딸려있었다. 물론 동생은 한 명 아니면 두 명이었지만, 다들 못 먹어 삐쩍말라있었다.

잠시 후에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이 끝난 오후, 내가 밥을 나눠준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아이들이 바가지를 들고 다시 찾아왔다.

" 선비님? "

" 아, 왔구나. 잠시 기다리고 있거라. "

그리고 총 4명의 아이들이 다 모였을 때, 그들은 영문을 모르고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 내가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겠다. 내가 너희 가족뿐만 아니라, 이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시 살려주마. 제대로 된 인간의 삶을 살도록 해주겠단 말이다. "

" 그… 그게 무슨…? "

" 나는 부자다. 너희들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부자지. 땅도 엄청나게 많다. 물론 나 하나 먹고 살기엔 평생 부족함이 없지. "

순간 그들의 눈에는 부러움이 스쳐지나갔다.

" 하지만, 하늘이 나 하나 먹고 잘 살아라고 내려준 것들이 아닐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힘든 너희들을 비롯해 모두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이지. "

눈치가 빠른 아이들이었기에 내가 하는 말을 금방 이해하고 바닥에 넙죽 엎드린다.

"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제발… 제발 저희들을 이런 지옥에서 꺼내주십시오! 흑흑…. "

네 명의 아이들은 바닥에 넙죽 엎드려 오열을 터트렸다. 제발 이 지옥에서 꺼내달라며 아우성친다.

" 좋다. 그럼 나에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겠느냐? 목숨을 보다 더 중요한 충성 말이다. 나는 그에 보답하여, 이곳을 바꿔주겠다. "

" 당연합니다! 맹세하겠습니다. 손가락을 자르라면, 당장이라도 자르겠습니다! 엄니와 궁아를 살려주십시오, 선비님! "

" 저도 하겠습니다. 제 동생을 살려주십시오, 선비님! 하나 밖에 없는 제 마지막 동생입니다! "

그렇게 네 명이서 자신의 가족을 살려달라고 외친다. 물론 나는 빙긋 웃으며 예상대로 흘러감을 기뻐했다.

" 좋다. 그럼 이 곳을 바꿔주마. "

그리고, 나는 이 마을을 바꾸기 위해서 돈을 퍼넣었다.

대략 500호정도 되는 이 거지 마을에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먼저 먹을 것을 넉넉하게 대주고 병을 치료해주었다. 그것만 해도 상당한 돈이 빠져나갔다.

그 다음에 다 무너져가는 집을 수리했고, 마을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오물을 버리는 것을 가르쳐주어 더 이상 그곳에서 병이 생기지 않게 했고, 쥐나 다른 곤충들이 보이면 무조건 잡아죽여 태우게 했다.

이젠 그들은 더 이상 쥐를 잡아먹지 않아도 될만큼 음식이 넉넉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달 가까운 시간을 보내자, 마을은 옛날 거지 마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변해있었다. 물론 그것을 바꾸는 데 쓰인 돈이 어마어마했지만, 마침 장옥정이 팔아준 밤과 대추로 인해 돈이 마구 쏟아져들어왔기에 그것들을 전부 메꾸고도 충분히 넘쳤다.

추석 첫 날 아침은 할아버지와 함께 제사를 지내고, 곧바로 이곳 마을로 달려와 넓은 공터에 거창하게 상을 준비하여 모든 마을 사람들을 불렀다. 생전 처음 해보는 추석 제사에 모두가 감격을 넘어 엉엉 울기까지 했다.

" 모두 조용히 하시오. 이제 제를 지내겠소. "

나의 한마디에 정말 소리가 뚝 멈춘다. 이제 그들에게 나는 신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지금의 숙종보다 내가 더 그들에겐 소중하고 위대한 사람이었다. 감히 내 말을 거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나는 제를 끝내고 그들과 함께 준비된 음식을 마음껏 먹었다. 아이들도 생전 처음 먹어보는 온갖 고기를 흡입하듯이 먹어댔다. 나는 절대 넘치게 먹지는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그날 배탈난 사람은 엄청 많았다.

" 주인님. "

네 명의 아이들은 이제 나의 심복이 되어있었다. 아직 열 여섯에서 열 넷정도로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었지만, 내가 이 마을에서 고르고 고른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하나같이 눈이 범상치 않았다.

모두가 이런 지옥에서 꺼내준 나를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건 아마도 완전히 바뀐 마을을 본 뒤로부터일 것이다.

" 정확한 인구 조사가 끝났어? "

" 네, 끝났습니다. 직접 일을 할 수 있는 가옥의 수는 310호입니다. 나머지는 고된 노동을 할 수 없는 어린아이거나 남자가 없는 상태입니다. "

" 그게 총 172호나 된다는 말이지? "

" 네. "

생각보다 일을 할 수 없는 가옥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이런 것까지 예상해놓은 상태였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고했다고 치하했다.

" 그럼 일을 할 수 있는 가옥의 남자들을 불러라. 그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스스로 일을 하게 해줄 것이다. "

" 예, 주인님. "

이제 내가 구입해놓은 어마어마한 땅을 이용할 때가 온 것이다. 물론 다 써먹을 생각은 없고 아주 일부만 그들에게 나눠주어 일을 하게 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310호정도가 가꿀 땅은 그리 넓지도 않겠지만.

그들에게 일일이 이 땅은 네가 쓰는 땅이고, 저 땅은 네가 쓰는 땅이고를 다 말해주기엔 내가 너무 바빴으니, 이제 놀고있는 사람에게 맡겨야한다. 바로, 허질 선생. 나의 예비 장인이라고 불리는 그 사람은 이런 사정을 말하니 기꺼이 하겠다고 웃었고, 거지 마을이 순식간에 탈바꿈한 사실을 듣고 나를 꽤 미묘한 눈으로 바라본다.

" 이거 나의 사위라고 해도, 말을 함부로 놓기엔 내가 민망하구려. 오히려 말을 높여야하는게 아닐지 모르겠네. "

" 아닙니다. 응당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

" 내 딸이 너무 모자라구려. 그래도 잘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자네와 비교하면 태양과 반딧불이야. "

" 그런 말 마십시오. 그저 제가 부탁한 일을 잘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 당연하지! 누구의 말인데, 내가 허투루 듣겠나. 걱정말게. "

사실 허질 선생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그의 꼼꼼한 성격뿐만 아니라 치우침이 없는 공정한 성격까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은 그가 적격이었다.

이제 나머지 일을 할 수 없는 172호에게 다른 일을 시켜야할 차례다. 바로, 악세사리나 각종 장신구를 만드는 일이었다.

대부분 여자들이 많았으니 아마 이런 일은 잘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먼저 그들에게 노리개를 하나씩 선물하고 그와 비슷한 물건을 만들도록 재료를 건네주었다.

물론 더 독특하게 만들면 값을 더 받을 수 있다고 말하자 그들은 어떻게든 자신만의 기술이 녹아난 장신품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 역시 주인님이십니다. "

" 새삼스레 지금 안 것이냐? "

" 하하하, 아닙니다. 예전 저희들에게 밥을 나눠주실 때부터 그런 느낌이 왔습니다. "

그렇게 거지 마을 하나를 구제해주고 네 명의 심복을 얻어냈다. 모든 것이 잘 끝났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졌다. 바로 그 지역을 맡고 있는 관리였다.

" 이제 여기도 세금을 걷어야할 것이다! 당장 내일부터 세금을 걷을테니, 단단히 각오해! "

배가 불뚝 튀어나온 남자가 히히 웃으면서 은혜 마을(나에게 은혜를 입었다하여 그런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을 방문하고는 세금을 내일부터 거둬들인다고 엄포를 놓았다.

' 이런 개같은 새끼가, 내가 어렵사리 이뤄놓은 걸 홀라당 지가 먹으려고 해? 이런 죽일놈이…. '

물론 이런 일은 내가 전문이었으니, 나는 곧장 그에게로 가 금화가 수북히 담긴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 이게 무엇이오? "

아직 우리집 권세가 만만치 않음을 알고있었기에, 그는 꽤 예의를 차린 모습이었다.

" 그 마을에서 세금을 거둬들이지 않도록 부탁하는, 사례금이지요, 허허허. 훤칠한 모습이 정말 보기가 좋습니다? 하하하. "

" 끌끌끌, 아니 뭐 이런 걸 다…. "

라고 하면서도 그는 순식간에 주머니를 낚아채 입구를 살짝 열어보았다. 어마어마한 돈때문에 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 아니… 이런 것이…. "

" 부탁드리겠습니다. "

" 아, 예! 그러믄요! 당연하지요! 어차피 세금을 받지 않은 마을이었으니,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아이고. "

그렇게 뇌물로 아주 간단하게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나를 따라온 심복들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나에게 불만을 터트렸다.

" 저런 돼지 새끼같은 놈은 죽여버려야합니다! 저런 놈 때문에, 저희 마을처럼 거지꼴이 된 곳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

" 일단은 피해야해. 저들은 궁을 등에 엎은 상태니, 더러워도 참아야지. 나는 이 조선을 다시 바꾸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뇌물? 그건 아주 사소한 것이야. "

그들은 밖으로 나와 나에게 넙죽 엎드리며 외친다.

" 지옥 끝까지라도 주인님을 뒤따르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

그래, 그럴려고 너희들을 얻으려고 한 거니까 말이야. 나의 한마디라면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그런 심복을 얻기 위해서 말이지,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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