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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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넓은 집 두 개를 산 다음에 하나는 하인들과 사병들이 거주하게하고 다른 하나는 나를 비롯한 심복들이 지내도록 했다. 물론 장옥정과 허혜는 나와 가까운 방에서 지내도록 했고. 일단 그렇게 시작해서, 시장부터 하나하나 알아보기 시작했다.

땅이 워낙 쌌기에 나는 괜찮다 싶은 땅은 모조리 사기 시작했고, 마을 안에 있는 터도 괜찮은 것은 모조리 사들였다. 그리고 곧바로 한양에서 물건을 가져오도록 시켰는데, 여기서 모조리 사들인 다음에 다시 파는 것은 이윤이 별로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한양에서 싼 값에 산 여러 가지 물건을 이곳에서 2배 혹은 3배의 값으로 불려 먹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생각보다 거지 마을은 없었기에, 그들을 구제해주는 돈이 굉장히 적었다. 강릉에 하나, 양주에 둘, 그리고 나머지 몇몇 군데에서 총 셋. 합하여 여섯 동네를 구제해주고 인심을 얻어냈다.

일부는 땅을 빌려주어 농사를 짓게 해주고, 또 남은 일부는 배를 빌려주어 고기를 낚게 했다. 생각보다 배사업이 쏠쏠했기에, 나는 그곳에 거액의 돈을 투자하여 배를 마구 만들었다.

때문에 다른 배사업가들이 상당히 나를 껄끄럽게 여겼는데, 그래봤자 그들보다 훨씬 더 싼 배삯을 받았기에, 많은 백성들이 내쪽으로 넘어왔다. 물론 거지 마을까지 합하면 내가 만들었던 배를 거의 전부 빌려줄 정도로 사업은 호황이었다.

더불어 한양에서 들여오는 물건까지 팔기 시작하니, 백만 냥은 금세 두 배, 세 배로 불어났고 관동지방에서는 나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것이 고작 3개월만이었다.

" 이곳은 별로 할 것이 없네. "

" 관동지방은 그리 발전한 곳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차라리 쭉 내려가 부산포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

" 뭐, 이왕 온거니 확실히 장악하고 가는게 좋을 것 같은데. "

그래서 강릉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명사들을 만나봤지만, 다 꽉 막힌 노인네들이나 자기 잘난 맛으로 사는 애새끼들뿐이었다. 물론 허질 선생처럼 작정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을려면 못 얻을 것도 없겠지만, 지금 내가 아쉬울 게 없는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바에야 탐관오리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편이 훨씬 쉬웠다.

" 그나저나 이렇게 둘만 있는건 오랜만인 것 같다? "

" 아…. "

허혜는 그제서야 나와 단둘뿐이라는 사실에 몸을 살짝 돌렸다. 달빛이 은은히 비추는 밤, 나와 그녀는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 아직도 부끄러운거야? 응? "

" 누… 누가 보면 어쩌실려고…. "

" 보긴 누가 보겠어. 뭐, 옥정이가 올지는 모르겠네. "

" 어… 언니가 보겠습니다. "

나는 그녀에게 은근슬쩍 다가가 허리와 엉덩이를 만지면서 능글맞게 웃었다. 허혜는 살짝 몸부림을 쳤지만, 그래도 하늘같은 지아비를 거절할 간담은 없는 모양이다. 결국 그녀는 내 손이 가슴에 닿아서야 에잇- 하고 나를 밀쳐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그… 여… 여기서는 안돼요. "

" 허허, 그럼 안에 들어가서 마저…? "

허혜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끄덕인다. 아무리 깨끗한 여자라도, 나의 손에 걸리면 모두 음탕한 여자로 바뀌기 마련이다.

물론 그 음탕함은 나에게 한정되겠지만. 사실 나는 허혜와 이런 관계가 된 것이 오래되었다. 강릉에 오고나서 대략 일주일정도만에랄까? 물론 그땐 겨우겨우 꼬셔가면서 관계를 맺게 되었지만, 지금은 그녀가 오히려 내가 없이는 못 살 것같은 정도가 되었달까. 가끔씩보면 어떻게 이런 여자가 그렇게 나를 거부하려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역시, 여자는 한 번도 안한 여자는 있어도, 한 번만 한 여자는 없다더니…. '

그게 모든 여자에게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아마 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자 못지 않게 여자도 성욕이 왕성하다고 하니깐.

어쩌다보니 얘기가 이상한 곳으로 새었지만,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흠흠- 하는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 아니, 지금 둘이서 어디를 들어가시지요? "

" 아…, 옥정아. "

장옥정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허혜도 당황했는지 우물쭈물하다가 나에게 확 달라붙었다.

" 언니…, 아시잖아요…. "

" 흥. 고얀 계집애. 밤마다 서방님한테 달라붙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았어? "

" 죄… 죄송해요…, 그치만…. "

밤마다 달아오르는 자신의 몸을 식혀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장옥정도 사실 그녀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도 허혜와 별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녀도 허혜처럼 밤마다 나를 찾아오고 싶어하지만, 자존심때문에 차마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옥정아, 이리와. "

" 왜요? 혜아랑 같이 밤을 보낼 생각 아니었어요? "

" 서방님이 와보라면 와봐야지. "

장옥정은 입술을 한번 살짝 깨물고 나에게 터벅터벅 걸어왔다. 나도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 그녀를 와락 껴안고 농밀한 입맞춤을 했다. 순간 허혜가 꺄- 하고 두손으로 눈을 가렸지만, 그 사이를 살짝 벌린채 우리들을 보고 있었다.

- 쮸웁 쯉 쮸우웁

" 하아… 하아… 이… 이게 무슨 짓이에욧, 동생도 있는데…. "

" 왜 이렇게 오늘따라 새침대는거야? 너도 내 처고, 혜도 내 처야. 둘다 사랑하고, 둘 모두에게 표현하고 싶어. 절대 차별은 없다고. "

장옥정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눈물을 흘린다.

" 흑. 알았어요. 그냥… 그냥 미안해요. 당신을 놓칠 것 같아서…. "

" 아냐. 절대 그러지 않아. "

" 어… 언니이…, 흑흑 죄송해요. 저만 이기적으로…. "

허혜도 눈물을 흘리는 장옥정에게 다가와 그녀를 꼭 껴안았다.

" 이렇게 된거 둘다 방안으로 들어가. "

" 네? "

" 예? "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그녀들이 놀라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세 명이서 방안으로 들어가자니요?- 하고 묻는 얼굴이었는데, 나는 그녀들에게 대답하지 않고 둘의 손목을 낚아채고 방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밤새도록 여인들의 신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한양에서 물건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관동지방 일대의 시장을 거의 장악하듯이 휩쓸어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상인들이 못 먹고 살 정도는 아니었지만, 거상인 내가 작정하고 돈을 먹을려면 그들은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

" 이건 저희 가문만의 비법인데 말이지요, 헤헤. "

" 이것은 저의 마음입니다, 도련님. "

나와 대적이 되지 않는 상인들은 부디 자신들이 하는 사업에 손을 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에게 정성을 보여주었다. 돈이며,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이며, 골동품과 그리고 심지어 여자까지. 나를 어떻게 구워삶아보겠다는 상인들은 자신의 여식을 나에게 보내기도 했는데, 나는 그녀들을 모조리 다시 보냈다.

일단 내 눈에 차는 여자도 없었거니와, 이런식으로 그 작자들과 연관되기는 싫었으니까. 사실 나도 적당한 선에서 멈춰서 상인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은 해주려고 했었다. 물론 사심을 보여주면서 돈을 받아챙기긴 했지만, 그런 돈은 나에게 있으나마나한 푼돈이다.

" 이제 여기도 떠야겠다. 여긴 건질 것도 없구나. "

" 그런 것 같습니다, 주인님. 괜찮은 아이들 몇몇 정도 건진 것 외에는 별다른 수확이 없는 것 같습니다. "

물론 수백 만냥의 이익이 났지만, 이제 나에겐 돈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 돈을 다시 관동 지방의 경제활동을 더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투자하고, 또 백성들에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여기도 내가 믿는 심복 중의 한 명을 심어놓아서 관동 지방을 관리하도록 하고, 다음은 부산포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수많은 무리들을 거느리고, 나는 부산포를 향해 느긋하게 출발했다. 그 때가 여름이 막 지나려하는 늦여름이었다. 무리는 처음 데려갔던 것보다 조금 더 늘어서 200에 가까운 인원이었다. 돈은 삼백 만냥에 가지고 가는 물건도 꽤 많았다. 관동 지방에 많은 것을 남겨두었는데도 이정도였다.

' 이거 다른 의미로 먼치킨이 되어가는데? '

강한 먼치킨이 있다면, 막대한 돈으로 휘어잡는 먼치킨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과 함께, 나는 20여일만에 부산포에 도착했다. 그래도 일본과 꽤나 교류가 많고,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과도 교류가 활발한 곳이라 시장만큼은 한양만큼이나 발달해있었다. 물론 가끔씩 일본 해적놈들이 해안마을을 급습한다고 하는데, 나는 옳거니- 하고 생각했다.

저것을 조금 이용하면 사병을 좀 더 늘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배를 만들어 일본 해적까지 소탕하면, 더할 나위도 없고.

" 좋은 생각이 떠올랐네. "

하지만, 나에게 떠오른 생각이 실현되기까지는 상당히 오래 걸릴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실현되기만 한다면, 조선을 내 손아귀에 넣는 것도 시간문제리라.

' 어차피 조선은 썩었어. 임진왜란 이후에 한번 폭삭 망했고, 그 이후에 노론소론 당쟁에 의해 시끄럽기만 하지. 내가 잘금잘금 하나씩 먹어가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해. '

나는 부산포에 닿자마자 곧바로 집을 여러 채 산 뒤에, 다시 장사에 뛰어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되지 않아서(내 생각엔 아마 타지인에 대한 거부감때문일거라 생각된다) 파리만 날렸지만, 워낙 내 수완이 좋았기 때문에 싼 가격으로 마구 풀어대니 결국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관동지방에서 했던 배사업도 하기 시작했고, 땅도 마구 사들였다.

" 호오라. "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왜구들에 의해 폭삭 망해버린 해안 마을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물론 여자들만 전부 싸그리 납치해가는 바람에 남녀 성비가 매우 불균형했지만, 그 정도는 시간이 지나면 차차 해결될 문제다. 나는 날을 잡아서 그들을 전부 모아 불러 얘기를 했다.

" 왜구들을 전부 잡아 죽이고 싶나? "

" 당연합니다! 기회만 된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왜구 해적놈들의 아구창을 전부 찢어버리고 싶습니다! "

" 내가 기회를 준다면? "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하나하나 약속하면서 땅과 집을 마련해주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돈을 퍼주는 게 말이 안된다는 식으로 거부했지만, 한 명씩 한 명씩 자포자기식으로 나에게 붙었다가 소문이 퍼지자 금새 사람들이 모였다.

모두가 해안가의 마을 사람들로 왜구들에 대한 증오가 엄청났다. 더불어 그 증오는 그 해적들을 막지 않는 조선에게까지 번진 상황이었다.

" 일단 지금은 아니다. 내가 직접 관청에서 허락을 받아야하니, 그 전까지는 각자 살 도리를 찾도록 해라. "

아주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땅을 빌려주었다. 그들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일을 했고,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복수를 다짐했다.

나는 곧바로 관청에 돈을 넣어 가장 높은 벼슬아치와 여러 호족들을 매수했다. 그리고 왜구를 소탕하는 승인을 받고 항구를 직접 지어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른게 아니라 나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사병을 만들고, 만들어진 배는 나라에 기부하겠다는 서명까지 했다. 그러니 그들에겐 전혀 손해가 없는 장사였다.

돈도 받고, 해적도 소탕하고. 그들에겐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그렇다고 나에게 마냥 손해냐?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어마어마하게 큰 항구 하나를 만들고 한번에 배가 열척씩 건조될 수 있도록 했다.

열척의 배가 한번에 만들어질 정도면 얼마나 큰 지 상상이 될 것이다. 물론 거기에 쏟아부은 금액이 거의 천문학적으로 많았지만,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돈이었다.

어차피 장사로 돈이 마구 들어오고 있었고, 부족하면 관동지방과 한양에서 보내달라고 하면 그만이니깐.

' 부산포가 나의 거점이 될 가능성도 높겠군. '

다른게 아니라 항구를 만든 것이 바로 내가 노린 것이었다. 그래야 나중에 전함을 만들 때, 빠르게 건조할 수 있을테니까.

' 기다려라. 전국 8도를 전부 돌고 난 뒤에는, 숙종 네놈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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