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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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 척의 배 중에서 반은 고기 잡이 배로, 나머지 반은 전함으로 만들었다. 전함은 판옥선뿐이었는데, 이걸 만들 수 있도록 관청에 허락받으려고 쏟아부은 돈이 어마어마했다.

결국 허락을 받은 뒤에 도면과 만드는 장인들이 와서 배 기술자들에게 판옥선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사실 그들은 일부러 판옥선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박아놓은 나의 부하들이다.

나의 지엄한 명령에 그들은 집중을 다해 판옥선 만드는 법을 배웠고, 그 후에 척척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판옥선 15척과 고기잡이 배 30척을 만들었다. 고기잡이 배라고 해서 동동배가 아니라 아주 거대한 고래잡이 배도 만들고, 그 외에 크기가 여러가지인 다양한 배를 만들었다.

여기서도 배사업을 해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나에겐 전함까지 있어서 바다를 수시로 순찰을 돌았기 때문에 나의 사업은 더욱 호황이었다.

덕분에 거기서 돈이 엄청나게 들어왔고, 일부는 다시 관청에 뇌물로 바쳤다.

" 그럼, 이제 왜놈 해적새끼들을 잡아족쳐볼까. "

판옥선에는 그동안 전투 연습을 한 민간인들이 탔는데, 모두가 왜구들에게 피해를 입은 마을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해적이라면 치를 떨면서 당장이라도 잡아 죽이려고 날뛰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나는 부산 앞바다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해적들을 없앴고, 덕분에 나는 백성들에게 상당한 민심을 얻게 되었다. 물론 조선도 치켜세워주면서 벼슬아치들의 자존심도 살려주었다.

나의 처세술은 그야말로 흥선대원군 뺨친달까. 그 역시 정적의 바짓가랑이를 기어서 지나갈 정도로 몸을 굽혔지만, 결국 기회가 왔을 때 잡아서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든 사람이 아닌가.

' 물론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지만, 비위는 맞춰줄 생각은 있지. '

어차피 그정도까지 나를 몰아붙일 사람도 없었고, 내가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렇게 나는 돈도 벌고, 민심도 얻고, 무난하게 잘 지내는가 싶었을 때였다. 나에게 누군가가 찾아왔다. 이름은 김창식이라는데, 들어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여느때처럼 장사치라고 생각하고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의 정체는 선비였다. 그것도 꽤 곤란한.

" 노리시는게 있군요. 함선이라…, 꽤 대담한 생각입니다. "

" … 무슨 소립니까? "

순간 속으로 뜨끔했다. 하지만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 제가 모를 거라 생각하십니까? 심지어 판옥선 만드는 법까지 알아내시고…, 설마 조선을 뒤엎을 생각이십니까? "

" … 저는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조선을 뒤엎다니요. 무슨 그런 큰일날 소리를…. 그런 소리를 할거라면 당장 나가십시오! "

" 아,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이지요. "

그리고 그는 품에서 자그마한 무언가를 살짝 나에게 보였다. 그 순간 내 가슴이 철렁했다. 암행어사.

" 아, 어사님이셨군요. "

" 당신의 뒤를 조사해보니, 냄새가 상당히 구리더군요. 뇌물은 물론, 고리대금까지…. "

" 돈버는 장사치가 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어사님. "

그는 잠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상당한 수완에 부하들을 잘 다스리고, 젊으며 심지어 대담한 담까지. 일국의 왕의 재목이라 할만하지요. "

" 누가 들을까 겁이 납니다. 부디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

" 그리고 심지어 백성들에게 인망까지 있다니. 물론 한정된 지역이지만, 그것이 전국 8도까지 번진다면? 생각만 해도 엄청나지 않소? "

나는 아무말 하지 않고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 이래도 발뺌하시겠소? 어차피 지금은 그대를 잡으려고 온 것이 아니니 편하게 얘기해보시오. 아직 그대가 저지른 일은 하나도 없으니깐. "

" 나원참…, 꼭 그렇게까지 얘기해야겠습니까? "

" 역시… 내가 봐왔던 인물 중에선 가장 무서운 사람이로군. 하하, 조선을 뒤엎을 생각을 하다니. 우연하게 꼬리가 잡혀 여기까지 조사해왔거늘, 당신같은 인물이 나올 줄이야. "

" 전하를 해할 생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 주변의 쓸떼없는 늙은이들을 모두 없애버릴 생각이었지요. 막말로 말해, 지금 조선이 제대로 돌아가기나 합니까? "

어차피 다 아는 것이니 말이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그가 나를 잡아가려고 한다면, 나도 최대한 발악할 생각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관동 지방과 그 밑으로 부산포까지 쫙 봉기를 일으켜 조선을 뒤엎어버릴 생각이었다.

" 그건 인정하는 바요. 지금 나라꼴이 말이 아니지. 그나마 이곳은 바다가 가까워 먹을 것이라도 있지만, 더 내륙으로 가면 거의가 굶기를 밥먹듯이 하지. "

" 저는 다른 것을 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백성들이 배부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원할 뿐이지요. "

김창식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의 내면을 바라보기라도 하듯이, 그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그렇게 보다가 입을 열었다.

" 당신이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은 알고 있소. 한양에서부터 관동 지방, 그리고 여기 부산포까지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더군요. 덕분에 한양에는 이제 거지촌이라곤 눈에 씻어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지. 나도 깜짝 놀랐소. "

" 돈이란 어차피 사람이 살기 위한 수단이 될 뿐이지, 목적이 아니잖습니까. 제가 탐관오리들에게 바치는 뇌물도 모두 백성을 위한 세금이었다고 생각해주십시오. "

" 나이도 아직 어린 사람이…, 나이든 사람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하고 있구려. "

그의 얼굴에서 만족의 미소가 피어났다. 그 역시 암행어사였고,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들을 구제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만큼 내가 한 일들의 가치를 알고 있었고,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 사실 오늘 내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지. 원래라면 계속 당신을 뒤에서 감시했을 것이오. 그리고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해도 곧바로 역적으로 잡아갈 생각이었지. "

그의 말에 나는 싸늘한 기운을 느꼈다. 등뒤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렀는데, 잘못했으면 역적으로 뭘 해보지도 못하고 옥에 갇혀 죽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그가 마음을 바꾸고 등장했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 저한테 원하는 게 있습니까? "

" 그게 뭐라고 생각하시오? "

" … 조용히 살아라? 그저 뒤에서 백성들을 도와만 주어라? "

" 아니오. "

그는 천천히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 이게 무슨 뜻입니까. "

" 이… 이 썩어빠진 조선을 구해주시오. "

나는 잠시 멍- 했다. 어사라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행동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 예전부터 항상 나는 조선이 강국이 되는 것을 꿈꿔왔소. 그래서 꼭 벼슬하는 사람이 되어 백성들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선이 되길 원했지. 하지만…, 그건 꿈에 불과했소. 이미 조정은 탐관오리와 권력에만 눈이 먼 늙은이들로 가득차 있었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소. 이미 벼슬아치들은 서로서로가 손을 잡고 조선을 파먹고 있었기에, 내가 손쓸 방법이 없었소. 다행히 암행어사가 되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백성들을 구제했지만, 그 때뿐이었소. 또 내가 사라지면 다른 탐관오리들이 그 자리를 메꿔 백성들을 착취했소. "

이해가 간다. 나는 이곳이 게임이기에 이런 식으로 마음 편하게 행동할 수 있지만, 그는 이곳이 현실이었다. 목숨을 내걸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건 김창식, 이 사람도 마찬가지였고.

"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뇌물에 대한 정보를 얻어 그것을 파기 시작했소. 그러다가 당신을 찾게 되었고, 당신을 조사했지.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조선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부자인 당신을. "

" 뭐, 제 재주가 워낙 뛰어나다보니…. "

" 그렇지. 당신은 매우 뛰어난 사람이오. 고작 이런 상인나부랭이만 할만한 그릇이 아니지. 역시나 당신도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것을, 관동 지방을 조사하면서 깨달았소. "

" 혹…, 다른 사람도 제 상황을 알고 있습니까? "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 이런 자세한 것은 나밖에 모를 것이오. 다른 몇몇 암행어사들도 다들 돈에 눈이 멀어 이런 일은 전혀 하지도 않고 돈만 먹으며 탐관오리들을 눈감아주고 있으니 말이오. "

" 허참, 조선이 어찌 될려고…. "

" 그렇기에 당신이 필요하오. 당신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을 모두 해냈소. 전하를 어찌하자는 소리가 아니오. 그 주위에 있는 쓸모없는 먹구름들을 전부 걷어내자는 뜻이오. 그렇게 하면, 전하의 밝은 빛이 사해를 비출 것이오. "

그는 진심으로 조선을 위하고 있었다. 그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해져서 마음이 뭉클해질 정도였다. 일단 이런 사람이 내 뒤를 봐준다는 것은 든든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세력이 끼어들면 변수가 생긴다.

" 어사님의 마음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대로 가는 것에 어사님이 끼기엔 힘들 것 같습니다. 지금 제 계획대로 척척 되고 있는데, 괜히 옆에 있다가 다른 사람이 눈치채기라도 하면…. "

" 그건 걱정마시오. 나는 그저 아무도 모르게 당신의 뒤만 봐주겠소. "

" 그건 어사님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제가 직접 고른 사람 외에는 믿지 않는 사람이라…. "

" 후후후, 알겠소. 역시 철두철미한 성격이구려. 더 마음에 드오. "

" 어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

창식은 이제 더는 할 말이 없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럼 나는 가보겠소. "

" 알겠습니다. 몸 조심히 가십시오, 어사님. 혹시 모르니 배웅은 하지 않겠습니다. "

" 알겠소. 열심히 해보시오, 내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테니. "

그리고 그는 나의 방에서 멀어졌다. 왠지 한바탕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기분이었다. 하지만, 암행어사정도 되는 사람이 내 뒤를 봐주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상당한 힘이 되었다.

조금 더 날뛰어도 상관없다는 느낌이 든달까. 물론 너무 노골적으로 움직이면 다른 사람이 눈치챌 수도 있으니, 그냥 내가 하던 대로만 하면 좋을 듯 싶었다.

' 그래도 확실히 알아채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

세상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없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아예 거의 무쌍한 용사정도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나는 일단 이곳에서 평범한 사람이고, 그저 돈만 많을 뿐이었다.

아직 제대로 된 군사도 없었고, 부하들의 수도 적었다. 이런 상태에서 역적 혐의로 잡힌다면 필시 목숨을 잃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후광을 입어 죽지는 않는다고 해도, 이젠 영영 무언가를 해보지도 못할 것이다.

' 뭐, 이젠 김창식 그 자가 나의 존재를 지워줄테지만 말이야. '

암행어사가 도와줄 정도면, 아마도 나의 행적같은 것을 최대한 지워줄 것이다. 혹시 내 뒤를 캐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처리할 것이고. 마침 그런 사람이 필요했는데,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그런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은 어찌보면 행운이 아닐까.

' 뒷통수는 아니겠지!! 아닐꺼야. 아니라고 믿고 싶어. '

백설공주때의 트라우마때문에 조금 고민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까지 했는데 나를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말에도 진심이 담겨있었음을 느꼈으니까.

" 아무튼, 조심 조심, 또 조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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