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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 눈이라도 펑펑 내렸으면 좋겠네. "
나는 찬바람이 쌩쌩 불며 춥기만한 겨울을 저주하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실제 현실에서 어릴 때부터 남쪽 지방에서 살았기에, 눈이 펑펑 내리는 것을 많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어 서울에 와서 눈이 펑펑 내리는 것을 보며 참 좋아했다.
어차피 봄쯤이나 되서야 다른 지방으로 옮겨갈 수 있을테니, 이번 겨울은 꼼짝없이 부산포에서 지내야했다.
' 그동안 계획 구상이나 더 세세하게 해볼까. '
일단 첫 번째 계획으로 전국 8도를 도는 것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고, 그 다음은 두 번째 계획은 물량 통제와 함께 쿠데타였다. 왕을 바꾼다? 전혀 생각하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왕까지 바꾼다면, 꽤나 거센 저항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청나라에서 군대가 내려올지도 몰랐다.
어차피 대륙을 통일하려고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니, 명분만 쥔채 왕을 꼭두각시처럼 만들면 된다. 그러면 문제는 최소화되는 것이다.
' 물론 그 전에 춘향이랑 몽룡은 정리해둬야겠지. '
지금 게임이 시작한지 이제 3년째로 접어들기 직전이니, 그녀의 나이는 14살. 현실로 따지면 어린 나이지만, 조선 시대는 이미 결혼했을 나이다. 하지만, 몽룡이와 그녀가 만나는 시기는 그녀가 17살(만 16세), 몽룡이가 19살일 때니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이야기를 틀어버릴 생각이니, 미리 춘향이와 몽룡을 만날 생각이었다. 특히, 나는 몽룡을 어떻게 요리를 해야할지 매우 고심하고 있었다.
' 차라리 죽여? '
어차피 필요없는 네임드 캐릭터다. 죽어도 나의 플레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죄없는 아이를 죽이기엔 지금 내 명성이 너무 높다.
물론 죽인다면 살수들에게 시킬 생각이지만,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 아예 살인멸구를 하면 몰라도, 살수들이 멀쩡히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비밀은 밝혀지게 되어있었다.
' 그래. 죽이는 건 심했고, 아예 농락하자. 어찌되었든, 춘향이를 넘보는 늑대 중에 한 놈이니까. '
일단은 거기서 생각을 접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쭉- 기지개를 폈다.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상쾌해짐을 느낀 나는, 곧 망하기 일보 직전인 상단을 떠올리고 신을 신었다.
" 항대야! "
" 예, 주인님. "
대기하고 있던 항대가 서둘러 나에게 뛰어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 이상화를 알고 있지? 그 고리대금으로 돈을 긁어모아서 큰 상단을 가지고 있던 놈 말이야. "
" 아, 청운 상단 말씀하시는군요. 알고 있습니다. "
" 거기로 가자. "
" 알겠습니다. 곧바로 말을 준비하겠습니다. "
" 아니아니, 오랜만에 걷고 싶거든. "
항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곧 뒤따라갈 일행들을 챙기겠다고 황급히 사라졌다. 마침 허혜가 나와 내가 어디를 간다고 하자 목화로 만든 두터운 외투를 나에게 입혔다. 역시 허혜처럼 영리하고 똑 부러진 여자가 있는 것은 꽤 좋았다.
" 주인님, 준비 되었습니다. "
" 그래. 혜, 나중에 밤에 보자. "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살풋 고개를 돌린다. 지금은 저런 식으로 청순하게 행동해도, 나와 관계를 맺을 때는 요부도 그런 요부가 없었다. 대담한 말은 물론, 내가 원하는 체위는 모두 받아주었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장옥정은 약간 앙탈이 있었긴 했지만, 또 그녀는 그녀만의 매력이 있달까.
" 이렇게 걸어보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네. "
마을은 평화로웠다. 이제 막 겨울철이 다가오는 지라 다들 보리 농사를 준비한다고 한창 바쁠 때였다. 대부분은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 나에게 달려와 안부 인사를 묻고 간다. 워낙 내가 인망이 높기에, 부산포에선 나를 모르는 이가 거의 없었다.
꽤 한참을 걸어가자 드디어 청운 상단에 도착하였다. 거리가 꽤 있는지라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자 괜히 걸어간다고 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걸으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 어흠! "
" 누구십니까? "
대문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김 태황일세. "
" 자…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
청운 상단에서 내 이름을 모르는 자가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하인으로 추정되는 사내는 상단주에게 뛰어가서 내가 왔다고 고할 것이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축객령 내리기도 애매할테니,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나를 들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드… 들어오십시오. "
예상대로 문이 열린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청운 상단은 이제 먼지만 날리고 있었고, 집도 여러 가구들을 팔았는지 휑- 한 느낌이 들었다.
" 이리로 오십시오. "
나는 항대를 향해 기다리라고 눈빛을 보내고 하인의 뒤를 따라 상단주의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파산 직전인지 화려했던 상단주의 방은 물건도 거의 없이 휑- 했다. 그는 열불이 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흥- 하고 고개를 휙 돌리며 입을 열었다.
" 거기 앉으시오. "
" 하하, 이거 손님인데 차 한 잔 대접 받을 수 있겠지요? "
상단주는 이를 잠시 으득- 갈고 밖에 있는 하인에게 차 한 잔을 가져오라고 외쳤다. 나는 비릿하게 웃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상단주에게 말했다.
" 이거 방안이 널찍해서 좋습니다? 저도 이런 방에서 지내고 싶은데 말이지요. "
" … 지금 날 놀리시는게요? "
" 뭐, 사실 딱봐도 망하기 직전이란 건 알 것 같소만. 그래도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라는 소리가 있지 않습니까? "
" 3녀언?! 지금 장난치시오!! 우리 청운 상단은 무려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오! 그게… 그게 나의 대에서 무너지게 생겼단 말이오! 이딴 말로 날 놀릴 생각이면 당장 나가시오! "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보면서 씩씩 거렸다.
" 그래, 200년간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으면서 살아왔다고 자랑하는거요? "
" 뭐야?! 이 사람이 보자보자하니깐! "
" 350만냥. "
" … 무슨 소리야?! "
" 350만냥에 내가 이 상단을 사겠다는 말이지. "
그 말에 상단주는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 흠흠! 350만냥은 너무 적소. 우리 청운 상단은 무려 2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고 했잖소…. 400만냥 주시오. "
" 어허, 300만냥! "
" 아… 알았소, 350만냥으로 해주시오. "
" 불허. 이미 기회를 한 번 놓쳤으니 300만냥으로 하겠소. "
그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나를 노려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또 말대답을 했다가 250만냥으로 떨어져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어차피 내일 당장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테니, 차라리 300만냥을 받고 상단을 팔아버리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 … 좋소. 언제 계약하시겠소? "
" 지금 당장 하지. 돈은 내일 바로 드리겠소. 나의 신용을 걸고 약속하지요. "
" 알겠소. 잠시 기다리시오. "
그는 흑갈색 상자 하나를 꺼내 그것을 열어 종이 하나를 꺼냈다. 상단주의 명의가 인정된 종이였다. 관청에서 직접 발급한 것으로 가지고 있는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 여기 있소. … 근데 정말 300만냥을 줄 생각이오? "
" 당연합니다. 그럼 250만냥에 팔까요? "
"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솔직히 말하면 이 상단은 내일 당장 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건, 당신이 더 잘 알지 않소? "
" 그래서 내가 산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상단을 고작 300만냥에 판 것 아닙니까? "
맞는 말이다. 망하기 일보직전이 아니었다면 300만냥은 커녕 오백 만냥을 내놔도 안 팔았을 것이다.
작정하면 그 이상도 벌어들일 수가 있는데, 굳이 손해보는 장사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300만냥은 상단주에겐 엄청난 이득을 먹고 파는 것이었다. 물론 내 입장에선 아니지만. 그 역시 이 상단이 내 손에 들어가면 다시 살아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 자, 받으시오. 이제부터 이 상단은 당신 것이오. "
" 그럼 물건들은? "
" 어차피 이것들은 팔아봤자 돈도 안되는 것이오. 놔두고 가겠소. 중요한 것만 챙기고, 내일 당장 비워주지요. "
" 그러면 고맙지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참, 차는 당신이 마십시요. "
나는 곧바로 다른 상단으로 갔다. 그곳도 이미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기에 저렴하게 250만냥으로 사들이기로 계약하고 종이를 받아냈다.
" 그런데…, 이 상단들은 왜 산 것입니까, 주인님? 당장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
" 이 상단은 말이야, 직접 관청에서 인정한 부산포의 상단이지. 즉, 한양에 물건을 진상할 때, 이 두 상단을 이용한단 말이지. "
" 그렇군요! "
공식적으로 인정된 상단이었기에, 물품은 이 두 상단을 거쳐가게 된다. 나중에 두 번째 계획에서 물량을 통제할 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550만냥이라는 거금으로 상단을 산 것이다.
그럼 차라리 그 돈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 고 묻는다면,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직접 한양에서 감사가 내려와 일일이 검사하고 상단이 어떤지 파악한 다음, 직접 상단주가 한양까지 올라가야한다.
이런 귀찮은 짓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어차피 상단도 이용할 겸해서 550만냥으로 사버린 것이다.
" 일단은 두 상단을 다시 회생시키는게 중요하니깐. "
어차피 두 상단이 어마어마한 빚을 진 곳은 나와도 연관이 되어있었기에, 상당히 많은 빚을 무마시킬 수 있었다. 물론 그 빚이 고스란히 나에게는 손해였지만, 어차피 그 두 상단과 내가 합치면 부산포는 거의 내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즉, 돈은 거의 무의미해진다는 뜻이었다. 이제 완전하게 시장을 장악했으니, 떠날 때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 누굴 남기고 가야하나. '
나는 심복 중에서 믿을만하고 수완이 있는 녀석 둘을 떠올렸다. 일단은 둘다 후보로 놔두고, 나중에 차차 결정하면 될 듯 싶었다.
" 그건 그렇고, 청운 상단의 상단주 딸년이 상당히 예쁘더군요. 아까 방을 비워야하는 상황이라 잠시 얼굴을 봤는데, 장 마님정도 미모는 되보이더군요. "
순간 나는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저 흘려가는 말이었을 뿐인데, 갑작스럽게 멈추는 나를 보면서 의아해했다.
" 주인님? 왜 멈추셨습니까? "
" 방금 청운 상단주의 딸이 어떻다고? "
" 상당히 미인이라고… 했습니다만? "
" 그으래? "
장옥정만큼이나 예쁘다는데 내가 안 가질 수야 없지. 어차피 청운 상단주였던 그 사내를 협박하는 건 쉬운 일이었으니까. 좀 치사하긴 해도, 그런 여인들을 얻는게 목적인 나였으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어떻게 옛 청운 상단주를 협박해야될까- 하면서 곰곰히 생각했다.
워낙 죄목이 많아서 하나를 꼭 집어서 선택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그 중에서 가장 효과가 있을 것 같은 것을 하나 선택했다.
' 바로 성노지. 지놈도 예쁘장한 노비는 모조리 성노처럼 취급했으니까, 그걸 이용하면 쉬울 것 같군. '
물론 내가 그의 딸을 성노처럼 써먹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저, 그 사실을 조금 이용한다는 뜻이었지. 그녀에게도 그 사실을 말해주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얼마나 악독하고 쓰레기같은 인간인지 말해줄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스스로가 치사하게 느껴졌지만, 이렇게 고생하는데 그 정도 보답은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 가지고 놀 여자가 없었는데, 이참에 잘 됐군. '
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신나게 나의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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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도 항상 즐겁게 적고 있습니다! 리턴이 약간 절제된 느낌이라면, 동파는 제 마음속에 있는 검은 욕망들을 마구 풀어내는 돌파구랄까요?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