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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는 300만냥의 돈을 들고 곧바로 청운 상단을 찾아갔다. 이사 준비가 모두 끝이 났는지, 옛 상단주가 나와 나를 직접 맞이했다. 아무리 그래도 돈이 들어오니 좋긴 좋은 모양이다. 어차피 망한 상단이니, 돈이라도 받아 팔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했을까.
" 흠, 반갑습니다. "
" 반갑소! 얼른 들어오시오. "
나는 이상화(옛 상단주의 이름)의 안내를 받아 어제 갔던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곧바로 하인에게 차 한 잔을 가져와라고 시키고 두 손을 비비며 웃음을 활짝 지었다.
" 하하하, 그래 돈은 가지고 왔소? "
" 그렇지요. 300만냥은 확실히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제가 하나 억울한 게 있어서 말입니다. "
" 무… 무슨 소리요? "
그는 갑자기 변한 나의 태도에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했다. 설마 이대로 물릴 생각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럴 생각까진 없다.
" 아무리 내가 생각해도 300만냥은 조금 지나친 것 같소. 그래서 말인데…. "
" 설마 지금 와서 물리겠다는 소리요?! 그… 그게 말이 되는 것 같소!! "
" 우린 계약서도 없잖습니까? "
그는 순간 당했다- 라는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기대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설마 내가 거짓말을 하겠냐-고 생각했을테니,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 아… 안돼…. "
" 그래서 말인데, 하나 더 제안할 게 있습니다만. "
" 말해보시오. "
" 당신이 가져가는 것중 하나를 내가 선택해서 고르고 싶습니다만. "
" 알았소! 그런 것쯤이야! 아무 것이나 가져가시오! "
내가 정말입니까?- 하고 묻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일으켜세우고 당장 자신의 물건을 쌓아둔 곳으로 뛰어갔다. 값나가는 것들은 아무 것도 없다. 아무리 많이 나가도 만 냥이 최고였고, 그정도는 300만냥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 아무 것이나 고르시오. 원한다면 두 개를 가져가도 좋소. "
" 두 개씩이나 가져가면 힘들지 않겠습니까? "
" 상관없다니깐. 아무거나 두 개 고르시오. "
" 흠, 그러면 알겠습니다. 항대야! "
그 때, 뒤에서 항대가 뛰어온다. 미리 나의 말을 들은 터라, 그는 이미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앞으로 가란 식으로 손짓을 하고 입을 열었다.
" 아무거나 두 개를 가져오란다. 직접 고를 수 있게 가지고 오너라. "
" 알겠습니다, 주인님! "
그를 비롯하여 다섯 명이나 되는 장정들이 우르르 어디론가 뛰어간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이상화는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허둥지둥 거렸다. 나는 괜히 뒷말없게 그에게 곧바로 300만냥을 주었다.
" 자, 300만냥입니다. 이제 거래는 끝났습니다. 나는 물건 두 개를 고를테니, 당신은 남은 것을 들고 여기서 떠나십시오. "
" 고… 고맙소! "
일단 300만냥을 받은 것에 대해 기뻤는지 그의 입에서 함박 웃음이 퍼져나왔다. 물론 그 웃음은 곧 항대의 재출현과 함께 사라져버렸지만.
"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놓지 못할까?! "
" 조용히 따라오시지요. "
" 뭐… 뭐하는 짓거리야?! 내 딸에게서 손을 떼라, 이 불한당같은 자식아! "
항대의 말대로, 그의 손에 잡혀 나오는 여인의 미모는 엄청났다. 장옥정과 거의 동급일 정도로 예뻤는데, 그녀의 앙칼진 모습까지 매력적이었다. 확실히 놓쳤으면 땅을 치고 아까워했을만했다.
' 항대야, 고맙다! '
이상화는 줄줄이 딸려나오는 가식들을 보면서 당장 손떼라고 날뛰었지만, 곧 잡혀온 이들이 모두 여자임을 깨닫고 입을 떡 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 설마… 설마!! 이건 말도 안되오!! 물건이라고 했잖소! "
" 물건이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당신이 가져가는 것이라고만 했지요. "
" 억지요! 억지라고!! "
" 어허, 그럼 300만냥을 도로 물릴까요? "
그제서야 그는 이리도 저리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에는 범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고, 뒤는 낭떠러지였다.
물론 아래는 강이 있어서 떨어져도 살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범의 아가리에 물리면 가능성도 없다. 그는 300만냥이란 것이 마치 절벽 밑의 강처럼 느껴졌다.
이걸로 살 수는 있지만, 자신은 아끼던 딸을 잃는다. 하지만, 300만냥이 없다면 모두가 죽는다.
" 크흑! "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처음으로 지금 이 상황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왜 자신은 그 드높던 청운 상단을 망하게 했을까.
" 아이고, 나으리.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네? 으허허허허허헝. "
" 비키십시오. 진정으로 당신이 무언가를 뉘우쳤다면, 2년 뒤에 다시 나를 찾아와 그것을 증명해보십시오. 그러면 다시 당신에게 모든 것을 건네주겠습니다. "
" 제발…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나으리. "
" 당장 비키지 못해?! "
항대와 장정 두 명이 나에게 달려와 내 다리에 매달린 이상화를 떼어내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는 어이쿠- 하고 소리치면서 바닥을 치고 대성통곡을 한다.
" 으허어어어어엉, 항아야… 으허어어어엉 미안하다… 미안하다! "
딸의 이름이 항이였는지, 그는 계속 그녀의 이름을 부르외치며 울었다.
" 아버지! 아버지!! "
" 허튼 생각 안하는게 좋을꺼야. 네가 아니면, 다른 여자가 선택될테니까. "
" 이 불한당같은 사람! 어찌 사람이 이런 짓을 저지르는 것이냐!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 꺗! "
항대가 여인의 뺨을 손으로 후려쳤다. 그녀는 입안이 터졌음을 느끼고 충격받은 얼굴로 항대를 바라본다.
" 이… 이 무슨…. "
" 네 년이 감히 우리 주인님을 욕보이다니. 당장이라도 네 년을 죽여버리고 싶지만, 주인님께 갈 사람이니 참겠다. 이 조선땅에 주인님만한 분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아느냐? "
" 항대야, 물러나거라. "
" 예, 주인님. 갑자기 화가 나서… 죄송합니다. "
항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항대뿐만 아니라 이곳에 모인 장정들은 모두 날카로운 눈으로 항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만큼 나에 대한 충성심이 하늘을 찌른다는 뜻이었다.
" 네 아버지의 성노가 몇인 줄 알고 있느냐? "
" 아버지가 성노를 가지고 있다뇨?!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아버지께선 비록 돈을 좋아하시지만, 그런 일은… 아버지? "
항이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고 계속 울고 있었다. 그제서야 그녀도 아니죠? 설마 그런 짓을 저지른 건 아니죠?- 하고 말을 더듬으며 충격받은 얼굴이 되었다.
" 이제야 알겠느냐, 너의 아버지의 실체를? "
나는 손가락 세 개를 펴서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 세… 세 명이요? "
" 삼십이다. "
" 허억…. "
비단 이항뿐만 아니라, 그녀의 뒤에 잡혀온 여러 여인들도 깜짝 놀라며 이상화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삼십은 너무나 많은 수였다.
" 용서할 수 있겠느냐? 그는 그 중에서 질린 여인들은 부하들에게 던져주기까지 했다. 그런 여인들중 대부분이 혀를 물고 자결했지. 자, 어떠냐. "
" 으허어어어엉, 제발 그만하시오…. 제발 그만해주시오. "
항은 입을 떡 벌린채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멍청하게 서있었다. 이제 그녀도 스스로의 운명을 체념한 모습이었다.
" 특별히 너만 데리고 가지. 다른 사람들은 보내주겠다. 이제 거래는 끝났으니, 얼른 여기서 사라져! "
" 으허어어엉. "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울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준비시켜둔 하인을 시켜 물건을 나르게 했다. 그는 물건을 모두 나르고 상단을 나설 때까지 자신의 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 아… 아버지! "
" 미안하다… 미안하다, 항이야. 미안하다…. "
결국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고 문을 나섰다. 그가 사라지자마자 문이 쾅- 닫히고, 곧 상단은 조용해졌다.
" 이제 오늘부터 이 곳도 내 소유군. 안그래, 항? "
" 입 다무세요! 그 입으로 절 부르지 마세요. 아무리 아버지가 죄가 많지만, 당신도 똑같아요. "
" 하하, 내가 똑같다고? 항대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
" 감히 저자와 주인님을 똑같다고 하는 저 입을 당장이라도 찢어버리고 싶지만, 주인님께서 원치 않으실테니 참겠습니다. 허나, 네 년은 나의 성질을 건드리지 말거라. 정말 눈이 돌아가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
항대의 부글부글거리는 눈빛에 항이 무서웠는지 침을 꿀꺽 삼키고 그의 시선을 피했다.
" 자, 그럼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줘야겠군. 나와 너의 아버지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
나는 그녀를 옆에 데리고 문을 나섰다. 나오자마자 나를 본 백성들이 나에게 몰려와 인사를 한다.
" 아이고, 선비님. 청운 상단을 사셨다구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놈은 쫓겨나도 싼 놈이지요! 선비님께서 이 상단을 사셨으니, 아마도 청운 상단은 대박이 날겁니다! 하하하, 그렇지 않은가? "
" 그렇지! 당연하지. 선비님이 없으셨으면, 우리들이 이렇게 웃으면서 살 수 있겠나? 하하하하. "
" 세금도 확 줄었습니다요, 선비님. 덕분에 우리 가족들이 배 든든하게 먹고 살고 있습니다. 보릿 고개가 오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
" 보릿 고개는 무슨! 난 내년 여름까지도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창고에 있다고? 하하하하. "
그녀는 이게 뭐지?- 하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에게 모여든 사람들을 보면서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그 사람들 중 하나가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고 곧 쌍욕을 퍼붓는다.
" 저 망할년은 그 새끼 딸년아니여? 개같은 년! "
" 네년의 개같은 아비때문에 우리 이웃이 얼마나 죽어나간 줄은 알아?! 이 씹년아! "
" 쉿! 다들 무슨 소리 하는겨! 선비님 앞에서 그런 쌍욕이나 하고! "
" 아이고, 죄송합니다. 선비님 앞에서 그런 욕을 하면 안되는데…. "
모두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항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그런 눈빛을 버텨내기 힘들었는지 몸을 살짝 덜면서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나는 이만 가보겠다고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그녀와 함께 다시 청운 상단 안으로 쏙 들어갔다.
" 하아… 하아…. "
" 이제야 알겠지? 너의 아비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고, 내가 이 조선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나의 시선을 피했다.
" 나는 널 범할 생각이야. 뭐, 너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품는다는 것은 나에게 행운일지도. "
내가 그녀의 턱에 손을 가져다대려하자, 그녀는 힘껏 내 손을 쳐냈다.
" 이런다고 내가 당신에게 굴복할 것 같나요?! 결국 앞에서는 선인인 척해도, 뒤에선 당신도 결국 이런 남자일 뿐이야. "
" 그래. 그건 인정해. 나는 여인을 좋아하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싫다는 여자에게 손을 대는 법은 없지. 하지만, 그것도 예외가 있어. 바로, 당신같은 여인. 네 아비는 천벌을 받을 것이고, 그 천벌은 너도 받을 것이다. 네 아비만으로는 죗값을 사하기가 부족하거든. "
" 그래…, 당신 맘대로 해봐. "
당연히 내 맘대로 할 생각이다. 오랜만에 사나운 암사자같은 여자를 길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짜릿한 쾌감이 몰려왔다. 그녀는 나를 한번 노려보고 홱 돌아서 자신의 방으로 가버렸다.
' 크크크, 과연 네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루? 일주일? 부디 최대한 오래걸리길 빈다, 항. '
============================ 작품 후기 ============================
오늘은 좀 늦었습니다. 워낙 요새 하루종일 앉아서 글만 쓰니 몸이 힘드네요. 잘못 까딱하다간 정말 몸살 나겠습니다, 하하하하.
하지만, 동파는 쓰는게 너무 재밌어요! 헤헿. 진짜 소설 적는건 정말 재밌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