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화 (108/150)

110

청운 상단과 금산 상단(250만냥을 주고 산 상단)은 이제 예전보다 더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부산포에 있는 돈이란 돈은 모조리 긁어모았다. 당연히 그 돈의 상당 부분은 백성들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여러 사업을 하는데 쓰였고, 일부는 세금을 올리지 않도록 탐관오리들에게 뇌물을 먹이는데 쓰였다.

그러기를 대략 한달. 항이의 방에서 나온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소식을 그녀의 몸종으로 임명된 여인에게 들었는데, 상당히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한다.

" 얘기 다 들었어요. 또 여자 한 명을 만들었다면서요? "

장옥정은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나를 흘겨보고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어차피 그에 대한 확실한 변명이 있으니까.

" 그럼 너랑 혜 둘이서만 나의 밤일을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

" 그… 그건 아니지만, 당신은 좀 지나친 편이라구요!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들어도 당신처럼 정력이 강한 사내는 어디에도 없어요! "

" 그래? 넌 알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행운이라는 사실은 안해? "

나는 그녀의 쇄골을 손으로 만져가면서 음흉하게 말했다.

" 흥. 얼른 상단 일이나 보러 가시죠? "

장옥정은 꽤 까탈스럽게 나에게 멀어지면서 어디론가 휙 가버린다. 아마 또 여자를 데려온다고 하니 마음이 상한 모양이었다. 밤일과는 별개인, 여자의 마음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여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말고 또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면 좋아할 여자는 당연히 아무도 없다.

' 뭐, 그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

어차피 현실도 아니고 게임인데, 여자가 10명이든 100명이든 내가 양심에 찔릴 일은 없다. 그냥 즐기면 그뿐.

' 오랜만에 항이나 보러가볼까? '

나는 청운 상단에서 대충 일을 마치고 항의 방앞으로 갔다. 그리고 흠흠- 하고 몇번 헛기침을 했지만, 묵묵부답. 결국 방문을 두드려서야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 누… 구시죠? "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직 훤한 낮이었기에 괴한도 아닌 듯 했기에, 그녀는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앞에 서있는 나를 보면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 당신…. "

' 괜찮군. '

나는 한순간 그녀의 눈에서 반가움이 스쳐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나를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내가 싫은 척 얼굴을 굳히고 고개를 돌렸다.

" 무슨 일 때문에 온거죠? "

" 이거 꽤 쌀쌀맞네. 좋아할 줄 알았는데. "

" 당연히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 당신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

" 무슨 짓을 한건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 "

원래라면 당장 어디론가 가버리라고 소리쳤을 그녀지만,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할까 하고 고민하는 듯 했다.

" 요… 용건이 없으면 가세요. 당신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

" 그래? 알았어.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하고 싶어서 말이야. "

" 마… 마지막요? "

" 응. 이젠 진짜 마지막이지. 이제 겨울도 거의 지나갔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하니깐. 널 볼 일도 이젠 영영 없겠지. "

그건 진짜였다. 물론 볼 일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조만간이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했다. 부산포도 이제 내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기에, 다른 마을을 하나씩 먹어야한다.

" 그… 그런…. "

" 뭐, 마지막이라 조금 애틋할 줄 알았는데, 반응이 영 신통찮네. 어쨌든, 내가 싫다면 사라져주지. 잘 살아라.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가는 건 용납 못해. 넌 내 물건이니까. "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등을 돌려 신을 신고 걸어갔다. 아직 방문이 닫히지 않고, 그녀는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마지막 기회. 만약에 정말 나를 잡지 않는다면, 나는 그녀를 놔둘 생각이다. 버릴 생각은 없지만, 정말 한참 후에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아마도 그 땐 이렇게 뻣뻣하게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내 말이 거짓이 아니란 것을 알테니까.

- 뚜벅

한 걸음.

- 뚜벅

두 걸음.

- 뚜벅

세 걸음.

나는 속으로 한 걸음씩 세면서 한 열 걸음쯤에 그녀가 나를 부를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열 걸음이 지나고, 스무 걸음이 지나도 그녀는 나를 부르지 않는다. 내가 청운 상단을 나올 때까지 그녀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 진짜 독한 년이군. 그래, 얼마나 버티는 지 보자. '

사건은 그 날 저녁에 터졌다. 여느 때처럼 일과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려는데, 누군가가 나를 찾아왔단다. 상인 중에 한 명일거라 생각하고 불렀는데, 예상치 못한 사람이 왔다.

" 항? "

" … 당신… 정말 날 이렇게 만들어야겠어요? "

그녀에게 임명된 몸종에게 부탁해 나에게 온 모양인지, 그녀의 옆에는 내가 익히 아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보고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 눈빛을 보내고, 나는 항이에게 다가갔다.

" 뭘 어떻게 만들어? "

" 날… 날 비참하게 만들었잖아. 내가… 내가 어떻게 해야해? 왜 당신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되느냔 말이야…. "

그녀가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결국은 그녀도 포기했는지, 평소의 독한 얼굴이 아니라 무언가 억울한 표정이었다.

" 이렇게 만든 당신이 책임져…, 당신이 책임지란 말이야! "

" 좋아, 책임져주지. 까짓것 너 하나 정도는 일도 아니니까. "

" … 좋아요. "

" 물론 내 것이 된 기념으로, 조금 더 상냥하게 대해주지. 그나저나, 그동안은 어떻게 지냈지? "

항은 눈물을 닦으며 나를 위아래로 흘겨보다가 흥- 하고 고개를 휙 돌렸다.

" 내가 그걸 말해줄 필요가 없잖아요. "

" 그럼 뭐…, 나중에 알아서 저절로 말하게 되겠지. "

" … 언제 출발할거에요? "

" 뭐, 마음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당장 갈 수 있지만, 뭐 일주일 정도 후에 출발할 생각이니 이곳에서 그동안 지내도록 해. "

그녀는 거대한 집을 빙글 둘러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 좋아요. 내 방은 어딘가요? "

" 내가 데려다주지. "

나는 항을 데리고 내 방과 가까운 빈 방으로 가고 있었는데, 마침 장옥정과 허혜와 정면으로 맞딱드렸다. 그녀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있는 미녀를 바라보면서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결국 데려왔군요. "

" 그래. 같은 처지끼리 괴롭히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 이쪽은 이항이라고 하고, 저쪽 둘은 장옥정, 그리고 허혜라고 한다. "

" 만나서 반가워요. "

" 저도요. 반갑습니다. "

그래도 같은 처지라는 말에 동지감이 생겼는지 장옥정과 허혜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나는 그녀들에게 항의 방을 하나 골라주라고 말했고, 그녀들은 서로 모여 조잘조잘 얘기를 하면서 가버렸다.

" 흠, 이러면 이곳도 마무리가 지어진 셈이네. "

그나마 부산포가 다른 지역보다는 좀 더 발달된 곳이기에, 시간이 좀 오래걸렸지만 그래도 성과는 아주 좋았다. 아마 전국 8도 중에서 나에게 제일 힘이 되어줄 것이다.

' 이번엔 어디로 가나…. '

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전라도쪽으로 가기 위해선 여러 길목 중에서 진주목이 괜찮은 곳이었다. 남강이 있어서 배를 타고 이동하기도 편했고, 여러 지역과 연결된, 생각보다 중요한 요충지였기 때문이었다.

' '진주목'으로 결정해야겠군. '

이제 일주일이면 이곳을 정리하고 떠야한다는 생각에, 나는 아련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양에서 떠난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의 여인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할아버지에 대한 걱정도 있었는데, 그의 뒷배경을 무시할 수가 없었기에 아직 죽기 바라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 없는게 더 나을테지만.

' 진짜 할아버지였다면 천벌받을 생각이겠지만, 게임상이니 정이라곤 하나도 안 느껴지는구만. '

그러는 동시에, 그는 이씨 부인인 자신의 가상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이제 30대를 지났으니 해가 다르게 늙어갈텐데, 얼른 그녀를 손에 넣지 않으면 늦을 지도 몰랐다.

' 3년. 3년안에 남부 지방쪽을 전부 돌고 한양으로 간다. 북부 지방쪽까지 돌려면 확실히 시간이 너무 오래걸려. '

관동 지방부터 시작해서 부산포까지 장악하는 데도 거의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렸는데, 함경도까지 가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예측하기도 쉽지 않았다. 못해도 전부 5년은 잡아야 8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게임이 너무 진행된 상태기에, 춘향이와 몽룡이에 대한 일을 할 수가 없다.

어차피 내 목표는 춘향이니까, 남부 지방만을 이용하여 한양을 먹어버리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듯 싶다.

즉, 지금으로치면 북한에 해당하는 지역은 포기하고, 남한에 해당하는 지역만 먹겠다는 말이었다.

" 그래, 그게 좋을 것 같다. 가는 도중에 남원도 들러야겠지? 크크크. "

전라북도 남원. 과연 춘향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일주일 후에, 나는 심복 하나를 여기에 머무르게 하고, 나머지 모든 일행들과 함께 진주목으로 출발했다. 돈은 넘쳤지만 부하들이 들고 갈 수 있는 돈의 양은 700만냥이 한계였다. 뭐, 사실 그정도만으로도 진주목에서 상계를 휩쓸 자신이 있었다.

구석구석까지 모두 손을 뻗을 수는 없으니, 가장 중요한 길목이 되는 부분부분만 얼른 장악하고 지나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딱 일주일만에 우리는 진주목에 도착할 수 있었다.

" 휘유, 그래도 상당히 발전한 곳이네. "

주변에 있는 큰 마을에서 진주목으로 모두 몰려와 장사를 했기에, 그곳은 상당한 상거래가 이루어졌다. 나는 곧바로 커다란 집을 사고, 수백만냥에 해당하는 돈을 들고 상계에 뛰어들었다.

물건을 받아본 뒤에, 좋은 물건은 모조리 사들여 기술자들과 협의하에 가공하여 더 좋은 물건으로 만들어 팔았다. 한양도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던 나였는데 고작 작은 진주목 하나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부산포보다 더 쉬웠기에, 나는 순식간에 상계에서 떠오르는 별이 되었다.

" 그래도, 당신의 수완 하나만큼은 정말 조선에서 따라갈 자가 없을 것 같네요. "

" 뭐, 내가 워낙 잘나야 말이지, 크흐흐. "

" 피, 잘난 척은. "

" 잘난 척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인정했을 뿐인데? "

나는 양옆에 장옥정과 이항을 낀 채로, 과일을 하나씩 받아먹고 있었다. 허혜는 내 위쪽에서 어깨를 주무르면서 야릇하게 숨소리를 낸다.

" 후우우우, 어때요? "

" 아주 좋은걸. 무릉도원이 따로 있겠어?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지. "

" … 오늘밤…. "

장옥정이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내 얼굴의 반대쪽으로 돌리며 부끄럽게 말했다.

" 물론이지. 다들 오늘밤 기대하라고. 내 온힘을 다해 너희들을 괴롭혀줄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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