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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목을 장악하고 나서 그 다음은 아주 쉬웠다. 진주목을 거쳐, 순천도호부, 그리고 나주목을 지나 곧바로 남원으로 향했다. 바로 춘향이와 몽룡이가 있는 그곳! 그 때가 내가 20살, 숙종 12년때였다.
' 드디어, 남원이구나. '
게임 시간으로는 거의 중반에 가까운 플레이가 진행된 시기였다. 아직 춘향과 몽룡은 만나지 않았지만, 만나고 나서 그들을 공략할 생각은 전혀없다.
멀쩡한 춘향이를 놔두고, 이미 플래그가 꽂힌 그녀를 낚아채는 건 싫으니까. 뭐, NTL도 재미는 있다만, 애꿎은 춘향이의 처녀를 몽룡이가 가지게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 춘향이를 어떻게 가지고 논담. "
아니 그걸 떠나서 몽룡이를 어떻게 가지고 놀아야할지 심히 걱정이었다. 사실 생각해둔 것이 하나 있긴 있지만, 좀 쪽팔리는 면이 있다.
내가 좀 수고해야하는 면도 있고. 하지만, 그것은 이몽룡을 완벽하게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 있다. 어차피 남원은 이제 내가 돈만 투자하면 내 여인들이 알아서 슥삭 해줄테니까, 나는 룰루랄라 놀기만 하면 된다.
만약 이게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남자를 여자로 바꿔버릴 수만 있었다면, 몽룡이를 당장 바꿔버렸을테지만, 아쉽게도 여긴 조선시대고 마법따윈 없다.
' 남자를 철저하게 파괴시키는 일은…, 바로 여자의 배신이지. '
자신이 사랑하고 믿었던 여자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쾌락의 신음을 내뱉는 것만큼 남자를 미치게 만드는 것도 없다. 나는 몽룡이를 그렇게 만들어 줄 생각이다.
바로 장옥정을 이용해서! 사실 이항도 있지만, 그녀는 워낙 까칠한 면이 있어서 내가 아니면 다른 남자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장옥정의 도움이 필요했다.
" 뭐라구요? 싫어요. 왜 제가 다른 남자와 만나야하는거죠? "
그녀의 말은 그날 밤에 바뀐다.
" 좋아욧!! 좋아요오옷! 할께요… 당신이… 하악,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하겠어요! "
그리고, 그녀는 몽룡이를 타락시킬 여인으로 낙찰되었다. 일단 나는 남원에서 큰 집을 사고, 다시 작은 집 하나를 장옥정의 이름으로 샀다.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하기 위해서였다.
' 그녀라면 애새끼 하나 정도 넘기는 건 문제도 아닐테지. '
나는 그 사이에 춘향이를 손에 넣을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몸종인 향단까지.
"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
"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해야지. "
" 그런데, 왜 그렇게 그 남자에게 집착하시는거에요? "
장옥정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어왔지만,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했다.
" 그것까진 몰라도 돼. "
" 치, 왜 그렇게 비밀이 많은거에요? "
" 몰라도 돼. "
그녀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내가 말해주는 몽룡이의 여러 정보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정도라면 충분하고도 남지요. 그러니까, 그를 완전히 나에게 푹 빠지게 만들어라는 말이죠? "
" 그렇지. 네가 없으면 살수도 없을 정도로. "
" 정말 당신은 가끔씩 보다보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니깐요. "
나는 그녀를 한번 안아주고 입술을 쪽 맞췄다.
" 수고해. "
몽룡이의 나이는 이제 18살. 한창 혈기 왕성한 나이였기에, 그는 자주 처녀들을 보기 위해 그녀들의 놀이공간에 자주 들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장옥정과 함께 여인들이 그네를 타고 놀고있는 곳으로 갔다.
물론 나는 다른 곳에 몰래 숨어서 그 장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많은 여인들이 꺄르르 웃으며 그네를 타거나 수다를 떨었고, 지나가는 남정네들은 그녀들을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상당히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쯤, 저멀리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 쟤가 몽룡이구나. '
상당한 미남자 옆에는 촐랑거리는 사내가 있었는데, 보아하니 방자인 것 같다. 저정도 잘생긴 얼굴을 가진 남자면 분명히 몽룡이 맞을테니, 나는 멀리있는 장옥정에게 신호를 보냈다. 얼굴을 잘 모르니, 내가 멀리서 붉은 깃발을 흔들면 그녀가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미 상당히 많은 남성들에게 시선을 받고 있는 장옥정이었기에, 몽룡도 그녀에게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는지 방자의 안내를 받으며 길을 가다가 그네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그는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자리에 우뚝 섰다.
나에게 사랑에 빠지고 난 후에 더 아름다워지고 농염해진 장옥정을 보는 순간, 몽룡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도 18세, 혈기왕성한 사내라면 더더욱. 몽룡은 양반 가문이었기에, 방자를 보내 정중하게 장옥정에게 만날 수 있냐고 묻는다.
대답은 당연히 거절. 장옥정은 황급히 쓰개치마를 머리에 쓰고 후다닥 어디론가 가버린다. 몽룡은 그녀의 뒤를 쫓아가고, 나도 서둘러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장옥정은 곧바로 내가 사준 아담한 집으로 들어갔는데, 몽룡은 그 집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린다.
- 쿵쿵쿵
누구세요?- 하고 질문하자, 방자가 잠시 일이 있다고 대답했다. 문이 슬며시 열리자 장옥정의 몸종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 무슨 일이시죠? "
" 어허, 이분께선…. "
" 됐다. 저기, 아까 그네에 있던 여인을 만나고 싶은데…. "
" 주인님께선 아무도 만나지 않으실거라고 이르셨습니다. 죄송합니다. "
문이 쾅- 하고 닫힌다.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기에, 몽룡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한참이나 문을 바라보았다. 보는 내가 통쾌할 정도니, 그의 심정을 얼마나 비참했으랴.
" 저기…, 도련님. 다음에 다시 오는 것이…. "
" 아니, 오늘 꼭 그녀를 봐야겠다! "
몽룡은 다시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암만 두드려도 안에서는 더 이상 기척이 없었다. 그제서야 몽룡은 발걸음을 돌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 일단 시작은 좋고. '
장옥정이 아주 훌륭하게 일을 끝마쳤다. 물론 그녀를 칭찬해주고 싶지만, 괜히 그녀와 내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눈치채면 곤란하니 당분간은 만날 수가 없었다.
' 나는 춘향이에게 가볼까. '
퇴기 월매의 집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기에, 나는 항대의 안내를 받으며 곧장 월매의 집으로 향했다.
" 계시오? "
" 에구, 누구신지…? "
퇴기라기엔 아직 상당히 괜찮은 미모를 가지고 있는 월매를 보면서, 나는 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늙은 중년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이씨 부인정도의 또래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뭐, 어찌되었든 그녀에게는 크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니까. 나중에 공략을 해도 해야지, 지금 어중간하게 건드렸다간 죽도 밥도 안된다.
" 춘향이를 만나러 왔소만. "
" 우리 춘향이는 왜…? "
" 저는 김 태황이라고 합니다. 그저 얘기만이라도 한번 나눠보고 싶은 심정인데…. "
하지만 월매는 곤란하다는 표정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있듯이 다 큰 처녀, 총각이 단 둘이서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그 때 당시에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조금 곤란한 듯 하여…. "
" 부탁드리오. "
나는 그녀에게 주머니를 하나 건넸다. 월매는 무엇인가요?-하면서 주머니를 열었는데, 순간 깜짝 놀라며 숨을 헉- 들이마셨다. 황금 덩어리가 무려 10개나 들어있는 것을 보며, 그녀의 손이 덜덜 떨린다. 이렇게 많은 돈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니까.
" 이… 이게 무슨…? "
" 제 정성입니다. 그저 춘향이를 한번 만나만 보게 해주시지요. "
" 무… 물론입니다. 향단아! 향단아아! "
월매가 부엌을 향해 향단이를 부른다. 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부엌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곱게 생긴 처녀가 황급히 뛰어나온다. 아무런 세상 물정 모르는 처녀같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얼굴의 향단은 예쁜 웃음을 지으며 월매에게 뛰어갔다.
" 예, 부인. "
" 이… 이 분을 춘향이에게 뫼시거라. "
" 아가씨…에게요? "
무슨 일일까- 하는 표정으로 눈을 똥그랗게 뜨는데, 그게 얼마나 귀여웠는지 당장이라도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다.
"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
나는 그녀의 씰룩거리는 둔부를 바라보면서, 향단의 뒤를 따라갔다.
" 올해 나이가 몇인가? "
" 소녀, 열 여섯이옵니다. "
딱 좋은 나이다. 원래같았으면 혼사를 치룰 나이지만, 아직 춘향이도 혼사를 치루지 못했는데 몸종인 그녀가 먼저 가기에는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다. 뭐, 당연히 방자와 연결되기에 지금까지 미뤄진거지만.
" 여기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가씨! 아가씨? "
" 무슨 일이니, 향단아? "
" 손님이 오셨습니다. "
" 손님? "
아마도 그녀에게 찾아올 손님은 없을 것이다. 일단 그녀는 방에서 살며시 나와서 향단의 옆에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항대는 집의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지금 향단이를 따라온 사람은 나 뿐이다.
" 누구… 신지? "
" 아, 처음 뵙겠소. 김 태황이라고 하는 사내요. 잠시 자리좀 비켜주실 수 있겠소? "
" 네. "
향단이가 고개를 살며시 숙이고 사라진다. 그제서야 나는 춘향이를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는데, 정말 이 게임의 주인공답게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남원에서 제일가는 미녀라는 설정도 있었기에, 변 사또가 그리도 그녀에게 환장하지 않았겠는가? 잡티없는 새하얀 얼굴부터, 오똑한 콧날, 붉은 입술, 그리고 맑은 두 눈까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 정말 예쁘다. 몽룡이가 이런 여자를 감히 건드리려고 했어? '
괜히 몽룡이에게 더 화가 나서, 나중에 더 처절하게 그를 망가트리기로 마음먹고, 나는 춘향이를 바라보면서 빙긋 웃었다. 첫 인상과 첫 인사가 모든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법이다.
" 반갑습니다, 소저. 그대에 대한 소문을 듣고 한번 찾아왔는데, 생각보다 더 미인이시라 뭐라고 할 말이 없군요. "
" … 아, 그렇군요. "
그제서야 그녀는 내 의도를 파악하고 고개를 살풋 돌렸다. 아마 이런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았는지, 그녀는 능숙하게 말을 이어갔다.
" 죄송하지만, 저는 아직 혼사에 관심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
" 아니아니, 혼사때문이 아니오. 물론 혼사도 방금 관심이 생기긴 했지만, 여기 온 것은 그것때문이 아니란 소리지요. "
" 그럼 무엇때문에…? "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그녀를 만난 이유?
" 저와 일을 하나 같이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
" 일… 이요? "
" 예. 소저같은 사람이 하나 필요하기에…. "
" 죄송하지만, 관심이 없습니다. "
춘향은 고개를 흔들고 방안으로 들어가려했지만, 나의 말에 그녀의 발이 우뚝 멈췄다.
" 돈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
필요하다. 당연히 필요하다. 자신의 어머니인 월매에게도 들어오는 돈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점점 빚만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물론 월매가 황금을 받긴 했지만, 아직 춘향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아주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입니다. 만약에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장 그 자리에서 그만둘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
" 일단 무슨 일인지 말해주시지요. "
" 이건 선금입니다. "
나는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아까 월매와 똑같은 주머니인데, 역시나 황금 조각 열 개가 들어있다.
" 만약 당신이 일을 한다면, 거기에 다섯 배에 해당하는 돈을 드리지요. "
" 다… 다섯 배요? "
" 절대 부당한 일이 아닙니다. 내일 청운 상단으로 오시지요. 이상하다고 느껴지면, 당장 그만둬도 됩니다. "
" 청운… 상단이요? "
상단이라는 말에 그녀의 얼굴이 살짝 바뀌었다. 아마도 믿음이 조금 생긴 모양인데, 상단을 운영하는데 이런 식으로 사기를 치진 않을거라는 생각때문인 것 같았다. 물론 정말로 사기도 아니었고, 그녀에게 돈을 지불할 생각이다.
" 그렇습니다. 그건 그냥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
" … 네. "
선물이지만, 이미 돈을 받았다는 기분일테니 쉽사리 거절하지는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월매까지 황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분명 춘향은 청운 상단으로 올 것이다. 부담스러울 것이기 때문에.
" 그럼 내일 볼 수 있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