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화 (11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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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예상외로 춘향이는 이른 아침에 청운 상단에 방문했다. 향단이와 함께 등장한 그녀는, 나에게 어떠한 말을 듣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어제 내가 주었던 금 주머니의 다섯 배는, 아무리 춘향이라도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 상당히 큰 금액이었던 모양이다. 향단이도 얘기를 들었는지, 춘향이의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 이리 빨리 올거라고는 예상 못했는데…. "

" 어차피 빨리오나 늦게오나 똑같다고 생각했기에…, 조금 이르지만 찾아온 것입니다. 괜히 고민할 것 없이, 여기서 아니다 싶으면 당장 그만둘 생각입니다. 어머니가 받으신 돈은 어쩔 수 없지만, 제가 받은거라도 돌려드리지요. "

" 아니, 정말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넣어두십시오. 저한테 그 정도는 푼돈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돈입니다. "

그 말에 춘향이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하지만, 결국 나에게 금 주머니를 넘긴 그녀는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온다.

" 간단한 것입니다. 그저 옷을 입으면 됩니다. "

" 옷… 이요? "

" 네. 저희가 건넨 옷을 입고, 그저 상가 앞에서 서있기만 하면 됩니다. "

" … 고작 그걸로 어제 받은 돈의 다섯 배를 준단 말씀입니까? "

역시나 그녀는 믿지 못하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때는 마네킹같은 역할이 없기에, 그녀가 입은 옷을 팔면 날개달린 듯 팔릴 것이다.

그것이 유행이 되어 팔고나면, 또 다른 옷을 유행시키고, 이런 식으로 옷 장사를 해볼 생각이었다. 아니, 사실 옷장사라기 보다는 춘향이를 손에 넣기 위한 그저 작전이랄까. 장사가 잘되면 그만큼 그녀는 돈을 벌 것이고, 나에게 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법을 생각해낸 나를 대단하다고 여긴다면, 거의 50%는 끝난 셈이다.

" 정 못 믿겠으면, 오늘 하루만 한번 해보시지요. "

어차피 옷은 많이 만들어 놓았으니, 그녀가 입기만 하면 된다.

" 옷을 준비해두었는데, 한번 입어보시지요. "

평민들이 입기에 약간 비싼 옷이지만, 그래도 조금 무리하면 충분히 살 수 있을 금액의 옷이었다. 춘향이는 내가 건넨 옷을 잠시 물끄러미 보다가 나를 힐끔 올려다보았다.

" 입어보시래두요. "

" 알았습니다. "

그녀는 향단이와 함께 방안에 들어가 옷을 말끔하게 입고 다시 나왔다. 역시나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다웠다. 역시 옷보단 옷걸이가 좋아야 패션이 완성된다는 것을 느낀달까. 나는 향단이에게도 다른 옷을 입게 하였다. 그렇게 둘이 새 옷을 입자 주위가 환한 느낌이었다.

" 좋아. 그럼 같이 갑시다. "

그리고 우리들은 곧장 시장으로 들어가 옷이 쫙- 진열되어 있는 상점 앞으로 갔다. 역시나 사람들의 시선이 춘향이와 향단이에게 꽂힌다. 나는 곧바로 대기해있는 부하에게 눈짓을 주자,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 아!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이건 그야말로 선녀들이 입는다는 아주 아름다운 옷입니다! 딱 이것밖에 없는 귀한 옷이니, 얼른 사가십쇼! "

그렇게 춘향이와 향단이를 세워놓고 옷을 입은 것을 보여주면서, 그들은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남성들은 자신의 처가 춘향이나 향단이처럼 옷을 입으면 예뻐질까- 하고 궁금했기에 사가기 시작했고, 여인들은 춘향이와 향단이처럼 예뻐지고 싶어서 옷을 샀다.

순식간에 옷이 팔리기 시작하자, 당황한 것은 춘향이였다. 별로 색다를 것 없어보이는 옷들이었는데, 사람들은 거의 미친 듯이 돈을 주고 사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비싼 돈이었는데도, 그들은 돈을 지불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 끝! 다 팔렸습니다! 옷은 다 팔렸으니 내일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

거의 한 시진(2시간)만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옷이 전부 다 팔려버렸다. 이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고, 춘향이와 향단이는 상자 안에 그득하게 쌓여있는 돈을 보면서 입을 떡 벌렸다.

" 봤지요? 그저 옷만 입고 있으면 됩니다. "

" 어… 어떻게 이런…. "

생각을 다 했냐-고 물어보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나는 그저 싱긋 웃고 춘향이에게 약간 느끼하게 말했다.

" 당신이 남원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있어서 말이오. 정말 마음같아선 당장이라도 당신을 방에 가두고 나 혼자만 바라보고 싶습니다. "

" … 농이 지나치십니다. "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향단이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춘향이를 보았는데, 아마도 내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예도 있고, 수완도 있으며, 심지어 얼굴까지 매우 잘생겼으니까. 더군다나 딱봐도 양반집의 자제처럼 보이니 나보다 좋은 신랑감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고.

" 그래서… 대답은 무엇입니까. "

" … 좋습니다. 한번 해보지요. 신세를 지겠습니다. "

" 하하하,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쪽에게 신세를 지는 것 같습니다만? "

춘향이는 고개를 살풋 돌리고 미소를 짓는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이 일이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그저 한 시진정도만 서있으면 작은 금조각이 오십 개였다.

" 이거 차나 한 잔 하시고 가시지요. "

" 알겠습니다. "

차마 거절하기가 힘든건지, 아니면 정말로 나와 함께 차를 마시고 싶은건지는 몰라도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 좋아. 시작은 아주 좋구나. '

그렇게 딱 한 달이 지났다. 이제 그녀는 옷을 입고 서서 사람들 앞에 서있는 것이 익숙해졌고, 가끔씩은 미소를 짓고 몸을 돌리기도 했다.

옷은 거의 매일같이 팔려나갔다. 물론 너무 많이 만들면 안되기에, 딱 이득이 조금 날 정도만 팔고 장사를 끝냈다.

옷이 너무 많다보면 나중에는 아무도 안 사게 될 수도 있으니까 적당량의 공급만 해줘야했다.

" 수고했어. "

" 아…, 아닙니다 도련님. "

" 딱 한 달이네. 기념으로 술 한 잔, 같이 마셔도 될까? "

춘향이는 약간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에 대한 호감도 이제 상당히 높았기에, 아마 그녀도 나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들은 곧장 월매의 집으로 향했고, 월매는 우리들을 보며 서둘러 술상을 차려 향단이를 시켜 방으로 옮기게 했다. 어차피 향단이도 내 공략 대상이었기에, 나는 그녀도 함께 방안에 있도록 했다.

" 둘이 나이가 동갑이지? "

" 네, 도련님. "

" 그러니 꼭 자매같네. "

" 이미 자매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에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지요. "

향단이는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 한 잔 올리겠습니다. "

" 응. "

내가 술잔을 들자, 그녀가 그곳에 뿌연 술을 가득 부었다. 나는 술잔을 한번에 쭉 비우고 입에 부침개를 집어넣었다.

" 좋네. 너도 한 잔 해. "

" 네, 도련님. "

이번엔 내가 그녀의 잔을 채워주자, 그녀가 쭉 들이마신다. 나는 잔을 하나 더 가져오게 해서 향단이까지 술을 한 잔 채워주었다.

" 가… 감사합니다, 도련님. "

향단이는 술에 굉장히 약한지 한 잔을 비우자마자 얼굴이 새빨개지며 눈이 몽롱해졌다.

" 그나저나, 춘향이 너는 왜 지금까지 혼사를 치루지 않은거야? "

" 저요? … 아직 때가 아니라고 여겼기에…. "

" 이제 나이도 거의 다 차지 않았어? 내년이면 이제 17살인데. "

그녀는 아랫 입술을 살짝 깨물고 나를 살짝 바라보고는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아무 대답이 없다.

" 향단이 너도 그렇고. "

" … 전 아가씨와 함께 갈 생각이에요. 혼사는 생각하지 않아요. "

" 안타깝구나. 많은 사내들이 널 연모하고 있을텐데. "

" 저… 저요? 그럴리가요. "

향단이는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어버린다.

" 뭐, 꼭 강요하는건 아니니까. 어찌되었든, 오늘은 둘 다 수고했어. 다음에도 계속 수고해줘. "

" … 벌써 가시는거에요? "

" 내가 좀 바쁘잖아. 그래도 춘향이 네가 준 술을 마셔보고 싶어서 잠시 온거야. 다음에도 또 올께. "

춘향이는 너무 아쉽다는 표정으로 잠시 멍- 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났다. 향단이도 춘향이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배웅했다.

" 그럼… 그럼 몸 조심히 가셔요. "

" 그래. 안 나와도 돼. 내일까지 푹 쉬어. "

" 네, 도련님. "

내가 한사코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결국 대문 밖까지 나와 내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서있었다. 이제 상당히 넘어온 것 같지만, 춘향이를 먹어버리는 것이 내 계획은 아니니까.

' 물론 먹어버려도 상관은 없지만…, 그러면 너무 재미가 없잖아. '

춘향이가 나에게 푹 빠졌듯이, 몽룡이는 장옥정에게 간까지 내어줄 정도로 미친 상태였다. 그만큼 장옥정이 남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넘친달까. 살살 밀당을 하면서 몽룡이를 완전히 뻑- 가버리게 만든 모양인지, 내가 갔을 때 몽룡은 그녀와 함께 마루에 앉아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었다.

" 아, 도… 도련님. "

" 크크크, 옥정아 오랜만이네. "

장옥정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간신히 신을 신고 내려와 나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 도… 도련님. "

" 그래. 상당히 아름다워졌는데? 몸도… 말이지. "

나는 그녀에게 살짝 다가가 그녀의 허리를 쓰다듬으며 살살 엉덩이까지 내렸다. 장옥정이 살짝 나를 뿌리쳤지만, 나는 힘을 주어 그녀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 그만두시오! 지금 무슨 짓입니까! "

" … 아, 반갑소. 그런데… 누구? "

" 이몽룡이라 합니다만, 제 약혼녀에게 무슨 짓입니까?! "

그는 이를 부드득 갈면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손안에 있는 장옥정을 뺏어가더니 자신의 뒤로 숨긴다.

" 호, 약혼녀라…. 이거 실망인데. "

장옥정이 몸을 부르르 떨자 몽룡은 화가 난 목소리로 나에게 버럭 소리쳤다.

" 무슨 소리 하는 것이오! 여긴 무슨 일로 온 것이오?! "

" 허허, 당신과는 별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저… 장옥정이와 연관된 일이지요. "

" 그녀의 일은 곧 나의 일이요. 말하시오. "

" 허허, 이거 얘기 해도 되나 모르겠네. "

장옥정은 몽룡이를 살짝 밀고 내 앞으로 다가온다.

" 제발… 제발 이 사람 앞에선 얘기하지 말아주세요. "

" 글쎄. "

연기력은 헐리우드 배우 뺨칠 정도로, 장옥정은 완벽했다. 나도 깜빡 연기에 빠져버릴 정도였으니까.

" 옥정! 이리와. 말하시오, 당장. "

" 그럼 말하겠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빚진 돈이 너무나 많아, 결국 그녀가 내 소유가 되기 직전이라는 말이지요. "

" … 그게 무슨 소리요?! "

" 이거 보이십니까? "

나는 이몽룡의 면전에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는 그것을 낚아채고 천천히 읽어나가다가 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 이건… 이건 말도 안돼! "

" 미안하지만 그녀가 스스로 작성한 것이니, 포기하시지요. "

" 안돼! 난 그녀를 절대 포기 못해! 옥정아,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켜주마. "

" 안돼요, 도련님! "

나도 도련님이고, 몽룡도 도련님이라 상당히 헤깔렸지만, 그녀의 목소리의 변화에 따라 나와 그의 호칭이 조금 틀린 느낌이었다.

" 이 돈… 내가 갚겠소. "

" 안돼요! 그게 도대체 얼만지나 알고 계세요?! 그냥… 그냥 절 포기하세요. 제가… 제가 그저 잠깐의 행복에 눈이 먼거에요…. 도련님과 만나서는 안됐는데…. "

" 무슨 소리야! 돈따위… 너보다 더 중요치 않아. "

얼씨구.

" 이 돈을 갚겠소. "

" 하하하, 돈이 얼만지나 알고 하는 소립니까? 무려 백만 냥입니다. 그걸 고작 여자 하나 얻겠다고 하는 짓이오? 당신의 아버지가 과연 어떻게 생각하실 것 같소? "

그제서야 그도 잠시 주춤하며 입을 다물었다. 백만 냥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가 그만한 돈을 마련하려면 자신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아야했다. 아니, 자신의 집에 그만한 돈이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남원 부사라고는 하지만, 백만 냥이란 거금을 고작 여인네 하나 얻겠다고 쓴다고 하면 그는 당장 이몽룡을 다른 곳으로 보내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 … 갚겠소. 무슨 짓을 해서라도. "

" 그렇습니까? 음, 그러면 좋습니다. 각서를 쓰시지요. "

이몽룡은 내가 내민 종이에 글을 써내려갔다. 자신이 장옥정의 빚을 대신 갚겠다는 내용이었다. 거기에 지장까지 찍었으니, 이제 완벽히 그는 내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다.

" 아주 좋소. 그럼 기한은 한 달이오. 만약 그 기한을 넘긴다면…, 각오하시오. "

" 걱정마시오. 반드시 갚을테니까. 당신은 이제 절대 옥정이에게 접근하지 마시오. "

" 물론이지요. 갚아만 준다면 말이지. "

나는 낄낄 웃으며 몸을 돌렸다.

' 갚을 수 있을까, 이몽룡? 크하하하하하. '

============================ 작품 후기 ============================

이몽룡을 철저하게 파괴하자!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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