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4화 (12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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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이익

사람의 손때가 잔뜩 묻어있는 허름한 나무문을 열자,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몇몇 테이블만 빼고는 거의 빼곡히 차있는 상태. 이것만 봐도 이 맥주집이 장사가 얼마나 잘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급들은 맥주를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고, 취객이 몇몇 여급의 엉덩이를 만지며 희롱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하층민들의 모습에 내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 어서오세요, 혼자신가요? "

여급 하나가 성실하게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혼자 온거냐고 물었고, 나는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 아…. "

" 안내해. "

" 아, 알겠습니다. "

동전에 그려진 표식을 보자마자 그녀는 턱을 살짝 떨면서 몸을 돌려 나를 어디론가 안내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곤 했는데, 후드를 깊게 눌러쓴 덕분에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할 것이다.

" 여깁니다. "

시끌벅적한 사람들을 지나서 안내되어 온 곳은 바로 창고 뒤편에 있는 육중한 철문 앞이었다. 그녀는 잠시 보는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확인하고는 문을 쿵쿵- 두드리며 요상한 단어를 말했다.

아마 안에 있는 사람과의 신호였는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철문이 끼익- 하는 쇳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 들어가십시오. "

여기서부턴 나혼자 들어가야했는지, 여급은 가만히 서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통로 중간중간에는 희미하게 켜져있는 마나석이 배치되어 있어서 벽에 부딪힐 염려는 없었다. 저멀리 보이는 환한 빛이 있는 장소까지 도착하자 왠 거한이 문옆에서 나를 노려보며 손을 내밀었다.

" 무기는 없으니까 걱정마라. 그리고… 내가 죽이려고 마음 먹는다면, 드래곤도 죽일 수 있으니까 까불지 말도록. "

내 말에 심사가 뒤틀렸는지 거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하찮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있었는데, 거한은 한참이나 이를 부득부득 갈다가 문안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몸을 비켰다.

" 귀한 손님이다. "

거한은 나를 노려보면서 천천히 문을 열었다. 안은 바깥과는 다르게 굉장히 환하고 화려했다. 내가 오려고 했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 좀 놀랐습니까? "

젊게보면 30대 후반, 많게보면 40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사내는 아주 평범하게 생긴 남자였다. 단단히 여문 몸매와 우락부락한 손마디를 보면 이 남자가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달까. 그래봤자 마왕인 나에겐 택도 없겠지만, 내가 마왕이라는 사실을 아는 인간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중요했다.

" 이거, 에레라 조직의 새로운 두목이군요. "

" 알고 있으니 다행이네. "

" 에레라도 죽었으니까, 이제 레온 조직인가요? "

그딴건 아무래도 좋았다. 레온이든 에레라든 뭐라고 불리더라도 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조직은 도약할 내 발판에 불과했으니까.

"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 의뢰한 내용은? "

" 물론 아주 잘 끝마쳤지요. "

나는 그가 내민 종이를 받아서 대충 눈으로 훑어보았다. 성공한 것 같았기에,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 좀 섭섭하군요. 당신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말입니다. "

" 뻥도 적당히 까. 모든 조직을 네 발아래 두고 싶은게 아니라? "

" 알고 계셨습니까? 후후. "

사내가 음흉하게 웃자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빙글 돌렸다.

" 하는 짓이 귀여워서 지금까지 봐주고 있었는데…, 적당히 나대. 요새들어서 너희쪽 애들이 꽤나 거슬린단 말이지. "

" 관리한다고 해도 전부 다 통제할 수 있는건 아니거든요. "

" 그러면 지금 여기서 경고하지. "

나는 그를 노려보면서 살짝 살기를 뿜어냈다. 그의 웃는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면서 두손이 파르르 떨렸다.

" 까불지마라, 애송아. "

*  * *

요새들어서 많은 조직들이 내 조직의 부하들에게 꽤 시비를 건다는 말이 들리고 있었다. 알고보니 그것은 모두 에렉이라는 사내의 입김이 닿아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칼리반 영지 최고의 조직 두목이었으며 동시에 정보상인인 그는, 이번에 새로 떠오른 나를 꽤나 경계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론 친하게 지내자고 접근했지만, 속으론 칼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모를리가 없었다.

사실 그는 에레라의 옛 연인이기도 했으나 이유는 모르지만 몇년 전에 헤어졌다고 한다.

" 같잖은 새끼. "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맥주집을 나와 시원한 밤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그래도 일단 의뢰한 내용은 만족스럽게 해결한 상태였다.

' 일주일 뒤라…. '

나는 종이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원래는 이렇게 손쉽게 넣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칼리반 영지의 재무관리의 비리덕분에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그저 의뢰 하나만으로 얻을 수 있었달까.

사실 일주일 뒤에는 이번 칼리반 영지의 소영주의 생일파티가 있었다. 그저 평범한 생일파티면 모르겠지만, 이번은 소영주가 성인이 되는 생일이었기에, 꽤 큰 행사가 되었고 그것때문에 영지도 꽤나 떠들썩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이번엔 베네딕트 왕국의 여러 귀족들이 오기때문에, 경비에도 엄청 힘을 주어야하는 상황이었다.

' 거기에 후작의 딸내미라. '

일견의 소문으로는 후작이 부유한 칼리반 영지를 탐내고 있어서 소영주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낼 수도 있다는 말이 있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렇게 딸을 보낼 예정이라면 그 소문이 완전히 거짓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고작 소영주의 생일 파티에 후작이 움직일 수는 없기에, 딸 혼자만 보내는 것이다.

이정도라면 흘러나오는 소문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도착하는 날짜였다. 원래 안전을 위해서 마차는 며칠동안 각각 나뉘어져 들어온다.

어디에 후작의 딸이 탔는지 알 수 없지만, 아주 비밀스러운 암호를 통해서 백작에게만 알리기 때문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주 곤란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어떤 마차에 후작의 딸내미가 탔는지 알고 있다.

' 좋아. '

이상태로 후작의 딸을 납치하여 꽁꽁 숨어버린다. 그러면 분명 후작은 노발대발할 것이고, 칼리반 영지는 그 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부유한 칼리반 영지를, 아마 후작은 가만 두지 않을 것임이 틀림없다.

' 그렇게 영지전이 시작되면…. '

세워둔 계획에 따라 더 큰물로 옮겨가야겠지. 재밌는 웃음이 내 입술 사이로 삐져나왔다. 이제 계획 준비는 끝났다. 나는 낚시대를 잡고 기다리기만 하면 될 뿐이다.

*  * *

그 후로 정확히 5일 후. 여러 귀족들의 마차가 지나가고, 드디어 후작의 딸이 타고 있는 마차가 영지에 도착했다. 워낙 속임수가 많았기에 누가 언제 도착했는지 칼리반 내부의 사람들도 전혀 알지 못했다. 아주 몇몇의 소수만 뺀다면, 어떤 영지에서 왔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 너희들은 소란만 일으키고 바로 빠져나가라. "

" 예, 두목. "

부하들 중에서 가장 믿을만한 두 명에게 명령을 한 뒤에, 나는 얼굴을 가리는 두건을 쓰고 건물 위에서 마차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내 명령을 받은 둘은 금새 사람들 속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마차는 절대 멈추면 안되기때문에 마차 앞을 막는 사람은 경고없이 기사단들이 목을 베어버리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것은 어린 아이라고 할지라도 예외가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이 마차에는 후작의 딸이 타고 있었기에, 기사단들의 표정이 어제보다 한층 더 긴장된 것 같았다.

- 다그닥 다그닥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적당한 속도의 마차는 결국 내가 원하는 지점 앞까지 도착했고, 기사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한채 마차 앞과 옆에 달라붙어서 말을 몰고 있었다. 그리고 막 그 지점을 지나가려고 할 찰나, 갑자기 누군가가 마차 앞을 막아세웠다. 사람들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면서 곧 다가올 사내의 죽음에 눈을 질끈 감았다.

마차 앞에 있던 기사는 경고도 없이 검을 꺼내 사내의 목을 베려고 준비했다.

" 어… 어어억. "

하지만 이미 사내는 죽음이 다가온 상태였고, 목이 베이기도 전에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순식간에 주변은 꺄아- 하는 비명으로 뒤덮였고, 구경하던 사람들은 우르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기사는 잔뜩 긴장한채 뽑아들었던 검으로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그리고 별다른 위험이 없겠다 판단하여 쓰러진 사내를 검으로 한번 더 찔렀을 때였다.

- 파직

" 응? "

요상한 소리에 기사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퍼어어어어어엉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치솟았고, 그 신호에 맞춰 나는 건물 지붕에서 뛰어내려 마차를 향해 달려갔다. 검은 연기때문에 시야는 이미 확보가 불가능했지만, 마왕인 나정도는 이런 연기가지곤 시야를 가릴 수 없었다.

- 서걱

" 꺄아! "

가녀린 여인의 비명소리에 기사 몇몇이 정신을 차리고 마차에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나는 그녀의 몸을 안아들었고, 마차에서 빠져나왔다.

" 이거 놓으세요! 꺄아아, 도와줘요! "

나는 손날을 세워 그녀의 뒷목을 강하게 후려쳤고, 그녀는 악-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어깨에 축 늘어졌다.

" 아가씨를 보호해! 아가씨를 보호해라!! "

하지만 그들의 시야에는 흩날리는 연기와 먼지와 함께 텅비어있는 마차뿐이었다.

*  * *

칼리반 영지는 난리가 났다. 사라진 후작의 딸을 찾기 위해서 영지에 있는 모든 경비병들이 동원되었으나, 그녀의 모습은 커녕 머리카락 한올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내가 그녀를 데리고 지하 깊숙이 꽁꽁 숨었기 때문에 찾을 리가 만무했지만.

" 사악한 종자! "

금발에 빨간 리본을 머리에 달고, 예쁘게 치장한 처녀는 바로 후작의 금지옥엽인 세르비아 에르윈. 올해로 21살이 되는 그녀는 베네딕트 왕국에서도 알아주는 미녀였다. 새하얀 얼굴 위로 예쁜 금색의 눈동자는 잔뜩 일그러진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얼른 풀지 못하겠느냐! 내가 누군지 알아?! "

" 그야 세르비아 후작각하의 금지옥엽인 에르윈 아가씨지요. "

" 그걸 알고도 이따위 짓을 저질러? 네놈의 목이 붙어있을 것 같으냐! "

그래도 후작의 딸이라는 신분때문인지 호통치는 모습이 보통이 아니었지만, 나에겐 그저 앙앙- 거리는 발악정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 당연히 붙어있겠지요. 그리고 당신은 절대 영지로 돌아가지 못할겁니다. "

" 그… 그게 무슨 소리냐? "

그저 돈때문에 자신을 납치했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에르윈을 향해 나는 비열하게 웃어제끼면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 왜 당신을 납치한줄 압니까? "

" 그… 그야 당연히 돈때문에…. "

" 돈은 절대 아닙니다. 물론 당신의 아름다움도 약간은 차지하겠지만, 진짜는 따로 있지요. "

그녀의 예쁜 목울대가 꿀렁였다. 온몸에 향수를 뿌렸는지 아주 향긋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시켰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범하고 싶었지만, 일단 그전에 해야할 일이 있었으니까.

" 당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봤습니까? "

" 그야 아버지께서 화나시겠지! 그리고 네놈은 죽은 목숨이고. "

" 그것이 다라고 생각하다니…, 하하하. 순진한 에르윈. "

" 네놈, 말을 높여라. "

그녀는 붉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나를 노려보았다.

" 아, 실수. 에르윈 아가씨. 아참, 계속 말을 하지요. "

" 네놈따위의 말은 듣기 싫다. "

" 분명 후작각하는 화가 나실테고, 그 화를 풀 대상을 찾겠지요. "

" 그것이 바로 네놈의 운명이다! "

에르윈의 눈동자에는 노골적인 조롱이 담겨있었다. 지금 자신의 상황도 모른채.

" 안타깝지만, 그들은 절대 우리를 찾지 못합니다. "

" 하, 우리 기사단을 얕보지 마라. 거기엔 6서클 마도사가 있다! 이미 내 목걸이엔 위치 추적을 할 수 있는 마법이 새겨져 있지. 넌 이미 끝이야. "

역시나 그녀 역시 허투루 준비하고 온 것이 아니었다. 영지 밖은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후작도 단단히 준비를 한 것이다.

" 미안하지만, 이미 당신을 납치해왔을 때부터 그건 고물이 되었지요. "

하지만 나도 어설픈 놈이 아니다. 저런 것들은 이미 납치할 때부터 마나 디텍트로 찾아서 전부 제거한 상태였고, 또 이곳은 마나로 탐지가 불가능한 결계를 만들어두었다.

" 말도 안되는 소리마! "

" 진짭니다. 제가 여기서 왜 아가씨께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

- 으득

그녀가 이를 갈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이제 그들이 아가씨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겠습니까? "

" 하지만 기사단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찾아내. "

" 하하, 못말리겠네요. 하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후작의 화는 다른 곳으로 돌아갈 겁니다. "

내 말에 에르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 바로 여기, 칼리반 영지! 아마 후작각하는 딸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칼리반 백작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고, 영지전이 일어나게 되겠죠. "

" 말도 안돼! "

" 크흐흐, 외면할 수 없는 뻔한 내용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고…, 곧 베네딕트 왕국은 전화로 휩싸이겠지요. "

나는 천천히 손을 올려서 검지 손가락으로 에르윈을 가리켰다.

" 바로 당신때문에. "

그녀의 두눈이 절망으로 휩싸였다.

============================ 작품 후기 ============================

이제 진짜 시작해볼까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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