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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착했습니다. "
- 쿵 쿵
저멀리서 마치 깊은 땅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것같은 북소리가 이곳까지 울려퍼졌다. 그에 맞춰서 내 심장도 두쿵두쿵- 하고 뛰기 시작했다. 강자든 약자든 이 전장에 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심장이 강하게 뛰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 맙소사. "
칼리반 영지의 병사들은 후작의 병사들을 보면서 모두가 사색이 되어버렸다. 딱봐도 자신들의 수 배는 될법한 어마어마한 병력의 수에 몇몇은 바지에 오줌을 지리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색은 안했지만 기사들도 꽤나 동요하는지 눈빛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 좋아, 이정도는 되야 내 첫 등장을 멋지게 장식할 수 있지. '
아마도 백작의 군대 중에서 즐기는 사람은 유일하게 나뿐일 것이다.
" 다들 두려워 하지마라! 우리가 쓰러지면 가족들까지 죽는다! "
아무리 가족이 있다지만 본능적인 두려움까지 해소할 수는 없었다. 그저 참아낼 뿐이지. 결국 몇몇이 전장을 이탈하려고 뒤돌아 도망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대기하고 있던 몇몇 기사들에 의해 목이 잘렸고, 본보기로 창에 끼워져 들어올려졌다.
" 도망가는 자는 죽게 될 것이다! 치욕스럽게 죽을 것인가, 아니면 후손대대로 칭송 받으면서 죽을 것인가 선택하랏!! "
백작은 검을 높게 들면서 크게 소리쳤다.
- 뿌우 뿌우우우
나팔 소리와 함께 후작의 군대가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푸른 초원은 군마와 군사들의 발에 짓밟혀서 보기싫은 누런 바닥을 내보였다.
" 적들이 다가온다! 전투 준비이이! "
대기하고 있던 병사 하나가 큰 깃발을 들고 하늘 위로 마구 흔들었다. 그 모습에 모든 기사와 병사들은 무기를 손에 쥐고 적들을 노려보았다.
천천히 다가오던 적들은 곧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곧 우아아아아- 하는 함성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 그에 화답하듯이 우리쪽 병사들도 우와아아아- 하고 소리치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 돌진! 돌진하라라라라! 적들을 무찔러라! "
분명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애써 그 말은 하지 않고 있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자신의 고향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변수가 있다.
' 바로 나라는 존재지. '
나는 칼리반 영주에게 선물받은 백마를 타고 힘차게 앞으로 뛰어나갔다.
- 다그닥 다그닥
- 우와아아아
적들에게 다가갈수록 함성 소리가 커지더니, 곧 귀가 먹먹할 정도로 사방에서 울려퍼졌다.
- 챙 챙 챙 챙
" 죽어라아아앗! "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비명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변은 피가 튀는 살육장이 되었고, 다들 피에 미친 귀신이 되어 날뛰었다.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귀신은 바로 나였고.
" 으아악! "
- 서걱 서걱
다른 것은 필요없었다. 그저 검을 휘두르면 갑옷과 함께 적병은 몸이 반토막이 되어 온갖 내장을 쏟으며 죽었다. 그건 기사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 괴물이다! "
내 앞은 걸치적거릴게 없었다. 이대로 후작의 앞까지 다가가서 그의 눈앞에서 내 실력을 한껏 뽐낸 뒤에 다시 유유하게 돌아가는 것이 이번 영지전의 내 목표였다.
- 서걱 서걱
내 검에 맞은 적은 마치 썩은 수수깡처럼 쓰러졌고 이대로 둬선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적 기사들 중에서 꽤나 강해보이는 사내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네노옴! "
" 잔말말고 죽어, 새꺄. "
나는 피가 묻은 검을 한번 털어낸 뒤에 그를 겨누며 비릿하게 웃었다.
" 나 크세논의 이름으로 널 베겠다! "
어차피 단칼에 죽을 놈의 이름따윈 기억할 가치도 없었다. 그는 재빨리 검을 휘둘렀지만, 내가 휘두른 검에 말까지 반토막이 나며 바닥에 처참하게 쓰러졌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 크… 크세논 경이 죽었다! 소드 익스퍼트가 당했다! "
그 외침에 상당히 많은 시선이 내쪽으로 집중되는 것 같았다. 후작의 기사들은 한 두 명씩 나에게 접근하기 시작했고, 나는 마치 악귀처럼 그들을 무참하게 베어가며 천천히 후작에게 다가갔다. 결국 병사들과 기사들에게 꽁꽁 싸여있던 후작의 얼굴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 와하하하하하! "
세르비아 에르윈의 아버지인, 세르비아 후작은 가소롭다는 듯이 나를 보면서 손을 쭉 뻗었다. 그 신호를 받은 기사 몇몇이 나에게 달려들었고, 그들은 내 검에 차디찬 시체가 되어 푸른 초원 위에 피를 쏟았다.
" 호. "
그제서야 후작의 눈에 이놈봐라?- 하는 이채가 띄었다. 내 장기말 중에 하나가 될 놈에게 이런식의 태도를 받는다는 것이 꽤나 불쾌했지만, 지금은 장단을 맞춰줘야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 넌 아주 처참하게 죽여주마, 세르비아 후작. '
물론 그건 나중의 일이 되겠지만, 후작을 곱게 죽일 생각은 버렸다. 후작은 다시 한번 더 손짓을 했고, 그에 맞춰 기사 두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이미 적 병사들은 내 주변을 빙글 둘러싼 채로 경계만 하고 있었다.
" 용기가 아주 가상하구나, 기사! 그 기개는 높이쳐주마. "
" 빨리 덤벼, 시간 아까우니까. "
" 이놈! "
그저 자신을 피라미라고 생각하는 듯한 내 모습에 적 기사 둘은 화가 나서 빠르게 달려왔다. 검에 희미하게 푸른 빛이 일렁이는 것을 보니, 아마 둘은 소드 익스퍼트 상급 이상은 되는 기사들인 것 같았다. 그래봤자 마왕인 나에게 한 주먹감도 되긴 힘들었지만.
- 서걱
나는 단번에 둘을 동시에 베어버렸다. 설마 그렇게 허무하게 둘을 잃을 거라고 생각 못했는지 후작은 입을 떡 벌리며 경직되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병사들도 모두 놀라서 할말을 잃은 듯 했다. 몇몇은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떨어트리기도 했다.
" 이럴 수가…! "
" 저 두 분이 하… 한번에 당하시다니! "
" 괴물… 괴물이다…! "
적 병사들은 두려운 표정으로 뒤로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무서움을 조금이나마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달까. 사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여기에 있는 적들은 모조리 썰어버릴 수 있었다. 이런 피래미들은 아무리 많아봤자 나에게 의미도 없으니까. 0은 아무리 많아봤자 0일 뿐이다.
" 모두 비켜라. "
공기가 마치 무겁게 가라앉은 듯한 느낌에 나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드디어 최고 보스가 나셨구만. 내 앞에 말을 타고 다가온 기사는 바로 후작의 옆을 보좌하던 사내였다. 딱봐도 보통이 아닌 듯한 포스를 풀풀 풍기며 다가오는 모습은 적 병사들에게 힘이 되었는지, 두려워하던 표정이 다시 점차 되돌아가고 있었다.
" 헥스 경이다. "
" 소드 마스터 헥스 경이다! "
그들에게 소드 마스터란 승리의 다른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존재만으로도 전장의 기세를 뒤집을 수 있는, 그야말로 최종 병기였다.
칼리반 영지는 고작해야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 전부였지만, 세르비아 영지는 무려 소드 마스터가 둘이나 있었다. 헥스라 불린 저 사내가 아마 두 소드 마스터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 재밌겠네. 뭐, 그래봤자 나한텐 장난정도지만. "
" 건방진 놈이군. 젊은 나이에 그정도 실력은 대단하지만, 자만은 죽음을 불러오는 법이지. "
" 글쎄, 사실 조금 고민이라서. "
나는 손으로 턱을 어루어만지며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 널 살려둘지 죽일지. "
" 허… 허허. "
내 말에 그가 어이없다는 듯이 몇번 웃다가 검을 스릉- 뽑아서 나에게 겨누었다.
" 쓰잘데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덤벼라. 한 수는 양보해주마. "
" 그거 좋지. "
나는 사양하지 않고 그대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검에는 마나가 씌어져 있었는지 백색의 검날이 파랗게 변해있었다.
모든 병사들은 그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며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이미 그들에게 승패따윈 사라진지 오래였다.
모두가 헥스 경의 승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후작도 살짝 아깝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곳에서 나를 베지 않으면 죽은 두 소드 익스퍼트 기사들의 체면이 땅으로 떨어지고 만다.
어쩌면 나를 거동하지 못하는 상처를 입힌 후에 사로잡아라고 몰래 명령을 내렸을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 크흐흐. '
그는 여유롭게 검을 들어올려 나의 검을 막으려고 포즈를 취했다. 나도 굳이 복잡한 검술을 쓸 생각도 없었다. 그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검을 그을 뿐.
- 서걱
" ?! "
내 검은 아무런 방해없이 부드럽게 움직였고, 모든 병사들은 두 눈을 깜빡였다.
- 땡그랑
무엇이든 벨 수 있다는 마나 소드는 허무하게 잘렸고, 헥스 경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며 뒤로 천천히 쓰러졌다.
" 그… 그랜드…! "
순간 전장이 고요해졌다. 얼마나 조용해졌는지 함께 싸우던 우리쪽 병사들도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검을 내려놓을 정도였다.
" 이건…. "
" 말도 안돼. "
소드 마스터 헥스 경이 졌다. 그저 검을 내려 긋기만 했을 뿐이었는데! 가장 놀란 것은 후작이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면서 나와 헥스 경을 번갈아보다가 크게 소리쳤다.
" 헥스 경을 구하라! "
사실 나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깊게 상처를 입혔을 뿐. 아마도 빠르게 응급처치를 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정도면 충분히 충격을 줬겠지? '
나는 헥스 경의 피가 묻은 검을 한번 땅에 휙- 털고 그것을 후작에게 겨눴다. 그렇게 잠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말머리를 돌렸다. 내가 움직이는 위치에 적 병사들은 좌르륵- 흩어졌고, 나는 아무런 방해없이 유유하게 그곳을 빠져나갔다. 후작은 군대를 물렸고, 칼리반 영지는 기적의 승리를 거뒀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초원 위에 막사를 지어서 대화를 나누자고 병사를 보내왔고, 칼리반 백작은 흔쾌히 수락했다.
" 장하다, 정말 장하다! 그대는 우리 영지의 영웅이야. "
" 별 것 아닙니다. "
" 별 것 아닌게 아니야! 자네는 소드 마스터 헥스 경을 이겼어! "
그 말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었다. 영지전의 승리도 있었지만, 칼리반 영지의 새로운 소드 마스터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다.
" 자네는 우리의 보물일세! "
이미 나에 대한 그의 신뢰도는 최절정으로 치솟았고, 백작은 내 말이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표정이었다.
영지전을 승리했다. 하지만, 우리들이 입은 상처도 만만치 않았다. 병사들의 반 이상이 초원 위에 차디찬 시체로 변했고, 기사들도 반에 가까운 사상자를 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도 나의 등장 하나만으로 모두 상쇄되는 듯 했다.
" 그들이 저와 대화를 나누길 원했다고…? "
" 아마도 헥스 경을 무찌른 자네를 보고 싶어서겠지. "
"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
" 소드 마스터를 운으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네. "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나이까지 젊었다.
즉, 여기서 더 성장할 수도 있다는 의미랄까. 비록 그가 영주 중에선 선한 축에 속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귀족 중에 하나였다. 어떻게든 날 자신의 영지에 엮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딸이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혼인을 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 하나만 약속해주게. "
" 무엇을 말입니까? "
" 절대 우리 영지를 떠나선 안되네. "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그는 안달이 난 표정으로 내 두손을 잡았다.
" 제발 부탁이네. 자네는 나에게 아들같이 소중한 존재였어. 난 진심이었네. "
그건 확실히 사실이었다. 그는 정말 나를 소중히 대해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방랑 기사였다.
" 영주님, 제가 방랑 기사라는 사실은 잘 알고 계시질 않습니까. "
" 제발…. "
" … 여기서 확답을 드리진 못하겠습니다. "
" 꼭 부탁이네. "
기사 하나에 이렇게 쩔쩔 매는 영주라니. 그만큼 소드 마스터의 위상이 대단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 뭐, 네놈의 영지도 내가 먹어버릴거니까 걱정말라고. '
나는 조금 있다가 하게될 후작과의 대면을 상상하면서 비릿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