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127/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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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기사단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오직 지금까지 하나였습니다.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헥스 단장님. "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기사들은 모두 나를 노려보았다. 갑자기 미꾸라지 한 마리가 들어와 깨끗한 물을 흙탕물로 바꿔버리고 있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을까? 분명 그들은 그런 표정이었다. 물론 그 중 몇몇 여기사들은 생각이 조금 달라보였지만.

" 그래서 절대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원하는 사람만…,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

" 원하는 이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

" 그렇습니까? 뭐, 그건 나중에 가봐야 알겠지요. "

헥스 경 역시 못마땅해하는 표정이었지만, 후작까지 인정한 판국에 더 왈가왈부했다간 그의 충성심을 의심받을 수도 있었기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능만 하다면 당장이라도 이 새로운 기사단을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 기한은 정확히 오늘 저녁, 해가 질 때까지 입니다. 전 새 기사단 건물의 단장실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원하는 이가 있다면 오십시오. 그 이후론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

나는 여자들이 뿅- 가버릴 정도로 멋있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살짝 들어올렸다.

" 그럼 수고들 하십시오. "

내가 돌아서 단상 위를 내려오자마자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일단 저런 식으로 모두가 합심하여 나를 몰아낼 것처럼 보여도 무리에는 언제나 불만스러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니까.

' 그게 시작이지. '

그렇게 나는 작은 균열 하나를 건드려서 크게 번지게 만들 생각이었다.

' 자, 몇 명이나 찾아올까. '

*  * *

- 똑 똑

" 네, 들어오십시오. "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들리는 노크 소리에 나는 한껏 미소를 지었다가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서 다시 김이 빠져버렸다.

" 레… 레온 경, 지금 한가해요? "

" 아, 아가씨군요. 네, 괜찮습니다. "

방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에르윈. 이젠 나에게 푹 빠져서 매일같이 나를 만나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후작까지 노골적으로 나와 연결시키려고 하니, 이제 그녀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비록 나의 혼사에 후작은 절대 손대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바람에 상당히 많은 여인들의 추파가 있었지만, 에르윈은 스스로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녀가 베네딕트 왕국의 3대 미녀이기도 했고, 어찌됐든간에 이곳 영주의 딸이었으니까.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그녀가 꿀릴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지금은 귀찮긴 했으나, 일단 그녀에게 상당한 호감을 사야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런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한번쯤 한다고 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완벽을 추구하는 남자라 귀찮다고 그것을 깨고 싶진 않았다.

" 저… 오늘 어때요? "

나를 보러 오려고 상당히 꾸몄는지, 확실히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예쁘긴 했다. 더군다나 그녀와의 밤일도 색다른 맛이 있어서 나쁘진 않았지만, 아무리 최고급 스테이크를 계속 먹다보면 질리게 되기 마련이다. 가끔씩은 싸구려 돈까스도 먹고 싶은 것이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니까.

" 아름다우시네요. 정말 가식적인 말이 아니라…, 확실히 아름다우십니다. "

" 그… 그렇죠? 헤헤. "

저번에 봤던 그 안하무인 기질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이젠 사랑에 빠진 수줍은 소녀만 남아있었다.

" 레… 레온 경도…, 멋있어요. 정말… 지금까지 봤던 남자들 중에선 최고로…. "

" 칭찬 감사합니다. "

" 저… 저희… 결혼하는거죠? "

설마 이걸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볼거라곤 예상을 못했기에 순간 당황해버렸다. 왜 갑자기 결혼 얘기가 튀어나온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순순히 인정해버리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었다.

내가 만약에 결혼한다고 말해버리면 그녀가 서둘러 결혼식을 올려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로썬 그건 전혀 좋은 계획이 아니었다.

" 상황에 따라서요. "

" … 상황이요? "

아마도 자신을 여인으로 만든 내가 결혼을 한다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것 같은데, 확실히 그쪽 면에선 순진하긴 했다. 아니, 조금 멍청한건가?

" 지금 제가 좀 곤란한 상황이거든요. 기사단 일도 있고, 후작님의 일도 있고…. "

" 제가 해결해줄 수 있어요. 레온 경은 걱정 안해도 돼요. "

물론 그녀의 말 한마디는 파급력이 상당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건 의미가 없었다. 앞에선 알겠다고 하겠지만, 분명 후작에게 달려가 그녀의 부당한 행동을 일일이 고할게 뻔했다. 더군다나 나는 마치 여자의 뒤에 숨어서 그녀의 권력을 이용하는 쫄보처럼 보일게 아니겠는가.

' 수치스러워! '

여자고 남자고를 떠나서, 나는 남의 뒤에 숨어서 그렇게 힘을 이용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서 그 짜릿한 쾌감을 맛보는 사람이랄까.

" 제가 그러길 바라십니까? "

" 그러면 쉽잖아요. "

" 아가씨…, 전 스스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제 능력으로 말이지요. 아가씨가 그렇게 행동하게되면, 전 마치 아가씨를 이용하는 불한당처럼 보일 뿐입니다. "

" 말도 안돼!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 하는 놈이 있으면 제가 영지에서 추방해버릴거에요. "

역시나 쉽게 말로 해선 알아먹질 못하는군. 영주의 딸이다보니 워낙 어릴때부터 떠받들여 살아왔기에 명령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확실히 이용해먹긴 쉽지만, 수준이 안 맞다고 해야할까.

" 전 대등하게 아가씨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아직은 너무 이릅니다. 제가 당당하게 당신에게 청혼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실 순 없는겁니까? "

내가 약간 슬픈 표정으로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어떤 여자라도 이런 감동적인 말에 넘어오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에르윈은 이 이상 감동을 먹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울먹거리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 알았어요. 나… 너무 행복해요. "

" 에르윈 아가씨. "

" 아아, 레온 경. "

나는 그녀를 품속에 안고 강하게 안았다. 물론 심심풀이로 그녀의 엉덩이를 손으로 주물럭거렸지만, 그녀는 오히려 좋다는 듯이 달콤한 숨을 내쉬며 움찔거릴 뿐이었다.

" 아읏, 레온 겨엉…. "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나는 일하는 중이고, 언제 기사들이 찾아올지 몰랐기에, 에르윈과의 대화는 여기서 끝을 맺어야했다.

" 아가씨, 전 이제 일을 해야합니다. "

" 아…, 알았어요. 그… 오늘 같이 저녁 식사라도 해요. "

" 오늘은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내일은 어떻습니까? "

" 좋아요. 그럼 내일로 해요. 기대할께요, 레온 경. "

" 이제 레온이라고 부르십시오, 아가씨. "

내 말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알았어요, 레온- 하고 대답했다.

" 레온도 아가씨라고 하지말고…, 이름을 불러주세요. "

" 그래도 될까요? "

" 푸, 당연하죠. 아니, 무조건 그렇게 해야돼요. "

" 그럼, 알았어요 에르윈. "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가 황홀한 표정으로 다리가 풀릴 때까지 키스를 나눴다. 그녀는 나중에 보자는 말과 함께 비틀거리며 방을 나갔다.

' 이쪽은 이제 다 익은 것 같고. '

이제 기사단 일을 끝마치면, 영지 깊숙한 곳까지 손을 뻗어야했다. 이곳 전체를 장악하려면 먼저 뒷골목부터 접수하는 것이 순서니까. 그나저나 기사들이 제법 올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한 명도 안올걸 보니 어쩌면 내 예상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못해도 둘, 아니면 셋은 와야 좋은데. '

물론 기사단 전체에 비하면 둘, 셋은 정말 작은 숫자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그런 기사들이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자극이 되니까.

- 똑 똑

' 드디어 왔나! '

잠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노크 소리에 상념을 지우고 들어와라고 말했다.

- 끼익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사람은, 기사치곤 제법 비열하게 생긴 사내였다. 딱봐도 지금 현 기사단에서 불만을 가득 품고 있는 사내인 것 같았다. 이런 사내라면 나에겐 더없이 좋지.

" 환영합니다. 성함이…? "

" 존. 존 허드슨이라고 합니다. "

" 허드슨 경이군요. "

나는 씩 웃으면서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는 마치 아부하듯이 두손을 내밀어 내 손을 공손히 잡고 흔들었다.

" 영광입니다, 레온 단장님. "

" 그대가 첫 번째 기사입니다. "

" 그… 그렇습니까? "

그는 혹시 안 좋게 생각하는건가- 하고 내 눈치를 보다가, 오히려 웃고 있는 내 모습에 헤헤- 하고 두손을 싹싹 비볐다.

" 그대는 오늘부터 저희 기사단의 일원입니다. 현재 어느정도 성취를…? "

" 아… 아직 성취는 얕습니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입니다. "

" 그정도면 훌륭한거죠. "

" 단장님에 비하면 반딧불이 수준 정돕니다. "

아부가 정말 생활되어있는 사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헥스 경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만한 성품이었다. 그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을 좋아했으니까.

" 아유, 뭘 그렇게… 하하하. "

" 얼굴도 정말 미남이십니다. 이제껏 단장님처럼 멋있는 분은 처음보는 것 같습니다, 헤헤. "

내 반응에 그는 시동이 제대로 걸렸는지, 이제 거리낌없이 아부를 날리며 헤헤- 하고 웃었다.

" 허드슨 경이 첫 번째니 특별히 제가 선물을 주고 싶은데…. "

" 아이고, 그런걸 바란게 전혀 아닙니다. "

그렇게 말은 해도 그의 눈빛은 당연히 기대가 가득차있었다. 아무런 이득없이 아부하는 사람은 이 세상엔 절대 없다. 그건 게임뿐만 아니라 현실도 그랬다. 그런 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면, 나중엔 내 발가락이라도 핥으려고 할 것이다.

" 특별히 소드 익스퍼트 상급…, 아니 최상급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

" … 네?! "

" 이걸로 조금 부족한가? 그럼 소드 마스터는 어떻습니까? "

그는 살짝 요상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소드 마스터를 마구 찍어낼 수 있다는 듯한 내 표현이 이해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저 과장했다고 생각했는지 하하- 하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좋습니다. 뭐라도 좋습니다, 단장님. "

" 그럼 오늘 저녁에 다시 얘기를 나누지요. 그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하셔도 좋습니다. "

" 감사합니다, 단장님. "

그는 마치 처음부터 허리가 굽은 것처럼 연신 굽신거리며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방을 나갔다. 나는 기사단 명부를 보면서 존 허드슨에 대한 정보를 읽었다.

나이 34세, 기혼이며 자식은 없음. 현재 소드 익스퍼트 중급이라. 아주 전형적인 기사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 내 손을 거치면서 달라질 것이다.

- 똑 똑

때마침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직 해가 저물진 않았지만, 이제 저녁을 달려가는 시간때였다. 조금 있으면 노을이 질 것이고, 기사 몇몇이 더 올테지.

' 크흐흐. '

" 들어오십시오. "

또다시 들어오는 기사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표면적으론 산뜻한 미소였지만.

' 여기사군. '

예상한 일이었다. 분명 나에게 홀딱 반한 여기사가 있을 것이고, 그녀는 눈총을 받을 것을 무릅쓰고 올 것이란걸. 왜? 후작이 자신은 절대 내 혼사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니까. 그렇다면 나와 함께 부대끼는 기사단에 있는 것이 확실히 유리할 것이다.

" 바… 반갑습니다, 단장님. "

엄청 예쁜건 아니지만, 적당히 반반하게 생긴 여기사. 그래도 기사들 사이에선 인기가 좀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그건 본인만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 그래도 몸을 단련하는 기사니까 몸매 하나는 죽이지 않을까? 확실히 경험이 있어서 알고 있는 게 바로 기사들은 안는 맛이 색다르단 것이었다. 온실의 화초보다 야생의 들꽃이 더 꺾는 묘미가 있다.

' 크흐흐, 넌 내 성노 당첨이다. '

어차피 눈치 안보고 내 욕구를 풀만한 여자가 필요했기에, 그녀만큼 적당한 여자도 찾기 힘들 것이다.

" 잘 왔습니다. 성함이…? "

" 큐나라고 합니다. 큐나 리스본. "

" 환영합니다, 리스본 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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