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화 (130/150)

133

" …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주겠나? "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

후작은 아침부터 시작된, 일명 에르윈의 땡깡부리기에 항복하고 나를 불렀다. 그녀에게 상당히 곤란을 겪었는지 얼굴이 상당히 어두운 상태였던 후작은, 에르윈이 갑자기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를 나에게 묻고 있었다.

" 그대가 괜히 헛바람을 집어넣은게 아닌가? "

" 헛바람이라뇨, 결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하늘에 맹세합니다. "

" … 허. "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딸아이를 애지중지 키웠더니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겠다고 땡깡을 부리는 모습은 가히 후작에겐 충격이나 다름없었던 모양이었다.

" 일단… 허락 비슷하겐 했지만…. "

" 너무 성급하신건 아니신지요. "

" 나도 그렇겐 생각하고 있네. 하지만 내 딸이 그렇게나 애원하는데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

" 그럼 저로써도 어쩔 수 없습니다. "

내 말에 후작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마도 자신의 계획이 조금 틀어져버렸는지 꽤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 … 일단 알겠네. 그나저나, 기사단은 어떻게 되고 있지? "

" 무난하게 가고 있습니다. 뭐, 아직 수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말입니다. "

" 기사들은 몇 달마다 보충이 될껄세. 그때 그대의 기사단에도 기사들을 배정해주지. "

" 감사합니다. "

" 그럼 이만 나가보게. "

나는 후작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방을 나왔다. 역시 예상대로 에르윈은 곧장 후작에게 약혼식을 빨리 올려달라고 부탁한 모양이다. 그럼 아마도 한 달내에 약혼식을 치루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도 조금 발빠르게 움직여야할 것 같았다.

훈련장에는 당연히 내 기사단 3명이 기사복을 차려입고 정렬한 상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 둘의 눈빛은 어제나 별반 다를 것 없는 것이었지만, 큐나는 조금 달랐다. 어제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침대에서 뒹굴거렸기에 달라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내가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 다들 잘 나왔군. 그럼 시작한다. "

당연히 훈련은 점심까지만 했고, 우리들은 헥스 기사단의 부러운 눈빛을 받으며 훈련장에서 유유히 빠져나왔다.

" 부단장. "

" 아, 옙 단장님. "

" 이번에 들어올 신입 기사는 그대가 뽑도록 해. 마지막 심사만 내가 할테니. "

" 알겠습니다. "

그는 드디어!- 하는 표정으로 활짝 웃다가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강하게 쾅- 올리며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빠져나갔다. 이맘때쯤에 기사 학교에서 졸업하는 졸업생들의 명단이 올라올테니, 그도 그 중에서 인재들을 끌어오려면 꽤 바쁠테니까.

" 레미 경은 좀 더 훈련에 매진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군. 아직 성취가 미미해서 말이지. "

" 열심히 하겠습니다! "

" 기회가 되면 직접 한번 봐줄테니, 열심히 하게. 실망하지 않도록. "

" 옙! "

그의 눈빛에 기대감이 가득찼다. 소드 마스터가 직접 자신의 검술을 봐준다는데 싫어할 기사들은 없을테니까. 물론 거기서 소드 마스터라는 것이 잘못된 판단이긴 했으나, 뭐 상관없긴 했다.

" 그럼…. "

두 남자가 사라지고 또다시 나는 큐나와 단둘이 남았다. 그녀는 무언가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그녀를 안달나게 만들어야했다.

" 리스본 경은 잘가게. "

" … 에? "

" 오늘 에르윈 아가씨와 약속이 있어서 말이지. 오후부턴 각자 자유시간이니 뭘 해도 상관없어. "

" 아…. "

그녀는 기사답지 않게 입을 살짝 벌린채 멍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살짝 웃어주며 몸을 돌려 그녀를 벗어났다. 아마 내가 에르윈과 만난다는 것에 상당히 불안해할 것이 틀림없다.

' 솔직히 말하면 너보단 에르윈이 더 좋지. '

엄청난 미녀에 몸매까지 발군인 그녀가 큐나보다 나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에르윈은 내가 첫 남자에 비해서, 큐나는 경험이 있는 여자였으니까 정복감이 덜하달까.

" 레온! "

" 아가씨. "

차를 마시며 나를 기다리고 있던 에르윈은 내 모습이 보이자마자 벌떡 일어서서 손을 마구 흔들었다. 옆에 있던 시녀가 놀라며 그녀에게 체통을 지켜야한다고 말했지만, 에르윈이 그런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 레온, 한참이나 기다렸단 말이야. "

" 그러셨습니까? "

" 아가씨! "

아마 그녀가 내 이름을 바로 막 부른 것에 시녀가 꽤 불만인 것 같았다.

" 흠흠. "

" 상관없습니다. 자네도 이만 자리좀 비켜주지? "

" … 알겠습니다. "

내 축객령에 시녀가 꽤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명령을 거부할 간담까진 없던 모양이었다. 에르윈은 시녀가 사라지는 것을 보자마자 바로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몸을 던져왔다.

" 아, 레오온. "

그녀의 상큼한 냄새가 내 콧속을 파고 들었다. 볼록한 가슴이 내 가슴과 맞닿으며 좋은 감촉을 만들었다.

" 참, 이번 주에 나 공작전하의 영지로 가야해요. "

" 이번 주에? 왜요? "

" 그 사람 장남의… 생일 파티가 있거든요. "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 거기에 당신과 함께 갈 생각이에요. 내 호위로 와줘요. 일주일 넘게 레온, 당신을 못 볼 생각을 하면… 죽을 것 같아요. "

묘한 분위기에 나는 그녀와 농밀한 입맞춤을 했고, 순식간에 서로의 혀가 얽히며 타액을 교환했다. 그녀는 마치 달콤한 꿀을 빠는 것처럼 눈을 감은채 내 입을 쭉쭉 빨다가 하아-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예쁜 금색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 사랑해요, 레온. 너무…. "

" 에르윈.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

" 빨리 당신과 혼약했으면 좋겠어요. "

" 저도 그렇습니다, 에르윈. "

원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귀족과 기사의 결혼. 하지만 소드 마스터는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는 법이었다. 예로 수많은 소드 마스터들이 각자 주군의 딸과 결혼하여 진성 귀족으로 탈바꿈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았다.

심지어 왕족과도 혼인한 예도 많았기에, 소드 마스터는 일종의 귀족 보장권이나 다름없다고 해야할까. 물론 그 중에서도 스스로 평민이나 기사들과 결혼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 수는 매우 적었다.

" 왜 아버지께서 그렇게 뜸들이는 지 이해할 수 없다니까요…. "

" 후작각하도 바쁘셔서 그러실 겁니다. 거기에 아가씨의 약혼까지 진행하면…, 정말로 과로로 쓰러지실지도 모르구요. "

" 흥, 아버진 고작 그런 걸로 쓰러지실 분이 아니에요. 얼마나 강철같은 분이신데…. "

하긴 그는 자기관리에 아주 철저한 사람처럼 보이긴 했다. 아마 일평생 감기라곤 한번 걸려본 적이 없을 것이 분명할터. 그녀도 그런 기계같은 자신의 아버지가 가끔은 싫을 때도 있을 것이다. 실상은 딸에게 껌뻑 죽는 딸바보이긴 했지만.

" 하여튼 그렇게 알고 있어요. 출발은 이틀 뒤니까…. "

" 알겠습니다, 아가씨. "

어차피 다른 영지로 움직일 계획을 가지고 있던 나로썬 절호의 기회일지도 몰랐다. 자연스럽게 후작의 의심스런 눈길도 피할 수 있고. 아마도 그녀는 이 일이 자신의 아버지를 파멸로 이끌고간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리 행복한 웃음을 짓는 것이겠지.

" 아, 행복해요. "

*  * *

" 저도 가겠어요. "

다음날, 나는 훈련을 끝마친 기사단원들에게 내일부터 일주일간 개인훈련을 실시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당연히 내가 에르윈 아가씨의 호위로 공작 영지에 가기 때문. 그 말을 들은 큐나는 혼자 집무실로 찾아와 나에게 대뜸 이렇게 얘기했다.

" 안돼. 너는 여기서 훈련을 해. "

" 가겠어요. 아니, 꼭 갈거에요. 다… 단장님과 잠시도 떨어질 수… 없단 말이에요. "

" 그래도 안돼. "

눈물을 머금은 큐나는 입술을 꽉 깨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단장님의 보조 기사로 가겠어요. "

" 리스본 경! "

" 이건 단장님이 말씀하셔도 소용없어요! 전 반드시 갈거에요. 그게 제 명예를 먹칠한다고 하더라도, 전 따라갈거에요. "

그녀의 눈빛은 단호했다.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겠다는 의지.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녀를 데리고 갈 권한도 없었을 뿐더러, 그럴 생각도 없었다.

" 이건 단장으로서의 명령이다, 리스본 경! "

" 흑. "

" 자네는 기사지? "

" 기… 기사지만…, 여자이기도 합니다. "

결국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나를 바라보다가 몸을 휙- 돌리며 방을 나갔다. 차라리 이렇게 애를 태우는 것이 그녀를 더욱 알맞게 익도록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몰래 숨어서 사랑을 속삭이더라도 더욱 불타오를 수 있으니까.

나는 집무실에서 나와 저택으로 돌아갔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려면 이것저것 준비해야할 것들이 있었다. 더군다나 내 부하들에게도 이런저런 명령을 내려놔야했다. 특히, 하산 상회에 대한 일들을.

' 영지가 내 것이 된다고 해도, 하산 상회가 버티고 있는 이상 완전히 흡수하진 못해. 지금 후작도 그걸 골치아파 하는거고. '

그들이 자신의 영지의 상회이긴 했으나, 워낙 크게 성장하는 바람에 함부로 손대기도 힘들어졌다. 그래서 지금 후작이 노리는 것은 자신의 세살짜리 아들과 하산 상회 장녀의 약혼. 하지만 나이가 무려 20살 가까이 차이나기에 그 약혼이 만만치가 않았다. 상단주는 당연히 그것이 자신들을 흡수하려는 후작의 속셈이란 것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쉽사리 약혼을 하려 하지 않았다.

' 하지만 그걸 내가 쏙 먹어버린다면? '

물론 그건 후작이 죽은 뒤에나 가능하겠지만.

*  * *

베네딕트 왕국의 유일한 공작인 브룬힐트 공작은 현재 왕국의 왕과는 사촌 관계다.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으며 그 딸이 바로 베네딕트 왕국의 3대 미녀 중 한 명에 속하는 여인이었다.

그런 이유때문에 세르비아 에르윈과는 꽤 관계가 돈독했는데, 그녀는 오래전부터 공작의 장남에게 구애를 받아왔지만 후작의 강경한 거절에 번번히 실패해왔었다. 후작도 아직 아들이 너무나 어렸기에 장성한 딸을 보냈다가는 후작의 영지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공작의 장남이 그런 의도로 에르윈에게 구애를 했던 것은 아니겠지만, 공작은 그런 것까지 충분히 염두해두고 있을 거라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 그래도 저한텐 레온 뿐이에요. "

" 그 잭슨이라는 남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

" 훗, 혹시… 질투는 아니죠? "

에르윈이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은근히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절대 아니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 충분히 공작가의 뒤를 이을 남자에요. 그정도 능력은 있으니까. 그렇다고 공작전하를 뛰어넘을만한 재능까진 없어요. 그저 현상 유지는 할 정도? "

" 그렇군요. "

" 올해로 24살이군요. 그도 혼례를 올릴 때가 됐네요. "

정말 에르윈은 그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그보다 베네딕트 왕국의 3대 미녀라는 공작의 딸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에르윈만큼이나 미녀라면, 충분히 자신을 만족시킬만한 미모일 것이다. 그리고, 내 목표는 그녀를 이용하는 것이고.

' 괜히 내가 절세미남으로 만든게 아니지. '

여자의 질투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절친인 그녀들도 나를 사이에 두면 분명 질투심에 서로를 미워하게 될테지. 그 미움은 끝내 두 영지의 갈등으로 번지게 될 것이고, 서로 끔찍한 영지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베네딕트 왕국은 두 세력으로 나뉠 것이고, 곧 전화로 휩싸일 것이다.

거기서 내가 영웅처럼 등장하여 나라를 구한 뒤에….

' 전부 먹는다. '

============================ 작품 후기 ============================

일단 2연참 성공! 나중에 하나 더 올라갈지는 장담 못하겠네요.

감기가 걸려버렸네요. 콧물이 줄줄줄~. 제엔장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