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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콕콕 쑤시는 듯한 수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부러움, 원망, 질투, 시기심. 게임의 설정인지 아니면 진짜 내 본능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음차원의 감정이 나를 더욱 힘이 솟아오르도록 하는 것만 같았다.
기억할 가치도 없는 수많은 귀족 자제들이 우리들에게 다가와 인삿말을 건넸고, 여자들은 나에게, 남자들은 에르윈에게 한마디라도 더 던져서 관심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에르윈이 적절하게 끊어주었기에 그들은 인사만 하고는 더이상 우리들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 괜찮은 년들도 꽤 있는데. '
물론 괜찮은 정도지 꼭 손에 넣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에 시간이 널널해서 여인들 하나하나를 모두 공략할 수 있었다면 몰라도, 이런 상황에선 정말로 마음에 드는 여자만 손에 넣는 편이 좋았다.
' 즉, 힐다 그 년만 내 손에 넣으면 된다 이거지. '
대충 소문으로 들어본바로는 정말 천사처럼 착한 분이라는 말이 많았다. 에르윈도 그 부분에는 찬성하면서 정말 착하고 순수한 면을 강조했다. 나쁜 여자를 길들이는 그런 맛도 좋지만, 이렇게 착하디 착한 여자를 길들이는 것도 그 나름의 색다른 맛이 있다.
" 아, 에르윈! "
" 힐다! "
때마침 연회장에 들어온 힐다는 자리를 싹 비켜주는 사람들을 지나쳐 우리들 앞까지 다가왔다. 뒤에는 제법 쓸모가 있을 것같은 기사 하나가 따라붙었는데, 못해도 소드 마스터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확실히 공녀를 옆에서 지키려면 그정도 수준은 되야 알맞지 않을까 싶으니까.
" 정말 반가워. 잘 지냈지? "
" 그럼. 너도 아픈데는 없었고? "
" 응. 오빠가 널 보고 싶다고 얼마나 칭얼댔는지 알기나 해? "
" 뭐, 이젠 그런 말도 좀 곤란해. "
힐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에르윈은 침을 꿀꺽 삼키며 옆에 서있는 나에게 살짝 눈길을 주었다. 힐다는 그 투명하고 맑은 눈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는데, 나 역시 그녀의 맑은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한껏 환한 미소를 지었다.
" 아…, 이 분은…? "
" 내 약혼자야. 레온 프라하스타라고 해. 레온? 이쪽은 힐다, 브룬힐트 힐다라고 해요. "
" 반갑습니다, 공녀님. "
" 아, 네 반가워요. "
그저 호위 기사라고만 생각했던 힐다는 설마 내가 에르윈의 약혼자였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살짝 충격을 먹은 것 같았다.
"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전 아가씨의 호위기사가 맞습니다. "
" … 네? "
" … 지금은 기사야. 기사 단장이지. 소드 마스터고. "
그 소리에 놀란 사람은 다름아닌 힐다 옆에 있던 사내였다. 그도 꽤 젊긴 했지만, 그래봤자 40대를 훌쩍 넘은 중년의 나이였다. 그 정도에 소드 마스터라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지만, 20대에 소드 마스터라는 것은 그야말로 몇 백년만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인재라는 뜻이었다.
" 소문으론 헥스 경도 단칼에 패배했다고 했으니까. "
" … 그 헥스 경이 말입니까? "
" 네, 소린 경. 오랜만이에요. "
" 아, 먼저 인사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가씨. "
타이밍이 애매했긴 했지만, 이렇게 인사도 하지 않고 먼저 질문부터 한 것은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었다. 그만큼 소린 경도 나에게 상당히 놀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랄까. 처음에는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나와 약혼을 맺었다는 말에 수근거리며 에르윈에게 비웃음을 날렸지만, 내가 정말 대륙에서 거의 으뜸가는 인재라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그런 비웃음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 … 대단하군, 자네. "
" 별말씀을. "
" 기회가 생기면 대련 한번 가능한가? "
" 물론입니다. "
힐다는 정말 잘됐다는 듯이 손뼉을 짝짝- 치면서 아주 활짝 웃었다.
" 정말 잘됐다.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이렇게 나타나주었네. "
" 고마워, 힐다. 너도 꼭 레온같이 멋있는 사람이 나타날꺼야. "
"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
그때마침 연회장에 공작 부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차피 자신의 아들의 생일이었기에, 공작 부부는 잠시 감사의 인사만 건네고 사라질 예정이었다.
" 내 아들의 스물 두 번째 생일 파티에 온 것에 대해 환영하네. 즐겁게 마시고 놀면서 즐기도록. "
갈색의 콧수염을 멋있게 기른 중년의 모습을 한 공작은 자신에게 다가온 힐다의 뺨에 입을 살짝 맞춘 뒤에 곧 자신을 뒤따라 나온 아들의 어깨를 손으로 툭- 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 다들 제 생일 파티에 온 것에 감사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마음껏 즐기길 바랍니다! "
" 와아. "
- 짝짝 짝짝 짝짝
연회장 안은 수많은 박수 소리와 함께 음악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연회의 시작이었다. 물론 다들 공자에게 한번이라도 더 눈에 들기 위해서 눈에 불을 키고 있었지만, 막상 그는 그들에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그의 눈빛은 에르윈에게만 향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녀는 이미 내것이다.
" 아, 에르윈! "
" 오라버니, 생일 축하해요. "
" 정말 고마워. "
그는 에르윈의 손을 덥썩 잡으면서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에르윈은 힐다에게 자신을 좀 도와달라는 눈치를 보냈다.
" 흠, 저기 오빠. "
" 응? "
" 저… 에르윈은 이미 약혼자가 있어. "
자신이 잘못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직까지 잡고 있던 에르윈의 손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랄까. 그래, 그렇게 발버둥치는걸 보는게 나는 재밌더라고.
" 뭐라고? "
" 저기, 오라버니. 저 약혼자가 이미 있어요. 그러니, 이렇게 행동하시는건 조금…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인지라…. "
" 약혼…자라고? "
에르윈은 끝끝내 놓지 않는 그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억지로 빼내며 쓴 웃음을 지었다.
" 레온 프라하스타라고 해요. 이분은 브룬힐트 르겐이라고 해요, 레온. 아까 만났죠? "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한참이나 보다가 점점 얼굴이 굳어갔다. 주먹까지 불끈 쥔 것을 보니, 상실감이 엄청나보였지만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그가 분노하는 모습이 나에겐 상당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 반갑습니다, 공자님. 레온 프라하스타라고 합니다. "
" … 약혼자라고 했지? "
" 그렇습니다. "
" 어느집 자제지? 아깐 내가 기사라고 오해했던 모양이야. "
소개도 없이 대뜸 그렇게 말하는 것은 분명 무례였지만, 다들 터질듯한 이 분위기에 우리 둘을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에르윈과 힐다도 마찬가지였다.
" 기사가 맞습니다. 이번에 새로운 기사단의 단장이 되었습니다. "
" … 기사…? "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인 뒤에 다시 고개를 들고 그의 눈빛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부글거리는 분노가 그의 눈에 가득차 있었다. 좋아, 폭발해라. 폭발해란 말이야.
" 어디 불편하신데라도? "
당연히 불편할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에르윈을 어느 놈이 갑자기 낚아채버렸는데 그걸 좋아할 남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왼손에는 작은 상자가 하나 들려있었는데, 아마도 생일 파티를 계기로 그녀에게 청혼을 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갈수록 재밌어지는데.
" 후. 내… 에르윈의 약혼자라…. 그것도 고작… 기사가? "
" 오라버니. 말이 좀 지나치시네요. "
에르윈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르겐을 향해 불만을 표했지만, 이미 그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 감히 기사나부랭이놈이 에르윈과 약혼이라고?! 감히 에르윈과 약혼이라니! 에르윈을 데려갈 순 없어! "
결국 그는 화가 폭발해 나를 바라보면서 소리쳤고, 그의 뒤에 있던 호위기사가 서둘러 그를 잡아끌면서 더이상 일이 커지지 않도록 말렸다. 이미 음악은 전부 멈춘 상태였고, 귀족 자제들도 겁이 질린 표정으로 다들 주변에서 한참이나 멀찍이 떨어진 상태였다.
" 도련님! 진정하십시오. "
" 놔! 내가 놔라고 분명 말했어! 진정 죽고 싶으면 내 몸에 손을 대라. "
그 사나운 정도가 보통이 아니었는지라 기사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르겐의 몸에서 손을 떼어냈다. 르겐은 씩씩거리면서 나를 노려보며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 절대 인정할 수 없어! 에르윈은 내 여자야. 아무도 데려갈 순 없단 말이야! "
" 오빠! "
" 오라버닛! "
너무나 커진 사태에 에르윈과 힐다는 안절부절 못하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아마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여유로운 사람은 바로 나일 것이다.
" 후후후. "
" … 웃어? 이게 웃기나? "
" 그럼 한 가지 제안을 드리지요. "
" 제아안? "
그는 같잖다는 듯이 피식 웃으면 계속 해보라는 듯이 턱을 한번 들어올렸다가 내렸다.
"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가장 강한 사람을 데려와서…, 절 이기십시오. 참, 핸디캡을 줘야하니… 음 두 명, 두 명 어떻습니까? 이 영지에서 가장 강한 두 명의 사람을 데려와 저를 이기십시오. "
" 하… 아하하하하! "
" 만약 제가 진다면 깔끔하게 에르윈 아가씨를 포기하겠습니다. "
" 웃기는 놈이군. "
분명 계산이 빠른 놈이라면 이 제안을 덥썩 물 것이다. 이미 내가 에르윈의 약혼자라는 것은 아무리 그가 떼를 써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제안은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 좋은 기회. 머리가 조금만 돌아가는 놈이라면 같잖다고 얘기하면서도 이 제안을 덥썩 받아들일게 분명했다.
물론 난 그걸 노린거지만.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절대 내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긴 했지만, 아쉽게도 두 명이 아니라 열 명이 와도 나를 이길 수는 없다.
" 두 명이라고? 푸훕. 크하하하하. "
" 레온! 지… 지금 무슨 소릴 하는거야. "
" 걱정마십시오, 아가씨. "
" 레온! "
" 좋다. 그럼 이렇게 하지. 이기는 쪽이 에르윈을 데려가는거다. "
마치 자신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르겐의 말투에 에르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서 무언가 쏘아붙이려고 했지만, 그 전에 내가 먼저 선수치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기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하지 못했군요. "
" 뭐? 아하하하, 좋아. 네가 이긴다면 뭘 원하지? "
" 당신의 사죄입니다. "
" 사죄? "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저와 에르윈에게 준 모욕을… 사죄하시지요. "
그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 좋다! 그 제안 받아들이지. "
순식간에 주위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내가 이긴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겠지만, 만약에 이긴다면 정말 공작 영지가 뒤집어질 정도로 큰 사건이 될지도 몰랐다. 아니, 이미 이 사건 자체가 말도 안되게 커져버렸지만, 거기에 공작측이 제안에서 패배한다면?
' 아마도 내 위상은 하늘로 치솟겠지. '
거기에 공작의 위상은 바닥까지 떨어질 것이다. 르겐은 나를 바라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 이 제안에 대해서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해주지. "
" 별말씀을. 그럼 저희도 이만 물러가는게 좋을 것 같군요, 공자님. "
" 좋다. 나도 흥미를 잃었으니 이만 가지. "
나와 공자는 동시에 몸을 돌렸다. 에르윈은 오히려 나를 뒤따라 오는 형태가 되어버렸지만,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연회장 밖으로 나오니 후끈했던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 레온! 이게 무슨 짓이에요! 제안이라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에요?! "
" 에르윈. "
나는 씩 웃으면서 그녀를 뒤돌아보았다.
" 이걸로 저의 위치가 달라질겁니다. 에르윈 당신도 단단히 마음 준비를 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
이번 제안으로 내 이름은 베네딕트 왕국 전체에 번질 것이고, 그로 인해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모든 것은 내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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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할 수 있으면 할께요, 에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