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화 (13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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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한참이나 그렇게 있었다. 그러다가 비참한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나에게 걸어왔다. 비틀비틀거리며 추하게 다가오는 모습이 꽤 볼만했다. 그는 사나운 눈으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아주 천천히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 이럴 수가. "

" 세상에. "

구경꾼들이 모두들 고개를 슬쩍 돌렸다. 괜히 이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모두가 공자가 고작 기사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인지한 상태였다. 이 사건은 분명 베네딕트 왕국에 퍼질 것이고, 곧 연합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다.

" 당신께… 사죄합니다. "

" 뭐라구요? 잘 안들립니다만. "

물론 내 귀엔 똑똑히 들렸지만, 그는 정말 거의 개미기어가는 소리로 웅얼거렸을 뿐이었다. 그는 이를 부득부득 갈더니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나에게 외쳤다.

" 당신께 사죄합니다! "

" 그 사과 받아들이지요. "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공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 가만두지 않을거야! 널 가만두지 않을거라고! 어떻게든 죽일거야! 네놈을 죽여버릴거야아아아아아! "

공자의 발악에 기사 몇몇이 달라붙어 그를 어디론가 끌고갔다. 공작은 끝까지 추하게 행동하는 공자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죽은 두 소드 마스터를 바라보다가 곧 다시 은은한 미소를 띤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정말 무서운 인간이네. 이리 감정 조절을 잘하는 사람은 가상현실 게임을 전부 통틀어 생각해봐도 처음인 것 같았다.

" 잠시 둘이서 얘기를 나눌 수 있겠나? 딱 둘이서 말일세. "

" 궁전에서 아가씨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만. "

" 이미 사람을 보냈네. 그건 걱정말고. "

그렇다면 문제될건 없었으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힐다가 살짝 창백해진 얼굴로 공작에게 다가와 이만 자기도 가보겠다고 말을 건넸다.

" 그래, 가보렴. "

" 예, 아버지. "

손으로 톡- 치면 쓰러질 것처럼 연약한 모습으로 기사에게 부축을 받으며 그녀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 마차에 함께 타고 가지. "

" 영광입니다. "

마차 안은 정말 안락하기 이를데 없었다. 나는 폭신한 의자에 앉아서 마주앉아있는 공작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차피 그에게 꿀릴 것도 없는 판국에 괜히 조아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 대단한 청년이군.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

" 스물 둘입니다. "

" 오, 스물 둘에 소드 마스터… 아니 그 이상이라. "

" 참고로 제가 유희를 나온 드래곤같이 동화같은 상상은 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

" 사실 조금 의심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

하지만 사실 그에겐 내가 드래곤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자신에게 끌어들일 수 있으냐 없느냐가 중요하지.

" 후작과는 어떻게 만났는지 얘기해줄 수 있나? "

" 별거 아닙니다. 그저 영지전에서 후작님의 기사를 마구 썰고 다녔을 뿐이지요. "

" 호, 그래서 후작에게 넘어갔다? "

" 한달정도 되었군요. "

한달이란 소리에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에르윈과 약혼한 사이라고? "

" 그렇습니다. "

" 우리 힐다는 어떤가. "

" 당연히 좋지요. 베네딕트 왕국의 3대 미녀시니 말입니다. "

하지만 방법이 틀렸다. 고작 나를 여자 하나로 잡아둘 생각을 해?

" 하지만 전 에르윈 아가씨와 약혼한 몸입니다만. "

" 약혼을 파기하란 소리가 아닐세. 어차피 부인이 하나만 있어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

" 호, 고작 기사나부랭이에게 다처를 권하시는겁니까? 심지어 후작의 딸이 있는 남자에게 말입니다. "

" 자네를 고작 기사나부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

공작은 결코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날 잡아둘 생각인 것 같은데, 어디까지 양보하는지 궁금해서 그의 장단에 조금 맞춰주기로 마음 먹었다.

" 공녀님도 아름답긴하지만, 고작 그거 하나로 이곳에 묶이는건 별로 원치 않습니다만. "

" 그건 그저 내 선물일세. 부담 가지지 말게. "

자신의 딸을 선물이라고 지칭하다니. 공작은 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자식도 쉽게 팔 수 있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물론 그게 싫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원래 이런 시대의 딸이나 아들은 정략결혼이 흔했으니까.

" 뭐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

" … 후작의 대가는 무엇이었나. "

꽤 단도직입적인 물음이었다. 후작의 대가라.

" 후작님의 상황을 아실텐데요. "

" 영지를 넘기는 것까지 해줄 위인은 아닐세. 그 사람도 꽤 권력을 추구하는 인물인지라. "

" 자세한 얘기는 해드릴 수 없습니다만…, 결코 작은건 아닙니다. "

베네딕트 왕국을 집어삼키려는 후작이었으니, 나는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지는 권력 또한 만만치 않을터. 물론 나에겐 터무니없이 작은 것이긴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본다면 아마도 더이상 올라갈 수 있는 위치가 없을 정도라고 생각할 것이다.

" 그런가? 후작의 야망은 대충 눈치채고 있네. 그게 쉽사리 이루어질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

" 처음 후작각하를 만났을 때는 가능성이 좀 있다고 생각했지만, 공작전하를 보니 힘들 것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

" 칭찬 고맙네. "

" 별말씀을. "

순간 훈훈한 훈풍이 마차 안을 휘감고 돌았다.

" 내쪽으로 오는건 무린가? "

" 물론입니다만, 공작전하께서 후작각하의 영지를 손에 넣으시면 또 다르지요. "

" … 만약에 가능하다면? "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 그럼 두말않고 이곳으로 오겠습니다. 공작전하의 힘이 되어드리지요. "

" 하지만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자네까지 가세하면 거의 불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

그건 당연한 소리였다. 소드 마스터 상급 둘을 심심풀이로 가지고 놀 정돈데 내가 영지전에 참가하면 그쪽 편은 이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그럼 저를 그리 쉽게 얻으실 생각이셨습니까? 저는… 절대적인 승리를 뜻하는 사람입니다. 얻는 순간…, 게임은 끝이지요. "

" 그래서 탐나는걸세. 질 가능성이 많은걸 알면서도… 도전하게 만드는군. "

" 무슨 방법이든 다 동원하십시오. 혹시 압니까?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후작각하께서 돌아가실지 말입니다. "

내 말에 공작은 아하하- 하고 웃으면서 손뼉을 짝짝- 쳤다.

" 그거 좋은 방법이군. 음, 사실 생각해보면 그리 불가능하지는 않아. 아니, 내가 전력을 다한다면 승률은 반반이네. "

" 꽤 높군요. "

" 자네를 얻으면… 가히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똑같을거야. 그러면 내 꿈도 이룰 수 있겠지. "

이정도 사내가 꾸는 꿈이라면 베네딕트 왕국에만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연합국, 혹은 그 이상까지 바라보겠지. 중년이라고 해도 아직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니 넓게 20년을 바라본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 자네같은 영웅이 필요해. 그러면 일단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부터 해결해야겠군. "

"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금같이 귀중한 소드 마스터 둘이 죽으셨는데, 이리도 담담하시다니. "

" 처음엔 화가 났지. 하지만, 자네를 보는 순간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네. 자네에 비하면 소드 마스터 둘은 아무 것도 아니네. 아니, 우리 영지에 있는 모든 소드 마스터와 비교해도 자네보다 가치있지 않아. "

확실히 공작은 남과는 다른 눈이 있었다. 한눈에 내 가치를 파악하는 것이 후작과 비슷했다.

- 똑똑

" 공작님 곧 궁전에 도착합니다. "

기사의 말에 공작은 알았다고 대답한 뒤에 나를 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 같이 차라도 한잔 하지. "

" 좋습니다. "

*  * *

- 똑 똑

" 공작전하, 공녀님께서 오셨습니다. "

" 들어오도록. "

공작과 같이 차를 즐기고 있는 도중에 문에서 예상 외의 말소리가 들렸다. 공녀라니? 딱봐도 공작이 그녀를 부른 것 같은데, 아마도 빠르게 나와 그녀를 엮어버릴 생각인 것 같았다.

- 끼익

" 아버지. "

" 오, 힐다야. 이리온. "

그녀는 조신한 발걸음으로 우리들에게 걸어왔다.

" 프라하스타 경 옆에 앉으렴. "

꽤 파격적인 그의 말에 힐다가 잠시 머뭇했지만, 별말하지 않고 내 옆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 부르신 이유가…. "

아마 그녀도 대충 눈치챘을 것이다. 나와의 혼인.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노골적으로 옆자리에 앉힐 이유가 없었으니까.

" 둘이 잘 어울리는구만. 힐다 너의 생각은 어떠하니? "

" 아…, 너무 갑작스러운 말씀이라…. "

나는 여유롭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어차피 그녀의 내숭은 다 파악하고 있는 상황. 나는 빠르게 머릿속으로 여러가지 수를 계산했다.

" 혹, 아버지께선 저와 이 분과 연결되시길 바라세요? "

" 사실대로 말하면…, 그렇단다. "

" 이 분은 에르윈과 약혼하셨습니다. "

" 그런건 걱정하지말고. "

순간 그녀의 이마가 살짝 금이 갔다가 다시 펴졌다.

" 설마 두 번째 아내로 보내실 생각이세요? "

" 싫으냐? "

" … 조금 놀라서 그렇습니다. "

" 네가 조금은 마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

물론 그가 그런걸 생각할 리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말일 뿐이었지만, 힐다는 아마 함부로 대꾸할 수 없을 것이다.

" 그… 그건. "

그녀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거절해야하는가, 승낙해야하는가. 분명 오는 동안에도 내내 그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만,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어떤 것이 더 그녀에게 이로울 것인가.

" 서로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야하지… 않을까요, 아버지? "

" 그렇다는 말은…, 너는 괜찮다는 말이겠지? "

그의 눈빛은 무언의 압박이 담겨있었다. 여기서 아니라고 대답한다면 힐다는 상당히 곤란함을 겪을게 뻔해보였다. 그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의 아버지가 보내는 눈빛의 의도를 모를 리가 없었다.

" 네…. "

" 그럼 잘됐군. 자네는 어떤가? "

" 저야 영광입니다만, 아직 장담하긴 이른 것 같습니다, 공작전하. "

" 그렇지. 일단 서로의 감정만 확인했을 뿐이야. 물론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되겠지만 말일세. "

나라는 존재때문에 베네딕트 왕국에 큰 전화가 휩쓸 것이다. 그 전화는 점점 더 번져서 연합국 전체를 휩쓸 것이고, 더 나아가 인간 대륙 전체에 번지게 될 것이다.

과연 공작은 어떤 것을 꼬투리 잡아서 영지전을 시작할까? 궁금하다. 그리고 곧 다가올 상황에 짜릿함까지 느껴졌다.

" 아참, 내가 눈치없이 계속 있었군 그래. 둘이 잠시 얘기라도 나누고 있게. 잠시 볼일만 보고 올테니. "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공작이 없었지만 우리 둘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물론 먼저 연 쪽은 당연히 안달나있는 힐다였다.

" … 대단한 사람이네요, 당신은. "

" 이제야 제대로 아셨겠군요. 왜 당신의 도움이 필요없었는지를. "

" 네, 아주 똑똑히 알았어요. 이거… 내가 너무 불리한 싸움같은데요. "

" 먼저 손을 뻗은건 그쪽입니다만. "

" 그건 내 불찰이었어요. 인정하죠. "

그녀는 순순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힐다는 희고 작은 손으로 찻잔을 들어올려 달달한 차를 한모금 후룩- 마셔 마른 목을 축였다.

" …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 있을 생각은 없어요. 하, 둘째 부인이라니. 자존심 상해서. "

" 저도 당신을 둘째 부인으로 맞이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

" 저도에요. 당신한테 갔다간 먹혀버릴 것 같거든요. "

" 오해하신 것 같은데, 부인으로 맞이할 생각이 없단 소리였습니다. "

그 말에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 설마 첩은 아니겠죠? 하, 내가 첩따위로 갈 것 같나요? "

" 첩이라뇨. "

나는 실실 웃으면서 그녀의 귓가에 얼굴을 살짝 가져다댔다.

" 너는 내 성욕처리기만 하면 돼. 그러니까 가랑이 씻고 기다리고 있어라고, 이 오만한 여자야. "

" … 이제야 본 모습을 드러내는군, 더러운 종자. "

" 너도 마찬가지 아냐? 그 구역질나는 가면을 계속 쓰고 있을 생각인가? 딱봐도 나랑 비슷한 부류인 것 같은데. "

내 말에 그녀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 뭐, 알고 있다면 굳이 쓰고 있을 필욘 없겠네. "

" 나는 나같은 부류를 좋아하거든. 그런 부류를 발밑에 깔아뭉갤때가 가장 쾌감이 넘치더라고. "

" 흥, 나도 마찬가지야. 네놈이 아무리 강해봤자, 나한테는 못당해. "

" 글쎄. 말로 해선 뭘 못하겠어. 전에 약속한 것처럼 두 달을 줄께. 그동안 내가 실망하지 않도록 해줘. 그래야 내가 더욱 기쁠테니까. "

우리 둘은 한참이나 서로를 보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이런 재밌는 여자가 다있다니! 천박한 웃음이 낄낄 나올 것만 같았다.

' 자, 힘차게 발버둥 쳐봐라고! '

공작의 영지를 먹는 순간, 그녀 역시 내 손아귀에 떨어질 것이다.

' 두 달간 희망을 가져보라고. 그 희망이 산산조각나는 순간, 최악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

============================ 작품 후기 ============================

4연참 공격!

일단 마피아 게임도 연참을 해야하니, 오늘 더 올라갈지 안올라갈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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