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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컹
마차가 한번 들썩인다. 마차에 붙어있는 작은 커텐을 걷어내고 창밖의 붉은 노을녘을 바라보는 나의 어깨를 누군가가 감싸안았다.
" 레온. "
에르윈과 나는 지금 후작의 영지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나는 공작의 영지에서 하루를 더 머무른 뒤에 다시 에르윈이 있는 궁전으로 돌아왔다. 강렬한 키스와 함께 나를 걱정하던 에르윈의 눈빛이 사르르 녹아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나는 그녀와 함께 마차를 타고 후작의 영지로 다시 출발했다.
" 무슨 생각해요? "
" 아니, 그냥. "
" …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
그녀는 내 목덜미에 작게 입을 쪽- 맞췄다. 나도 고개를 돌려 그녀의 입에 내 입을 쪽- 맞추고 다시 바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에게 주어진 잠시간의 휴식이랄까. 이제 다시 후작의 영지로 돌아가면 엄청난 일들이 쏟아져오겠지. 조만간 내 이름이 베네딕트 왕국을 쩌렁쩌렁하게 울릴 것이고, 곧 그것은 연합국 전체에 퍼질 것이다. 아마도 왕성에서 나를 부를지도 모른다.
분명 나같은 인재를 후작의 영지에 쳐박아둘 순 없다고 생각할테니까. 어쩌면 공주와 혼인을 시키려고 할 수도 있고. 그럼 당연히 후작은 반발하겠지. 잘하면 영지전이 아니라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에르윈은 이런 사정도 모른채 그저 내가 르겐에게 이겼다는 사실만 좋아라하고 있었다.
" 우리 돌아가자마자 바로 약혼식을 올려요. "
" 아가씨…, 아니 에르윈. "
" 네? "
" 그럴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
내 말에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 그게 무슨 말이에요? "
" 지금부터 만만치 않은 일이 벌어질거란 뜻입니다. "
" 만만치… 않은 일? "
" 네, 그러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있으시죠. "
그녀는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당연히 그녀가 이것을 이해할 정도라면 이렇게까지 그녀를 이용해먹을 수도 없었겠지만. 확실히 에르윈은 힐다에 비해서 모든 면이 떨어졌다. 미모면 미모, 지능이면 지능. 확실히 힐다는 반드시 얻고 싶은 여자였다. 그 자신만만한 얼굴을 쾌락으로 찌그러트리고 싶었다.
" 설마 이 일이 크게 번진다는 소린가요? 공작전하께서 이 일에 대해서 보복할 생각은 절대 없다고 맹세하셨다고 하셨잖아요. "
" 그건 그렇죠. 하지만, 다른 곳에서 절 가만히 두진 않을거란 말이죠. 아마…, 베네딕트 왕국은 엄청난 전화에 휩싸일겁니다. "
그리고 에르윈 너도 후작의 딸이 아니라, 그저 연약한 미녀 한 명으로 전락하고 말겠지. 그저 내 성욕을 처리하는 도구로써 말이야.
베네딕트 왕국의 3대 미녀를 모두 내 발앞에 무릎꿇게 만든다면 꽤 볼만한 광경이 될 것이다. 과연 3대 미녀의 마지막 여인은 어떨지.
* * *
나와 에르윈이 무사히 후작의 영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후작의 명이라는 말과 함께 그의 집무실로 불려갔다. 그도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음이 틀림없을터. 아마도 더 자세한 내용을 듣기 위해서 나를 불렀을 것이다.
" 프라하스타 경이 왔습니다. "
" 들어오도록. "
내가 방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뒤에서 문이 쿵- 닫혔다. 후작은 뒷짐을 쥔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렇게 한참을 서있다가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엄청난 일을 저질렀더군. "
" 뭐, 그닥 엄청난 일은 아니었습니다. "
" … 내가 그대를 과소평가한 모양이야. 소드 마스터 둘을…, 그것도 상급을 단칼에 베어버렸다니. 솔직히 과장된 소문이라고 믿고 싶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서 그렇게 말을 하는데 믿지 않을 수가 없더군. "
그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 그래서 지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솔직히 말해볼까? 나는 지금 자네가 두렵네. 전에는 내 의도에 맞지 않으면 그대를 죽이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가 가지고 있는 무력 가지고는 자네를 죽일 수 없네. "
" … 시원하게 인정하시는군요. "
" 지금 자네가 이 자리에서 나를 죽이고 공작에게 가더라도 말릴 방법은 없어. 그러니 지금 나는 목숨을 걸고 자네와 얘기하는 것일세. "
내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확실히 공작도 대단한 인물이지만, 이 후작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겠나? "
" 무엇을 말입니까. "
" 자네의 진짜 의도를 말일세. 그정도 힘을 숨겨오면서 칼리반 영지부터 시작해 우리 영지까지 온 진짜 목적을 말일세. 나는 그대가 절대 우리 영지에서 끝을 본다고 생각하진 않아. "
그가 생각하는 것은 정확했지만, 아쉽게도 그 의도를 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그 최종 목표를 가기 위해서 거쳐야할 중간 목표를 말하면 될 것이다.
" 연합국의 통일. "
" … 뭐? "
" 연합국 전체의 통일이 제 목푭니다. "
후작은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푸-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 아하하하하하하. "
그는 한참이나 그렇게 웃다가 정말 거짓말처럼 웃음을 뚝- 그쳤다.
" 가능할거라보나? "
" 저라면 가능합니다. "
" 이거… 내가 괴물을 품고 있었구만. "
" 글쎄요. 제가 보기엔 별로 힘들어보이진 않습니다만. "
" 그러니까 괴물이란 소릴세. 감히 우리들로썬 상상도 못할 꿈을 품고 있으니까. "
후작은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몇번 핥다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 고작 베네딕트 왕국을 손에 넣겠다는 나와는 차원이 틀리는군. "
" 후작각하께선 충분히 이룰 수 있을겁니다. "
" … 도와줄 수 있나? 그렇다면 나도 자네를 도우지. "
솔직히 말해서 나는 후작이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올 줄은 몰랐다. 그를 희생시키고 영지를 손에 넣어서 천천히 불려나갈 생각이었는데, 만약에 그가 스스로 내 밑으로 들어온다면 그 계획은 바뀔 수도 있다.
" 후작각하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시켜주실 수 있습니까? "
" … 자네는 엄청난 사람이야. 내 그릇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완전히 내 착각이었지. "
" 너무 과장해서 생각하시는거 아닙니까? 그저 제가 남들과는 다르게 좀 강한 사람일지도 모르잖습니까. "
"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자네는 보통이 아니란 소리지. 지금 날 시험하고 있잖나. 어떤가, 내 목숨의 가치는. "
그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 … 꽤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
" 그래? 그럼 목숨은 건진 것 같군. 다행이야. "
" 역시 후작각하께선 공작전하보단 더 뛰어나신 것 같습니다. 감정을 다스리는 면에선 공작전하가 훨씬 대단하셨지만…, 확실히 후작각하께서 더 영리하시군요. "
" 칭찬 고맙네. 그래도 그 사람보다 내가 더 뛰어나다니 기쁘군. "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눈치였다. 인정하는 것이 빠르고 사리판단이 뛰어나다. 확실히 베네딕트 왕국은 후작의 손에 넣어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아직까진 보류지만, 그가 가질 가능성이 더 많다고 해야할까. 더군다나 이렇게 머리가 좋은 남자는 배신을 생각하지 않는다. 왜?
' 실패하는 순간 자신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알테니까. '
" 그럼 얘기는 끝입니까? "
" 그렇네. "
" 참, 조만간 큰 전쟁이 일어날테니까 긴장하십시오. "
" 허허, 내가 거기서 죽을 운명이었나? "
" 원래라면 그렇지요. 뭐, 아직까진 장담하긴 이릅니다, 후작각하. "
그의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다.
" 당신의 역량이 필요로할 때가 있기때문이죠. 그땐 저도 당신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으십시오. 그게 마지막 시험일 겁니다. "
" 힘든 시험이군. 내 전력을 다해서 이겨내야겠어. "
" 당신의 딸은 끝까지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혹 그걸 신경쓴다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
" 그런가? 그건 천만다행이군. "
그에게 해주는 내 마지막 배려다. 아니, 배려라고 하기엔 내 사심이 듬뿍 담기긴 했지만.
"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참, 제 기사단에 이번 신입 기사들을 배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
" 알았네. 가능한대로 넣어주지. "
나는 그에게 고개를 한번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후작에게 내 본심을 털어낸 이상, 느적느적 시간을 보낼 생각은 싹 사라졌다. 하산 상회부터 빠르게 흡수하고, 나만의 기사단을 만들어야지.
' 이제 거침없이 움직여도 상관없겠지? '
* * *
다음날, 허드슨 경은 갑자기 위에서 내려온 명령과 기사 명부에 놀라며 나를 찾아왔다. 신입 기사가 무려 50명이나 우리 기사단으로 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일처리는 빨라서 좋아. 나는 한번 히죽 웃고는 허드슨 경을 바라보며 무슨 문제있냐고 물었다.
" 어제까지만 해도 열 명정도 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오십 명이나 불어났습니다. 후작각하께서 내리신 명이라고…. "
" 내가 부탁했으니까. 그러니 잘 훈련시켜. 조만간 큰 전쟁이 일어날테니까. "
" … 전쟁이요?! "
아직 그는 내가 공작 영지에서 일으킨 일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 그 이상은 기밀이네, 허드슨 경. "
" … 알겠습니다, 단장님. "
그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잘 살아보려고 내 기사단에 들어왔는데, 난데없이 전쟁이 일어난다니 아마도 앞이 캄캄할 것이다.
- 똑똑
다음으로 들어온 사람은 당연하게도 리스본 경이었다. 일단 나는 단장으로써 집무실에 있는 것이었기에, 그녀 역시 예를 올리면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 리스본 경입니다, 단장님! "
" 그래, 오랜만이네 리스본 경. "
" 다… 단장님도 무사히 돌아오셔서 기쁩니다. "
나는 그녀에게 편안히 말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 아, 단장님…. "
" 보고 싶었어, 큐나. "
" 저도요. "
그녀는 조심스레 내 품에 안겨서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 오늘부터 큐나 너는 내 직속후임이다. "
" 네? "
" 내 옆에서 잔신부름을 거들어란 말이지. 이것저것. "
" 여… 영광입니다! "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뭐, 그녀가 어떤 일을 할지는 좀 있다 두고보면 될테고. 나는 부재중일 동안 내 앞으로 온 여러 서찰을 하나씩 훑어봤는데, 그 중 하나는 내가 꽤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라 입가에 미소가 사르르 피어났다.
" 단장님? "
" 아, 리스본 경은 잠시 차 한 잔 타올 수 있겠지? "
" 알겠습니다, 단장님. "
기사가 차를 타러 간다는 것 자체가 조금 우스운 일이었지만, 그녀는 기쁘게 웃으면서 집무실을 나갔다. 그 사이에 나는 손에 든 서찰을 뜯어서 곱게 접힌 종이를 폈다.
' 흐흐. '
그것은 예전 시계탑 아래에서 만난 하산 상회의 장녀가 보낸 것이었다. 거기엔 나에게 식사를 한번 대접하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는데, 내가 자연스럽게 하산상회에 손을 뻗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것이었다.
나는 당장 밖에 대기하고 있던 하인을 불러서 휘갈겨적은 서찰을 한통 쥐어주며 입을 열었다.
" 하산 상회로 보내게. "
" 예, 단장님. "
하산 상회 장녀라. 나는 저번에 본 그 매력적인 여인을 떠올리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적당히 즐기기엔 더없이 좋은 여자였다. 거기에 그녀 뒤엔 하산 상회라는 거대한 집단이 있었고.
' 힐다, 각오하고 있는게 좋을거다. 네년이 눈코뜰 새 없이 휘몰아칠테니까. '
============================ 작품 후기 ============================
5연참! 이야, 얼마만의 5연참입니까!
내일은 주말이니 더 화끈하게 불타오를 수 있겠군요.
기대해주세용,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