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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셨군요. "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왔지만, 약속 장소엔 벌써 하산 상회의 장녀가 미리 도착해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살짝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는지 그녀는 살풋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 그래도 약속은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랍니다. "
" 아,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전혀없었습니다. "
"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
이곳은 시계탑 광장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고급 식당이었는데, 그녀가 2층을 통째로 빌렸는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역시나 세르비아 영지에서 가장 대단하다는 상회의 장녀랄까. 돈 씀씀이부터가 차원이 틀렸다.
"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정식으로 소개하지요. 레온 프라하스타라고 합니다. "
" 잔느 하산이라고 해요. "
잔느라. 얼굴만큼 이름도 예쁘군. 특히나 웃을때 볼에 폭 파이는 보조개가 참 마음에 들었다. 양 눈매가 살짝 올라가서 성격이 날카로울 것 같지만, 그것도 나름의 색다른 매력이 있다.
" 전 솔직한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
" 그렇습니까? "
" 전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 제가 먼저 남자에게 초대를 한 것은 이번에 처음일 정도로 말이죠. "
그녀정도의 미모에, 그녀정도의 재력이라면 주위에 남자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남자들에게 먼저 다가갈 일도 없었을 뿐더러, 식사 초대 또한 마찬가지일게 분명해보였다. 즉, 그런 것을 전부 깰 정도로 나에게 매력을 느꼈다는 뜻이다.
" 혹시 마음에 둔 여인이 있으신가요? "
" …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
" 그런가요. 뭐, 대충 예상은 했어요. "
예상했다는 여자가 활짝 웃는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소린가.
" 당신이 좋아할 정도의 여자면 분명 나만큼이나 대단한 여자일테고. 후작님의 따님정도 되려나? "
" … 정확하시군요. "
" 사실 소문이 자자해요. 당신이랑 그녀랑 약혼할 수도 있다는 소문 말이에요. "
잠시 후에 김을 모락모락 피우는 음식이 나왔다. 그리고 내 앞과 그녀의 앞에 놓이자, 나는 살짝 눈동자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 아, 미리 말 안해서 미안해요. 일단 여기서 제일 맛있는 걸로 시켰는데, 괜찮죠? "
" 물론입니다. "
냄새부터가 확연히 틀릴 정도로 음식은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였다. 아마도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 아닐까.
" 사실… 조금 답답하긴 했어요. "
" 네? "
"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거든요. 지금껏 보아왔던 어떤 남자들보다… 당신이 제일 내 마음에 들었으니까요. 아마 당신을 놓친다면, 평생 후회할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
" 과찬이시군요. "
" 아뇨. 이번 사건으로 확실히 알았어요. 어떻게든 당신을 사로잡아야겠다는거. "
그녀의 말에 내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이번 사건? 그녀는 아마도 공작 영지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 모양인 것 같았다. 확실히 상인들이라 그런지 정보 하나만큼은 귀신같이 빠르다.
" 더 멀리 날아가버리기 전에, 지금이라도 잡으려구요. "
" 현명하시군요. "
" 전 항상 이런 생각을 해요. "
나는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신분도, 재력도 전부가 아니다. "
" 호. "
" 분명 그걸 뛰어넘어 그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요. "
" 대단하십니다. 또래 여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꽤 다르시군요. "
여인은 그저 보조개가 파인 미소로 화답했다.
"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은 분명 저일겁니다. 후작각하의 따님보다…, 제가 훨씬 더 당신에게 맡는 여자일테니까요. "
" 자신만만하시군요. "
" 그건 장담할 수 있어요. "
어디서 이런 인재들이 마구 튀어나오는걸까. 영지 경영하는 게임이라면 당장 스카웃해서 써먹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내 성욕처리기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과연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을까. 안다면 아마도 지금 이 상황을 저주하겠지. 아니, 저주하지 못할만큼의 쾌락을 준다면 또 다를까.
" … 이런 말을 알고 계십니까. "
분명 그녀는 뛰어나다. 미모나 몸매를 떠나서 한 명의 인간으로 보자면 에르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가치가 높은 여자다. 하지만, 힐다와 비교한다면?
' 택도 없지. '
" 우물 안 개구리… 라는 말이요. "
" … 알고 있습니다만. "
그녀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눈치가 빠르니 내 말의 뜻을 대충 이해했을 것이다.
" 당신에게 충고하고 싶군요. 분명 당신은 뛰어납니다. 에르윈 아가씨보다 더 말이지요. 하지만, 세상엔 당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더욱 많습니다.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지요. "
" … 그건 좀 자존심이 구겨지는군요. "
" 사실입니다. 저도 거짓말을 좋아하진 않거든요. "
화가 났는지 그녀는 물컵을 들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 당신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마음에 듭니다. "
"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이유가 뭔가요. "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식의 말을 듣는 것은 분명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화를 참는 인내까지 있었다. 그러면 선물을 하나 줘야겠지?
" 절 믿지 말라는 뜻입니다. "
" … 네? "
" 보는 그대로 믿지말라는 뜻이지요. 제가 당신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저에게서… 최대한 힘껏 도망치십시오. 이번 한번만은… 당신을 잡지 않겠습니다. "
아마 그녀로썬 꽤나 황당한 말일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겠지. 하지만 정말로 나는 그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 현명함을 그저 나에게 욕구충족만을 시키게하는 것으로 썩히지말라고. 물론 그녀가 절대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저 나의 재미랄까.
" 유먼가요? 유머치곤 별로 웃기진 않는데…. "
" 유머라. 저한테는 유머였는데, 그쪽은 별로 웃기지 않았나봅니다? 하하. "
" 그쪽으론 별로 재능이 없어보이시네요. "
하지만 이 말이 그녀의 굳었던 마음을 상당히 풀리게 만든 모양이었다.
" 그럼 그 기회를 포기하고, 당신께 힘껏 다가가볼께요. "
" 호, 기회를 포기하겠다? 진심이십니까. "
" 어차피 대를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법이죠. 상계에서도 그렇듯이 말이에요. "
상인의 딸 아니랄까봐 확실히 실익에 대한 개념은 탄탄한 여자였다. 그녀의 말은 나도 동의하는 것이었으니까.
" 뭐, 선택은 당신의 자유니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
" 훗, 기사라고해서 딱딱할 줄 알았는데, 다 그렇지만은 않은가봐요? 사실 아버지께선 기사들은 융통성이 없다고 싫어하시거든요. "
" 세상은 넓고 기사는 많지 않습니까? 하하하. "
* * *
잔느와의 점심 식사는 화기애애하게 끝마쳤다. 그녀는 다음에도 꼭 다시 식사를 같이 하자고 나에게 거듭 언급했다.
처음에 약간 차가웠던 태도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풀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녀가 나에게 넘어오고 있는 것은 거의 확실했다. 물론 아직까지 몇 번의 만남이 더 필요하긴 했지만, 이대로라면 그녀를 삶아먹는 것은 일도 아닐 것 같았다.
" 다들 정렬! "
훈련장에는 이제 내 기사단으로 추정되는 단원이 꽤나 많아졌다. 후작은 이번에 추가될 기사들 전원을 전부 내 기사단으로 넣어버린 상태라 헥스 경의 불만이 만만치 않았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헥스 경의 얼굴은 딱딱하기 그지 없었고, 기운까지 음산했다. 아마도 자신들이 나보다 뒷전으로 취급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 그래, 그렇게 해야지. '
나는 그가 폭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조만간 영지에 내 소문이 파다하게 퍼질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불만이 쌓이다보면 의미없었다. 특히나 자존심이 강한 소드 마스터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모욕을 당할바에야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족속들이 바로 소드 마스터들이니까.
' 그래서 이용하기가 더 쉽지. '
헥스 경도 그런 소드 마스터의 표본과 그리 멀지 않은 유형의 인간이었다. 비록 후작에 대한 충성심은 강하나, 그렇다고 자존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 모두 단장님께 인사! "
- 척
그래도 꽤 군기를 잡아놓았는지 내가 단상 위에 올라가자 신입 기사들은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쿵- 치며 나를 맞이했다. 자세도 제법 잘 나오고, 썩 나쁘지 않아보였다.
" 그래, 날 처음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
당연히 내 말에 대답하는 이는 없다. 웃긴건 우리 기사단원이 아닌 기사들도 숨죽여 내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것이랄까.
" 여기에 분명 헥스 경이 맡고 있는 기사단으로 가고 싶어했던 자들도 있을 것이다. "
내 말이 끝날때마다 훈련장은 고요하기만 했다.
" 하지만, 그대들은 운이 좋다. 왜냐하면…. "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며 내 얼굴을 응시했다.
" 그대들은 대륙 최강의 기사단이 될 기회를 얻었거든. "
" 우와아아아아아아아! "
내 말에 그들은 모두 오른손을 번쩍 들고 함성을 외쳤다. 허드슨 경이 미리 주문해둔 반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 환영한다, 프라하스타 기사단에 온 것을. "
* * *
" 오늘 멋지셨어요. "
" 고마워. 차 한잔 타주겠어? "
" 네, 단장님. "
큐나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차를 타러 방을 나가다가 순간 문앞에 달려오던 하인과 부딪힐 뻔 했다.
" 이… 이게 무슨 짓인가! "
"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급한 일이라…. "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는 큐나를 진정시키고 하인에게 다가오라고 명령했다.
" 급한 일이라니? "
" 후작각하께 서찰이 내려왔습니다. 왕궁에서 보낸 서찰입니다. "
' 오, 빠른데? '
아직 소문이 제대로 퍼지기도 전에 왕궁에서 서찰이 내려왔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도 내 존재가치를 높이 평가한다는 뜻일 것이다.
" 그런가? "
" 후작각하께서 급히 오라는 명이십니다. "
" 알겠다. 이만 가봐라. "
큐나는 살짝 긴장된 얼굴로 나에게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무슨 일이 일어난거냐고 물었다.
" 조만간 알게 될거야. 그나저나 차는 안 타와도 될 것 같네. 큐나도 이만 집으로 돌아가도 좋아. "
" 저…. "
" 오늘은 안될 것 같아. 후작각하와 꽤 긴히 나눌 얘기가 있을 것 같거든. "
그녀는 상당히 실망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 알겠습니다, 단장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
" … 나중에. "
큐나는 몸을 돌려 막 문 손잡이를 잡으려고 하다가 내 말에 고개를 휙 돌렸다.
" 나중에 늦은 밤에… 문을 열어둬. "
" … 네! "
내 말에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나는 하인들에게 방 정리를 하고 나오라고 명령한 뒤에 여유로운 걸음으로 단장실을 나왔다. 이미 건물 입구에 마차가 하나 세워져있었는데, 하인이 얼른 출발해야한다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꽤나 웃겼다.
- 덜커덩 덜커덩
마차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왕궁이라. '
드디어 베네딕트 왕궁에 첫 발을 디딜 때가 왔다. 연합국을 통일하기 위해서 디뎌야할 첫 디딤돌. 나는 이제야 땅에서 발을 떼고 그 디딤돌 위로 발을 올릴 준비를 했다.
' 3대 미녀도 있지. '
베네딕트 왕국의 3대 미녀 중 마지막 여인이 바로 왕궁의 필리아 공주다. 아마 이번에 왕궁으로 간다면 어떤 연유든간에 그녀와 엮이겠지? 심장이 쿵쿵- 뛸 정도로 기대가 되었다. 공주라는 신분은 더럽힐수록 그 쾌감이 배로 증가하는 법이니까.
' 기다리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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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불타오른다아아앗
그나저나 다른 작품 통틀어서 처음으로 1회 조회수가 드디어 2만을 넘어보네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