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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동안 필리아 공주는 나에게 하찮은 대접을 받았다. 기사들과 마부는 아예 그녀를 무시했으며, 그나마 큐나가 간간히 대답해줄 뿐이랄까. 돌아다닐때도 나는 그녀를 개처럼 기게 만들었고, 소변이나 대변을 할때도 그녀를 감시했다.
5일때까지 나에게 온갖 욕을 다 퍼부었지만 6일, 7일이 지나자 거의 말이 없어졌다. 아무리 떠들어봤자 대꾸도 안하니 그럴 수 밖에. 고작 한다는 말이 밥 먹어- 정도? 그리고 가끔씩 마차 안에서 큐나를 안을 때도 공주를 무시했으니까.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사실때문인지 그때마다 큐나의 민감도가 훨씬 좋아진게 느껴졌다.
" 도착했군. "
" 그렇네요. "
분명히 공작은 후작에게 선전포고를 했을 것이다. 내가 없을 때가 최고의 기회일테니까. 하지만 지금 후작의 영지가 조용하다는 뜻은 딱 한 가지. 왕의 죽음이 공작의 귀에 들어갔단 소리다. 그렇다면 지금 공작이 군대를 이끌고 향하는 곳은 보나마나 베네딕트의 수도. 어쩌면 공작 스스로가 왕이 될지도 모른다.
왕국에 남아있는 유일한 핏줄이니까.
" 큐나, 영지에 도착하면 가서 씻기고 대기시켜놔. 그리고 절대로… 사람 취급하지마. "
" 네, 단장님. "
나는 잠시 마차를 멈추고 두 기사의 목을 서걱- 잘라버린 다음에 덜덜 떨고 있는 마부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 걱정마. 넌 네 일이나 잘하면 돼. "
" 예… 예…. "
"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고 맹세하면 살려줄께. "
" 절대…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단장님. "
나의 피도 눈물도 없는 행동에 필리아 공주는 또 한바탕 나를 향해 악마같은 놈이라며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뺨을 몇번 날려주니 또 잠잠해졌다.
" 도착했군. "
오랜만에 오는 후작의 영지에 무언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한껏 날카로웠던 감정이 슬며시 가라앉으며 조금 잠잠해졌달까.
" 단장님. "
" 큐나, 내 저택 쪽으로 들어갈테니까, 아무도 모르게 데리고 들어가. "
" 네…. "
공주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려다가 내 눈초리를 보며 다시 슬그머니 입을 닫았다.
" 좋은 징조야. 이제 내 눈치도 보고. "
하지만 그녀는 대꾸하지 않고 내 시선을 피했다. 그래, 아직 앙탈을 해야지.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했는데. 마차가 내 저택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멈췄다.
" 도… 도착했습니다, 단장님. "
마부가 덜덜 떨면서 입을 열었다. 나는 수고했다고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씩 웃었다.
" 수고했어. 여기까지 몰고오느라. "
" 아닙니다. 그… 그럼 전…? "
" 참, 그런데. "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마부가 슬며시 얼굴을 들었는데, 나는 그때를 노리지 않고 그의 목을 샥- 베었다. 그는 피를 쫙- 뿌려대며 천천히 뒤로 쓰러졌다.
" 왠지 니놈이 말할 것 같단 말이야. "
목격자는 큐나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내가 마부를 죽이는 것을 확인한 큐나는 공주를 데리고 마차에서 내려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내가 특별히 만들어 준 지하실로. 원래는 이런 곳이 없었지만, 후에 내가 이 저택으로 이사오고 나서 만든 비밀의 장소였다.
" 그럼 수고해. "
" 네, 단장님. "
어느새 나에게 거의 복종하다시피 되어버린 큐나는 싱긋 웃으며 공주에게 연결된 목줄을 잡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나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한번 빙긋 웃고 저택에 있는 마굿간으로 걸어갔다.
말을 관리하던 관리자가 갑자기 등장한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나는 여유롭게 말 한 마리를 내와라고 명령했다. 곧 털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백마 한 마리를 데리고 나온 관리자에게 월급을 두 배로 올려주겠다고 말하며 칭찬을 건넸다.
" 에헤헤, 뭘 그런걸 다…. "
" 수고하게. "
나는 말을 타고 빠르게 후작의 성으로 달려갔다. 성의 문지기가 달려오는 나를 보며 제지하려다가 내가 프라하스타 경이란 것을 깨닫고 얼른 문을 열어 말이 통과하도록 했다.
나는 그대로 속력을 줄이지 않고 순식간에 후작이 있는 건물까지 달려가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 집무실까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집무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인이 나를 보고는 문을 똑똑- 두드리며 후작에게 내가 왔다고 입을 열었다.
" 어서 들어와라. "
나는 지체하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가 후작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 오랜만에 뵙는군요, 후작각하. "
" … 엄청난 일을 저질렀더군. "
후작의 얼굴이 상당히 굳어있었다. 아마도 내가 왕을 죽였다는 것을 전해들었으리라.
" 먼저 선수를 친 것이지요. 아마 공작전하께서 선전포고를 했을텐데요? "
" … 그렇지. "
" 무슨 명목으로 했습니까? "
그는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나에게 비싸보이는 종이 하나를 건넸다.
" 흠. "
거기엔 후작 영지에 선전 포고를 한 공작의 말이 적혀있었다. 칼리반 영지의 소영주가 이곳 후작의 영지에서 파견된 기사에게 죽었다는 내용. 그의 복수를 위해서 후작에게 죗값을 묻는다는 얼토당토안한 글이었다. 물론 자그마한 명분이라도 있었기에 공작은 거침이 없었던 모양이다.
" 그러다가 갑자기 물러났겠죠? "
" 그래. 처음엔 무슨 일인지 몰랐지. 다음날 급히 전해받은 내용을 듣고서야 물러난 이유를 알게 되었고 말일세. "
" 아마 한동안 바쁠겁니다. "
" 그렇겠지. "
나는 후후- 웃으며 천천히 후작의 앞으로 다가갔다.
" 자네는 너무 엄청난 짓을 저질러버렸어. "
" 엄청난 일이라뇨? "
" 왕을 죽였잖는가! 상당수의 중립파들이 우리를 등지게 만든 셈이야. "
" 아, 후작각하께선 고작 그런 피래미들을 두려워하시는군요? "
내 말에 그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 그들 하나하나는 피래미일지 모르겠지만, 모이면 상당한 힘이 되네. 비등비등하던 세력이 기울어진단 말이야. "
" 가끔씩보면 전 후각각하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
" 이해라니. "
나는 손가락으로 천천히 내 가슴을 가리키면서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 제가 있잖습니까? 그런데 뭐가 그렇게 두려우십니까? 이미 절대적인 승리의 징표인데 말이지요, 하하하하하. "
" …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기사 수 백이 몰려들면 이길 수 없네. "
" 수 백이라…, 절 너무 과소평가 하시는군요. "
물론 일반적인 소드 마스터나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면 그럴 지도 모른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끊임없이 달려드는 기사들에겐 질 수 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그에 대한 증명까지 끝낸 상황이다.
일방적인 소드 마스터였다면 이미 베네딕트 왕성의 대전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였다고 해도 생채기 하나 없이 빠져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고. 하지만, 나는 정말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 그야말로 대마왕이니까! '
이미 나라는 존재 자체가 사기적이었다. 아마 드래곤정도는 와야 나와 대등해질 것이다.
" 보여드리죠, 제 진짜 실력을 말입니다. "
나의 자신만만함에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 … 정말 가능한가? "
" 제가 하나 고민하는게 있습니다. "
" 뭔가? "
나는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치면서 웃음기가 서려있는 얼굴로 후작을 내려다보았다.
" 혼자갈지, 아니면 같이갈지를 말이지요. "
" 혼자? "
" 저 혼자라도 베네딕트 왕국 하나 먹는 것쯤은… 일도 아니거든요. "
아마 그는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그 증거로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 뭐 믿든 안믿든 그건 후작각하의 자유입니다만. 일단 같이 가기로 약속을 했으니, 그정돈 지킬 생각이란 겁니다. "
" … 너무 자만심이 넘치는거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나라 전체와 대적할 순 없어. "
"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으니 끝까지 들어보시지요. "
그는 입을 다문채 나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당신을 베네딕트 왕으로 만들어줄 생각입니다. 거기까지 저희의 약속이었지요? "
" 그렇지. "
" 그 후에 제가 어떻게 행동할 지는… 오롯이 당신의 손에 달려있단 소립니다. "
- 꿀꺽
" 제 약속은 당신을 베네딕트 왕으로 올려주는 일…, 딱 거기까지란 말입니다. "
싸늘한 기운이 방을 감싸고 돌았다. 그도 내 말뜻을 이해했는지 침을 꿀꺽 삼키며 손을 살짝 떨었다.
" 지금은 아니니 걱정마시길. "
" … 날… 죽일 작정인가? "
" 죽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후작각하의 행동에 따라 바뀌겠지요. "
결국 그는 내 시선을 피하며 책상 위에 올려진 종이를 뒤적거렸다.
" 알겠네. 피곤할테니, 오늘은 가서 푹 쉬게. "
" 알았습니다, 후작각하. 부디 절 실망시키지 마시길. "
* * *
과연 후작이 날 배신하지 않을까? 그는 영리하다. 그렇기에 배신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가능성이 낮다고 모두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에 하나 나를 배신한다면?
' 그게 의미가 있을까. '
내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배신이 상당히 타격이 있겠지만, 나는 마왕이다. 인간과는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대마왕. 어차피 인간 세계는 내 손안에 들어올테니, 그가 어떻게 행동하든 내 알바는 아니다. 그저 목숨이 얼마만큼 연장되는지의 차이일뿐.
일단은 그건 나중의 일이고, 지금은 당장 현재 눈앞에 있는 것부터 해결해야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 공작이 현재 영지에 없다. '
그것도 대량의 군사를 데리고 수도로 진격했다는 것. 아마도 비어버린 왕의 자리때문이겠지. 그러면 예전과는 달리 지금이 바로 우리들의 기회였다. 당장 공작의 영지로 진격하여 그의 본거지를 싹- 먹어치우는 것. 대군이 아직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유지시키는 기반이 사라진다면 의미가 없다.
' 내가 참가해야하나? '
아니다, 내가 할 일은 정해져있다. 바로 비어버린 후작의 영지를 지키는 일. 분명 공작이 생각이 있으면 후작이 자신의 영지로 쳐들어올 것을 염두해둘 것이다.
자신이 봐도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그렇다면 반대로 후작의 영지에도 타격을 주면 된다. 아마도 그의 동맹 영지가 비어버린 후작의 영지를 점령하러 올 것이 분명했다.
아주 좋은 방법 중에 하나지만, 아쉽게도 거기에 내가 끼면 최악의 수가 된다.
' 공작, 미안하지만 후작의 영지는 뺏길 생각이 없어. '
나는 비릿하게 웃으면서 지하실로 향하는 철문을 덜컹- 열었다. 입구를 지키는 검은 동상의 눈이 반짝였다.
내가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하는 것이었는데, 만약에 적이었다면 움직여서 그 사람을 직접 없애버리도록 해뒀다. 물론 큐나는 손님으로 설정해뒀기에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고. 거기에 필리아 공주까지 추가해야할 듯 싶었다.
물론 그녀가 나가지 못하도록 설정도 해야겠지.
- 끼익
" 아, 단장님! "
큐나는 일을 전부 끝마쳤는지 편안한 안락 의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나에게 폭- 안기며 기뻐했고,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수고했다고 칭찬했다.
" 깨끗하게 씻겨놨어요. 물론…, 저두요. "
" 그래? 그나저나 배가 고픈데. "
" 아, 올라가서 하인에게 시켜놓을께요. "
" 그럼 고맙고. "
큐나가 얼른 계단을 뛰어올라가더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잠시 그녀의 뒤를 흘끗 바라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조용히 앉아있는 필리아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에게 눈도 맞추지 않고 뚱- 하게 앉아있었는데, 지금부터 즐거운 시간이 될거란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 크흐흐, 필리아 지금부터 재밌는 시간이야. '
그녀의 괴로운 외침이 마치 내 귀에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 외침은 분명 그녀의 입에서 터져나올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생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