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0화 (147/150)

150

영지로 돌아온 나는 마치 괴물보는 듯한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유유하게 걸었다. 어쩌면 몇몇은 날 유희나온 드래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품고 있을테지만, 안타깝게도 예상이 틀렸다.

' 마왕의 재림이지. '

어쩌면 이들에게도, 아니 대륙 전체를 공포를 휩쓸어넣을 마왕의 재림이 이런 촌구석에서 일어날거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성국이라도 있다면 몰라도, 안타깝지만 이곳 판타지 세상은 성국이나 성녀따윈 없다. 덕분에 내 활동도 그리 제약받는 것도 아니고, 들킬 위험도 매우 적다.

' 물론 들키면 골아프지만. '

아마도 들키게 된다면 드래곤은 물론이고, 엘프들까지 합세하여 나를 물리치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왠만하면 흑마력은 자제하는 편이 좋다. 알아보는 이는 인간들 중에선 없겠지만, 그 흔적이 남기에 잘못하다간 추적받을 수도 있다.

" 다… 단장님! "

" 여, 내 말은? "

" 여… 여기 있습니다. "

기사 하나가 더듬거리며 나에게 말 고삐를 넘겨준다. 아까 영지로 되돌려보낸 내 애마다. 지금부터 바로 공작 영지로 향할 생각이기에, 나는 말 위에 올라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기사들을 보면서 미소를 씩 지었다.

" 다들 수고했다, 제군들. 다 끝났다고 생각하나? 아니,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혹시 쳐들어오는 적들은 그대들이 죽을 힘을 다해 막도록. "

" 예…, 옙, 단장님! "

" 나는 우리 병사들을 도우러 가겠다. 아직 승리에 젖어있기엔 이르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

나는 그 말과 함께 에르윈과 큐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힘차게 말의 옆구리를 찼다.

- 히히히힝!

애마는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성문을 빠져나가 공작의 영지로 달리기 시작했다. 세르비아 영지는 빠르게 점이 되어 사라졌고, 나는 아직도 피가 줄줄 흐르는 시체들을 넘어 달렸다.

' 기다려라. '

*  * *

말에게 회복 마법을 걸어가면서 전속력으로 달려온 덕분인지, 후작의 병사들과 조우했을때 그들은 이제 막 성을 공략한지 하루가 지난 시점이었다.

" 프라하스타 경?! "

" 아, 후작각하. "

" 영지는?! 영지는 왜 놔두고 이리로 온건가! "

" 깔끔하게 처리하고 왔습니다. "

내 말에 후작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 처리라니? "

" 적군들을 물리치고 곧바로 달려오는 길입니다. "

" 설마…! "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후작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헥스 경과 몇몇 기사들은 이해하지 못해서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자신들의 주군을 바라보았다.

" 무슨 말입니까. "

" … 우리 영지로 향하는 적군들을… 격파했단 소리지. "

" 네? "

" 기사들도 얼마 없었을텐데. "

" 뭐, 그건 나중에 가서 다시 얘기하고,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

괜히 여기서 왈가왈부하는 시간에 한시라도 빨리 성을 손에 넣는 것이 중요했다. 사실 힐다를 얼른 손에 넣고 싶은 생각때문이었지만, 어차피 공작 영지도 먹는 것이 내 목표의 과정 중 하나였으니 꿩먹고 알먹는 격이었다.

" 적들의 농성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 워낙 성벽도 높고, 병사들도 죽기 살기로 막으니 우리쪽 피해도 꽤 심하고. "

" 흠, 성문만 부수면 됩니까? "

" 뭐? "

" 성문만 부수면… 끝이겠지요? "

내 말에 후작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면 한순간이지. "

" 좋습니다. 지금 바로 군사들을 준비하십시오. "

헥스 경은 잠깐- 하고 소리치더니 지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나에게 항의하듯이 외쳤다.

" 방금 전까지 싸우느라 병사들과 기사들이 모두 지쳤어. 적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기다려야…. "

" 헥스 경, 상관없네. 성문만 열리면 한순간에 끝이니까. "

" 하지만 저 단단한 성문을 어떻게…? "

" 프라하스타 경이 있잖나. 그라면 충분할거야. "

후작이 내 눈을 바라보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 물론이지요. 저에게만 맡겨주시길. 그럼 곧바로 출정하지요. "

" 그러세. "

순식간에 진행되는 내용에 기사들은 모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제 막 노을이 질 무렵이라 거대한 성문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확실히 멀리서 한눈에 봐도 육중하고 거대한 성문인지라 부수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나라면 얘기가 틀리지만.

' 그럼 이 지긋지긋한 곳도 이제 슬슬 벗어나볼까. '

베네딕트 왕국에서 지낸 시간이 상당히 길다. 즐거운 시간도 보내긴 했지만, 사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죽치고 있을 이유가 없다. 이 게임이 오즈의 마법사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 좀 즐기긴했지만, 너무 질질 끌었어. '

서둘러 모든 왕국들을 통합하여 연합국을 통일시켜야한다. 일단 이것까지가 1차 목표이지만, 아직 2차, 3차까지 목표가 남아있다.

' 물론 즐겨야지. 게임인데 즐기라고 있는거잖아? '

결국 게임을 하는 목표는 뭔가? 여자들을 농락하기 위해서 아닌가? 아름다운 미녀를 쾌락으로 미치게 하고, 먼치킨다운 힘을 이용해 적들을 굴복시키고, 나는 모두를 내 발앞에 무릎꿇려 머리를 조아리게한다. 이게 바로 게임을 하는 이유였다.

" 갑니다. "

어차피 병사들이 준비할 시간따위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성문만 부수면 그냥 끝나니까. 그리고 곧바로 성안으로 들이닥치면 된다.

- 탁 탁 탁

나는 검을 뽑아들어 브룬힐트 영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분명 검을 빼든 것이기에 사신도 아닐테니 그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홀로 성으로 다가오니 말이다. 당연히 나를 맞이하는 환영인사로 화살 세례가 날아왔다. 하지만 입을 벌리고 크와아앙- 하고 소리를 지르자 화살들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수의 화살이 마치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 이쯤이야. '

사자후는 그저 한번 그들의 사기를 깎아내리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많은 화살에 일일이 사자후를 펼치기엔 상당히 귀찮아서 나는 온몸에 마나를 두른채 그대로 그 속을 뚫고 걸어갔다. 굳이 마나로 몸을 보호할 필요는 없었지만, 너무 괴물처럼 행동하면 자연스레 의심이 갈 수가 있으니까.

' 아니 이미 괴물인가. '

나는 한번 키득키득 웃으면서 검의 손잡이를 두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강하게 마나를 모은다.

- 웅웅웅

점점 검에 마나가 모이기 시작하더니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화살 세례는 더욱 많아졌고, 귀에선 쉴새없이 투두두두둑- 하는 소리가 울린다.

" 쏴라! 쏴라아아앗! "

성벽에서 악을 쓰는 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봐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을테니까.

' 간다. '

충분히 마나를 모은게 느껴지자 나는 오른발로 강하게 땅을 디뎠다.

- 쿠우우웅

내 주위로 충격파가 퍼져나가며 먼지가 확- 일어난다.

- 슈화아아악

그리고 번쩍이는 섬광. 휘두른 검에서 날아간 섬참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문을 강타했다.

- 꽈아아아아아앙

단 한 방에 성문은 반으로 뚝- 쪼개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뚫리진 않았다. 미스릴이라도 넣은걸까? 이정도면 충분히 부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단단한 모양이다.

' 한 방이 안되면 또 날리면 되지. '

괜히 마왕이 아니다. 인간 세계의 수많은 종족들이 합심하여 물리치려고 하는 이유도, 상상을 초월하는 강함때문이다.

한 종족으로 가지곤 택도 없으니까. 그건 드래곤이라도 불가능이다. 분명 적들은 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단단한 성문을 감사하게 여기겠지. 그 증거로 쏟아지고 있던 화살비도 점차 줄었다.

이것가지곤 날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테니, 괜히 아까운 화살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 한 방으로 내가 전력을 사용했다고 안타까운 착각을 하고 있을테니까.

- 우우우우웅

다시 검에서 빛이 뿜어나오기 시작한다. 성벽 위에서 절망적인 기운이 스믈스믈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마왕이다보니 이런 음차원의 감정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게임에선 꽤 고문을 즐기지 않았는가.

- 쿠우웅

다시 한번 오른발을 땅에 강하게 디디며 팔을 휘둘렀다. 그리고 또다시 섬참이 성문을 강타했다.

-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이번엔 성문이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며 성안으로 날아가버렸다. 성문 뒤에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은 모조리 고깃덩어리가 되며 즉사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그대로 검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 가라아아아아아아아앗! "

그리고 주변을 뒤흔드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친다.

" 우와아아아아아! "

적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했는지 화살도 거의 날리지 못했다. 그저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가는 병사들을 멍- 하게 바라볼뿐. 나는 마치 마실나온 것처럼 유유하게 성안으로 들어갔다.

적군이든 아군이든 나를 보는 순간, 그들은 내 곁에서 벗어났다. 굳이 나도 적들을 죽이려고 검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나는 그대로 공작의 성을 향해 막힘없이 걸어갔다.

기사 몇몇이 내성의 성문 앞에서 나에게 덤비긴 했으나 간단하게 반으로 베어버렸다.

- 쿠웅

외성의 거대한 성문도 부쉈는데, 내성의 성문따위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나를 막지 않았다. 아니, 못하는거겠지. 이미 그들에겐 내가 최악의 악마일테니까. 덤비는 그 순간 죽어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 공녀는 어딨나. "

공자는 없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서 수도로 진격했다.

공녀는 분명 이것을 기회로 삼았을 것이다. 공작의 영지를 자신의 손안에 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내 질문을 받은 병사는 덜덜 떠는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미 전의따윈 없다. 그들은 그저 나에게 자비심만을 바랄 뿐이었기에, 나는 그 병사를 그냥 지나쳤다.

어차피 아군들이 알아서 해결할테니 이런 피래미들따윈 나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 나는 성안을 유유하게 걸어가며 꽤 많은 기가 모여있는 장소를 향했다.

확실히 아까 병사가 가리킨 곳이 맞는 것 같다.

" 머… 멈춰랏! "

몇몇 용기있는 기사들이 나를 막아세우려고 했지만, 당연히 불가능. 그들은 반으로 쪼개지며 피와 온갖 내장을 쏟은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런 끔찍한 모습을 보고 정신력이 약한 병사들은 버틸 수가 없었다.

" 흐아아아…. "

기사들이 병사들을 향해 나를 막아라고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명령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들은 패닉상태였다.

" 막으면… 죽는다. 바닥에 머리를 박아라. 그럼 살려주지. "

" 히익! "

병사들은 한명도 빠짐없이 무기를 바닥에 떨어트리며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쿵- 박았다. 기사들도 몇몇은 그들을 따라하며 사지를 달달 떨었다. 서있는 이들은 고작 몇몇뿐. 하지만 그들도 모두 다리를 덜덜 떨면서 겨우겨우 자세만 유지하고 있었기에, 꽤 웃음이 나왔다.

" 크흐흐흐. "

" 헉… 헉…. "

" 뭐, 약속은 지켜야하니까. "

나는 서있는 이들의 목을 단번에 잘라내고 검에 묻은 피를 시체의 옷에 닦아냈다. 결국 공작의 집무실까지 도착한 나는 방문 앞을 막고있는 기사 둘을 깔끔하게 죽이고 아치형 문을 활짝 열었다.

상당히 넓은 공간에 기사들과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나를 겨누고 있었다. 그 가운데의 책상 뒤에는 공녀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다.

" 쨔란. "

" … 당신…. "

" 환영인사치곤 시시한데. 박수라도 쳐주면 안되나? "

내 말에 공녀가 피식- 비웃음을 날리며 손뼉을 짝짝- 쳤다.

" 축하해. 여기까지 온 것을. "

" 그럼 선물도 받아야지. 음, 뭐가 좋을까. "

나는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치다가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천히 공녀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 네년이 좋겠네. 내 선물로. "

" … 흥, 그게 가능할 것 같아? "

" 물론이지. 뭐, 너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나를 이곳까지 맞이한 것은 아닐테고. 자, 해봐. 가만히 있을테니까. "

공녀의 얼굴이 굳어갔다. 나의 자신만만함때문일까. 그녀는 선뜻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한참이나 나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려 기사를 바라본다.

" 라이, 시작해. "

라이라고 불린 사내가 품에서 동그란 구슬 하나를 꺼내 어떤 물건 위에 살짝 내려놓는다. 순간 내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마나풍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 호, 재밌어. 마지막 발악이냐? "

" 그래! 내 마지막 발악이다. 네놈만큼은 죽여버릴테다. "

" 좋아, 맘대로 해봐. "

============================ 작품 후기 ============================

지금 제가 잘 적고 있는거 맞죠? 코멘트좀 달아줘용. 반응이 없어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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