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며칠간 청강을 듣거나 기본서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창밖을 내다보니 벌써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아카데미에 소속된 마법사들이 가로등에 불을 달기 시작했다. 일반 일꾼에게 시켜도 될 일을 고급 인력에 속하는 마법사가 도맡아서 하고 있는 이유는 마법을 이용해 가로등의 광도(光度)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해가 저물면 일과를 마치는 것이 보통인데 미첼 아카데미는 마법사들까지 동원해 각 건물에 불을 환하게 켜고 한밤중까지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한창때의 젊은이처럼 혈기왕성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미첼 아카데미는 지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시라크와 함께 숙소로 돌아가는 도중에 스트라스의 3황자 아젤로스를 만났다. 그는 허리에 책 세 권을 끼고 있었는데 모두 회계학 관련 책이었다.
“아젤로스, 벌써부터 그런 책을 읽는 것이냐? 상급생은 되어야 관련 강의가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말을 걸자 아젤로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아젤로스는 조금 으쓱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웃으며 시라크를 가리켰다.
“마침 시라크도 회계학 공부에 한창이다. 둘이 같이 공부를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
시라크가 무슨 소리냐며 내 옆구리를 찔렀다. 아젤로스는 더욱 강하게 거부 반응을 보였다.
“예? 제가 왜 저런 녀석과……!”
“시라크는 너보다 두 살 형님이고 그만큼 아는 것도 많다. 같이 공부를 하다 보면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모르는 건 교수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그만입니다.”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끼리 토론을 하면서 얻어가는 것도 있기 마련이지.”
아젤로스는 내가 하는 말에 순간 솔깃한 것 같았다. 괜히 툴툴거리는 척했지만 슬쩍 시라크를 쳐다보면서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뭐, 상관없겠지요. 그는 더 이상 엘 파셔인이 아니니까 가까이 지낸다고 해도 별문제 없을 것 같고.”
아젤로스의 말에 시라크는 얼굴을 굳혔다.
“나는 엘 파셔인이다!”
“추방당했잖아?”
아젤로스가 얄밉게 되물었다.
“너……!”
“대공께서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그쪽과 한번 잘해보려고 한다. 공부는 언제부터 시작할까?”
시라크가 분개하거나 말거나 아젤로스는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시라크가 발끈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아젤로스의 손을 거칠게 쳐냈다. 이번에는 아젤로스도 표정을 굳혔다. 제 딴엔 황자 신분임에도 마음을 넓게 써서 호의를 베풀었는데 그것을 거절당한 것이니 화가 날 만도 했다.
분위기가 잠시 살벌해지려 할 때였다. 시라크가 고개를 숙이면서 먼저 말했다.
“……내일 정규 수업이 끝난 뒤 제2합동 강의실에서 뵙겠습니다. 아젤로스 전하.”
딱딱한 목소리였지만 아젤로스를 황자 대우하고 깍듯이 존대도 했다. 시라크가 최대한 자존심을 굽혔다는 것을 아젤로스도 알았다. 아젤로스는 일부러 코웃음을 쳤다.
“흥! 좋다. 내일 보자.”
아젤로스와 헤어진 뒤 길을 걸어가면서 시라크는 계속 불만을 토로했다. 아젤로스가 어린 주제에 건방지고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시라크가 툴툴거리는 모습이 꽤나 우스웠다.
“불과 2년 전의 일들을 다 잊은 것 같군. 어리광쟁이 시라크, 네가 얼마나 어린애 같았는지 알고 있느냐?”
“대, 대공. 그때는……!”
“너무 화만 내지 말고 조금 전처럼 적당히 져주고 하면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끙. 알았습니다.”
시라크가 불만을 털어내고 앞을 바로 보았다. 옆에서 보이는 얼굴이 문득 지스카르를 연상시켰다. 시라크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얼굴 윤곽이나 체형이 점점 지스카르를 닮아가고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 것이야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스카르 그 무뚝뚝한 놈에게도 이런 귀여운 시절이 있었을까?
“대공 전하.”
그때 일꾼 하나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누가 날 찾아왔다고 전해왔다. 며칠 후에 히브릭스 토론회라고 이름깨나 날리는 학자들이 모임을 열 예정인데 거기서 사람이 찾아왔을 가능성이 컸다.
일전에 모든 토론회에 불참하겠다고 거절 의사를 밝히자 학회 담당자가 재차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적이 있었다. 일꾼이 안내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시라크가 말했다.
“히브릭스라면 저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토론회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거긴 한 번쯤 가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 앞으로 토론회는 모조리 거절할 생각이다. 사실 고대적 이론 하나 던져 놓고 이러쿵저러쿵 토론하는 건 내 취향이 아냐. 황실이나 영주관에서 개최하는 정책회의 같은 거라면 대환영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강의실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나는 학회에서 나온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고 생각 없이 시선을 던졌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인간을 발견하고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시라크도 뒤늦게 상대를 발견하고 입을 딱 벌렸다.
“억?”
“이건 대체……. 지스카르?”
나는 도통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되어서 인상을 썼다. 지스카르가 팔짱을 끼고 서 있다가 이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가 출입구 앞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이 대단히 기이하게 보였다.
지스카르는 대륙의 절반을 지배하는 대제국 엘 파셔의 황제로, 어딜 가든 다수의 수행원이 뒤따랐다. 하물며 이런 타국이라면 최소 열 이상의 호위를 대동하고 있어야 마땅했다.
사실 지금 그가 혼자인 것보다 더욱 의아한 것이 있었다. 어떻게 소리 소문도 없이 아베크 중립국까지 이동했는가 하는 점이다. 황제는 그렇게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가 장거리를 이동할 때면 신변 보호를 위해 엄청난 인력이 동원된다. 아베크 중립국 측에서도 엘 파셔 황제를 맞이한다며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뭐야, 지금? 여기까진 어떻게 온 것이냐?”
“조만간 보게 될 거라 말했을 텐데.”
둘밖에 모르는 말을 입에 담는 것으로 볼 때 눈앞의 인간은 엘 파셔의 황제 폐하이신 지스카르가 분명했다. 말을 듣고 있자니 더욱 기가 찼다.
“뭔데 황제 주제에 옆집 마실 나온 분위기로 그러고 서 있는 거냐? 호위는? 던필은? 크리스티안은?”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도록 하지. 숙소는 어디인가?”
지스카르가 건물 안쪽을 보며 말했다. 나는 계속 의심의 눈초리로 지스카르를 살펴보다가 불현듯 그의 목덜미에 있던 문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드래곤으로…… 뭔가를 한 것인가?”
“그와 짐은 한 몸이니까.”
지스카르는 묘한 말만 남길 뿐 자세한 것은 설명해 주지 않았다.
“시라크, 네가 안내해 주겠느냐?”
뻣뻣하게 굳어 있던 시라크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이, 이쪽으로 오십시오.”
시라크를 앞세워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미첼 아카데미에서 특별히 제공해 준 곳으로 너른 응접실에 침실, 서재를 비롯한 방이 세 개나 딸려 있었다.
응접실 중앙에 비치된 소파에 일단 자리를 잡았다. 시라크는 떨리는 눈으로 지스카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귓불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스카르가 차분한 음성으로 시라크에게 안부를 물었다.
“시라크. 그간 어떻게 지냈느냐.”
“……!”
그의 물음에 시라크가 얼른 고개를 들었다. 허리도 빳빳이 세우고 팔도 곧게 펴서 무릎 위에 얹었다.
“매일 아카데미를 오가며 학업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그, 그리고 최근에는 재산을 관리할 필요가 있어서 사람을 뽑기도 하였는데…….”
잔뜩 긴장한 자세로 근황을 보고하던 시라크가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굵은 눈물방울이 눈가에 고였다가 무릎 위에 뚝 떨어졌다.
지스카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엄하게 말했다.
“앞으로도 어려운 일이 많을 텐데 벌써부터 약한 모습을 보인단 말이냐. 짐이 여기까지 와서 네게 실망을 하고 가야겠느냐.”
“아, 아닙니다!”
시라크는 화들짝 놀라서 서둘러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부자간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서 물이나 한잔 마시고 오마.”
하인을 부르면 되는 일이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자리를 비켜주었다.
밖에 나가서 오래 있지는 않고 20분 정도만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부자간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단둘이 장시간 내버려뒀다간 역효과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금방 되돌아왔는데도 방 안의 분위기가 매우 경직되어 있었다. 지스카르는 원래 엄격하고 말수가 적으며, 시라크는 지스카르를 대단히 어려워했다. 내가 돌아오자 시라크가 드디어 살았다는 분위기로 어색하게 웃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고?”
어린애 대하듯 시라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자리에 앉았다. 평소 같으면 뭐라고 한소리 했을 시라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순순히 내 질문에 답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지스카르를 보며 혀를 찼다.
“아버지가 되어서 아들에게 겁만 잔뜩 주고, 한심한 녀석이로군.”
“어쩔 수가 없군. 짐은 너처럼 천연덕스럽지가 못해서 말이다.”
“내가 어디의 누군가와 다르게 친화력이 좋긴 하지.”
나는 턱을 괴며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그런데 지스카르가 갑자기 내 턱을 잡더니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키스를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나는 눈만 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덜컹.
순간 시라크가 몹시 당황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둥대느라 탁자에 부딪혀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저,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그는 도망치듯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멍청하게 있다가 시라크가 나가고 나서야 지스카르를 뿌리쳤다. 입을 뻥끗거리다가 소리 질렀다.
“너! 지금 애도 보는 앞에서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무슨 상관이냐. 시라크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도 아닐진대.”
물론 시라크도 바보가 아니니 알 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맙소사! 새삼스럽게 그 사실을 떠올리니 엄청나게 낯이 뜨거웠다.
“네놈은 변태냐? 시라크가 나간 뒤에 했어도 되는 일 아닌가!”
지스카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내 등 뒤와 무릎 아래로 팔을 집어넣어 번쩍 들어 올렸다. 날 안고 향한 곳은 당연하다는 듯 침실이었다. 하긴 내가 욕구불만에 빠져 요상 망측한 꿈까지 꾸었을 정도니 지스카르라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괜히 마른침을 삼켰다. 꿈 생각을 하자 기분이 약간 이상해졌다.
지스카르는 나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 다시 한번 제대로 키스를 했다. 손가락으로 목덜미와 귓불을 어루만지면서 깊게 입술을 겹쳤다. 꿈속에서는 스스로 혀를 내서 보조를 맞춰주었지만 정작 현실로 닥치자 도저히 그리할 수가 없었다. 역시 사내놈과 입맞춤하는 것은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그래도 당장 노곤하게 스며드는 느낌은 싫지 않았다.
츕.
지스카르가 입술을 빨아당기며 떨어져 나갔다. 입술이 떨어질 때 나는 소리가 유난히 야하게 느껴졌다. 나는 가볍게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지스카르를 쳐다보았다. 지스카르도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등불을 등지고 있었기에 푸른 눈 위로 검게 그림자가 졌다. 머리카락도 눈동자도 조용히 가라앉은 검은색이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얌전하구나.”
“음?”
나는 내심 뜨끔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다행히 지스카르는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가볍게 나를 자기 품으로 끌어당기며 겉옷을 벗기고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단추를 반 정도 풀다가, 마정석이 박힌 팔찌를 먼저 빼냈다.
탁.
“유곽에 갔었다지?”
팔찌를 근처 탁자에 내려놓으면서 지스카르가 질문을 했다. 자리를 비운 사이에 시라크에게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지스카르의 시선이 유난히 따갑게 느껴졌지만 나는 별거 아니라는 태도로 어깨를 들썩였다.
“유곽에 가긴 했지. 하지만 근처에만 갔다가 그냥 되돌아왔다. 네가 불쾌하게 여길 만한 일은 없었으니 안심해.”
“어째서?”
“응?”
“어째서 여자를 안지 않았지?”
“아…….”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고 들어올 줄이야. 솔직히 말해 나는 이번 일을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유곽에 가긴 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돌아왔으니까, 결과적으론 아무 일도 없었으니 상관없지 않겠느냐고 너무 가볍게 생각해 버린 것이다.
“대답해라. 짐은 확실한 답을 듣고 싶다.”
지스카르가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나는 적당히 둘러댈지 어떤 식으로 이야기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중간에 이상한 놈을 만나는 바람에, 흥이 깨져서 그냥 되돌아왔다.”
“이상한 놈 때문에 흥이 깨져서라?”
지스카르의 검은 눈이 더 어두워졌다. 그는 내 입에서 이와 비슷한 대답이 나올 것을 예상했다는 분위기였다.
“역시 그렇군. 그저 사고가 좀 있어서 돌아왔을 뿐. 그럼 다르게 묻겠다. 그때 만약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면 넌 어떻게 했을까.”
“…….”
“대답은?”
“……여자를 만나고 왔겠지.”
거짓을 말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결국 대답했다. 억지로 말하면서 지스카르가 불같이 화내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몹시 피로한 얼굴로 한쪽 눈을 눌렀다. 심한 허탈감으로 표정이 전부 무너져 내렸다.
“열흘, 급한 일을 마무리하고 오는 데까지 열흘이 걸렸다. 그런데 겨우 그 열흘 만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군. 네 표정을 보니 알 것 같다. 유곽을 찾는 것도, 거기서 돌아오는 일도 네게는 전혀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었을 테지.”
뭐라 말을 더 이으려던 지스카르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표정 관리가 힘든 듯 눈가에 둔 손으로 얼굴 전체를 감쌌다. 나는 얼굴을 가리는 손을 굳이 잡아끌어서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지스카르의 얼굴을 잡아서 고개를 들게 했다.
지스카르가 나를 바로 보게 하고 나도 제대로 앉았다. 나는 정식으로 그에게 사과했다.
“잘못했다. 이번에는 내가 잘못한 것이 맞으니 먼저 사과하겠다. 내가 너무 경박했음을 인정해.”
창밖의 달이 모습을 드러내며 방 안의 그림자를 지워냈다. 지스카르의 눈이 제대로 푸른색을 찾는 것을 보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방 안이 때아닌 적막에 잠겼다.
나는 깊이 한숨을 토하고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아무래도 지금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볼 타이밍인 것 같았다.
“지스카르. 적어도 너를 만나는 동안엔 여자든 누구든 절대 곁을 내주지 않겠다. 네 앞에서 정식으로 약속하겠다. 그 대신 너도 대공가의 안주인을 들이는 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또다시 그런 소리를! 그것이 곁을 내주는 것과 뭐가 다른가.”
지스카르가 화부터 내기에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형식뿐인 관계라면 그래도 많이 다르지 않으냐. 네가 껄끄럽게 여길 것이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귀족 영애 중에 결혼을 수단으로 삼는 이도 상당수 있으니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정략혼을 하는 것으로…….”
“그만 닥쳐!”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지스카르가 살기 어린 음성으로 내 말을 끊었다. 사람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니 나도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내 머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것이다. 내가 왜 이런 것까지 놈에게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
나는 표정을 가라앉히고 목소리도 차갑게 가라앉혔다.
“닥쳐야 할 것은 네놈 쪽이다. 애당초 허울뿐인 대공부인을 들인다는 것도 아주 가당찮은 짓이고 이 몸은 전혀 내키지 않는다. 그간의 원한을 잊고 네 곁에 남겠다고 한 것만으로도 나는 많은 것을 양보했다. 그런데 네놈에게 매여서 평생 부인도 없이 반쪽짜리 대공으로 살다가 대를 이을 자손까지 포기하란 말이냐? 이 몸이 왜 그런 수모를 견뎌야 하지?”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지스카르를 내려다보고 냉소를 던졌다.
“네놈의 알량한 감정을 위해서?”
순간 지스카르가 내 팔목을 붙잡았다. 손아귀 힘이 너무 강해서 통증이 느껴졌다.
“윽! 너……!”
지스카르도 몸을 일으키고 팔을 부러뜨릴 듯 강하게 쥐면서 나를 가까이 내려다보았다. 항상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던 푸른 눈이 전에 없는 격렬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군. 잘도 여기까지 짐을 미치게 만들 수가 있구나. 실제로 짐은 미치광이가 되어서 반란이 터질 때까지 국정을 망쳐 버린 적도 있다. 짐은 여전히 그때의 광기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다. 이 정도면 너를 차지하기 위해서 어떤 미친 짓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군!”
“이 몸의 신경을 긁어놔서 네놈에게 남는 게 없을 텐데? 내가 아직 웃는 낯일 때 이거 놓고 꺼지시지?”
나는 팔목을 쥐고 있는 손을 검지로 톡톡 쳤다.
“꺼지라고? 정말 그리해도 되겠는가?”
지스카르가 갑자기 손에서 힘을 풀었다. 나는 무슨 소리인가 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지스카르는 팔을 잡았던 손으로 내 목덜미를 쓸어 올렸다.
“갑자기 유곽의 여인들을 찾은 이유가 뭘까. 매일 하던 잠자리를 갑자기 못 하게 되자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구나. 오늘따라 얌전했던 것도 같은 이유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보려무나. 당장 옷을 벗고 짐에게 안기고 싶다고 말이다.”
나는 얼굴을 벌겋게 붉혔다. 제일 안 좋은 타이밍에 정곡을 찔려버리고 말았다. 내 반응을 보고 지스카르가 여봐란 듯한 분위기를 했다. 차라리 목이 잘리고 말지 모욕을 당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속이 뒤틀릴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분노로 잔뜩 억눌린 음성으로 말했다.
“아무리 그게 급하다 해도 사내새끼와 뒹구는 건 질색이다……!”
“싫어하지만, 좋아하지. 그 몸은 바늘 끝처럼 예민하고 쾌락을 즐길 줄 안다. 너는 이미 잠자리의 즐거움을 충분히 알고 있지 않으냐.”
지스카르가 와락 허리에 팔을 두르고 엉덩이 쪽으로 손을 내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흠칫 떨었다.
“이리도 좋아하면서, 두 번 다신 질색이란 말 따위 못 하게 해주마.”
지스카르가 난폭하게 입술을 덮치고 혀를 밀어 넣었다. 나는 성질대로 놈의 혀를 물어뜯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놈을 죽이든가 불구로 만들 각오를 하지 않는 한은 결국 내가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숨을 토하며 턱에서 힘을 빼고 입을 열었다. 지스카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식으로 다시 키스에 몰두해 왔다. 혀가 얽힐 때마다 피 맛이 났다.
“움.”
맞닿은 입술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뜨거운 입술을 떼어냈다가 다시 겹치고, 깊이 빨아당기면서 다시 떼어냈다. 쪽, 춥, 하고 부끄러운 소리가 노골적으로 귓가를 간질였다. 내가 그 소리를 자극적으로 여긴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피비린내 나는 키스는 유난히 길었다. 내가 나른하게 늘어지자 지스카르는 뒷덜미를 손으로 잡아 지탱하고 키스하면서 뒤로 떠밀어서 천천히 침대에 쓰러뜨렸다. 혀와 입천장을 깊이 짓눌러 핥으면서 손으로는 내 셔츠의 단추를 풀고 앞섶을 열어젖혔다.
지스카르는 키스를 멈추고 아래로 내려가 셔츠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코를 박고 살 냄새를 맡다가 유두로 이동해 돌기를 지그시 누르며 핥아 올렸다.
“흐으…….”
목구멍 안에서 저절로 달뜬 숨소리가 튀어나왔다. 놈에게 조롱 비슷한 걸 당한 뒤라 이렇게 작은 반응을 하는 것조차도 굉장히 분했다.
“개자식……!”
내가 숨을 들이켜며 거칠게 욕을 내뱉자 지스카르가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두 눈을 감은 채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다친 적도 없는데 크게 상처를 입은 것같이 그렇게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고 지스카르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으로 등허리를 쓸어내리며 바지춤에 손을 댔다. 녀석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잠시 무익한 저항을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손발을 억눌린 채 완전히 벌거벗겨지고 말았다.
지스카르는 허벅지를 손으로 누르며 배꼽 아래에 진하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 강하게 살을 빨아당겨 자국을 새겼다. 나도 모르게 지스카르가 더 아래의 은밀한 부분을 입으로 머금는 것을 상상해 버렸다. 그러자 아랫배가 땅기고 사타구니가 저릿저릿했다.
남자와 관계하는 것을 징그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째서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인지. 나는 떨리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애먼 천장으로 던졌다.
“기대되는 모양이지. 너는 입으로 해주는 걸 제일 좋아하지 않느냐.”
지스카르는 오늘 완전히 날 함락시키기로 작정이라도 한 모양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그것을 입으로 지적했다.
“그딴 식으로 지껄이는 거 그만둬.”
지스카르는 내 요구를 무시한 채 성기를 뿌리까지 입에 머금었다.
“흑……!”
앞이 안 보이면 도망이라도 칠 수 있는 것처럼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강하게 빨아당기는 느낌이 참을 수 없이 자극적이었다. 저절로 온몸이, 그리고 다리가 움츠러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허리와 어깨를 둥글게 바짝 웅크리며 지스카르의 머리를 붙들었다. 그러나 지스카르가 허벅지를 단단하게 붙들고 있었기에 하반신만은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하, 흐읏……, 아아!”
마치 터진 둑처럼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지스카르는 내 것을 입에 문 채 능숙하게 혀로 기둥을 핥아냈다. 그러다 약간 고개를 들어 귀두를 혀끝으로 쿡쿡 찔러 요도구를 벌리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게 들어갈 리는 없지만 왠지 모를 오싹함과 흥분이 등줄기를 휩쓸었다.
“아직도 충분하지 않은가?”
지스카르가 내 귀두를 핥아 올리더니 질문을 던졌다. 나는 혹시라도 늦을까 서둘러 소리를 쳤다.
“충분하고도 남아!”
“거짓말을 하는군. 네 몸에 대해서는 짐이 훨씬 더 잘 알지.”
지스카르가 엉덩이 사이로 손을 넣어 구멍을 찾았다. 손끝이 입구에 닿았다. 나는 몸을 빼려고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짓은 좀.”
“엉덩이 골에 작은 상처가 있다는 걸 아는가.”
지스카르가 낮게 말하며 구멍 안으로 중지를 밀어 넣었다.
“읏.”
나는 강제로 억눌린 다리 대신 발가락을 움츠리며 신음을 토했다.
“위쪽을 누르면 속을 바짝 죄어온다는 것은?”
중지가 깊숙이 안쪽까지 들어가서 예민한 점막을 꾹 눌렀다. 녀석의 말대로 깜짝 놀란 속살이 손가락을 빨아당기듯 바짝 죄었다. 지스카르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내벽이 수축했다가 이완하며 잘게 경련했다. 나는 극도로 흥분해서 숨을 헐떡거렸다.
지스카르는 뒷구멍을 자극하며 다시 입으로 내 성기를 깊이 물어서 쭉 빨았다.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며 허리와 엉덩이를 확 치켜들었다. 나는 헐떡거리는 것조차 못 하게 되어 입만 벌린 채 턱 끝을 바르르 떨었다. 어디론가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궁지에 몰린 짐승이 된 기분이다.
“학…… 하……. 아, 지스, 지스……카르…….”
“한계에 이르면 짐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이미 알고 있겠지.”
놈의 말대로 나는 절정 직전까지 도달해 있었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버티다 결국 지스카르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지스카르! 흐흣, 지스…… 아!”
한계까지 몰려 결국 다 쏟아내고 말았다. 지스카르가 고개를 들고 사정이 끝날 때까지 손으로 내 것을 자극해 주었다. 나는 뻐근할 만큼 전신을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모든 것을 다 토해내고 나서야 침대 위에 축 늘어졌다.
멍한 시야로 생각 없이 지스카르를 보니 그의 손이 내가 쏟아낸 정액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얼굴이 녹아내릴 것처럼 창피했다.
지스카르는 손을 어디다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내 허벅지를 위로 들어 올리고 다리 사이의 여린 살 위에 입술을 눌렀다.
코끝이 닿아서 허벅지에 숨결이 느껴졌다. 사정한 직후인데도 지스카르가 입을 대자 다시 사타구니가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 시트를 느슨하게 끌어당기고 거기에 얼굴을 묻으며 한숨을 토했다. 그때 지스카르가 갑자기 이를 세워 약한 살을 아프게 깨물었다.
“아!”
깜짝 놀라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내가 뭐라고 할라 치자 지스카르가 다시 얼얼한 살을 입에 물고 빨아당겼다. 약한 살에 금방 벌겋게 자국이 남았다. 지스카르는 허벅지에 얼굴을 묻은 채 옆으로 이동해 바로 옆의 살을 다시 깨물고 자국을 만들었다.
“뭐…… 하는 거야……. 이젠 그만둬…….”
벌겋게 얼굴을 붉히며 힘들게 말했다. 지스카르가 눈을 들어서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러곤 보란 듯이 내 허벅지에 다시 자국을 냈다. 자기 것이라고 영역표시라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아니, 틀림없이 녀석의 행위엔 그런 의도가 담겨 있었다.
지스카르가 허벅지를 핥으면서 말했다.
“그만두라고? 짐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럼…… 너도 빨리 해버리던가…….”
츕.
지스카르가 허벅지에 자국을 하나 더 남긴 후에 몸을 일으켰다. 그가 허리춤을 풀어 내리는 장면까지만 보고 나는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지스카르가 바로 누워 있는 날 안아서 엎드리도록 자세를 바꾸었다. 등 뒤로 몸을 겹치면서 손가락이 입구를 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잔뜩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도 슬그머니 물었다.
“향유……는……?”
“없는 채로 하려고 한다만.”
지스카르가 손등에 묻은 정액을 엉덩이 사이에 슥 묻혔다. 차갑고 미끈한 것이 닿자 소름이 끼쳤다. 그는 검지와 중지를 구멍 안으로 밀어 넣어 내벽을 둥글게 어루만졌다. 나도 모르게 녀석의 손에서 도망가기 위해 몸을 앞으로 빼냈다. 그 모습을 본 지스카르가 나무라듯 손가락을 강하게 끝까지 쑤셔 넣었다.
“윽! 으으…….”
쿡 찌르는 느낌에 아랫배까지 찌릿하다. 나는 침대 시트를 와락 움켜쥐고 고개를 숙이며 벌벌 떨었다. 지스카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가락을 빠르게 넣었다 빼며 다그치기 시작했다. 엉덩이와 허리가 크게 들썩이는 것이 느껴진다. 강렬한 쾌감과 수치심이 엉망으로 뒤섞였다.
“그만, 그만 좀……. 하읏, 지스카르…….”
견디기 힘든 기분이 되어 애원하는 것처럼 말했다. 다행히 지스카르가 이번에는 내 말을 들어주었다. 손가락이 천천히 빠져나가고 지스카르의 성기가 구멍에 닿았다. 손가락에 당하는 것보단 녀석의 것이 들어오는 것이 심리적으로 훨씬 안심되었다. 그 대신 녀석의 성기는 손가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두꺼웠다.
나는 억지로 녀석을 받아들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절로 끄응, 하고 신음이 흘러나왔다.
“후…….”
지스카르도 성기를 반쯤 밀어 넣으며 신음을 토했다. 그가 한쪽 팔로 몸을 지탱하며 등 뒤에 몸을 바짝 갖다 대었다. 그리고 내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여전히 처음 할 때처럼 좁다는 것은 아느냐?”
“이젠 됐어!”
뒷구멍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그딴 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가. 거시기가 무지무지하게 크다는 이야기라면 또 모를까! 내가 분개하고 있는 사이 지스카르가 성기를 한계까지 밀어 넣었다. 내부를 빡빡하게 채운 성기가 천천히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지스카르도 흥분한 것이 분명했다. 등에 닿은 맨살의 온도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허리를 움직이는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이대로 재빨리 해치우고 비켜주었으면 좋겠는데 지스카르는 절대로 자기 혼자서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며 내 다리 사이로 손을 옮겼다.
손가락으로 성기를 쥐고 조물대면서 구멍을 연이어 쳐올리자 나도 금방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성기가 지스카르의 손 안에서 슬그머니 머리를 쳐들기 시작했다. 나는 새삼스레 수치심을 느끼며 침대 시트를 잡아당겨 얼굴을 감췄다. 저놈이 건드리면 거기가 신기할 정도로 빨리 회복해서 뻣뻣하게 부풀었다. 진짜 빌어먹을 일이었다.
“읏. 흐으……!”
지스카르가 성기를 끝까지 욱여넣어 구멍 가장 안쪽을 꽉 짓눌렀다. 나는 몸을 바르르 떨며 쥐어짜듯 소리를 흘렸다. 문득, 지스카르가 자세를 무너뜨리고 등 뒤에서 날 누르며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레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아주 작았다. 목이 잠겨서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었다.
“레이……, 너를…….”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긴 숨을 토해냈다. 아득하게 숨을 내쉰 뒤엔 한쪽 팔로 내 몸을 꽉 끌어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지스카르는 나를 놓고 침대를 짚으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날 짓누르고 있던 무게가 사라졌다. 지스카르가 손으로 내 성기를 문지르며 동시에 자기 물건으로 뒷구멍을 헤집고 예민한 지점을 찌르는 바람에 나는 그쪽에 다시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흐으. 지스카르…….”
서서히 절정에 올랐다. 안절부절못하다가 폭발하듯 쏟아내던 것과는 달랐다. 나는 고개를 위로 젖히고 뜨거운 숨을 토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정을 했다. 내가 바짝 굳어서 떠는 것을 보고 지스카르도 자신의 정념을 전부 털어놓았다. 불끈거리면서 안쪽으로 정액이 흘러들어 왔다.
지스카르의 손이 떨어져 나가자마자 나는 침대 위에 힘없이 널브러졌다. 납작 엎드려서 간신히 숨을 돌리고 있는데 지스카르가 날 안아서 바로 눕히더니 또다시 허벅지를 들고 사타구니에 입을 댔다. 살을 강하게 빨아들이는 느낌이 들었다. 벌써 몇 개나 자국을 내고, 또 거기다가 표식을 새기고 있는 것이다.
“으윽, 이제…… 충분하잖아. 그거 그만해…….”
“충분하지 않다. 아직도 한참 더 부족해.”
지스카르는 마치 성을 내듯 다리를 깨물었다. 나는 아픔보다 부끄러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간신히 평온해졌던 숨이 다시 조금씩 떨리기 시작한다. 그때까지도 지스카르는 여전히 다리에 자국을 남기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침대를 짚고 상반신을 일으키며 놈을 노려보았다.
“대체, 큿, 대체 얼마나 더 해야 만족하겠다는 거냐.”
“그렇구나. 얼마나 더 해야 이것이 짐의 소유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지스카르가 다리에 이마를 대고 쓰게 웃음을 지었다. 몸을 반만 일으킨 자세로 있자니 힘이 달렸다. 나는 침대 위에 도로 쓰러지며 말했다.
“나는 네 소유물이 아니야.”
천장을 보고 크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 곁에 있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 있는데, 뭐가 그리도 불만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냐. 너는 욕심이 너무 지나쳐.”
지스카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거칠게 다리를 끌어당겨 옆으로 짓눌렀다. 더 이상 했다간 진짜 골병이라도 들 것 같은데 이놈은 남의 사정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 게다가 은근히 난폭한 태도가 화를 더 돋웠다.
“그만 좀 해!”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