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체르도의 도움으로 스트라스 측과 더 부딪치는 일 없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 나를 보는 체르도의 굳은 표정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황제가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엘 파셔 내부에도 극비로 부쳐졌다. 지스카르를 치료하기 위해 아베크 왕국에서 가장 신성이 강하다는 챠드 신전의 대신관이 비밀리에 불려왔다.
다행히 내가 마법으로 즉시 응급조치를 한 보람이 있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검이 폐에 큰 상처를 입혔다.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중상임이 분명했다.
꼬박 하루가 지났을 때 의식불명이던 지스카르가 깨어났다. 종일 침대맡을 지키던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비밀 유지를 위해 크리스티안과 던필, 몇몇 신하만 병실을 드나들 수 있었는데, 황제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드 마스터란 족속들은 정말 놀랄 만큼 튼튼하군.”
지스카르를 내려다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죽다 살아난 놈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정말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다. 장담하는데 내가 칼에 찔렸다면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검을 버리고 마법을 택한 것이 요 손톱만큼 아쉽기도 했다.
창백한 안색으로 숨을 약간씩 몰아쉬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 지스카르가 깨어나자마자 내 안부부터 찾았다.
“레이, 다친 곳은 없는가.”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해.”
나는 기가 막혀서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지스카르는 굳은 얼굴로 반드시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어쩔 수 없이 붕대를 감은 다리를 툭툭 쳤다.
“30센티 높이의 침대에서 뛰어내리다 발목이 접질렸지. 그게 전부다.”
내 말에도 지스카르는 딱히 안심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직접 내 상태를 확인하고 싶은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불만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황제가 의식을 찾았다는 소식에 다시 한번 챠드의 대신관이 찾아왔다. 그는 지스카르의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신성력이 효과가 좋긴 좋았다. 지스카르의 표정이 확연히 편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신관을 비롯해 사람들을 전부 물리고 나 혼자만 지스카르가 누워 있는 침소에 남았다. 듣는 귀가 없어지자마자 나는 지스카르를 타박했다.
“너는 네놈 위치를 자각해라. 황제가 직접 나서서 어쩌자는 것이냐. 밑의 수하들은 뒀다 어디다 쓰려고?”
“스트라스 황제는 소드 마스터다. 휘하의 기사를 수십 명 잠입시킨들 그를 제압할 수 있겠느냐?”
“……뭐, 그렇긴 하다만.”
솔직히 누구든 도와달라며 벌벌 기어 다녔던 주제에 할 말이 아니긴 했다. 심지어 지스카르의 이름까지 부르며 그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아등바등했다. 문득 지스카르의 시선이 느껴졌다.
지스카르가 내 속을 읽어내기라고 할 것처럼 날 빤히 보고 있었다. 놈이 은근히 눈치가 빠르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당장 화제를 바꾸었다.
“그래도 네가 나름 이성을 챙기고 소수정예로 잠입을 시도했더군. 황제가 직접 움직인 것만 빼면 괜찮은 대처였다. 네가 기사들을 모조리 끌고 와 다 뒤엎어버릴까 봐 내가 아주 조마조마했었지.”
“아니, 본래는 화재를 일으켜 스트라스 기사들을 분산시키고 몰살시켜 버릴 계획이었다.”
“뭐?”
눈을 크게 뜨고 놈을 쳐다보았다. 지스카르는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농담 따위는 하지 않는 놈이기도 했다.
“레이. 짐이 너를 빼앗기고 차가운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
그간 지스카르의 상처부터 살피느라 정확히 일이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 몰랐는데 이제야 대강 내용을 듣게 되었다. 어째서 나를 구하러 오는 일에 크리스티안이 빠졌는지 의아했는데 그 이유도 알았다.
크리스티안은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스트라스를 공격하기 위해 외부에서 병력을 대기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초반에 잠입을 시도했을 때 스트라스의 다른 기사가 아니라 체르도를 먼저 만났고, 일이 커지기 전에 그가 나를 구조하는 일에 협조했기 때문에 대기 중이던 병력이 그대로 물러났었던 것뿐이다.
나는 가만히 침묵했다. 전쟁이 터질 뻔했지만 지스카르를 탓할 수가 없었다.
지스카르는 죽을 뻔했다. 엘 파셔의 황제가, 말도 안 되는 장소에서 어이없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가 에드리히보다 약했거나 사전 계획이 부실해서 당한 것이 아니다. 내가 에드리히를 죽이지 말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녀석이 내 말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다가 빈틈을 보이고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하지만 에드리히는 중요할 때 결국 내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내가 그만하라고 소리치자 오히려 그 틈을 이용해서 지스카르를 검으로 찔러버렸다. 나를 모욕하기 위해 헐벗겨서 희롱하고 그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때 일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나는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엘 파셔로…… 돌아가겠다.”
이미 평화회담이 무산되던 날 엘 파셔로 귀환하겠다고 합의를 했다. 하지만 한 번 더 지스카르를 내려다보면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굳이 고집을 부려서 중립국에 남겠다고 했었다. 오랜만에 에디를 만나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고 체르도나 과거의 기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가 바라는 건 하나였다. 에디가 전생의 나를 죽이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의 입에서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 하나가 듣고 싶었던 거지. 그럴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리했어…….”
지스카르가 내 얼굴 위로 손을 뻗었다. 아직 함부로 움직여도 될 만큼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다. 내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이참에 지스카르의 팔을 끌어와서 그의 손바닥 위에 눈꺼풀을 꾹 눌렀다.
“내가 오랫동안 스트라스에 대해 알려 하지도 않고 에디에 대해서 전부 외면했던 건 어차피 파국일 것이라고 무의식중에 예상했기 때문일 테지.”
나는 지스카르를 보며 말했다.
“네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네가 말한 대로 에디를 가까이하지 말아야 했다. 네 말대로 엘 파셔로 돌아갔었어야 했어…….”
그동안 내가 했던 행동이 모두 어리석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지스카르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자기가 한 말이 다 옳았으니 내 앞에서 으스대며 설교를 늘어놓아도 할 말이 없는데 이놈은 항상 이런 식이다. 내가 사과를 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숙이면 오히려 불만을 드러냈다. 나는 쓰게 미소를 지었다.
“빨리 몸을 추슬러서, 엘 파셔로 돌아가자. 하루라도 빨리…….”
“그자가 너를 강제로 모욕하고 있는 것을 봤을 때…….”
지스카르가 문득 입을 열었다.
“지스카르, 이젠 그만 쉬어라. 이야기를 너무 오래 했다. 길게 말을 하면 좋지 않아.”
지스카르는 중상을 입은 상태이고 이제 막 깨어났을 뿐이다. 나는 지스카르에게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검게 가라앉은 눈빛을 한 채로.
“스트라스 황제가 널 겁간하려는 광경을 보았을 때, 짐도 너에게 똑같은 짓을 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스카르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요즘 들어 이놈이 유난히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자주 들먹인다. 나는 우습다며 대꾸했다.
“똑같지는 않지. 너는 나를 단순한 노예라고 생각해서 밤시중을 들게 한 것이고, 에디는 내가 레브노아드임을 알고 일부러 굴욕을 주려고 한 짓이니.”
“……정말 같지 않은가?”
“그래……, 어차피 내겐 네가 한 짓이나 에디가 한 짓이나 매한가지이긴 하지. 그런데도 이 몸이 네 곁에서 병시중 같은 것도 해주고 있구나. 네놈은 얼마나 대단한 천운을 타고난 것이냐.”
지스카르가 내 눈가에 대고 있던 손을 내려서 콧대와 뺨을 만졌다. 기력이 거의 없어야 정상인데 점차 예전처럼 손아귀에 단단하게 힘이 들어갔다. 나는 그의 체력에 혀를 내둘렀다. 정말 놀랄 만큼 강인한 놈이었다. 지스카르가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짐은 너에게 쉽게 용서받지 못할 짓을 했다. 네가 짐의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것을 참았고 양보했는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는구나. 너를 어디로도 가지 못하도록 묶어두고 너의 심장까지 손에 넣고 싶다고. 지금도 너를 보면서 그리 생각하고 있다.”
“…….”
“짐은 결코 너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짐도 스트라스 황제와 별반 다를 것이 없군.”
대화가 끊어지고 정적이 찾아왔다.
지스카르에게 다시 한번 너는 에드리히와 다르다고 확언을 줘야 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런 말이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놈에게 감금당하고 겁간당했던 것이 끔찍했던 것은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다. 에드리히에게 같은 짓을 당할 뻔했기 때문에 당시의 소름 끼치는 굴욕이 새삼스럽게 선명하게 떠올랐다.
다만 전생의 레브노아드도 한낱 침노의 사정 따윈 전혀 관심이 없었고, 지스카르가 노예였던 내게 했던 짓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이해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지스카르에게 꽤 정이 들기도 했다. 강압으로 시작했지만 녀석과 몸을 섞는 것이 굉장히 자극적이고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냥 묻어주기로 결정한 것이지, 치욕을 당했던 과거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때문에 중상을 입은 놈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구구절절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지스카르에게 그냥 잠이나 자라고 말했다. 잠시 뒤 그가 기절하듯 잠드는 것을 확인하고 방을 나섰다.
* * *
스트라스 3황자가 살해당한 뒤, 스트라스 황제가 머무는 숙소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실상은 스트라스와 엘 파셔 양국의 기사대가 충돌할 뻔했던 사건이었지만 외부적으로는 우연히 화재가 있었다고 알려진 상태였다. 하지만 단순 화재라 해도 그곳이 스트라스 황제의 숙소였던 만큼 대단히 심각한 문제였다.
나는 병석에 누워 있는 지스카르를 대신해서 아베크 국왕과 미첼 아카데미 학장을 만났다. 몇 가지 사건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특히 나를 담당했던 조사관 두 명이 갑자기 실종된 일에 대해서 강력하게 항의의 뜻을 밝혔다. 어떻게 그런 수상한 자들을 조사관이라고 보낼 수 있느냐고 추궁했더니 그들은 거의 탁자에 머리가 닿을 만큼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했다.
엘 파셔와 대담이 끝난 뒤엔 스트라스에서 나온 사람을 만나야 할 것이다. 아마 스트라스 측 대리인을 만날 때 그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것이다.
요 며칠 사이 국왕과 학장의 얼굴색이 거의 시체처럼 검게 변해 있었다. 중립국에서 역사에 남을 평화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기뻐하던 것이 얼마 전인데 귀신같이 재앙이 연속되고 있었다.
학장실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위험할 일도 없었고 멀지도 않았다. 하지만 엘 파셔의 기사들은 모두 긴장을 놓지 않고 철통같이 나를 호위했다.
“에디.”
길을 걷다가 나는 인상을 썼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짜둔 것처럼 에드리히를 만났다. 순간 나를 호위하는 엘 파셔의 기사들과 에드리히를 수행하는 스트라스 기사들 간의 경계심이 극에 달했다. 툭 치면 전원이 검을 뽑아버릴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였다. 대외적으로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으로 되어 있지만, 양국의 기사들은 화재가 있던 날 전면전이 벌어질 뻔했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요즘 분위기가 흉흉한 것이 좀 그래. 안 그런가?”
에드리히가 나를 보며 뻔뻔하게 말을 걸었다. 내게 끔찍한 모욕을 줘놓고 평소와 태도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잠시 그의 어깨에 시선을 주었다. 어깨뼈가 부서지는 부상을 입었는데 신관의 치료를 받아 무사히 상처가 회복된 모양이다. 그것으로 더 이상 에드리히에 대해서 관심을 주지 않기로 했다.
“스트라스에 연이어 우환이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마.”
나는 성의 없이 인사를 건네고 그를 지나쳐 갔다. 그런데 에드리히가 자연스럽게 동행을 하며 말했다.
“아무리 스트라스의 우환이 크다 한들 엘 파셔의 우환보다 더 심할까. 그놈은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모양이지?”
“…….”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걸었다. 몇 번이고 말을 걸어도 무시로 일관하자 에드리히가 살벌하게 입을 비틀었다.
“이거 무시당하는 건 재미가 없는데?”
에드리히가 불쑥 손을 뻗어 내 어깨를 붙잡으려 했다. 몇 번이나 그에게 팔이나 몸을 건드리는 것을 허락했지만 더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불쾌하게 돌아서며 팔을 떨쳤다. 날카로운 얼음기둥이 바닥에서 치솟았다. 에드리히는 뛰어난 검사답게 본능적으로 손을 떼며 뒤로 크게 물러났다. 기둥에서 흘러나온 극저온의 냉기가 하얗게 안개가 되어 넘실거렸다. 근처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시릴 정도다.
나는 노기를 담아 에드리히를 노려보았다.
“그간 우호적으로 행동했더니 내가 아주 우습게 보였던 모양이군. 네놈이 이 몸에 손가락 하나 댈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는 더 이상 참지 않고 몸속에 잠들어 있던 이종의 생명을 외부로 불러냈다. 아주 오랫동안 황금용을 밖으로 불러내지 않았다. 내가 지닌 용이 스트라스에 압박으로 작용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황금색 드래곤이 나의 부름에 응해 수백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본신을 그대로 드러내며 단숨에 하늘을 가득 채웠다.
나와 에드리히가 언성을 높이며 대치하는 것을 보고 양측의 기사들이 당장 검을 뽑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이 지상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순간, 특히 스트라스의 기사들은 그 자리에서 굳은 채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드래곤이 나의 노기를 똑같이 전해 받으며 허공을 향해 노성을 터뜨렸다.
우오오오오오.
미첼 아카데미 내의 모든 인간이 드래곤을 보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공포에 질려 귀를 틀어막았다. 이미 드래곤을 자주 접해왔던 엘 파셔의 기사들조차 안색이 퍼렇게 질렸다.
한참 만에 긴 메아리가 그쳤다.
“이건 대단하군. 솔직히 드래곤은 대공위를 수여하기 위한 구실일 줄 알았는데, 이런 것까지 진짜였단 말인가.”
모두가 딱딱하게 얼어붙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드리히만이 멀쩡하게 드래곤을 보며 자기 감상을 말했다. 에드리히도 한계를 뛰어넘은 소드 마스터다. 드래곤을 보고도 움츠러들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항상 상상도 못 할 경지에 올라 있군. 어서 스트라스로 돌아와라. 당신을 닮은 황금용은 스트라스의 상징이 될 것이다.”
“꺼져라. 더는 그쪽에 용무가 없으니.”
몇 번이나 반복되어 들은 요구가 이젠 지겹기까지 하다. 더 이상 화를 낼 가치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저놈과 맞붙어서 입씨름할까. 그런 생각을 하니 노기는 사라지고 그저 귀찮은 감정만 남았다.
에드리히는 금방 내 태도 변화를 감지했다. 그의 얼굴이 살짝 굳는 것이 보였다.
대충 하늘로 팔을 뻗어 드래곤을 불러들였다. 수백 미터의 거체를 자랑하던 드래곤이 순식간에 독수리 정도의 크기로 변하여 팔뚝 위에 올라앉았다. 원리를 파악할 수 없는 신비한 광경에 사람들이 다시 넋을 놓고 있었다. 드래곤을 데리고 나는 호위들에게 복귀를 명령했다.
“거기 멈춰.”
에드리히가 나를 향해 경고했다. 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에드리히가 등 뒤에서 커다랗게 노성을 터뜨렸다.
“거기 서라고 말했을 텐데! 당신은 약속을 지켜야만 해!!”
약속? 또 약속인가.
놈에게 겁탈당할 뻔했을 때 들었던 소리다. 그 일이 떠오르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팔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당시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더 이상 에드리히에게 무의미한 미련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이제는 정말 그와 할 이야기가 없었다.
에드리히를 뒤로하고 나는 그곳을 떠났다. 잠시 체르도와도 눈인사를 했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들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엘 파셔로 귀환할 날이 가까워졌다.
* * *
정원사가 정원에 한 가지 종류의 꽃만 빽빽하게 심어두었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가끔씩 이런 식으로 특별한 분위기를 낼 때가 있었다. 내 눈에도 정원의 경치가 제법 그럴듯했다. 붉은색 꽃이 멀리까지 피어 있는 것을 감상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에디.”
어린 에디가 약간 뒤떨어진 곳에서 걷고 있기에 손짓을 해서 곁으로 불러들였다. 가까이 다가온 에디는 여느 때와 달리 먼저 말문을 열었다.
“처음 형님을 뵈었을 때 피어 있던 꽃이군요.”
“그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에디를 정원에서 처음 거둬들인 것은 확실한데 그때 무슨 꽃이 피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상사화입니다. 사방이 유난히 붉기만 해서 잊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 나도 붉은 꽃이었던 것은 기억이 난다.”
미소를 지으며 에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에디는 내 손길 아래서 수줍게 웃고 목을 살짝 움츠리며 강아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다시 정원을 더 거닐었다. 에디가 조금 망설이다가 또 먼저 입을 열었다.
“형님……, 그럼 혹시 그때 저와 약속하셨던 것은 기억나십니까?”
“약속?”
내가 무슨 소리냐고 되묻자 에디의 얼굴이 순간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약간 고개를 숙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가엾은 동생을 괴롭히는 건 그만두었다.
“녀석. 내가 잊어버릴 리가 있느냐.”
에디가 그제야 고개를 다시 들었다.
나는 잠시 먼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멀리까지 뻗은 붉은 꽃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때도 지금과 똑같은 풍경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만약 네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너를 곁에 두고 소중히 여기겠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에디를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에디, 약속이다.”
* * *
잠에서 깨어나 멍한 눈으로 천장을 쳐다보았다. 간밤에 꿨던 꿈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앉은 상태로도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
잠시 뒤 하인을 불러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왔다. 나는 바로 지스카르를 찾았다.
그 사건이 있고 닷새가 지났다. 지스카르는 침상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치명상이었지만 내 마법으로 응급조치가 적절히 취해졌고 챠드 대신관의 신성력이 예상보다 강력해서 며칠 만에 상처 자체는 완전히 아물었다. 다만 신성력으로 치료한 상처는 쉽게 재발하고, 재발한 상처는 신성력이 잘 듣지 않기 때문에 만에 하나 상세가 악화할 가능성을 생각해서 절대안정을 취하라는 진단을 받았다.
게다가 아무리 신관에게 치료를 받았다 해도 이 정도로 큰 상처를 입으면 기력이 크게 떨어져 원치 않아도 병석에 누워 안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지스카르는 놀라운 체력으로 하루가 다르게 몸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지금도 멀쩡한 얼굴로 침대에 앉아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
“네놈은 절대안정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지스카르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아서 멀찍이 떨어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침대 앞으로 걸어가 가볍게 걸터앉았다.
“귀환 일정을 열흘 정도 더 늦춰볼 생각이다. 마차를 타는 것도 생각보다 체력을 소진하는 일이니까. 중립국에 며칠 더 머물렀다가 엘 파셔로 떠나기로 하지.”
“열흘은 너무 길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래 중립국에서 지체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자들이 안팎으로 속출할 것이다. 짐의 상태도 이젠 많이 좋아졌고, 그냥 예정했던 날에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를 부탁하마.”
“당장은 멀쩡해 보여도 자칫하다간 상처가 덧날 수 있어. 의심을 좀 받더라도 가능한 한 조심하는 게 좋다. 나 때문에 입은 상처인데 사람 죄책감 들게 만들지 말고.”
가볍게 그의 상처에 손을 올렸다. 지스카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 때문이 아니다. 스트라스 황제 때문이었지.”
“그래. 그 녀석 탓이긴 하지…….”
침대 위로 한쪽 무릎을 올렸다. 그대로 몸을 내밀어 지스카르의 어깨에 한쪽 팔을 두르고 끌어안아 보았다. 지스카르는 크게 놀란 눈치다. 수도 없이 물고 빨고 안았으면서, 이놈은 내가 먼저 해줄 때마다 매번 깜짝깜짝 놀란다. 사실 나도 하지 않던 짓을 해서 그런지 조금 낯설긴 했다.
코끝에 익숙한 체취가 맴돌았다. 잠시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로 가슴에 남은 상처를 만졌다.
“멍청한 놈.”
그냥 저도 모르게 그런 소리가 나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서 지스카르의 입술에 먼저 키스했다. 아직까지도 적응이 안 되는 듯 지스카르는 키스에 보조도 제대로 못 맞춰주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틀고 입술을 더 밀어붙였다. 따뜻하게 혀가 엉킬 때마다 묘한 고양감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입술을 떼고 떨어져 나왔다. 지스카르를 보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류 같은 거 보지 말고 제대로 쉬고 있어.”
“또 뭔가를 숨기고 있군. 무엇이든 짐에게 털어놓겠다 하였으면서.”
내가 키스할 때만 해도 넋을 놓고 있던 지스카르가 바로 정곡을 찔렀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이놈도 꽤나 눈치가 빠르다. 머리도 제법 잘 돌아가고, 대제국을 다스리는 군주로서 나무랄 곳이 없는 데다가, 아마도 소드 마스터들 사이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실력일 것이다. 의견이 갈리긴 했지만 나름대로 대화도 잘 통했다.
나는 아마 지스카르를 꽤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절절한 사랑 같은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듣기 싫은 이야기 억지로 들어주느라 심력이 빠진다며?”
“그 말은 취소하마.”
“뭐야, 네 녀석. 원래 그렇게 뻔뻔한 놈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 몸에게서 배워가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웃으면서 지스카르와 농담을 몇 마디 지껄였다. 잠시 뒤 그와 일별하며 나는 방을 나섰다.
“레이.”
지스카르가 뜬금없이 내 이름을 불렀다.
“자꾸 나가기 전에 사람 부르지 마라. 불길하잖아.”
나는 눈으로 웃어주고 문을 닫았다.
창밖으로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피곤해서 일찍 잠들 생각이니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미리 보초에게 명령해 두었다. 그런 식으로 호위를 전부 떨어내고 몰래 숙소 밖으로 나왔다.
나는 빠르게 움직여서 에반을 찾았다. 에드리히에게 납치당했을 때 에반이 몰래 내게 했던 이야기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꼭 해줄 이야기가 있다고 했었지. 에드리히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에반을 먼저 만나 정보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에반이 저녁 시간쯤 되면 홀로 식사하러 나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나는 전처럼 적당히 인적이 드문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납치하듯 에반을 안쪽으로 끌고 왔다. 에반은 깜짝 놀랐지만 내 얼굴을 보고 곧 평정을 찾았다.
“황태자 전하.”
“경이 일전에 했던 말에 관심이 생겼다. 에디에 대해 아는 대로 전부 이야기해.”
“…….”
에반은 자기 입으로 할 이야기 있다고 말한 주제에 정작 내가 전부 실토하라고 말하자 바로 입을 열지 않고 침묵했다. 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었다. 잠시 후 에반은 무언가 결심한 분위기로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해드리기 전에 황태자 전하께서 꼭 보셔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뭐지?”
“그걸 위해서는 먼저 스트라스로 가셔야 합니다.”
에반의 말에 나는 입을 비틀었다.
“한낱 평기사까지 이 몸을 우습게 볼 줄은 몰랐군. 그런 시시한 핑계로 나를 스트라스로 끌고 가보겠다고?”
“그런 뜻이 아닙니다. 보여드릴 것이 스트라스 황궁에 있기에 말씀드린 것입니다. 잠깐만 황궁에 들러주십시오. 당신이 황태자 전하라면 가능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에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금방 이해했다. 여기서 스트라스 황궁까지는 말을 타고 전력으로 달려도 최소 7일은 넘게 걸린다. 하지만 하루 만에 그 먼 거리를 넘을 수 있는 방도가 있다. 아베크 중립국에 설치해 놓은 대형 이동 마법진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마법진을 함부로 쓸 수 없도록 스트라스와 엘 파셔에서 경계를 하고 있지만 나 혼자 잠입하는 일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마정석이 1만 갈론 넘게 소모되는 문제도 있지만, 얼마 전 중립국의 귀족과 안면을 트면서 얻어놓은 물건이 있으니 그것도 문제 될 것이 없고.
무엇보다도 그 마법진은 내가 주춧돌 하나까지 골라가며 직접 완성한 것이다. 이 몸보다 그 마법진을 더 잘 운용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조금 무리를 한다면 스트라스 황궁에 잠시 다녀오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다.
“어찌하시겠습니까?”
문제는 이것이 함정일 가능성이다. 내가 저자의 무엇을 믿고 스트라스 황궁까지 들어간단 말인가.
“…….”
문득 떠올린 생각 때문에 나는 허탈한 기분에 빠졌다. 언제부터 스트라스 황궁을 방문하는 것이 적진 한복판에 들어가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 되어버렸지?
에반을 힘으로 사로잡아 고문해서 실토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입 안이 씁쓸했지만 스트라스 황궁에 잠입하는 것은 실제로 너무 위험한 짓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에반의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좋다. 내가 반드시 봐야 할 물건이라는 것이 뭔지 확인해 보겠다.”
하지만 어느새 내 입이 이성에 반하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레브노아드는 대외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충동적인 행동을 자주 했다.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되면 나는 항상 직감에 따랐다. 이번에도 필요한 행동이라는 직감이 왔다. 나의 직감은 대체로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 * *
날이 완전히 저문 뒤 행동에 나섰다. 에반이 묵직한 배낭을 메고 뒤를 따랐다. 저 안에 마정석 1만 갈론이 들어 있었다. 이 도시의 건물 백 채 정도는 살 수 있는 거금이 저 회색 배낭 속에 들어 있는 셈이다. 마법진 주위를 지키는 보초의 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잠입은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나는 마법진을 신중하게 살펴보았다. 본래 중립국에 숨겨둔 이동 마법진은 운용하는 데까지 대기 시간도 길고 여러 가지 제약이 걸려 있었다. 게다가 스트라스에서 아베크로 가는 것은 가능해도 아베크에서 스트라스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자칫 마법진을 통해 역으로 침략이라도 당하면 큰 낭패이니까.
하지만 오직 나만은 모든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몇 가지 장치를 해두었다.
가지고 온 마정석의 절반을 네 방위에 쏟아붓고 정신을 집중해서 4중 영창을 시행했다. 네 종류의 특수한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면 즉각 이동 마법진을 발동시킬 수 있다. 세상에 4중 영창 마법사는 오직 나 혼자뿐이다. 따라서 이 방법을 쓸 수 있는 자도 나밖에 없다.
어둑한 신전의 내부가 갑자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주변의 풍경이 변했다. 황금색 벽으로 둘러싸인 밝고 너른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동 마법을 처음 경험해 본 것도 아닐 텐데, 에반이 경악해서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니, 말도 안 돼. 마법사 서른 명이 꼬박 나흘 동안 준비 작업을 거쳐서 간신히 이동 마법진을 기동시켰는데……! 게다가 스트라스로의 역이동은 단순한 4중 영창 마법사여서도 안 되고, 마법진의 숨겨진 설계까지 완벽히 이해해야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은 정말로 레브노아드 황태자 전하시군요.”
혼자 중얼거리던 에반이 나를 보면서 망연하게 말했다.
“이제 와서 이 몸을 의심하는 소리를 해?”
대륙의 반절을 가로지르는 대마법을 구현한 탓에 솔직히 꽤 지쳤다. 하지만 나는 속내를 숨기며 여유 있는 척 에반에게 고소를 지어주었다.
주위 풍경이 무척 낯익었다. 황성 외곽에 지하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이동 마법진을 만들어두었다. 이것 말고도 내가 실험 삼아 만든 각종 마법진이 주변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수십 년 만에 정말로 스트라스 황궁에 돌아왔다. 하지만 감상에 잠길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바로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에반은 군말 없이 앞장섰다. 스트라스 황궁 지하에는 비밀통로가 많았다. 고대에 만들어진 것도 있었고, 조금 전에 보았던 지하 공간처럼 내가 황태자이던 시절에 새로 만든 길도 있었다.
에반은 그 길을 어려움 없이 지나쳤다. 에드리히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면 오직 황족에게만 허락된 비밀통로를 이렇게 완전하게 꿰고 있을 수가 없다. 에드리히는 대체 에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20분 정도 빠르게 걸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작은 지하 공간이었다. 이 장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에반은 굉장히 침중해져 있었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고 내가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
천천히 작은 석실 안으로 들어갔다. 석실 가운데에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관이 있었다. 나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내디뎌 결국 관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 레브노아드의 시체가 있었다.
이십대 중반의 레브노아드. 키도 10센티 이상 크고 체격도 다소 크지만 나와 완벽하게 똑같은 얼굴을 한 싸늘한 시체였다. 순간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아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본능적인 역겨움에 소리라도 지를 뻔했다.
“……!”
나는 이를 악물고 간신히 평정을 되찾았다. 홱 에반을 노려보며 물었다.
“저건, 내 시체인가? 황가의 무덤에 묻혀 있어야 할 텐데, 저게 왜 이런 곳에 있지?”
에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는 숨을 고르며 다시 관으로 걸어갔다. 자신의 시체를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역한 일이었다. 시체는 특별히 마법적 조치를 취하여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부패하지 않고 완전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안색이 약간 창백할 뿐, 그냥 잠들어 있는 것만 같다.
“누가…… 이런 역겨운 짓을 한 거냐?”
에드리히인가.
그의 광기를 떠올리며 나는 쉽게 범인을 유추해 냈다.
“선황 폐하께서 이곳을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에반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나는 에반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면 에드리히는 내가 죽고 몇 년은 지나서 황제가 되었다. 내 시체를 이런 식으로 보존할 정도의 권력이 그때는 없었다.
“선황께서…….”
“선황께서 만드시고 폐하께서 물려받으셨지요.”
에반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폐하께서는 당신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럽게 독살당한 뒤로, 평생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단순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지하 무덤의 기이한 공기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선황께서는…… 왜 이런 기행을 하셨단 말인가.
“황실의 은밀한 속사정입니다. 저 같은 비천한 놈이 감히 끼어들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당신께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게 해줄 이야기는 모두 에드리히에게서 들었던 것이라고 했다. 에드리히는 에반을 더러운 벌레 취급했다. 하지만 그를 학대하면서도 동시에 애매하게 특별대우를 하며 어딜 가든 대동하고 다녔고, 기분이 좋을 때면 자신에 대해서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에반이 오래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작은 내가 독살당한 직후부터였다.
* * *
에드리히는 레브노아드 황태자를 암살한 혐의로 황궁 지하 감옥에 처박혔다. 그가 한 짓이 아니었다. 찻잎에 독이 들어 있는 줄 그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황궁에 도착하기도 전에 격분한 체르도에게 목이 꺾일 뻔했다.
형님이 죽었다는 사실도 어쩐지 거짓 같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보호 아래 있어왔던가. 까마득한 옛날부터 형님을 두려워하고 또 경애했다. 에드리히의 세상은 완벽하게 레브노아드 황태자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매일 하는 일은 형님을 우러러보는 것이며, 그의 뜻을 따르는 것이며, 결코 그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었다.
혹시 전부 꿈은 아닐까. 하지만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이 레브노아드의 죽음이 현실임을 증명했다.
“형님…….”
형님이 있었다면 누가 내 동생을 핍박하느냐고 호통을 치며 상냥하게 안아주었을 텐데. 레브노아드를 독살한 죄목으로 감옥에 갇혔으면서 에드리히는 오래 길든 대로 형님에 대해서 생각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지 사흘째 되던 날에 황제가 신하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에드리히는 황제가 무시무시하게 분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제가 압도적인 재능을 타고난 레브노아드 황태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황제에게 미움을 받는 만큼이나 그 사실을 절실하게 느껴왔다.
“고초가 많았구나. 아무 증거도 없이 황족을 감옥에 가두다니 발칙한 것들!”
그런데 황제는 전혀 예상 밖으로 상냥한 소리를 하며 에드리히를 감옥에서 빼내주었다. 뒤늦게 에드리히를 위한 변론이 시작되었다.
레브노아드에게 타준 찻잎은 중립국을 출발할 때 하인이 준비해 둔 것이고, 에드리히가 직접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황제는 에드리히의 결백을 강력하게 주장했으며 당장 진범을 찾아야만 한다고 노성을 터뜨렸다. 심지어 에드리히에게 진범을 찾으라고 수사권까지 넘겨주었다.
“폐하.”
황제가 자신을 믿어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신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단둘이 되었을 때 황제가 불쑥 말했다.
“당장 결혼부터 해라.”
“예?”
“황자비와 빈을 즉각 다섯까지 들이고, 자식을 가능한 한 많이 낳아라. 이게 전부 황족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다. 알았느냐? 새끼를 최대한 많이 쳐 놔.”
황제가 차갑게 말하며 바로 테이블 위의 술병을 들어 들이켜기 시작했다. 에드리히는 황제가 자신을 믿어준 것이 아님을 금방 깨달았다. 더 이상 남은 황족이 없기 때문에 너 같은 놈에게 황위를 넘길 수밖에 없게 되었다. 황제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예. 폐하…….”
에드리히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황제가 시키는 대로 종마처럼 아이를 가질 준비를 했다.
에드리히는 한편으로 레브노아드 암살 사건의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켈러웨이 대공이 진범임을 밝혀냈다. 대공은 더 이상 황족이라고도 할 수 없는 먼 핏줄이지만, 레브노아드가 사라지고 에드리히가 범인으로 몰리면 자신에게도 황권이 올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범행을 계획했다.
진범을 찾아냈지만 황제의 반응은 싸늘했다. 아무리 완벽한 물증을 가져와도 사람들은 에드리히를 믿지 않았다. 레브노아드가 사망함으로써 에드리히는 유일한 황위 계승자가 되었다. 레브노아드의 죽음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이 에드리히 11황자다.
어쩌면 사람들은 레브노아드 황태자가 캘러웨이 대공 같은 편협하고 볼품없는 자에게 허무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좀 더 특별한 자가 범인이기를 원했다. 그래서 캘러웨이 대공이 범인임이 명백함에도, 진실을 증명하는 무수한 증거를 앞에 두고도 그 전부를 외면했다.
멋모르는 백성들까지 캘러웨이 대공은 희생양일 뿐이고 에드리히가 황제가 되기 위해 레브노아드를 죽였을 것이라고 숙덕거렸다.
위대한 성황이 될 것이 분명했던 레브노아드가 죽고, 갈 곳 없는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사람들은 레브노아드를 끌어내리고 감히 그의 자리를 차지한 에드리히에게 모든 원망과 증오를 쏟아부었다.
황제는 레브노아드가 사망한 직후부터 하루 종일 술만 마셨다. 원래도 건강한 편은 아니었는데 술에 의존하면서 급속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황제는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에드리히를 손톱만큼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제국의 앞날을 생각해서 그를 황태자로 만들고, 황위를 넘겨줄 준비를 했다. 에드리히를 권좌에 앉혀 후계를 튼튼히 하는 것이 스트라스를 위한 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굳은 결심이 깨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황제는 핏발이 선 눈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했다. 레브노아드를 위해 복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머리를 쥐어뜯고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황제는 악귀 같은 얼굴을 하고 에드리히의 앞에서 술병을 내던졌다.
“역시 그때 네놈을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죽여버렸어야 했어! 영민한 레비. 가장 빛나던 나의 아들! 이깟 황위가 다 뭐라고 짐이 너의 비참한 죽음을 묻으려 했을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장이라도 에드리히를 쳐 죽이라고 명령할 것 같던 황제는 한참 만에 이를 부득 갈면서 그를 내버려두고 돌아섰다. 마지막 남은 이성이 황제를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들끓는 감정을 완벽히 다스리지는 못했다. 황제는 매일 레브노아드와 에드리히를 비교하고 언성을 높였다.
에드리히는 조금이라도 권좌에 걸맞은 존재가 되어보고자 그간 소홀했던 검을 들었다. 원래 재능이 있던 그가 소드 마스터가 되기까진 순식간이었다. 제국의 황태자가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 온 나라가 환호하고 축복할 일이었지만 황제는 오히려 가증스럽다고 그를 노려보고 떠났다.
레브노아드는 최초의 4중 영창 마법사였고, 조금만 더 검에 관심을 쏟았다면 소드 마스터도 충분히 가능했을 거라고 여겨졌다. 모두가 위대한 가능성을 품었던 레브노아드가 죽고 에드리히가 살아남은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에드리히의 성장은 전혀 축복할 일이 아니었다.
에드리히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날붙이를 태양 아래 비춰 보았다. 형님이 있었다면 소드 마스터가 된 그를 보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겠지. 아니면 위험한 놈이 되었다고 죽이려고 하셨을까.
“레비 형님…….”
레브노아드 황태자가 죽었지만 스트라스는 여전히 그의 나라였다. 나라 안의 모든 기사가 레브노아드의 충신이고, 유능한 관리들은 전부 그가 직접 발굴한 인재이며, 시종과 하인들은 성심을 다해서 그를 보필하던 자들이었다.
레브노아드 황태자는 압도적인 기량과 매력적인 화술로 나라 안의 사람들을 모조리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였다. 황태자는 여론을 다루는 실력마저 뛰어났다. 그는 수많은 전투에서 무패 신화를 세우고 최초의 4중 영창 마법사가 되는 등 실제로 위대한 업적을 다수 이룩해 냈다.
그런데 그냥 둬도 대단하다고 칭송받을 공적을 더욱 과장하고 온 나라에 선전해서 만인지상인 황제와 휘하의 신하들, 일반 백성들에 뒷골목의 건달까지 자신의 열렬한 숭배자로 만들었다.
물론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들도 존재했다. 그럴 때는 자비 없이 누명을 씌워 죽여버리거나 변방으로 쫓아내는 방식으로 자기 눈앞에서 치워버렸다. 그는 스트라스를 그야말로 뿌리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놓았다.
이 나라에 레브노아드의 자리를 대신 꿰찬 에드리히를 곱게 봐줄 자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에드리히에게 정치사를 가르치던 교수가 이런 것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그에게 화를 냈다. 한 줄만 읽고도 순식간에 책의 핵심까지 파악하던 황태자 전하는 어디로 가셨냐며 그가 보는 앞에서 진심으로 눈시울을 적셨다.
체르도를 비롯한 황태자 직속 친위기사들도 에드리히가 주군을 독살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수가 복수를 결심하는 대신 에드리히에게 굴복하고 충성을 맹세했다.
황제가 스트라스의 미래를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그를 황태자로 만들었듯이, 그들도 제국의 평안을 위해서 에드리히에게 무릎을 꿇었다. 정확히는 그것이 레브노아드 황태자의 유지일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체르도와 기사들은 레브노아드를 위해서 에드리히에게 충성하기로 결심했다. 증오를 삼키고 머리를 조아리는 기사들의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 * *
“어째서 레비가 죽고 너 같은 것이 살아 있단 말인가! 신이 계신다면 스트라스에 이렇게 무정하게 구실 수는 없다!”
그날도 술에 취한 황제가 에드리히를 저주했다. 그러다 갑자기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에드리히에게 따라오라고 명령했다. 에드리히는 표정 없이 그를 따랐다. 레브노아드가 죽은 뒤로 제대로 표정을 지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으슥한 지하 통로를 지나 이윽고 황제는 작은 석실에 도착했다. 황제가 고주망태가 되어 껄껄 웃으며 석실 가운데의 관을 쓸어내렸다. 그는 관을 들여다보며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까지 했다.
에드리히는 조심스럽게 관을 확인했다. 황가의 무덤에서 안식에 들었어야 할 형님의 시신이 특수한 처리를 거쳐 살아 있을 때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곳에 누워 있었다.
“폐, 폐하! 이런……!”
황제의 기행에 에드리히는 크게 놀랐다. 하지만 놀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레브노아드의 시체가 안치된 석실은 얼마 안 가 에드리히에게 안식처가 되었다. 황제가 없을 때마다 그는 몰래 석실을 찾았다. 가끔 견디기 힘들 때면 그는 형님을 찾아서 도움을 구해보았다.
“도와주세요, 레비 형님. 당신이 있었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당신이 없으면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언제 형님에게 죽임을 당할까 전전긍긍했지만, 아무것도 아닌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던 것은 형님이 유일했다. 에드리히는 자연스럽게 형님만을 의지하고 동경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졌다. 유일하게 그를 보호해 주었던 사람, 그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었던 사람. 세상에서 가장 두려웠지만 가장 상냥했던 형님.
그러나 죽은 자에게서 대답이 돌아올 리 없다. 그래서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황제와 체르도가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테지.
* * *
황제의 술 의존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술을 너무 마셔 정사를 돌보기 어려울 만큼 건강이 망가졌고, 정신도 온전치 못했다. 그는 매일 신을 저주했다. 그리고 끔찍하게 후회했다.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이보다도 더 후회되는 일은 없었다. 레브노아드가 살해당했을 때 추악한 배신자의 목을 자르고 피를 쏟게 하여 복수를 해야 했는데!
스릉.
“에드리히!”
늦은 밤 황제의 침소에 불려왔을 때, 황제가 갑자기 에드리히에게 검을 휘둘렀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에드리히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황제의 검을 피하지 못할 리 없었다. 하지만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검을 그날따라 피하지 못했다.
검이 얼굴과 턱을 깊게 베고 지나갔다. 끔찍한 고통이 엄습하여 에드리히는 바닥에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요란한 소리를 듣고 보초를 서던 기사들이 내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으나 이내 표정 없이 기립하여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았다. 기사들과 놀란 시녀들, 모두가 조용히 에드리히가 살해당할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드리히는 피가 철철 흐르는 얼굴을 감싼 채로 뭔가 납득했다. 고통이나 다른 감정보다도, 드디어 때가 되었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이제 죽는 건가. 죽으면…… 형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황제는 칼을 든 채 한참 씩씩거리기만 할 뿐 결국 그를 죽이는 것을 포기했다. 지금 유일한 후계자인 에드리히가 죽으면 스트라스에 얼마만 한 재앙이 들이닥칠지, 이지가 흐려진 상태에서도 그 사실을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다.
비틀거리며 끝내 돌아서는 황제를 보며 에드리히는 얼굴의 상처를 눌렀다. 황제가 황태자를 살해하려 한 초유의 사태에 모두가 침묵했다. 에드리히도 냉랭한 시선 속에서 당연한 듯이 침묵을 지켰다.
그날 이후 황제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수많은 합병증을 얻어 병석에 누워 고생하다가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임종에 들었다. 임종 직전, 황제는 유언을 남기기 위해서 에드리히를 불러들였다.
십여 명의 고관대작들과 시종들이 침중한 분위기로 늘어서 있었다. 에드리히는 어렵게 황제의 곁으로 다가갔다.
황제가 검버섯이 잔뜩 핀 마른 손을 간신히 들었다. 손끝이 에드리히의 얼굴에 남은 상처에 닿았다. 에드리히는 당혹스럽고 어색해서 물러나고 싶었으나 꾹 참고 그의 손길 아래에 있었다. 황제가 에드리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를…….”
그 순간 에드리히는 다정한 한마디 같은 것을 기대해 버렸다.
어리석게도.
“너를 찢어……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생의 마지막 순간, 황제가 가진 힘을 전부 짜냈다. 악귀와 같은 얼굴로 에드리히를 저주하고 그는 숨을 거두었다. 황제의 손이 툭 침대에 떨어졌다.
내실이 정적에 가득 찼다. 황제의 임종을 지켜보던 고관대작들의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시선들이 에드리히에게 꽂혔다.
“에드리히 전하, 폐하께서 조금이라도 편히 영면에 드실 수 있게 자리를 피해주십시오.”
황제의 고통스러운 임종을 본 늙은 시종장이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황태자에게 감히 축객령을 내렸다.
선황이 죽고 에드리히는 스트라스에서 가장 높은 자리, 황좌에 올랐다. 지친 시선으로 수백의 대신과 기사를 굽어보았다. 건국 이래로 가장 차가운 대관식이었다.
황제가 되던 날 밤 에드리히는 지하무덤을 찾았다.
“형님. 당신이 있었다면 홀로 남겨진 저를 불쌍하게 생각하며 손을 내밀어주셨겠지요. 레비 형님, 저를 가엾게 여겨주십시오. 제발……. 제발 저를 좀 도와주세요.”
그는 절박하게 두 손으로 투명한 관을 붙잡았다. 선황이 그랬듯이 그도 차갑게 식은 시체를 상대로 말을 걸고 소리 질렀다.
“제가 배신하지 않으면 영원히 저를 곁에 두고 아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까. 나는 배신하지 않았는데. 당신도 내가 배신했다는 생각하는 겁니까. 어서 돌아와 주세요. 당신은……, 당신은 약속을 지켜야만 해!!”
고통스러운 외침을 누구도 들을 수 없었다.
다음 권에서 계속
두 개의 제국, 제국의 노예 5권
지은이: 레브노아드
발행처: 대원씨아이(주)
ⓒ 2021 레브노아드 / 대원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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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of Destiny, MoD(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