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41/43)

21.

세상에 위대한 혈통의 자손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적의 음모로 인해 당연히 누려야 할 지위와 영광을 얻지 못하고 적국에 고립되어 고난을 겪어야 했다. 마지막 남은 위대한 혈통을 끊기 위해 수많은 암살 시도가 따랐다. 하지만 그는 결코 꺾이지 않았고 강력한 힘까지 손에 넣게 되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대마법사였다.

또한 드래곤을 신하로 거느린 자였고, 신성을 그 몸에 품고 있었다.

적국의 황제가 그의 신성을 알아보고 작위와 영지, 금은보화를 수없이 하사하며 그를 붙잡아두려 했다. 하지만 그는 운명처럼 결국 자신이 태어난 땅으로 되돌아왔다.

조국으로 돌아왔으나 그는 긴 어둠을 걸어야 했다. 그의 신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척박한 북방의 땅에서 고난을 겪을 때도 그랬듯이,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녹색이 가득한 여름이 되었다. 마침내 그는 위대한 스트라스의 황제가 되었다.

“와아!”

이야기꾼에게 이야기를 듣던 소녀가 재미있었다고 손뼉을 쳤다. 잠시 일하던 것을 멈추고 이야기를 듣던 아낙과 중년 사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들어 거리에 이야기꾼의 수가 많아졌다. 그들은 새 황제의 일화를 미화시켜 거리에 널리 알렸다. 이야기꾼이 거리의 사람들에게, 부모는 아이들에게, 아이들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서 금방 온 나라 안에 퍼져 나갔다.

그 옛날, 스트라스의 백성들은 레브노아드 황태자를 열렬히 사랑했고 숭배했다. 이십 년이나 시간이 흘렀으나 아직도 그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남아 있었다. 레브노아드 황태자의 유일한 직계 혈통이 새 황제로 즉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백성들은 무작정 그 사실에 기뻐했다.

그가 황제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자들이 죽었는지, 그 잔인한 숙청이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것을 백성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선전에 정신이 팔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두려운 숙청 행위는 전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심지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와아아! 황제 폐하!”

“황제 폐하 만세!”

새 황제가 즉위식을 마치고 거리로 나와 백성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뒷거리의 비렁뱅이들까지 한꺼번에 거리로 몰려나와 환호하고, 소수는 자발적으로 꽃을 뿌렸다.

새 황제는 특별한 혈통을 타고난 자답게 위엄이 넘치며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황금색 머리카락이 황관을 쓰지 않았음에도 황관을 쓴 듯 그의 고귀함을 증명했고, 밝은 녹색 눈동자는 그가 스트라스 그 자체임을 알리는 것 같았다.

나이 지긋한 자들은 새 황제의 실물을 보고 다시 한번 크게 감동했다. 레브노아드 황태자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전부가 하늘의 뜻이라고 연방 탄사를 멈추지 못했다.

구경꾼들이 몰리고 충분히 열기가 올랐을 때 새 황제가 황금색 드래곤을 하늘로 올려보냈다. 작은 새와 같았던 용이 순식간에 크기를 키워 천공을 가득 채웠다. 거대한 그림자가 거리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고 딱딱하게 굳었다. 자칫하다가 저 거대한 용에게 밟히기라도 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거리가 조용해졌을 즈음 황제가 손을 뻗어 말했다.

“누구도 드래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위대한 이능을 가진 용은 짐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스트라스를 수호할 것이다.”

황제의 명령에 따르듯이 거대한 드래곤이 천천히 창공을 유영했다. 시간이 지나자 긴장했던 좌중도 긴장을 풀었다. 그들은 거대하고 신비한 생명체에 정신을 빼앗겼다. 드래곤은 한참 하늘을 날다가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꼭대기에 내려앉았다.

저 거대한 황금색 드래곤은 이제 스트라스의 상징이 될 것이다.

강력하며 신성한 새 황제가 즉위하였으니 이 나라는 이제 위대한 대제국으로 발돋움할 것이다. 모든 백성은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화려한 즉위식 뒤에는 흥겨운 축제가 이어졌다.

* * *

정말 오랜만에 아베크 중립국의 낡은 별장을 찾았다. 그새 계절이 바뀌어 별장은 한층 더 낡았고, 빛바랜 갈색 지붕 위로 여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호위기사들을 이끌고 별장 앞으로 걸어갔다. 지스카르와 엘 파셔 쪽 기사들이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망토를 벗자 크리스티안, 던필 등 엘 파셔의 기사들이 평소보다 깊이 머리를 숙였고 오랫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예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5년 남짓 시간이 걸렸다. 콘라드 황태자와 수많은 황족을 숙청하고, 에드리히의 죽음을 발판으로 마침내 스트라스의 정점에 섰다.

나는 황위에 올라 자신을 짐이라 칭했다.

“대관식 때 보내온 축하선물들 잘 받았다. 사절단의 공손한 태도도 마음에 들었고, 특히 그 황금잔이 짐의 마음에 쏙 들더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스카르의 안목을 칭찬했다.

“200년 전에 발굴된 사연이 깊은 구왕국의 황금잔이다. 틀림없이 네 취향이라고 생각했지.”

“단순한 황금은 좀 지겹거든.”

여름 볕이 많이 따가웠다. 밖에서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뻐근한 목덜미를 누르며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짐의 정통성을 따지고 드는 놈들은 이제 거의 처리된 것 같다. 뭘 모르는 백성들은 처음부터 대부분 짐의 편이었지. 일부러 여론을 조작하기도 했지만 백성들 반응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열광적이더군.”

시찰을 나갈 때마다 환호하며 따라붙는 시민들을 떠올리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너를 칭송하는 이야기에 짐을 그런 식으로 끼워 넣어야 했더냐.”

지스카르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끼고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엘 파셔의 황제가 이 몸을 붙잡으려고 온갖 공을 다 들였지만 결국엔 실패했다고 슬쩍 이야기에 끼워 넣었다. 백성들은 역시 엘 파셔 따위는 스트라스에 견줄 수 없다며 좋아했고 엘 파셔에선 감히 황제의 체면을 깎았다고 분기탱천 중이었다.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잖아?”

“그렇군. 진실은 소중한 법이지. 너를 둘러싼 소문에 잘못된 정보가 몇 가지 있던데 서둘러 정정해 주어야겠군.”

“원래 소문이라는 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라 거짓도 조금씩 섞이고 바로잡기가 어려운 법이다.”

“걱정 말거라. 짐이 여러 사람의 입을 좀 더 보태서 바로잡아 볼 테니.”

“짜디짠 녀석 같으니. 그 구절만 빼주면 되는 거지?”

나는 지스카르를 보며 쳇 혀를 찼다. 가끔이라도 이 몸을 이겨 먹는 놈은 흔치 않은데 말이다.

뒤돌아서서 그를 마주 보았다.

뭔가 감회가 새로웠다. 키가 갑자기 크면서 그와 눈높이가 비슷해진 지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엘 파셔 황제인 그와 권력과 지위까지 같아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지스카르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았다.

“황제 폐하인가.”

지스카르가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네가 스트라스를 온전히 집어삼키는 데 걸린 시간이 딱 5년이구나.”

에드리히가 매일 사람을 죽였을 때 그는 폭군이었다. 하지만 수백 명의 사람을 참살하면서도 나는 위대한 성군이 될 것이라고 칭송받고 있었다. 눈속임, 사기, 허세 같은 것으로 아랫것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건 나의 가장 큰 특기다. 물론 허세는 허세로 끝내지 않고 이 손으로 모조리 현실로 만들어줄 것이다.

“네게도 인기가 많아지는 비결을 알려주랴?”

“이미 방법을 들었지만 짐은 따라 하기 힘들 것 같구나.”

“하긴 너처럼 고리타분한 놈이 따라 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지. 이거 인기가 많아지긴 글러버렸는걸.”

“짐도 인기가 아주 없지는 않다.”

“네놈이 점점 더 뻔뻔해지는구나. 왜 이렇게 귀여워졌어?”

나는 웃으면서 침대로 걸어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지스카르도 근처에 앉았고 나는 평소처럼 지난 이야기들을 했다. 얼굴에 웃음기는 가라앉았다. 황위를 손에 넣기까지 그다지 좋은 일은 별로 없었다. 내가 걸어온 길에 피와 죽음이 잔뜩 얼룩져 있었다.

“에디가 다행히 잠깐이나마 의식을 찾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네가 걱정된다고 말했더니 그가 웃더구나. 흔히 해줄 수 있는 이야기였는데도……. 그것만으로도 그는 마지막 순간에 행복하게 미소를 지었다.”

“…….”

“에디가 죽는 날 에반이 7일 밤낮을 울었다. 황궁의 젊은 기사들이 붕어한 황제를 위해 스스로 검은 망토를 둘렀다. 에디는 강력한 소드 마스터였고 그의 강력함을 흠모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자들이 틀림없이 존재하였음에도 그들을 귀하게 여기지 못한 것이 에디의 가장 큰 불행이었다.”

나는 한숨을 살짝 쉬었다.

“체르도는 짐의 명령으로 은퇴했다. 표는 내지 않았지만 크게 좌절한 모습이었다. 서운하지 않게 가끔씩 찾아주려고.”

가장 사랑하던 동생과 가장 아끼던 측근을 모두 잃었다. 처음부터 그들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결정했으므로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로지 앞으로 가야 할 길만 보았다.

지스카르에게 최근의 상황을 계속 이야기했다. 하지만 가장 민감한 이야기는 아직 하지 않았다. 모르는 척 지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굳이 그 화제를 입 밖으로 꺼냈다.

“소식은 들었겠지만 대관식 후에 바로 황후 책봉식을 치렀다. 바레스노엘 공작가의 독녀이며 내 약혼녀. 너도 잘 아는 그녀가 스트라스의 황후가 되었다.”

지스카르는 평소처럼 무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 시커먼 분노가 들끓고 있음을 금방 알아보았다. 그가 용케 속마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항상 부인을 얻고 싶다고 말했지. 드디어 원을 이루었구나.”

“글쎄다. 좀 복잡한 기분이긴 하군…….”

나는 잠시 눈을 들어 위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짐이 너를 이렇게 아끼게 될 줄 알았으면 결혼은 포기하고 평생 엘 파셔 황궁에 처박혀서 너랑 뒹굴고 사는 건데 말이다. 대공가에 안주인도 없고 집안 꼴이 아주 웃겼겠지만 뭐 어떤가.”

“…….”

“하지만 스트라스의 권좌에 앉은 이상은 그런 식으로 우스운 꼴을 보여줄 수는 없지. 자클린 황후는 대단히 유능한 여인이다. 그녀는 짐의 훌륭한 협력자가 될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그를 보았다. 몸을 앞으로 내밀며 지스카르의 턱을 다소 거칠게 쥐고 똑바로 나를 마주 보게 만들었다.

“어떤가. 이참에 짐이 한 가지 제안을 하마. 네가 그토록 짐을 사랑한다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히는 한이 있더라도 너를 사내 후궁으로 삼아줄 테니 지금 당장 짐의 곁으로 오겠느냐?”

지스카르는 당혹스럽게 미간을 찡그린 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그의 턱을 뿌리치듯 놓았다.

“괘씸한 놈. 네놈도 못 할 일을 감히 짐에게 요구해?”

엘 파셔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공공연하게 지스카르의 연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말이 좋아서 연인이지 사실 나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 정부였다. 그간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내심 정부 취급 받는 것이 아주 자존심 상하고 불쾌했다. 놈이 엘 파셔의 황제인 것에 비하면 이 몸은 고작 대공에 불과했고 가진 힘이 없어서 그저 현실에 맞춰 안주했을 뿐.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지스카르를 특별하게 생각한 건 사실이다. 그러니 평생 정부 취급을 받더라도 엘 파셔에서 살겠다고 말했던 것이고.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만 화제를 바꾸려고 했다. 그때 지스카르가 내 손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래, 언젠가 짐이 책무를 다하고 헬무트에게 무사히 황위를 넘겨주는 날, 너의 곁으로 가 후궁이 되어주마.”

“뭐?”

나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놈을 쳐다봤다.

“그리되면 온종일 네 생각만 하면서 넋을 놓고 살아도 짐을 욕할 자는 없겠구나. 상상만으로도 몸이 다는군. 매일 너의 곁에서 네 몸을 즐겁게 해줄 생각만 하면서…….”

녀석이 잠시 상상에 잠기더니 대뜸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후궁도 나름의 권한과 의무가 있고 황제와 잠자리만 하는 건 아니거든.”

놈이 모를 리가 없는 사실을 지적하며 나는 실소를 지었다. 녀석이 옷을 벗기는 것에 협조하다가 습관적으로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입술에 키스했다. 지스카르는 한 손으로 날 지탱해서 안고 혀를 겹쳤다. 그러며 다른 손으로 셔츠와 바지까지 전부 벗겨냈다.

계속 입을 맞추며 이번엔 내가 지스카르의 옷을 벗겼다. 더듬거리며 셔츠의 단추를 반쯤 풀었을 때 지스카르가 마음에 안 찬다는 분위기로 내 손을 밀어내고 그대로 확 밀어붙여 침대에 쓰러뜨렸다. 입술을 바짝 밀착시키고 혓바닥을 굴려대며 자기 옷은 스스로 벗었다.

“하아.”

입 안을 훑으며 떨어지는데 뜨뜻한 숨결이 코끝에 확 닿았다. 나는 키스만으로 살짝 힘이 빠져 있었다. 늘어져 있는 나를 지스카르가 위에서 덮치고 귀와 목, 어깨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혀를 내서 살갗을 깊게 핥고 입술을 대서 빨아올린다. 조금 간지러워 지스카르의 어깨를 잡고 밀어내자 녀석이 두 팔을 각각 잡아서 침대에 가볍게 눌렀다.

지스카르는 천천히 아래로 더 내려왔다. 그리고 유두를 입에 물고 쪽쪽 한참 빨아댔다.

“으, 흣…….”

팔을 붙들린 상태였기에 나는 팔 대신 허리를 얕게 띄우며 간지러운 자극을 견뎠다.

지스카르가 입을 떼고 물러났다. 오랫동안 빨렸던 유두 한쪽만 바짝 곤두서 있었다. 진짜 못 볼 꼴을 봤다 싶어 벌게진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지스카르는 마치 걱정하지 말라는 듯 반대쪽 유두를 혀끝으로 핥아 올렸다.

“으.”

괜히 욕을 하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지스카르는 버둥대려는 나를 능숙하게 짓누르고 남은 유두도 충분히 빨았다. 나는 허리를 조금씩 떨며 숨을 헐떡거렸다.

한참 만에 떨어져 나오며 지스카르가 물었다.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지?”

“어디서 헛소리를…….”

“몸이 뜨거워졌다만.”

젠장, 어디 그것뿐이겠나. 긴장한 사타구니에 살짝 진땀까지 배어 나왔다.

이놈의 남색이라는 게 기분이 좋으면서도 창피하다. 욕이 나올 것 같으면서도 격렬하게 몰아붙이면 다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쾌락에 빠져들곤 했다.

지스카르가 손에 향유를 듬뿍 묻혀 바로 다리 사이로 손을 뻗었다. 입구에 향유를 충분히 묻히고는 이내 검지와 중지를 아랫구멍으로 지그시 밀어 넣었다. 나는 흠칫 몸을 굳히며 다리를 움츠렸다. 지스카르는 능숙하게 구멍을 쑤시고 벌려내며 내벽의 긴장을 풀어냈다.

“흐읏…….”

손등으로 입술을 누르며 한숨을 토했다. 신음 대신 뜨거운 숨이 흘러나왔다. 아래쪽 구멍도 점점 열기로 뜨거워졌다. 흥분한 속살이 스스로 조이면서 깊숙이 쑤시고 들어오는 손가락을 쪽 빨아들였다. 그 감각이 너무 적나라하다. 나는 눈까지 질끈 감았다.

지스카르는 충분히 풀어줬다고 여겼는지 손을 빼냈다. 나도 겨우 움츠린 다리에서 힘을 뺐다.

그는 나를 정중히 안아서 엎드리게 하고 엉덩이만 살짝 들어 올렸다. 나를 희롱하는 동안 놈의 중심이 무섭게 발기해 있었다. 지스카르가 흥분을 참지 못해 그대로 몸속에 냅다 찔러 넣어버릴까 봐 조금 긴장했다. 하지만 지스카르는 자기 성기에도 향유를 바르고 천천히 성기를 밀어 넣었다. 충분히 풀어지고 질척하게 젖은 구멍이 거대한 살덩이를 수월하게 받아냈다.

놈의 귀두가 구멍 가장 안쪽에 닿았다. 뒤를 한계까지 열어서 놈의 것을 다 삼키고 나면 항상 기분이 야릇했다. 나는 다시 길게 한숨을 쉬었다.

지스카르가 허리를 잡고 부드럽게 성기를 박았다. 묵직한 성기가 젖은 점막을 치덕치덕 눌러댔다. 나는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던 허리에 조금씩 힘을 주었고 이내 바짝 긴장한 채로 비틀어댔다.

“하아, 아…….”

몸이 점점 예민해지며 달아올랐다. 부드럽게 허리를 눌러 쾌감을 이끌어내던 지스카르가 슬슬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딱 아쉬웠던 타이밍에 지스카르가 가장 깊은 곳까지 거칠게 내리찍었다. 나는 고개를 확 치켜들며 자지러졌다.

“흣, 흐으. 아흣!”

성기가 반쯤 발기해서 선액을 흘려대고 있었다. 나는 아래쪽으로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지스카르에게 성기도 같이 자극해 달라는 뜻이다.

녀석이 내가 원하는 대로 성기를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나는 흠칫 몸을 움츠렸다. 그런데 내 것을 쥐면서 구멍을 자극하던 자기 성기를 쭉 빼냈다. 기분 좋게 느끼고 있었는데 성기와 함께 쾌감도 쓸려나갔다. 가늘게 떨면서 뭐 하냐고 그를 돌아보았다. 지스카르는 몸을 뺀 채로 손으로 내 음경을 꾹꾹 눌러 계속 자극했다.

“레이, 어느 쪽이 더 좋지?”

“아……?”

무슨 소린지 몰라 탁한 음성으로 물었다. 지스카르가 귀두를 엄지로 문질러가며 음경을 강하게 쳐올렸다. 나는 묻는 것은 그만두고 하으, 신음하며 고개를 다시 아래로 떨어뜨렸다. 지스카르가 함부로 거길 주물러대는 게 기분 좋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손으로 자위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짜릿한 자극이 있었다.

베개에 머리를 박고 끙끙거리고 있을 때 성기를 자극하던 손이 스르르 풀렸다. 또 뭐냐는 생각이 불쑥 치솟았다. 그때 지스카르가 엉덩이를 잡아 벌리며 성기를 콱 처박아 넣었다. 부담스러울 만큼 큰 살덩이가 갑자기 구멍을 벌리고 들어와 내부를 채웠다. 함부로 들어온 성기는 예민한 지점을 거칠게 긁어내렸다.

“레이, 좋은 쪽으로 가게 해주마. 어느 쪽이 더 좋지?”

“학. 흣. 너…….”

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제야 알았다. 성기와 뒷구멍 중에 어느 쪽이 더 좋냐 그 소리다. 내가 이를 갈며 자위하려고 손을 움직이자 지스카르가 양쪽 손목을 머리 위로 끌어와 한 손으로 꽉 짓눌렀다. 이거 놓으라고 욕을 하기도 전에 놈이 허리를 짓눌러 뒤를 빠르게 박아댔다. 젖은 속살이 척척 감기며 기쁨에 떨었다. 빌어먹게도 구멍을 강하게 짓눌러주는 것이 너무 좋았다.

바짝 발기한 성기가 몸이 흔들릴 때마다 혼자 꺼떡대고 있었다. 아무 데나 비벼대고 자극해 주고 싶지만 지스카르가 허락하지 않았다. 팔을 쥔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레이, 그러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쪽을 말해 보거라. 짐이 도와줄 테니.”

“하, 으, 흣. 이런 짓 좀…….”

베개에 고개를 처박으며 나는 끙끙 신음했다. 헛소리 말고 온전히 다 느끼게 해달라고 요구하자 지스카르가 말을 안 듣고 또 성기를 쭈욱 전부 뽑아냈다. 달아오르던 뒤가 다시 허전해졌다. 안타까운 목소리가 목구멍 언저리에 맴돌았다. 지스카르는 대신 내 성기를 쥐고 바짝 당기면서 자극해 주었다. 나는 뒷구멍을 움츠리며 성기에 가해지는 압박에 헐떡거렸다.

저놈이 사람을 애태우려고 작정을 한 것이 분명했다. 그만 좀 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들어 처먹질 않았다.

“어느 쪽이라고 말만 하면 된다. 끝까지 가게 도와주지.”

“흐, 흐으.”

계속 성기를 주물러대면 사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뒤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대로는 몸이 애달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스카르가 어디가 좋으냐고 또 물었다. 어디라고 내 입으로 말을 할 수 없었다. 말 못 한다는 걸 그놈도 분명히 알아챘을 것이다.

한계까지 발기한 성기를 지스카르가 또 내려놓았다. 대신 뒷구멍으로 뻐근한 살덩어리가 꽉 들어찼다.

“하으읏.”

성기가 또 빠져나갈까 봐 속살이 뒤를 쫓듯이 따라가 놈의 것을 꽉 물었다. 저도 모르게 엉덩이가 옴폭 파일 정도로 힘을 주었다. 스스로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나는 벌겋게 되어서 달달 떨었다. 놈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쪽이 좋은가 보군.”

“진짜 죽여버리기 전에!”

버럭 소리를 지르자 지스카르가 몸을 낮추어 내 어깨 위에 키스했다. 다정스럽게 입을 맞추며 진정하라고 속삭였다. 침대 위에서만큼은 도저히 놈에게 이길 수가 없다. 나는 흑 한숨을 쉬며 베개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지스카르가 작정한 듯 몸을 조금 곧추세우며 성기를 강하게 박기 시작했다. 놈의 강한 힘을 그대로 받아내기가 벅찼다. 몸이 자꾸 앞으로 밀렸지만 그래도 허벅지가 달달 떨릴 만큼 기분이 좋았다. 성기가 내벽을 퍽퍽 쑤실 때마다 배 속이 요동치고 피가 몰렸다. 놈이 다시 콱 성기를 박아서 몸이 더 밀렸다.

그때 지스카르가 아래로 손을 뻗어 내 성기를 꽉 움켜쥐고 더 밀려나지 않게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허리가 확 안으로 굽었다.

“하! 흥, 흐읏!”

쾌락에 잠긴 신음이 크게 터져 나왔다.

뒤를 강요당하며 성기에 피가 잔뜩 몰렸다. 이대로 꽉 쥐어짜 주기만 하면 극상의 쾌락을 느낄 것만 같다고 생각한 순간, 마치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지스카르가 정확한 순간에 성기를 움켜쥐었다. 만져줄 줄은 몰라서 몸이 더 펄쩍 튀었다.

거짓말 같은 쾌락이 몸을 휩쓸었다. 뒤를 내주며 앞까지 같이 자극받으니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기분이 좋았다. 소름이 돋는다. 온몸이 쾌감으로 짜릿짜릿했다.

“하으, 하아아. 흐읏, 흐!”

지스카르가 내 중심을 단단히 잡아 고정한 채로 자기 성기를 쭈욱 뺐다가 끝까지 콱 찍어 박았다. 너무 좋아서 나는 다시 신음을 터뜨렸다.

이성이 쾌감에 젖어서 마비되고 있었다. 이대로 몰아붙여져서 끝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아, 지스……, 지스카르. 지스카르.”

나는 급하게 이름을 부르며 지스카르를 독촉했다. 내 목소리를 듣고 지스카르도 견딜 수 없게 흥분했다.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맞닿아 있는 살갗에서 흥분이 전해졌다.

눈앞이 하얗게 작열했다. 지스카르가 강하게 짓누르는 순간 절정이 확 들이닥쳤다. 지스카르도 나를 꽉 끌어안고 한참 동안 사정했다. 뒤가 놈의 진한 정액으로 가득 찰 것을 상상하자 이상하게도 온몸이 더욱 저릿저릿했다. 무섭게 쏟아지는 쾌감에 잠시 숨 쉬는 것도 잊고 입을 크게 벌리고 벌벌 떨었다.

“아……, 아아. 흣, 흐…….”

체액이 쉴 새 없이 투둑 쏟아졌다.

사정이 다 끝났는데도 절정의 여운이 가시질 않아서 몸이 계속 잘게 떨렸다. 나는 침대에 쓰러져 간신히 숨을 헐떡거렸다. 지스카르가 내 모습을 보고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듯 목덜미와 등에 연이어 입을 맞췄다.

“레이. 레이…….”

그가 쪽쪽 뽀뽀를 하며 종종 내 이름을 불렀다. 낮게 울리는 저음이 과도하게 흥분한 몸을 부드럽게 달래주었다.

거친 숨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자 나는 뒤를 돌아보며 지스카르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아직 아래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곳이 질척거리고 뜨끈했다. 이대로 며칠이고 계속 넣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성기를 품은 채로 한참을 붙어 있었다. 지스카르가 진짜로 후궁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은 언젠가는 떨어져야만 했다. 그게 아쉬웠다.

해가 저물고 밤이 되자 온도가 조금 시원해졌다. 나는 느긋한 기분으로 이것저것 잡담을 했다. 지스카르는 오늘따라 유난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있었다. 과묵함을 자랑하던 놈이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너는 결국 황제가 될 운명이었다.”

별 뜬금없는 소리다. 하지만 나는 한술 더 떠서 그 말을 거들었다.

“그래, 짐이 엘 파셔에서 노예로 태어난 것은 신이 준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르지. 스트라스나 황제와 상관없는 삶을 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짐이 너를 발견하여 황궁으로 끌고 온 것이 모든 재앙의 근원이 되는 셈이구나.”

“그건 아니지. 네가 아니더라도 노예 신분인 이상은 굴욕적인 명령에 복종해야 할 때가 반드시 왔을 것이다. 네가 노예답게 굴라고 주문했을 때 정말 고분고분하게 굴었다면?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다면?”

“……그런 건 이미 너라고 할 수 없지.”

지스카르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몸은 자존심 하나만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의 자긍심이 나를 움직이고, 행동하게 했다. 다시는 형제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고 한 주제에 다시금 피로 얼룩진 제위를 노리게 된 이유도 결국은 자존심 때문이다.

더 이상 어떤 놈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가장 높은 자리에 서겠다고 스스로 칼을 뽑아 들었다. 설혹 무리하게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지스카르가 등 뒤에서 날 끌어안았다. 키는 거의 같은데 아무래도 저놈이 소드 마스터고 힘의 차이가 있다 보니 놈이 꽉 끌어안으면 작은 동물처럼 폭 끌려가 안기는 느낌이 있었다. 딱히 싫었던 것은 아니라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무수한 희생을 치러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어냈다. 마침내 스트라스의 황위가 온전히 이 손 안에 들어왔다. 하지만 할 일을 전부 끝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로셀라 후궁과 로저스 9황자, 메리웨더 3황녀를 성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다. 적의가 없고 힘이 없는 어린 황자와 황녀들도 모두 죽이지 않고 살려주기로 했다. 내 결정을 의외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더군.”

“후일 그들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클 텐데 괜찮겠느냐.”

“살려주기로 한 황자와 황녀들, 그들 모두가 짐보다 황위 계승 순위가 높다. 틀림없이 이 문제로 후환이 생기겠지. 뒤늦게 야심을 품고 짐에게 암수를 쓰는 놈들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짐이 더욱 강력해지면 될 일이다. 한시도 긴장을 내려놓지 않고 잠시도 쉬지 않을 것이다. 그리해서 이 손으로 스트라스를 반드시 영광된 위치에 올려놓고 말겠다. 목적을 이룰 때까지 무거운 책무에 시달리는 동안 어디를 가도 쉴 곳이 없겠지.”

지스카르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두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너라면 무엇이든 생각한 대로 이루어낼 것이다.”

그가 내 손을 이끌어 정중하게 손등에 키스했다.

“긴 여정 동안 가끔씩 네 곁으로 잠을 청하러 오겠다. 당연히 반겨줄 테지?”

키스를 받은 손으로 지스카르의 얼굴을 만졌다. 만지는 것만으로는 감질이 나서 뺨에, 눈에,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몇 번이고 그에게 키스해 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마음이 신기할 정도로 흘러넘쳤다.

지스카르는 끝까지 입맞춤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어색해하는 그가 진심으로 사랑스러워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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