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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42/43)

Epilogue

스트라스와 엘 파셔가 휴전협정을 한 지 25년 만에 완전히 전쟁을 끝내겠다는 뜻으로 종전협정을 맺기로 결정했다. 장소는 휴전협정이 있었던 아베크 중립국이었다.

좋은 뜻으로 시작된 협정식이지만 중립국은 긴장에 휩싸여 있었다. 한때 평화협정을 맺겠다고 아베크 중립국에 양국 황제가 왔었다가 위험한 사건만 몇 건 터지고 일정이 무산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베크 국왕은 다시는 그런 사태가 벌어지질 않길 바라며 챠드 신전에 가서 기도를 드리며 거액의 기부까지 했다.

협정식장에 엘 파셔의 황제 일행이 먼저 도착했다. 황제는 평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그를 수행하는 관리들의 표정이 꽤 굳어 있었다. 그들은 언제 스트라스 황제가 도착할지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이내 스트라스 황제가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엘 파셔의 관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저 사람이 스트라스 황제……?”

“얼굴을 보면 맞는 것 같긴 한데. 어떻게 5년 만에 사람이 저렇게 바뀐단 말인가.”

젊은 관리들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스트라스 황제는 한때 엘 파셔에서 그레이언 대공이라 불렸고 황궁을 출입하던 사람 중엔 모르는 자가 거의 없었다. 그들이 아는 대공은 170 중반의 키에 마법사답게 평범한 체구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런데 겨우 5년 만에 그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밝은 금발과 녹색의 눈동자, 잘생긴 얼굴에 세련된 분위기는 분명 같았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키가 10센티 이상 크고 골격이 단단해졌다. 그는 4중 영창 마법사로 유명했지만, 지금 겉으로 보기엔 검을 쓰는 기사 같은 분위기였다.

그는 수행원과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장난이라도 그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이다. 눈빛이 무거웠다. 누구도 함부로 여길 수 없는 위압감이 그에게 있었다.

젊은 관료들이 그의 변화에 놀라고 있을 때, 나이 든 대신들은 다른 이유로 매우 놀랐다.

“맙소사. 레브노아드 황태자의 친자라고 듣긴 했지만.”

“아무리 부자지간이라도 저렇게 같을 수가 있나.”

레브노아드 황태자를 직접 본 지 20년도 넘게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당시의 분위기나 느낌이 너무나 똑같았다. 까맣게 잊고 있던 수십 년 전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를 만큼, 스트라스 황제의 모습은 레브노아드 황태자를 그대로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자신을 향해 입을 놀리는 자들이 많은 것을 알고 스트라스 황제가 엘 파셔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사람들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때 강경파인 귀족 하나가 고개를 돌리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와서 황제는 무슨.”

작은 음성이었지만 틀림없이 스트라스 황제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한때 스트라스 황제는 엘 파셔 황제의 신하였고, 심지어 노예 생활을 하기도 했다. 엘 파셔와 스트라스는 항상 경쟁 관계에 있었다. 누구나 상대국보다 우위에 서기를 원했다. 그는 스트라스 황제의 과거를 들먹이고 있었다.

“이봐……!”

엘 파셔의 다른 귀족이 서둘러 그의 입을 단속했다. 오늘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25년 만에 종전협정을 하기 위해 모인 날이었다. 그들끼리 짜고 친 흔적이 보이긴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스트라스 황제에게 크게 실례를 하였다는 얼굴을 했다.

스트라스의 수행원들은 자국의 황제가 모욕을 받자 몹시 분노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앞으로 튀어나오려는 기사까지 있었다. 스트라스 황제를 따르는 신하 중에는 유난히 광적인 자들이 많았다. 소동이 벌어지기 전에 스트라스의 황제가 손을 들어 경거망동하려는 자들을 멈추게 했다. 검에 손을 올렸던 기사는 마른침을 삼키며 바로 몸을 낮췄다.

“아랫것들 관리를 제대로 해야겠군. 애써 만든 보고서를 다시 휴지 조각으로 만들기 싫다면 말이다.”

스트라스 황제가 엘 파셔 황제를 보며 말했다. 5년 전 평화협정이 날아가면서 관련 문서가 휴지통으로 들어가 버린 적이 있다.

엘 파셔 황제는 말없이 강경파 귀족들을 응시했다. 냉엄한 황제의 질책 어린 시선에 그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스트라스 황제가 팔짱을 끼며 혀를 찼다.

“주의를 좀 하는 게 어떠냐. 오랫동안 공을 들인 건이다. 설마 이번에도 일을 망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이번 일은 확실히 짐의 실책이로군. 뒤처리는 확실히 하마.”

뒤처리라는 말에 입을 함부로 놀렸던 엘 파셔 귀족이 사색이 되었다.

잠깐의 소란이 있었으나 두 황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눴다. 신경전을 벌였던 신하들이 더 어색할 정도로.

이윽고 종전 협정식이 진행되었다. 미첼 아카데미의 학장이 직접 나와 식의 진행을 맡았으나 협정 조인식이 시작되었을 때는 중재 없이 바로 물러났다. 휴전협정을 맺었을 때처럼 이번에도 양대 제국의 황제 두 명만이 연단으로 나왔다. 당시엔 황태자였으나 이번에는 황제였다.

펜을 들고 사인을 하기 직전에 스트라스 황제는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으로 엘 파셔 황제를 보았다.

“그때와 비교하면 좀 늙어버렸나. 그래도 오라를 자유롭게 부리는 소드 마스터라 그런지 많이 변하진 않았군.”

“너는 당시와 완전히 같구나.”

엘 파셔 황제가 먼저 사인을 했다. 스트라스 황제도 망설일 것 없이 종전 협정서에 사인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양측 제국의 사람들은 악감정은 잠시 동안 묻어둔 채 크게 감격했다. 새 시대가 열린다고 할 수 있는 역사적인 일이었다. 두 제국이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그간은 음지에서 겨우 밀거래나 성행했지만, 이제는 공식적으로 양국 사이에서 다양한 교류가 시작될 것이다.

스트라스 황제가 손을 내밀었다. 엘 파셔 황제는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휴전협정 당시에는 적국 황태자의 강력한 위명에 긴장하여 함부로 악수하기가 꺼려졌다. 레이의 말대로 당시의 그는 정말로 애송이였다.

“이번에도 악수하는데 고민이 필요한 것은 아닐 테고?”

스트라스 황제가 웃으며 물었다. 엘 파셔 황제는 가볍게 손을 내밀어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이로써 종전협정 조인식이 모두 끝났다.

휴전협정 때엔 그대로 돌아서서 각자의 나라로 떠났다. 하지만 이번엔 스트라스 황제가 차를 권했다.

“짐이 교류 건에 대해서 할 말이 조금 있는데, 차라도 한잔 어떤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승낙하자 아랫사람들이 조금 바빠졌다. 예정에 없는 일정이 생긴 탓이다. 두 황제가 차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안전을 확인하는 데 약간 시간이 걸렸다.

작은 응접실의 창가에 테이블이 놓였다. 레이가 먼저 자리에 앉았다. 지스카르도 맞은편에 조용히 앉았다. 나이 지긋한 중립국의 시녀가 차를 내올 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긴장된 분위기는 아니었다.

창가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빛이 가득해서 따스하고 편안한 기운만 감돌았다.

“그 짧은 시간에 잘도 따뜻한 블린즈로 구해왔군.”

갑자기 요구한 자리임에도 중립국의 시녀가 재빨리 움직여 스트라스 황제가 가장 선호하는 차를 내왔다. 레이는 잔을 들며 그녀를 칭찬했다. 지스카르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음식에 호불호가 크게 없는 편이었다. 스트라스 식으로 향신료를 들이부은 음식만 제외하고.

“스트라스로 귀환하자마자 상단주 여섯과 실무진을 선발해 엘 파셔로 보내마. 국가 주도의 사업뿐 아니라 민간 쪽으로도 교류가 빠르게 활성화가 되길 원해서 말이야.”

“엘 파셔로서도 손해 볼 일이 없는 일이군. 이쪽에서도 교류를 원하는 상단주를 불러들이도록 하마.”

그들은 잠시 교류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 자세한 부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레이는 대화하다가 빈 잔을 내려놓고 테이블 바깥으로 다리를 꼬았다. 그 자세가 무척 교만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교만함을 지적할 자는 거의 없었다. 그는 충분히 오만할 자격이 있는 스트라스의 통치자이고 황제였다. 아직 나이도 젊고 제위에 오른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는 신기할 정도로 완벽하게 준비된 군주였다.

그는 20년 넘게 황위를 지켜온 엘 파셔의 황제와 아무 어려움 없이 국가 시책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가끔 생각이 맞지 않는 부분이 나와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감정싸움보다는 의미가 있는 정보의 교류로 보였다.

약 한 시간가량 이어졌던 대화가 끝났다. 먼저 일어난 것은 레이였다. 측근들을 향해 걸어가던 그가 잠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럼 기회가 되면 또 보지.”

용케 이십여 년 전에 했던 말을 그대로 기억해 내서 말했다. 그는 눈가를 접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고 좌측의 문을 통해 내실을 떠났다.

그가 완전히 떠났지만 지스카르는 꽤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폐하.”

크리스티안의 부름에 비로소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그는 등을 돌려 크리스티안과 던필, 엘 파셔의 측근을 이끌고 반대쪽 출입구를 통해 방을 나섰다.

종전협정이 무사히 마무리되고 오랫동안 냉전 상태였던 양국 간의 교류가 빠르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양대 제국 황제의 행보에 모든 백성이 기뻐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발전했다. 새 시대가 오고 있었다.

두 개의 제국, 제국의 노예 완결

두 개의 제국, 제국의 노예 6권 완결

지은이: 레브노아드

발행처: 대원씨아이(주)

ⓒ 2021 레브노아드 / 대원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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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of Destiny, MoD(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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