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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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롤로그. 두 사람의 퇴마 무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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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구름에 달 마저 덮인 칠흑같은 밤.

조용한 파도 소리가 울려 퍼지는 부두에 낡은 창고가 늘어선 이 낡은 지역에는

누구나 기분 나빠할 음침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렇다. 아무리 둔한 인간이라도 기분 나빠할 만한 '무언가' 가, 이 부둣가에 있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녹슬어버린 창고의 문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것이 일목요연해 보였다.

하지만 그 창고 문들 중 단 하나 만큼은 최근에도 사용된 흔적이 남아 있었고,

그 안에선 희미하지만 작은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단순히 순찰을 도는 사람이거나, 혹은 장난치러 온 사람이거나.

어쨌든 간에,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이는 그렇게까지 특별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허나, 그 창고 안은 범상치 않았다.

구석에 늘어선 수십명이나 되는 젊은 남녀들.

전원이 셔츠 등 간소한 복장만 입고 있고, 심한 경우에는 팬티만 입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불평 없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모두 눈은 공허한 채 입가에선 침방울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들 중 제대로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창고의 중앙, 팔레트를 쌓아만든 벤치 위에 올려진 조명 근처에 앉아 떠들고 있는 4 인방이 있었다.

"이야, 히로토 씨 말 그대로야. 이렇게까지 잘 될 줄이야."

"그래. 이만한 인원을 납치하는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잖아?"

"게다가 이 녀석들이 알아서 모여주는 바람에 우리들이 손을 댈 필요도 없고."

"훗."

히로토라고 불린 리더 격의 남자가 담배 연기를 뿜으며 거만하게 웃는다.

그런 여유 넘치는 행동은 그의 오만한 성격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그룹 중에선 누구도 그에게 반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 주술에 걸리면 누구라도 한 방이지."

주술.

일반인의 세계에는 알려지지 않은 외법.

지금 히로토가 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의식을 조종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물리적인 파괴, 그리고 요마라는 괴물을 조종하는 것까지 주술의 활용도는 넓다.

주술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적지만, 덕분에 대항할 수단도 없기에

뒷세계에선 주술을 악용하는 범죄가 끊이질 않았다.

이렇게 주술을 부리는 악랄한 이능 범죄자 - 그것을 '저주사'라고 부른다.

즉, 저주사인 히로토와 그가 이끄는 그룹은 주술을 이용해 인신매매를 시도하려 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증거는 거의 남지 않고, 설령 추적자가 붙었을 땐 이미 저주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을 것이다.

그만큼 저주사와 일반인의 역량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다.

이 일을 끝내면 해외로 튀거나 호화 유람선이나 탈까 등으로 히로토가 미래를 구상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근데, 슬슬 거래할 상대가 올 시간 아닌가?"

부하 한명이 그렇게 말했다.

히로토도 손목 시계를 확인하니 확실히 그랬다.

술을 마시느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어느새 약속한 시간인 자정을 넘어서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이 새끼들.

시간도 지키지 못하다니 신용이 없구만.

누가 바깥 좀 보고 와."

"알겠습니다."

초조해진 히로토가 명령을 내리자 가자 말단의 남자가 허리를 띄웠다.

그 때였다.

스르릉, 창고의 무거운 문이 천천히 열렸다.

마침내 거래상대가 나타난 거냐고 생각하며 히로토가 눈길을 향했을 때

거기에 있던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영이 하나 서 있었다.

여자. 게다가 소녀.

그것도 백의의 상의와 주홍색 하카마 - 소위 말하는 무녀 복을 입은 미소녀였다.

나이는 고등학생 쯤일까.

여자 키고는 키가 크고 미소를 가득 지은 그 얼굴은 여배우처럼 단정했다.

어깨까지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아름답게 살랑이며 반짝반짝 빛난다.

소매와 옷깃 사이로만 드러난 그녀의 살갖은 새하얀 색이었고 목과 팔목에도 알맞게 살집이 붙어 있었다.

소녀의 몸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그녀 나이 답지 않은 불균형할 정도로 발달된 젖가슴이었다.

흰 상의와 브래지어로도 감출 수 없을 정도의 거유, 아니, 폭유라고 무방할 젖가슴,

거기서 허리로 내려가는 잘록한 곡선과 다시 완만한 원형으로 이어지는 엉덩이 또한

주홍색 하카마 위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풍성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뜻밖의 침입자의 출현에 창고는 조용해졌고 남자들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의식을 빼앗긴 사람들만이 무의식적으로 내는 낮은 신음 소리만 간간히 흘릴 뿐이었다.

"어머나, 그동안 장난질로 재미 좀 보셨나 보네."

의젓한 자세로 날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무녀 소녀가 경쾌하게 말한다.

그 목소리는 작았지만 확실하게 노기를 품고 있었다.

그제서야 히로토는 겨우 현실에 돌아왔다.

달아올랐던 기분도 순식간에 식어버린다.

이 여자는 거래 상대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이 녀석은 무려-

"퇴마사다!"

"퇴, 퇴마사?! 이런 어린 아가씨가?"

"거짓말!"

웅성거리는 남자들 사이에 히로토 홀로 임전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소녀는 무녀 복의 소매로 미소를 가리면서

마치 일상 대화를 나누듯이 계속 말을 이었다.

"응, 맞아. 난 퇴마사 오토사키 린린게라고 해. 앞으로도 잘 지내."

퇴마사.

그것은 저주사의 천적.

주술을 이용하여 해를 끼친 자를 퇴마술을 이용해 거꾸러뜨리는 정의의 사도다.

"오토사키, 린린게 라고...?!"

게다가 이 소녀는 퇴마사 중에서도 최강으로 유명한 '퇴마 무녀' 중 한 명이었다.

불편함 없이 익숙하게 입고 있는 무녀복 차림을 봐도 틀림 없다.

심지어, 오토사키 린린게라고 하면 히로토의 스승 저주사로부터도 들은 적 있는 이름이었다.

분명, 지금 관동 지방에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두 사람의 퇴마 무녀 중 한명이라고.

스승이 했던 말이 허풍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 증거로, 그녀로부터 느껴지는 영력이 보통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행이 린린게는 아직 공격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 틈을 히로토는 놓치지 않았다.

"빌어먹을!"

주머니에서 수십개의 직사각형의 종이딱지-부적-를 꺼내 공중에 흩뿌린다.

저주사의 소환 의식이었다.

순식간에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창고조차 비좁아 보이는 가히 3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구가 출현했다.

- 요마

그가 소환한 요마의 추악한 모습은 보는 사람 누구나 겁에 질리게 만든다.

질척질척한 점액 투성이의 피부. 촉수 모양의 다섯개의 머리.

각각에는 눈이 아니라 수많은 이빨이 나 있는 주둥이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머리에는 촉수, 곰처럼 둥근 몸에는 다리가 세 개 나 있는 특이한 형태다.

"우, 우와앗!"

"뭐, 뭐야 이건!"

"히이익!"

히로토의 동료 남자들도 예외없이 경악의 목소리를 냈다.

그들로서도 처음보는 요마.

압도적인 존재감과 함께, 절대로 상대할 수 없다고 본능이 알려오는 그것들은 말 그대로 악마였다.

히로토는 그가 소지한 최강의 요마 중 하나를 꺼낸 채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퇴마 무녀라든가 뭔가하는 계집년!

홀딱 발가벗겨 그 씨빨통을 마구 빨아주고 좆도 존나게 박아주마!"

"어머나, 이 얼마나 저질스러운 말인지.

우타유키가 이 자리에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네."

그러나 거대한 요마를 앞두고도 린린게라고 자칭한 퇴마 무녀는 여유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녀가 꺼내든 것은 히로토가 꺼낸 부적과 비슷한 모양의 종이 조각이었다.

퇴마사가 취급하는 그것은 령부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에서 튀겨진 한 장의 령부가 요마에게 향한다.

"크오오오오오오오!"

그 순간, 요마는 굵직한 비명을 흘리며 녹아내렸다.

히로토가 소환한 요마는 결코 약하지 않다.

그가 그 요마를 소환할 때 투입한 부적 또한 품질도 일급품이며 숫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린린게는 단 한장의 령부로 제압해버렸다.

"지금 바로 투항해주지 않겠어? 밤샘작업은 피부에 나쁘거든."

실력 차이는 너무나 뚜렷했다.

히로토는 진땀을 흘리면서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여기서 패배를 인정하면 미래는 절망 뿐이다.

퇴마사는 저주사를 용서하지 않는다.

인간의 법률로 심판할 수 없는 자에겐 뒷세계의 법률이 대신 심판을 내리게 된다.

"까불지 마! 씨발! 누가 네 녀석들 따위에게!"

히로토는 남겨진 영력과 부적을 사용해 차례차례 요마를 소환했다.

"아이참, 귀찮네."

그 모든 요마들을 린린게는 령부로 슥슥 지워나갔다.

역시 실력 차이는 절대적. 이대로라면 먼저 힘이 빠지는 건 히로토 쪽이 분명했다.

"벌써 끝이야? 지금 손을 들면 아픈 꼴은 보지 않고 끝날 텐데?"

그리고 마침내 히로토의 요마 소환도 끝이 보였다.

린린게가 다시 한 걸음 내딛자 남자들은 몇 걸음 물러섰다.

히로토를 제외한 세 남자들은 이미 도망칠 틈을 엿보고 있었지만

마치 뱀에게 노려진 개구리 같이 그녀의 기세에 압도당한 상태였다.

"아, 알았어....... 내가 졌다..... 그러니-"

히로토의 항복 선언에 남자들이 표정을 일그러뜨렸고 린린게의 경계도 잠시 풀렸다.

그리고 히로토는 호시탐탐 노리던 역전의 기회를 발견했다.

"-꼼짝말고 있어!"

"꺗?!"

싸움 중에 비밀리에 소환했던 뱀 형태의 요마가 린린게의 발치에서 덤벼든다.

그것은 그가 소환했던 다른 요마들에 비해 크기도 작고 힘도 약하지만

그만큼 은밀성이 뛰어나 들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꺄윽!"

선 채로 양 팔과 다리를 꽁꽁 묶인 린린게가 고통의 신음을 흘린다.

겨우 안도의 한숨을 흘린 남자들은 낄낄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헤헤헤...... 방심했군.

아픈 꼴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있어."

"이, 이딴 걸로 내가...!"

"저항해봤자 쓸모없다.

여자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을 터.

자, 그럼 선언했던 대로 일단 그 무녀복부터 홀랑 벗겨주지!"

히로토가 색정적인 눈을 번들거리며 린린게를 향해 손을 뻗어오고 그 옆에선 남자들이 히죽거리며 바라보고 있다.

정조의 위기에 처한 린린게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에헷, 당할 줄 알았어?"

순간, 생긋 웃는 린린게의 표정에 히로토가 흔들린 순간,

그녀의 머리 위에서 인영이 떨어져 왔다.

아니, 날아내려왔다.

순식간에 현란한 은색 반짝임이 린린게를 감싸더니,

잠시 시간이 지나자 그녀를 결박하고 있던 뱀 모양의 요마가 갈갈히 잘라지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뭐, 뭐야?!"

놀라서 외치는 남자들의 앞에 새로 뛰어들어온 인영-소녀가 린린게를 향해,

"너무 혼자서만 앞으로 나오지 마세요, 린린게 언니."

여기가 전장이라는 것이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흘렸다.

"미안 미안. 그래도 우리 우타유키가 도와주러 올 꺼잖아?"

"후훗, 그야 그렇지만요."

생긋 웃는 소녀는 린린게와 마찬가지로 흰색과 빨간색의 무녀복을 입고 있었다.

린린게보다 신장은 조금 낮지만, 그 용모는 확실히 이목을 끌었다.

린린게 정도는 아니지만 백의의 상의 아래에서 맹렬하게 자기주장하는 가슴은

린린게와 마찬가지로 평균을 크게 뛰어넘고 있다.

반면, 양 팔과 허리 둘레는 매우 가늘어서 아름답게 균형잡힌 몸매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의 엉덩이까지 흘러내린 아름다운 흑발은 섬세하고도 아름답게 광택을 흘리며 단정하게 갈무리 되어 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마치 인세에 강림한 여신처럼 보여 도저히 인간같아 보이질 않았다.

소녀와 어른 여성의 야릇한 경계선상에서 흘리고 있는 그녀의 페로몬은 어떤 남자나 쉽게 유혹해버릴 것이었다.

정작 그녀는 자신의 미모에 대해 별다른 자각이 없었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도 잊고 남자들은 두 퇴마 무녀들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쓰러뜨리고 범하고 싶다 라는 강간 욕망에 사로잡힐 정도로.

그래도 히로토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새롭게 나타난 퇴마 무녀의 오른손에 쥐어진 것은 한 자루의 일본도.

그리고 바로 옆의 폭유 여자를 뛰어넘는 영력.

분명, 이 계집애의 이름은.......

"칸바라, 우타유키....... 인가?"

"네! 칸바라 입니다!"

"우타유키. 여긴 학교가 아니야."

"아, 그랬었죠."

린린게로부터 태클을 받자 우타유키는 수줍은 웃음을 띄웠다.

하지만 그 인외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고서도 히로토는 웃을 만한 기분이 아니었다.

칸바라 우타유키야 말로 오토사키 린린게의 짝궁.

최강 최악의 조합이었다.

"자, 이번에야말로 단념하고 투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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