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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야경이 보이는 자리에서의 밀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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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뭐야....... 또 젖어버렸어."
차갑게 식은 잠옷은 물론, 축축해진 팬티까지 갈아입은 후 세면하러 간다.
어떻게든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다.
집을 나서도 이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또 유우지가 걱정할 것이다.
그 미술실에 있던 남학생들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기억을 삭제하는 조치를 취해놓았다.
덕분에 자신의 반라를 기억하는 자들은 없었지만,
그녀의 기억은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우타유키는 주눅들어 있었다.
게다가 요마도 놓쳐버렸다.
잔뜩 산적한 문제들 덕분에,
평소에는 언제나 천진난만하고 활기차던 우타유키도 우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우타유키. 괜찮아?"
"으, 응! 난 괜찮아!"
또 다시 유우지를 걱정시켜 버렸다.
그의 배려는 기쁘지만 요마에게 습격 당했을 때 당한 치욕,
그리고 매일, 어제 밤에도 꾼 꿈에서 생긴 일 때문인지 어쩐지 거리를 두게 되어버렸다.
덕분에 학교에서 그를 대하는 우타유키의 태도도 조금 변해 있었다.
하다못해 린린게 언니에게 상담할까도 생각했지만,
최근의 그녀는 여러가지로 바쁜 건지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한가지 제안을 할까 하는데 말야."
계속해서 이어지는 우울한 날의 방과후 모임에서였다.
정례보고가 끝난 후 자리도 파하는가 했더니 린린게 언니가 한가지 제안을 꺼냈다.
"렌 선생님의 환영회도 제대로 못했고,
기분 전환 삼아서 다음 휴일에 넷이서 함께 놀러 가는게 어때?"
"그거 괜찮군. 신경써줘서 고맙다."
"최근에는 휴일에도 일 열심히 했지?
우타유키도 요즘 피곤해 하는 것 같으니, 넷이서 가서 파~악 놀다 오자!"
"유우지..."
다행이도 미술실에서 있었던 일은 렌 선생님과 린린게 언니에게 부탁해서 유우지에겐 비밀로 해놓았다.
그에게 사실대로 말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를 신경을 써주는 그의 태도는 기뻤다.
"고마워요, 린린게 언니."
"후훗, 신경쓰지 마. 당연한 거니까."
작은 목소리로 답례를 표하자 린린게 언니는 언제나처럼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주었다.
이제 언니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 같았다.
그녀의 밝은 표정을 보자 안심한 우타유키도 오래간만에 활짝 미소지었다.
"그럼 다음 주 토요일에 역 앞에서 모이자."
이렇게 주말이 기다려지는 것은 얼마만일까.
단 둘이서 가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유우지와 함께 놀러가는 것이다.
최대한 유우지의 마음에 드는 복장을 골라 예쁜 모습을 선보여 주자고
우타유키는 마음 속으로 힘차게 파이팅 포즈를 취하며 기합을 넣었다.
○
시간은 흘러 토요일 이른 아침.
우타유키가 입고 있는 긴소매의 파란색과 흰색의 체크무늬 롱 스커트 원피스는
이전에 유우지가 골라준 옷이었다.
햇볕이 다소 강하기 때문에 머리 위에는 린린게 언니가 준 뉴스보이캡을 쓰고 있었다.
숄더백도 이전에 유우지에게서 예쁘다고 칭찬받았던 것이었다.
그녀가 두근두근 친목회를 준비할 동안 만큼은 매일 그녀를 괴롭히던 악몽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은 처음부터 좌초했다.
먼저 연락이 온 것은 린린게 언니였다.
"미안해... 아무래도 컨디션이 안 좋아서... 오늘은 나 빼고 셋이서 즐기고 와."
다음에 연락이 온 것은 유우지였다.
"미안해... 갑자기 본부에서 호출이 왔어.
지금 바로 교토로 가지 않으면 안되는 거야. 오늘은 셋이서 즐기고 와줘."
상당히 급한 용무였는지, 유우지는 그녀가 답하기도 전에 빨리 전화를 끊어버렸다.
유우지에게만 호출이 온 상황에 그녀는 조금 신경 쓰였지만
-퇴마사 본부에도 유우지와 친분이 있는 여자들이 많았다-
본부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었다.
"안녕, 우타유키 양."
"아, 안녕하세요."
그래도, 설마 렌 선생님과 단 둘이서 가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다.
일행 중 절반이나 탈락할 줄도 몰랐지만.
렌 선생님은 교사와 퇴마사 양쪽에 발을 담그고 있는 바쁘신 몸이다.
그런데 모처럼의 휴일을 당일에 와서 취소하기엔 미안해 했던 그녀는,
결국 그와 함께 단 둘이서 나들이를 나가게 되었다.
"오늘은 잘 부탁하마."
"네, 맡겨주세요!"
싱긋 미소지으며 대답한 우타유키는, 그러나 약간 꺼림칙함을 느꼈다.
지금 그녀의 곁에 있는 렌은 최근 이상할 정도로 그녀의 꿈에 자주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왕자님 같은 역할로.
그런 포지션엔 얼마전까지만 해도 언제나 유우지가 나오곤 했었는데.
(우우우......)
게다가, 얼마 전에 학교에서 요마에게 습격당했을 땐 그녀의 치태를 낱낱이 보여지게 되어버렸다.
비록 렌은 그 이후로 그 사건에 대해 언급해주지 않았지만 그를 볼 때마다 그 때 일을 의식하게 되었다.
- 그래서 였을까.
이렇게 옆에서 렌과 나란히 걷기만 해도 점점 심장이 콩닥콩닥 시끄럽게 뛰기 시작하고
뺨도 붉게 달아올라 어쩐지 얼굴을 들 수 없게 되어버렸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귀여운 모습이네. 잘 어울려."
"아, 예예! 가, 감사합니다!"
문득 렌이 그녀의 복장을 칭찬하자 순간 머뭇거린 그녀였지만,
렌의 그의 상쾌한 미남 마스크로 웃어오자 불쾌함도 곧 스며들었다.
보통의 여자라면 이미 사랑에 빠져버릴 것 같은 미소가 눈 앞에서 보여지니
우타유키의 콩닥거리던 심장박동은 어느덧 쿵쿵하는 저림으로 바뀌었다.
"신도의 취향에 맞춰 입은 건가?"
"예, 예에... 유우지가 골라준 거에요."
"그렇군. 역시 오랫동안 사귀어서 그런지 우타유키 양의 매력을 돋보이게 만드는 옷을 골랐구나."
아무렇지도 않아야 할 대화도 어쩐지 버벅거린다.
아니, 평온을 유지하는 것 조차도 벅찼다.
그래도 유우지가 칭찬을 받는 건 기분이 좋았지만-
"하지만 나라면 다른 복장을 선택했을 텐데."
"네?"
"자네에겐 좀 더 활동적인 복장이 어울린다고 생각하거든."
"그, 그래요?"
"그래. 뭐, 내 취향도 다분 섞여 있어서 그런 걸 테지만."
"에이, 그거 노리고 말한 거죠?"
"후후후, 없던 일로 하지."
"이미 기억해버렸거든요?"
농담을 나누자 긴장해 있던 우타유키의 어깨에서 어느새 힘이 빠져 있었다.
유우지 이외의 남자와 단 둘이서 놀러간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쓸데없이 긴장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 그녀는 몰랐지만, 아까보다 두 사람의 간격은 확실히 좁아져 있었다.
우타유키가 생각했던 것보다 렌과의 대화는 기분 좋았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화제를 꺼내거나,
자연스럽게 차도 쪽으로 에스코트 해주며 걸어가거나,
맛있는 가게로 안내해서 점심을 먹거나 등.
유우지와의 풋풋한 데이트와 렌 선생님과의 어른스러운 데이트는 갈수록 현격하게 차이가 났다.
특히, 연장자라서 그런지 이야기할 꺼리가 많은 그가 하는 이야기는 우타유키로서도 지루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깔깔 웃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녀가 내심 자신있어 하는 볼링장에서도 렌은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훤칠한 신장과 팔다리로 멋지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포즈로 연이어 스트라이크를 꽂아넣을 땐
그녀도 정신없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 밖에도 그에게서 볼링을 할 때의 포즈나 기술도 여러가지로 직접 배울 수 있었다.
원래는 저녁 무렵에 해산할 예정이었건만,
정신이 들자 이미 렌 선생님과 고급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 이런 곳에 와도 괜찮나요?"
"물론이지. 평소에도 열심히 노력하는 우타유키 양을 위한 내 선물이야."
화려한 고층 호텔의 최상층에 있는 유명 이탈리안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
아름다운 아경을 내려다 보자 "하아" 하고 자연스럽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런 가게는 고등학생으로는 분에 넘치는 장소였다.
아까도 버벅거리며 살금살금 문턱을 넘던 우타유키였지만,
렌은 겁내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안에 들어가 버렸다.
그야말로 성인 남성답게 듬직했다.
"이런 곳에 저 혼자 오다니, 유우지와 린린게 언니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타유키 양에게 어울리는 곳이라 생각해서 왔어."
"아이참, 너무 띄우지 말아주세요."
아무런 주저도 없이 그녀를 붕붕 띄우게 만드는 칭찬이 흘러 나올 때마다
우타유키는 뺨을 붉히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남자라면 - 제 아무리 성인 남자라 하더라도- 우타유키가 이러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렌을 상대할 때 만큼은 어린애처럼 당황해 버린다.
렌과 처음 만났을 때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뭉클해서 저절로 산만해졌다.
역시 이렇게 된 원인은 미술실에서의 사건 때문이라고
우타유키는 어떻게든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분석하려고 했다.
교사, 또는 퇴마사 동료 정도로 생각하던 상대가 -
어느새 놀랄 정도로 자신의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 마치 유우지처럼.
그 순간, 우타유키는 붕붕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이건 단순히 호의를 전해오는 사람에 대한 감사다.
그녀의 유우지를 향한 연정과 같은 게 아니다.
그렇게 타이르듯이,
이렇게라도하지 않으면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버릴 것 같은 자신을 질타한다.
"응? 맘에 안드는 거라도?"
"아, 아뇨..."
부드러운 저음이 들려오자 우타유키는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지금까지 그녀가 생각하던 게 일순간 날아가 버릴 정도로 그녀는 심하게 동요했다.
- 아 어쩌지, 나 오늘 정말 이상해......
물론 식사는 고급식당에 걸맞게 맛있는 요리만 계속 나왔다.
하지만 어쩐지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이후로도 그녀는 렌의 말에 간간히 맞장구를 치거나,
물끄러미 그의 반듯한 얼굴을 계속 바라보거나 하기만 할 뿐 음식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행동을 렌은 딱히 지적하지 않았기에
우타유키는 무의식적으로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오늘은 슬슬 해산하도록 하지."
"......예."
후우, 우타유키는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다간 자신이 정말로 어떻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렌이 갑자기 뭔가 기억이 난 듯 자리를 떠나려는 그녀를 붙잡았다.
"아, 그렇군. 우타유키 양. 이제 한 곳만 더 따라와주지 않겠나?
가보고 싶은 곳이 있거든."
"가보고 싶은 곳이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렌이 빌딩의 창문 밖을 가리켰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이 근교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관람차였다.
"이곳에 부임해온 이후로 저기에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괜찮겠어?"
결론만 말하면, 우타유키는 거절할 수 없었다.
유우지 이외의 남자와 저런 곳에 단 둘이서만.
게다가 밀실에 들어간다는 건 역시 저항감이 컸다.
아무리 렌 선생님이라 하더라도.
하지만 오늘 그녀는 너무나 신세를 많이 졌다.
자신도 몰랐던 이 도시의 장소를 안내받을 때마다 너무나 즐거웠다.
그래서 거절할 수 없었다.
-어쩌면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이미 우타유키도 자신의 기분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히야아! 정말로 아름다워요!"
일부러 동요를 숨기기 위해 관람차에 올라선 우타유키는 활달한 척 부산을 떨었다.
아까 고층 빌딩에서 본 야경과 지금의 야경은 또 달라서 실제로 아름답긴 했다.
게다가 천천히 시야가 상승할수록 야경도 시시각각으로 바뀌어갔다.
"그렇군. 여기 온 보람이 있었어.
우타유키 양도 기뻐해주니 다행이야."
"아, 아뇨. 오늘은 저야말로 정말 감사드려요. 너무 즐거웠어요."
다시 좌석에 다소곳이 앉은 우타유키는 점점 머리를 낮추었다.
이대로 서로를 가만히 마주보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 최근에는 어때?"
"네?"
"음...... 학교에서의 일, 힘들었지?"
이번에 고개를 숙인 건 렌 선생님이었다.
"미안하다. 그 때 바로 도움을 주지 못해서.
내가 조금 더 빨리 깨달았더라면 우타유키 양도 불쾌한 경험을 하기 전에 구해냈을텐데."
"아, 아니에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선생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지금 제가 이렇게 무사할 수 있었던 거에요!
그러니 사과하실 일이 아니에요. 네? 선생님."
설마, 그가 자신을 신경쓰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당황한 우타유키는 그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그녀의 본심이었다.
렌 선생님 덕분에 최악의 순간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 게다가, 그 순간부터 뭔가 세상이 바뀌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맙다.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그렇게 말한 렌은 거구를 일으키더니, 자연스러운 몸놀림으로 우타유키의 옆에 앉았다.
그녀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동작이었다.
"다음에 또 우타유키 양이 위기에 빠진다면 그 때는 반드시 구해줄께."
"렌 선생님......"
지근거리에서 그가 이렇게 사근사근한 저음만으로 속삭인다면
일반적인 여자는 넋을 잃고 뿅가버릴 것이다.
우타유키 또한 어둠속에서 빛나는 그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어낼 줄 몰랐다.
"아-"
눈을 깜빡였을 땐, 이미 그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
가련하고도 부드러운 우타유키의 몸이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하지만 단단하게, 렌은 그녀를 안고 있었다.
우타유키의 풍만한 가슴이 렌의 앞가슴에 짓눌린다.
야경이 내려다 보이는 관람차에서 남자와 단 둘.
게다가 상대는 그녀를 구해주었던 선생님.
낭만이 넘치는 분위기에 휩쓸린 우타유키의 저항은 강하지 않았다.
-꿈에서처럼 다른 남자라면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 것인데,
하지만 지금의 렌 선생님이라면 이대로 안겨도 좋다고 그녀는 생각해버렸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타유키."
이제는 경칭 생략으로 부른다.
이번이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아프게 쿵쿵 뛴다.
렌의 훤칠한 얼굴이 다가왔다.
입술이 다가온다.
그것이 향하는 곳은 분명 자신의 입술.
어째서, 왜, 갑자기, 나를, 어째서, 어째서 -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우타유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돌리는 방법을 몰랐다.
이대로 그를 받아들이-
--- 헉
마지막 순간에 뇌리를 스친건 소꿉친구 - 연인의 얼굴이었다.
"이, 이러시면 안되요!"
렌의 얼굴이 엇나간다.
이래선 정말로 안된다.
이건 배신행위다.
비록 정식으로 교제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우타유키로서는 정말로 넘어선 안될 선이었다.
- 이미 그 '라인' 이 이전보다 엄청나게 후퇴해 있었다는 사실에선 애써 눈을 돌려 버렸지만.
"아, 미안하군."
"아뇨...... 저도 깜짝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렌은 그다지 충격을 받은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우타유키가 고개를 들자 어느덧 관람차도 지상에 가까워져 있었다.
우타유키는 안심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이 왜 안심해버린 건지 그 의미도 모르는 상태로.
관람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그대로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하지만 이미 바짝 붙은 거리감은 그대로였다.
"아까는 정말로 미안했다."
렌은 다시 사과했다.
우타유키도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을 때,
"하지만 이것만큼은 기억해 주길 바란다.
나는 우타유키를 소중히 여기고 있어."
"읏!............"
렌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고백 뺨치는 말이었다.
그 순간 우타유키의 얼굴은 불이 나는 것처럼 빨개졌다.
그 이후로 집에 돌아갈 때까지 그녀가 했던 말은 "아" 나 "우" 둘 중 하나 뿐이었다.
그래도 그다지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 무척 기뻤다.
정중하게 집 앞까지 바래다 준 렌은 그녀에게 발칙한 짓이라곤 전혀 하지 않았다.
실수로라도 그녀의 몸에 닿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목욕을 하고 이불 속에서 잠에 들 때까지 우타유키는 계속 멍한 상태였다.
끊임없이 렌 선생님에 대한 생각만 뱅글뱅글 머리 속에 맴돌았다.
"나, 왜 이러지......"
인생에서 처음으로 품어버린 기분에 소녀는 그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