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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2화 (2/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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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라면 나름 영재교육과 집중교육을 받고 자라온 터라 주량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쉽게 지지 않는 편이었다. 그나저나 소개팅에서 다짜고짜 술 이야기를 꺼내다니. 설마 술 마시러 가자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싶었는데,

"그럼 커피 말고 술 사주세요."

라며 명희가 먼저 일어났다. 그녀를 따라 허겁지겁 일어나 함께 카페를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술집은 많았다. 가장 가까운 술집을 잡고 같이 들어갔다. 이른 저녁인데도 손님은 제법 많았다. 명희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점원에게 바로 주문했다.

"여기 탕 하나 주시고요, 맥주 두 병에 소주는 일단 두 병만 주세요."

일단 두 병? 설마 1인당 한 병을 마시자는 건 아니겠지? 뜨악해하고 있자니 명희가 날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족하세요? 더 시켜요?“

부족하냐니!

"아뇨. 충분합니다."

"그러면 여기 500잔도 두 개 갖다 주세요."

생맥주도 안 시키면서 500잔은 왜 필요한가 싶었는데, 그녀는 거기에 맥주 한 병을 온전히 붓고 나머지는 소주로 채웠다.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나 마셔댈 법한 기가 막힌 소맥잔이 그렇게 두 잔 완성되었다. 명희는 내게 한 잔을 내밀고 자신도 하나를 들어올렸다. 눈높이까지 올라간 두 잔은 서로 짠하고 부딪힌다.

"만나서 반가워요."

고개를 살짝 숙이는 명희를 향해 마주 인사하고는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설마 이걸 원샷하는 건 아니겠지 싶었는데... 세상에, 그녀는 그걸 물처럼 꿀꺽꿀꺽 다 마셔버리는 게 아닌가. 나 혼자 그냥 내려놓을 순 없어서 함께 잔을 비웠다. 빈 속에 짜릿하게 퍼져나가는 술기운이 보통이 아니다. 잔을 내려놨을 때, 이미 맞은 편은 자기 잔을 비워놓고 날 빤히 쳐다보는 중이었다.

"잘 드시네요."

명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점원을 불러 다시 맥주를 달라고 했다. 그렇게 맥주 한 병이 그대로 들어간 호프잔에 다시 소주가 채워진다.

"만나서, 끄읍, 반가워요."

내심 반갑지 않기 시작했지만, 나는 억지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 살려. 소개팅이 이런 고행이라고 누가 미리 알려주었더라면 나오지 않았을텐데. 내가 미쳤지 하는 생각을 하며 연신 잔을 비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난감했다. 길지 않은 삶이었지만 이 정도로 난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확신한다.

예전에 학부 프로젝트로 팀원 죄다 달라붙어서 1년 동안 꼬박 작업했던 로봇제어 시뮬레이션 작업이 있었다. 각종 수치와 리포트를 파일로 만들어 하드디스크 하나에 넣어놓았는데, 출력소에 가져가기 위해 누군가 꺼내놓았던 모양이다. 백업도 따로 하지 않은 그것을 어떤 미친놈이 냄비받침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팀원 전부 비명을 지르던 바로 그 때보다도 더 난감하고 황당하다. 물론 그 하드 디스크는 전문 복구 업체에 백여만 원을 내고 가까스로 살려내었다.

그런데 지금 날 살려줄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

"슐~ 슐, 떨어졌어요, 사장님~!"

들고 있는 소주병으로 테이블을 쾅쾅 내려치는 한 여자가 내 맞은편에 앉아있다. 알코올에 푹 담긴 나의 뇌가 정상작동 하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다시 한 번 내게 묻는다.

저 사람은 누구? 이름은 이명희. 나이는? 스물둘. 뭐하는 사람? 간호전문대를 졸업하고 모처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는 왜 있지? 오늘 점심까지만 나와 전혀 모르는 사이이고 인연도 없는 사이였는데 오늘 저녁에는 인사를 나누었고 자정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소맥잔을 나눈 사이가 되었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치를 살피고 말을 건넨다.

"저, 명희 씨. 이미 많이 드셨는데요... 이제 그만 드시는 게...."

이렇게 내가 만류한 것만 벌써 너덧 번째다. 사실 우리가 앉아있는 주점의 사장님은 진작부터 "쫓아내고 싶다"라는 진심을 그득 담은 눈길을 아주 아까부터 우리에게 보내는 중이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아뿔싸. 이미 손님이라고는 우리 뿐이다.

"한석 쒸이?"

그녀는 반쯤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술잔을 내밀었다. 이미 혀는 꼬일 대로 꼬인 그녀다.

"오늘이, 우리 데이트 촛날인데.... 제가, 춈 많이 마셨져?"

발음이 꼬일 대로 꼬인 그녀지만 그래도 영어나 프랑스어가 아니고 우리말이라 해석은 가능했다. 알긴 아시네요, 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그녀에게 대답했다.

"아니, 뭐... 데이트라면 데이트지만....."

절대! 절대로 이건 데이트로 하고 싶지 않다. 성인이 된 이래로 성인 여자와 이렇게 밤 늦도록 함께 있어본 적은 오늘이 처음이지만, 그래도 기필코 오늘을 데이트로 치고 싶지 않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노카운트! 노카운트!

"미안해여~ 미안해~ 해에~"

"아니, 미안할 거까지야...."

남중, 남고, 공대 환상의 트리플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나는 여자와 단둘이 있어본 적이 손으로 꼽는다. 이렇게까지 오래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은 더더욱 없다. 그런 나에게 "진탕 술 마시고 술주정하는 여자의 이야기에 무어라 반응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논문을 쓰라고 한다면 나는 곧바로 F학점이다.

"화지만~ 난~ 한석쒸같은 솨람이~ 너무 좋아~ 그래서 마셨어여~ 괜찮져?"

"...괘...괜찮아요."

"그럼, 괘안으니까 한 병 더~!! 솨장님!! 여기 쐬주 좀 주세요~ 잘 흔들어서~"

높낮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불안정한 음정만큼이나 그녀의 몸도 거친 숨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흉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녀가 내 취향의 여자가 아니었다면 진작 이런 자리는 박차고 나갔을 거다.

두툼한 코트와 목도리를 둘렀음에도 전체적으로 그녀에게서는 감출 수 없는 볼륨감이 진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코트 안쪽으로 언뜻언뜻 비치는 짧은 치마도 그러하고 무릎 위에서 끝나는 밴드 스타킹과 치마 사이에 은근하게 드러난 허벅지의 뽀얀 살결도 묘하게 색정적이다. 어찌 보면 고리타분하다 할 수 있는 검은색 뿔테 안경을 끼고 있음에도 그 너머의 얼굴이 가지는 요염함을 미처 다 가리지 못한다. 글래머라는 단어는 그녀를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

사장님은 우리에게 와서 결국 나가달라고 말했다. 술은 더 이상 줄 수 없다고 했다. 지갑 안에 돈으로 대충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온다. 술을 더 달라고 난동 부리는 명희를 간신히 끌고 간다.

"우리, 2차 가요, 이차~ 네?"

"아니... 일단 좀...."

그녀를 부축하고 술집을 나선 건 이미 12시가 넘어서였다. 계산하면서 세보니 소주만 아홉 병 넘게 깠다. 맥주도 그 배가 넘었다. 안주도 없이 술만 마시는 공대 술자리에 단련된 나는 비교적 정신이 멀쩡했지만, 그녀의 상태는 완전히 헤롱헤롱이었다. 이렇게 약할 거면서 왜 그렇게 마셔댄걸까. 그녀의 목도리를 둘러주고 가방을 들려주었다. 제대로 걷나 싶었는데 또 몇 발자국 못 가서 비틀거리기에 얼른 부축했다. 코트 너머로 뭉클하게 만져지는 감촉이 전해진다. 아찔했다.

"한석쒸이~~ 이차는 어디 따뜻한데.... 가요....네?"

찬바람이 살에 닿자 술이 좀 깨는 듯, 그녀는 이내 내 부축도 마다하고 혼자 휘적휘적 걸어갔다. 물론 지그재그로 걸어가는 통에 쫓아가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나는 꽤 신경 써야만 했다.

"앗! 오뎅!"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는 골목을 지날 때, 그녀는 마치 사냥감이라도 발견한 사냥꾼처럼 두 손을 번쩍 들어 만세 포즈를 취하더니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어가 오뎅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한석쒸이~ 한석쒸도 하나 먹어요~ 아앙~"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꽤나 살갑게 굴었다. 물론 입에 넣어준다고 내민 오뎅이 워낙에 흔들려서 내 뺨을 몇 번 치긴 했지만 그래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날씨가 춥고 해서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포장마차에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나는 오뎅 하나를 빼먹으며 그녀 옆에 서 있었다. 그런데...

"아앙... 이건 내가 좋아하는 거랑 모양이 닮았네엥...."

오뎅통 옆에는 핫바도 놓여 있었다. 그녀는 핫바를 하나 손에 쥐더니 입에 물고 먹는 게 아니라 "살살 빨기 시작했다." 오뎅을 삼키고 있던 나는 헛기침을 하며 잘못 넘어간 음식을 달래기 위해 가슴을 두드렸다. 잘못 봤나 싶어서 다시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아앙....."

맙소사! 그녀의 한쪽 손은 이미 자기 가슴께로 올라가서 코트 위를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입에는 "기다랗고 굵은 핫바"를 물고 말이다. 대체 그 동작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단 말인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주변에 있는 남자들은 죄다 이쪽을 보면서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부럽다는 눈초리가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인가. 어떤 이는 주춤주춤 자세를 돌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당신 다리 사이에 무슨 일 일어나고 있는지 난 알 것 같지만 캐묻지는 않겠수다.

"며...명희 씨!"

난 황급히 그녀의 핫바를 뺏었다. 입에 "물고 빨고" 있던 핫바가 사라지고 나니 그녀가 연출하고 있는 장면의 에로도는 급격히 감소했다. 나는 황급히 오뎅 값과 핫바 값을 계산하고 그녀를 데리고 포장마차를 나왔다. 등 뒤에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혀를 끌끌 차며 한마디 하는 게 들렸다.

"빨리 어디 암데나 델꾸 들어갈 것이지, 길에서 뭐하는 짓이람."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꼭 술 때문은 아닐 게다. 그러나 나의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석쒸이이이....."

그녀는 나에게 찰싹 달라붙는 것도 모자라 거의 헤드락을 걸듯이 내 목에 팔을 감아 넣었다. 내 얼굴은 별수 없이 그녀의 가슴팍에 파묻히게 되었다. 고문이라면 행복한 고문이다.

"날씨 춥지 않아요? 네에?"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해롱거리고 있으려는데 저만치, 물론 아주 멀리는 아니지만, 지금처럼 정신이 아득할 때는 멀고도 가깝게 보이는 곳에 뭔가 하얀 게 어른거린다. 위치는 그녀의 하체 어딘가. 내 기억에 분명 검은 색 치마와 검은색 밴드스타킹에 검은 색 구두를 신고 온 것 같은데 저 하얀색은 뭐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까, '핫바'를 좀 빨았더니... 아니... 먹었더니... 막 젖고 그래.....요...."

으헉!

그녀의 손가락에 걸려 있는 하얀색의 천, 그것은 그녀의 패....팬티였다! 시각정보가 전해오는 충격에 정신이 아득해질 때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어지럽힌다.

"빨리 들어가요.... 네? 안 들어가면...나 여기서 벗을 거예요..."

"네...넵!"

이후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느 골목에 어느 여관에 들어갔는지. 모텔에 들어갔는지. 대실로 끊었는지, 숙박으로 끊었는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방안에 들어선 후였다. 나는 아직 신발도 채 벗지 못 했는데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체중이 나에게 한껏 실려 온다. 벽에 몰아붙여진 나는 그녀의 압박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바지 속에서 잔뜩 부푼 내 자식은 빨리 밖으로 꺼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우리 재미있는 거 해요. 재. 밌. 는. 거."

"그.....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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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연재일정은 원래 매일...하려고 했는데, 12시가 되기 전에 잠들어 버리곤 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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