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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10화 (10/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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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움직임이 "또" 있었다. 내 머리를 부둥켜안고 있는 두 손 말고도 "또 다른 두 손"이 내 하복부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허리띠를 풀고 지퍼를 내리고 바지를 벗긴다. 물론 이쪽에서 협조를 좀 하긴 했지만 "또 다른 손"은 거기에 멈추지 않고 내 트렁크 팬티까지도 탐했다. 그것까지 벗겨지고 나면 나의 아래쪽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쓰읍-

정확히는 이런 소리가 아니지만, 암튼 이런 비슷한 소리가 났다. 아니, 난 것 같이 느껴졌다. 내 입술을 탐하고 내 상반신을 부둥켜안고 있는 이가 내는 온갖 신음과 한탄에 이미 내 시야와 청각은 마비되어 있었다. 방안 가득한 어둠 너머, 그리고 내 바로 아랫부분을 탐하고 있는 그 "입"이 내 물건을 집어 삼킬 때는 그런 소리가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쭈웁-쭈웁-

흡사 펌핑을 하듯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내 물건을 훑어낸다. 쪽 빨아내는 듯한 뺨 안쪽의 압착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혀가 끝을 핥아내고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기둥을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문지른다.

"아아-"

손놀림은 정교하면서도 세밀했다. 아래를 문지를 때는 적당히 조여주고 있었고 윗부분을 문지를 때는 또 적당히 이완시켜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키스를 나누던 이는 아래로 내려가 혀의 애무를 보태기 시작했다. 두 개의 뜨거운 혀가 번갈아가며 핥아대니 한 개 뿐인 물건은 녹아버릴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녹아내린다. 안에 잠재해있던 뜨거움이 공기 중으로 산화하고 그 아득함에 나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둘 중에 누군가 내 위에 올라탔다.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 명은 내 입술에 키스하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내 물건을 뜨거운 동굴에 가둔 채 신음하고 있었다. 허리를 들썩이며 그 리듬에 화답한다. 위에서 춤을 추던 이가 내려오자 다른 이가 그 무대를 이어받는다.

끝나지 않는 춤, 끊이지 않는 신음. 그렇게 녹아드는 밤 속에서 수도 없이 폭죽이 터져나갔다. 그것이 어딜 향했는지도 알 수 없다. 뇌가 녹아버릴 것 같은 그 상황 속에서 이 "꿈"은 제법 현실감이 넘쳐난다고 생각했다. 역시 꿈은 이렇게 야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나니 방 한쪽 구석에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옷은 그대로였다. 지혜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대각선 맞은 편 구석에는 효진이 쭈그리고 자고 있었다. 짐더미에서 이불을 찾아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어젯밤 그 야시시한 꿈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두 사람이 나와 함께 엉켜 물고 빨고를 하는 꿈 말이다. 예전에 동기 한 녀석이 정말 죽이는 거라며 가져온 비디오테이프에서 그런 비슷한 걸 본 기억이 났다. 남자 하나에 여자 둘. 정말이지 환상적으로 꼴리는 비디오였다. 물론 그런 게 현실일 리는 없지만 말이다.

마른 입맛을 다시며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를 올리고 물건을 꺼내어 조준한다. 어젯밤 맥주를 많이 마셔서 그런지 오줌에서 술 냄새도 제법 올라오고 때깔도 노리끼리 하다. 졸졸졸 이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무거운 머리를 좌우로 털어내고 있었다.

벌컥-

"음? 누가 있네?"

"히익!"

기겁을 하고 문 쪽을 보니 게슴츠레한 표정을 한 효진이 이쪽을 보고 서 있었다. 그녀는 잠이 들깬 표정으로 내 쪽을 보다가 시선을 점점 아래로 내린다. 무심하게도 오줌 줄기는 끊어질 생각도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몸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남의 집 화장실 바닥에 오줌 칠을 하게 될 판이다. 그녀는 입맛을 다시다가 말했다.

"뭐야, 어제 먹었던 거잖아. 흠냐...."

문이 닫혔다. 다시 홀로 되었다. 그리고 나는 패닉에 빠졌다.

'어제 먹었던 거라니요!!'

그럼 뭐야, 대체 어젯밤 그 일은 꿈이 아닌 건가? 서....설마, 진짜로 효진이랑 지혜가 내 물건을 가지고 할짝할짝을 했다는 건가! 그럼 내 위에 올라타서 춤을 추던 그것도 전부....? 급속도로 당황해진 나는 서둘러 마무리했다. 손을 씻고 방으로 돌아갔다. 효진은 다시 드러누워서 코까지 살짝 골아가며 자고 있었다. 깨워서 물어볼까 하는데 때마침 현관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지혜가 들어온다.

"어? 벌써 일어난 거야? 더 자지 그래."

지혜의 말 중에서 내 귀에 전달된 것은 "자지"란 두 글자뿐이었다. 마신 물도 없는데 사레에 걸려 켁켁 거리게 되었다. 그러자 지혜가 다가와 걱정스럽게 등을 두드리며 묻는다.

"저런? 속 안 좋아? 토한 거야?"

"켁...켁...아뇨...그런 건 아닌데...."

"일단 물 한 잔 마시고 쉬고 있어. 북엇국 끓일게."

지혜는 내게 물 한 잔을 건네고 싱크대로 다가가 음식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방바닥에 앉아 멀거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저기... 지혜 씨?"

"응, 왜?"

"아니, 저... 그게....그러니까.....어제 제가 말이에요...."

어제 일을 물어보고 싶지만 대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어제 당신이랑 당신 친구랑 제 물건을 가지고 물고 빨고 하다가 올라타셨습니까?'라고 물어봤는데 만약 그게 내 꿈이었다면 어떻게 할 셈인가. 미친놈이라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질문이다...

"근데 왜 나한테 존댓말 쓰고 있어? 어제 우리 다 같이 말 놓기로 했잖아. 기억 안 나?"

"그...그랬었나요? 아니, 그래요? 아니아니, 그래?"

파를 다듬던 지혜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곤 살짝 미소 지었다.

"푸훗. 너 진짜 웃긴다. 어제는 한 살 차이라는 건 동갑이나 마찬가지라고 우리 보고 절대로 누나라고 안 부르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말야. 정신 덜 차렸으면 가서 세수라도 좀 해. 그리고 효진이 좀 깨워줘."

"어? 어...."

"그리고, 어제 말인데...."

"어?!"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그러나 지혜의 표정은 평온했다.

"너랑 효진이 덕분에 이사도 잘 했고 그리고 이야기 나누면서 기분도 다 풀렸어. 고마워."

"어? 어...내가 뭘 했다고...."

"후후. 그러니까 빨리 들어가서 씻어. 얼굴이 말이 아냐."

얌전하게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했다. 찬물로 얼굴을 닦고 나니 좀 정신이 돌아왔다. 지혜의 태도를 보고 나니 어제의 일은 아무래도 내 꿈이 맞긴 맞나보다. 효진이가 뭔가 잘못 말했겠지. 방으로 돌아가 효진을 흔들어 깨웠다.

"음... 효진... 아, 아니. 효진아. 일어나."

"음냐음냐...."

"아침 먹어야지."

"음냐음냐... 더는 못 먹어.... 흠냐...."

몸을 뒤척이는 효진의 얼굴에 뭔가 하얗게 말라붙은 자국 같은 게 보였지만 그냥 침자국이겠거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설마 어제 꿈에서처럼 효진이가 그걸 입으로 받아먹고 했던 게 현실은 아닐 것이다. 정말 꿈이라고, 그렇게 내 자신을 설득했다.

간신히 효진이를 깨워 식탁으로 끌고 가 앉히고 나서, 지혜가 끓여주는 북엇국으로 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해가 중천이었다. 기지개를 한번 펴고 바로 앞에 있는 내 집으로 들어간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이렇게 와보니 정말 가깝다. 그제야 내 집 바로 앞에 지혜가 이사 왔다는 실감이 났다. 뒤통수를 긁적이고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어 방문을 연다. 오늘은 휴일이니까 모처럼 집에서 푸욱 잠이나 자야겠다. 왠지 모르게 하반신에 힘도 없고 말이다.

찰카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려는데, 그런데,

철컥-

낯익으면서도 전혀 낯익고 싶지 않은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그러니까 공이를 당겨 장전을 하고 방아쇠만 당기며 그 안에 압축되어 있는 70 파스칼 압력의 가스가 분출되면서 그 전단에 있는 납구슬을 발사할 준비가 되었다는 그 소리 말이다. 참고로 그 납구슬은 십 미터 이내에 있는 합판을 가볍게 뚫어버릴 수 있는 운동에너지를 가진다.

나보다 먼저 집에 들어와 있던 이는 이런 흉측한 물건을 항상 핸드백에 넣고 다니는 분이다. 그런 분이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물론 총구로 내 옆구리를 찌른 채 말이다.

"흐음... 이젠 아주 그냥 외박이야? 응? 그런 거야?"

"아...아뇨, 여기에는 사정이...."

"닥쳐!"

하지만 난 잘 알고 있다. 이럴 때 정말로 닥치고 있다가는 큰 화를 입게 된다는 것. 최대한 빠른 말투로 변명을 이어갔다.

"치...친구랑 만났거든요. 그래서 오랜만이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항. 그래서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주인님이 보낸 호출도 죄다 씹고 집에 전화해도 받지도 않고 그러셨다? 미친 거 아냐? 니가 요새 좀 감이 떨어졌지? 엉? 내가 중요한 볼일로 외출해야 되니까 따로 약속 잡지 말고 아침부터 대기해놓으란 음성 남긴 거 들었어 못 들었어?"

"호출.....이요? 음성....?"

"그래, 이 병신아! 호출! 삐삐 말야, 삐삐!"

주인님이 고맙게도(?) 뒤통수를 후려치며 외쳤기에 그제야 나는 어제부터 나도 삐삐족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황급히 가방에서 삐삐를 꺼내 익숙지도 않은 손놀림으로 조작을 해보니 무려 20개 가까운 호출이 들어와 있었다. 이 삐삐 번호를 아는 사람이 스무 명은 고사하고 두 사람도 안 되는데 말이다. 내가 삐삐 액정을 확인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명희는 버럭 소리 질렀다.

"야이, 새끼야. 너 진짜 죽어볼래? 나 미치게 하려고 작정했어? 엉?"

"아...아뇨, 정말 몰랐습니다. 진짜예요. 여태까지 안 쓰던 거라서 전혀 신경을 못 쓰고 있었습니다...."

1mm 정도만 당기면 바로 발사될 총구 앞에서 나는 조아리고 엎드려 싹싹 빌었다. 거의 30분 가까이를 빌고 나니 그제야 명희의 기분이 진정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마지막 경고야. 그 삐삐를 사준 이유를 잘 생각해. 알았어?"

"아, 예."

삐삐를 산 것은 나지만 말이다. 그런 딴지는 여기서 걸면 안 되겠지. 나는 현명하니까.

"알았으면 빨리 나갈 준비 해."

그러고 보니 명희도 외출복 차림이었다. 살짝 정장차림?

"어딜요?"

"니가 알 건 없으니까 일단 준비나 해. 시간은 10분 준다."

"아, 예."

황급히 머리를 감고 대충 옷을 갈아입었다. 평소 입던 대로 입고 나가니 주인님이 친히 조인트를 까신다. 주인님의 닦달에 힘입어 생전에 전혀 입지 않던 셔츠를 찾아 꺼내 입고 대충 정장 비스무리하게 해서 따라나선다. 명희를 따라 간 곳은 시내의 큰 백화점이었다. 거기서도 신사복 전문 매장이라 불리는 곳을 들어갔다.

"키는 이 정도면 됐고.... 덩치는 좀 더 크려나?"

"저기, 지금 뭐하시는 거죠?"

"내가 말 하라고 할 때까지 닥치고 있어."

"예."

내가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그녀는 점원의 도움을 받아 나를 마음껏 이용했다. 온갖 종류의 셔츠와 재킷, 다양한 종류의 정장바지를 입어보았다. 아마도 살아있는 마네킹 정도로 취급한 모양이었다. 적어도 마네킹은 자기가 직접 옷을 입을 수 없으니 내 쪽이 더 편리했겠지.

"방금 입었던 옷 하고요, 저쪽의 저 바지, 예, 그래요. 그거하고, 이거랑 해서 그렇게 주세요. 수선은 아까 말 한대로 해주시구요."

어찌어찌하다보니 정장 한 벌이 완성되었다. 설마 나한테 사주려는 건가 싶었는데 가만히 있어보니 이건 분명 내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키는 나와 비슷하지만 치수는 나보다 한 치수 더 큰 사람의 것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내가 계산을 하지 않고 그녀가 계산을 했다는 점에서 이건 결코 내 것이 아니었다. 가게를 나오며 명희가 말했다.

"야, 너 만약에 말이야... 아주 만약에..."

"네."

"흠, 혹시나 진호 오빠가 이거 얼마짜리냐고 물어보거든 싼 거라고 말해야 돼. 알았어? 비싼 거라고 하면 오빠가 부담스러워 할 거란 말이야."

"예....."

옷을 갈아입으며 얼핏 본 태그에는 내 한 달 용돈을 넘어가는 금액이 재킷 한 벌의 가격임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런 걸 가지고 싼 거라고? 게다가 아까 그녀가 계산할 때 카드로 6개월인가 할부로 결제하던데. 싼 거라면서 그렇게 사나? 그나저나 뭔가 깨달았다.

"아, 알았다."

"뭐가?"

"이거 진호 선배 주려는 거예요?"

"뭐....뭐야. 그건 니가 알아서 뭐하게!"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피한 채 나보다 먼저 저만치 걸어갔다. 진호 선배 이야기는 내가 아니라 그쪽이 먼저 꺼냈는데.... 나는 양손가득 들고 있는 짐꾸러미를 추켜올리며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걸어갔다.

얼마 후, 진호 선배 생일이 되었다. 우리 과 애들이 다 같이 과사무실에 모여서 케이크 하나를 사놓고 축하를 해주었다. 진호 선배는 내가 한번 입어보았던 정장을 입고 있었다. 누군가 브랜드를 알아보고 비싼 거 아니냐며 물어보았지만 진호 선배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냐, 그냥 아는 애가 사준 거야. 이미테이션이라 싼 거래."

.......그게 아니라 백화점에서 산거예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꾹 참았다. 주인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별 탈이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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