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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Route
효진과 함께 보낸 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며칠 더 내렸다. 오가는 길이 젖어 있어서 자전거를 타지 못 했다. 그러다 날이 개고 도로가 마르기 시작하자 다시 자전거를 꺼내와 기름칠 했다. 서울 생활에서 내 발이 되어주는 자전거가 녹이 슬어 삐꺽거리게 둘 순 없는 법이니.
속 모르는 사람은 내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게 건강을 위한 줄 아는데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이다. 달마다 들어가는 교통비가 꽤 된다. 가난한 자취생 입장에서 한 푼이라도 절약하는 건 지극히 합당한 생존전략이다. 게다가 서울의 대중교통이란 퍽 내 마음 같지 않은 녀석이라 버스를 타기 위해 오고 가는 거리와 시간을 셈 해보면 자전거로 가는 시간이나 비슷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시간 절약을 위해서도 자전거가 최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렇게 탁한 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릴 이유가 없다. 길거리에 자동차가 사람보다 많은 이 도시에서, 매연으로 그득한 도로를 달리다보면 폐까지 썩어 들어가는 기분이 저절로 든다. 게다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 같은 걸 만나는 날에는 육체가 아니라 마음까지 썩어버릴 것 같다. 그냥 지나칠 순 없다. 멈춰야 했다.
끼익-
브레이크가 거친 소리를 낸다. 조만간 기름칠을 한 번 더 해야 할 듯싶다. 자전거를 길가에 세워두고 도로에 드러누운 개에게 다가갔다. 손으로 들어올린다. 내 옆으로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이 위협적으로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저들 중에 범인이 있겠으나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대신 사과한다. 같은 인간으로서, 나라도 사과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미안하다...."
눈을 껌뻑거린 것 같다. 착각일까. 그렇지 않다. 손에 들린 녀석은 아직 살아있었다. 그러나 그 숨은 희미하고 육체는 반쯤 산산조각이 나있었다. 회생의 기미는 없다. 내가 이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품에 안고 멍하니 있는 것뿐이다. 그렇게 내 품안에 안긴 이름 모를 개는 죽어가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시골이라면 시골이고 아니라고 애써 주장하면 아니라고 할 만한 곳이다. 터미널과 다방거리를 중심으로 시장이 발달해있고 새로 생긴 공장 덕분에 인구가 북적이기 시작했지만 불과 십여 분만 걸어 나가면 금방 논과 밭이 펼쳐지는 그런 곳이었다. 급격한 산업화 덕분에 마을은 흥청망청 할 수 있었지만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경운기를 쫓아다니던 동네 개들은 전혀 그럴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늘어난 차량들의 행진에 개들은 익숙해지지 못 했고 익숙해지지 못한 개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어에 짓이긴 주검으로 변해갔다. 살아남은 개들은 그만큼 눈치가 좋다는 이야기겠지만 , 아쉽게도, 우리 집 개는 그렇지 못 했다.
평소에 내가 부르면 본체만체도 안하다가 삼촌들이나 어머니가 부르면 귀를 완전히 눕혀가지고 살랑거리던 그 똥개는 전혀 귀엽지도 않았고 예쁘게 생기지도 않았다. 허구한 날 대문 앞에 똥을 싸질러 나로 하여금 똥치우기 담당이 되게 만들었다. 우리 동네에 온 여자아이 한 명의 치마를 물고 늘어져서 한바탕 울리는 바람에 남은 학기 내내 그 아이에게 미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녀석 밥그릇에 밥이 남아있는 줄도 모르고 마당을 쓸다가 밥그릇을 쳐내었더니 득달같이 달려와 나한테 으르렁 거리던 적반하장의 놈이었다.
그런데도 그 녀석의 죽음 이후, 나는 길에서 만나는 작은 시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아까 내가 주워들을 때까지만 해도 가냘프게 숨을 이어가던 녀석은 이제 완전히 숨을 멈추었다. 내려놓고 싶었다. 죽음의 무게는 손으로 들고 있을 만큼 가볍지 않다. 어서 대지로 돌려보내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여있는 이 서울이라는 도시는 한 뼘의 흙도 보여주지 않았다. 한 손으로는 개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전거를 밀고 걸어간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힐끔 거리며 지나간다. 내 쪽을 향해 걸어오다가 흠칫 하고 거리를 두는 사람도 있었다. 살아있는 강아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지만 죽으며 그저 혐오의 대상이 될 뿐. 단지 그 뿐이다.
유진이네 아파트 단지에 이르자 다행히도 화단이 눈에 들어왔다. 적당한 나무 아래에 녀석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관리실로 갔다. 배와 허리춤, 손바닥에 피를 잔뜩 묻힌 내 모습을 보고 경비원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기겁을 하였으나 내 설명을 듣고 나더니 삽을 내주었다. 그리고 날 따라왔다. 삽으로 구멍을 파는 동안 경비원 할아버지는 등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다 함부로 묻으면 안 되는데."
"안 되나요?"
"그려. 저 멀리 산에 가서 묻든가 해야지. 댁에서 키우던 개요?"
"아닌데요."
"그러면 아는 사람이 키우던 개요?"
"아닌데요. 그냥 길 가다가 본 녀석이에요. 도로에 이대로 있는 건 너무 불쌍하잖아요."
할아버지는 혀를 찼다. 말로는 안 된다고 했지만 딱히 막아서거나 하진 않았다. 구멍을 파고, 녀석을 묻고, 흙으로 다시 덮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워낙 작은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삽을 할아버지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유진이네 집으로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멈칫했다.
잠깐, 이 꼬락서니를 하고 과외를 한다고? 남의 집에 들어간다고? 특수강도로 신고 당하기 딱 좋은 모습이긴 한데 그래도 어찌어찌 아는 사람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대충 손으로 피와 흙을 털어냈다. 그러고 나서 벨을 누르려는데 문이 먼저 열렸다. 아직 벨도 안 눌렀는데....
"어라?"
"들어오세요."
여전히 유진은 혼자 있었다. 표정이 무척이나 어둡다. 그러고 보니 약속한 과외시간보다 30분가량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앗.... 미....미안. 그게 말이다. 내가 늦은 이유는..."
변명을 하려 했지만 유진은 그런 내 말을 무참히 씹었다. 손을 들어 한 쪽을 가리켰다.
"됐으니까 저기서 씻고 와요."
"아, 그런가...."
황급히 유진이 가리킨 대로 욕실로 들어갔다. 세면대에서 대충 손을 씻고 나갔더니 유진이가 인상을 팍 쓴다.
"옷 다 벗고, 샤워하세요. 갈아입을 옷 갖다 드릴게요."
"어? 그래도 샤워는 좀...."
"피투성이 꼴하고 수업할 생각이에요? 빨리 씻어요! 벗은 옷은 여기 내놓고요."
"어? 어...."
유진의 박력에 밀려 얼른 욕실로 돌아갔다. 옷을 모두 벗고 문 밖에 내놓은 다음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엉겁결에 씻고 있노라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피와 흙, 불유쾌한 것들이 씻겨나간다. 그러다 문득 묘했다. 아무리 어린 애라고 하지만 여자애 혼자 있는 집에서 남정네가 샤워라니!!! 발가벗고!!! 아래를 훌렁 내놓고!!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이상한 느낌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꺄악-"
나도 모르게 사춘기 여자아이처럼 비명을 질러버렸다. 팔로 가슴을 가린다. 아니, 이럴 때는 아래쪽을 가려야 하나.
"........그 쪽 안 보고 말할 테니 듣기만 하세요. 여기 갈아입을 옷 갖다 놓았으니 나올 때 이걸로 입으세요. 벗어놓은 옷은 빨겠습니다."
"그....그래."
그 뭐냐. 히치콕 영화에서 샤워하다가 살해당하는 여자도 아니고 비명이냐, 비명은... 굉장히 뻘쭘했다. 얼른 씻었다. 샤워를 마치고 유진이가 가져다 놓은 옷을 보니 남자 옷이었다. 그것도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정장. 게다가 속옷까지 갖춰져 있었다. 주섬주섬 입어보니 나에게 딱 맞았다. 거실로 나가니 내 가방과 삐삐가 거실 탁자에 놓여있었고 유진은 늘 앉던 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내 옷은 보이지 않았다.
"아, 미안. 번거롭게 했네."
"됐어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늦게 되면 연락을 하시죠."
"알았어."
유진은 고개 들어 나를 가만히 보더니 이내 고개를 떨어뜨린다. 나를 왜 그렇게 유심히 보나 싶었는데 어쩌면 내가 아니라 이 옷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옷은 남자옷. 잠깐만. 내가 이 집에서 남자를 본 적이 있던가? 거실에는 그 흔한 가족사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한 번도 못 뵌 거 같네. 이거 아버지 옷이야?"
".......아니에요."
"그래? 그럼 혹시 오빠 있는 거야? 나중에 감사하다고 말씀 좀..."
"저한테 아빠나 오빠는 없구요. 그리고 감사인사는 전할 필요 없어요. 아저씨가 그냥 그 옷 가지셔도 돼요. 혹시나 해서 엄마 장롱을 열어봤는데 마침 있었을 뿐이에요. 아마 엄마가 준비해 둔 거겠죠."
"그....그래?"
엄마가 준비해뒀다고? 아빠나 오빠는 없다고? 오빠가 없다는 건 그렇다고 쳐도, 아빠가 없다니... 설마? 그러고 보니 여태 유진이의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어머니와는 전화통화라도 했지만 아버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다. 집에 남자가 없는데도 이 옷은 대체 어떻게 준비되어 있으며, 내가 가져도 된다는 건 왜일까? 궁금한 게 많았지만 유진의 말투가 워낙 단호했기에 더 물어보기가 껄끄러웠다.
내가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과외가 끝나고 주문한 초밥을 기다리는 동안 - 이제는 나도 초밥을 먹는다 - 유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
"개예요, 고양이예요?"
"응?"
"아까 아파트 단지로 들어올 때 안고 들어온 거 말이에요."
유진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가리킨 쪽으로 내다보니 아파트 단지 입구와 화단, 그러니까 아까 내가 들어오고 개를 묻은 곳이 잘 보였다. 왠지 쑥스러웠다. 유진이는 그걸 다 보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아까 벨을 누르기도 전에 문이 열린 것도 납득이 되었다.
"아아... 개였어."
"선생님 개?"
"아니. 그냥 지나가다 본 개야."
유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안고 와요? 안 더러워요?"
"더럽다니..."
"그럼 아까 선생님이 그 꼴을 하고 온 게 깨끗했어요? 왜 굳이 데려와서 묻어주기 까지 했어요?"
유진의 반문에 할 말이 없어진다. 하긴, 피와 흙으로 범벅이 된 개시체가 깨끗하다고 하면 그건 언어도단이지. 그렇지만 난 유진이처럼 모질게 말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왜 굳이 그걸 데리고 왔느냐는 유진이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왜 그랬지. 한참을 고민해도 답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이렇게 말해버렸다.
"그럼 그냥 두고 올 수는 없잖아. 내가 봤을 때는 아직 살아있었다고. 누군가는 안아줘야 했어."
멋쩍음을 감추려고 일부러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하고 만다. 실없이 웃으며 대답하긴 했지만 그걸 듣고 있던 유진이의 표정은 묘했다. 한참 동안 대답이 없던 녀석은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죽으면 그 사람이 날 안아줄까요?"
"뭐?"
뭔가 더 중얼거렸지만 제대로 듣지 못해서 재차 물으려는데, 배달원이 도착했다. 초밥을 먹기 시작하니 아까의 주제를 다시 꺼내기 힘들었다. 게다가 몹시도 침울한 표정의 유진이인지라 말 걸기 미묘한 분위기였다. 덕분에 내 옷을 돌려달라는 소리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조용히 초밥만 먹고 돌아왔다.
아파트를 나와 세워 둔 자전거로 다가갔다. 내 복장을 내려다보니 기분이 미묘했다. 여태 이런 복장을 입어본 적도 드물거니와 이런 복장을 하고 자전거를 타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일단 올라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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