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46화 (46/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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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Route

다시 또 한 주가 시작되었다.

월요일에 문학 속의 성 조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정소희, 유현지라는 여자애들 둘이었는데 둘 다 화공과생이고 기숙사에 지낸다고 했다. 2학년들이라 마리가 언니라고 부르면서 잘 따랐다. 이미 지난주에 마리가 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많이 나눈 터라 나는 그들이 정한 큰 틀에 이의 없이 따르기로 했다. 조 이름도 미리 정해놨는데 이름이 무려 Harem Desire란다. 뭔 뜻이냐고 묻자 소희라는 애가 지금 우리 조의 상황이 남자 하나에 여자 셋이니 딱 남자들이 꿈꾸는 하렘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걸로 했단다. 노래 제목인 Harlem Desire말고 말이다. 뭔가 위험한 속성이 있는 애들 같다. 발표주제를 정하고 분담하여 자료를 모으기로 했다.

화요일에는 과외를 갔다. 선영을 어떤 얼굴로 대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버벅였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그 날의 차 안에서의 일은 모두 잊은 걸까 싶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도 뭐해서 가만있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그녀의 집을 나서려는데,

"하고 싶으면 이야기 하세요."

하고 싶으면? 하다니. 뭘? 설마 생략된 목적어는 바로 그 뜨겁고 사나운 육체와 육체의 접촉을 뜻하는... 뭐 그런 건가? 고개를 홱 돌리자 거기에는 애써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선영이 있었다. 그녀는 나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지 않고 벽지의 무늬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약속은 약속이니... 말만 해요."

"어떤 말이요?"

그러자 선영은 원래의 무표정한 얼굴을 회복하고는 내 등을 밀었다.

"안녕히 가세요."

밖으로 나와 닫힌 문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꿈을 꾼 건 아닌 모양이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나는 대답도 못 하고 나오고 말았다. 하아. 늘 가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자료를 정리한다. 그러면서도 선영의 태도 때문에 활자가 제대로 눈에 안 들어왔다. 그녀는 대체 날 싫어하는 걸까, 좋아하는 걸까. 누구보다 유진이를 아끼고 좋아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겠는데... 나에 대한 마음은 어떤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어쩔 때는 날 너무너무 싫어하는 것 같고, 또 어떤 때는 날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방금 전 현관 앞에서의 그 찡그린 표정도, 마치 웃음을 참으려는 듯, 미소를 참으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안 되겠다. 다른 생각을 하자 차원에서 유진이가 말했던 종업원을 훔쳐본다.

과연!

역시!

이렇게 훌륭한 가슴을 내가 놓치고 있었다니. 조금씩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대놓고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카페로 들어온 유진이에게 꼬집힘을 한 번 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제법 아프다.

수요일에는 일찌감치 학교로 나가서 수업에 참석하는 거 말고는 계속 공부를 했다. 자격증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서 신청서를 받으러 갔던 과사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한 후배가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마레기가 과순이에게 집적거리다가 진호 선배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나 어쨌다나. 진호 선배가 그렇게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인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거참, 신기하군. 암튼 그 덕분인지 마레기는 학교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참 잘 되었군.

목요일에는 과외를 갔다. 여전히 선영의 얼굴 표정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이토록 무뚝뚝하고 마이 페이스인 표정의 여자에게 어떻게 "하고 싶다"라는 말을 꺼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얌전하게 수업만 진행하고 나오려는데 일요일 약속에 늦지 말라고 당부한다. 알았다고 대답했다. 또 다시 카페로 가 있으려니 이번에는 유진이 혼자 오질 않았다. 그 누구더라, 세탁소 집 딸내미라던 소란이라는 애와 함께였다. 발표수업을 준비할 게 있다나. 과외 대신 녀석들의 숙제를 도와주어야 했다.

금요일에도 역시 일찌감치 학교로 가서 수업과 공부를 병행했다. 마리도 처음에는 심심하다고 투덜거렸는데 결국에는 얌전히 내 옆자리에서 책 펴고 앉아서 자기도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얼마 후에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녀석을 두들겨 깨워야 하긴 했지만....

드디어 토요일이 되었다. 아침부터 마리가 쳐들어와 들들 볶는 사람에 늦잠도 못 자고 일어나야 했다. 앞집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엄마가 다녀간 다음에 내게 일어난 변화는 다름 아닌 리사가 차려주는 아침식사였다. 내 식생활을 몹시 염려한 리사는 숟가락 하나만 더 놓는 거라며 나를 기어이 아침식사에 참여시켰다. 처음에는 여자들만 사는 집에 들어가는 거고 아침부터 신세 끼치는 게 참으로 죄송스러웠지만 이제는 아주 적응이 잘 되어 늘 감사해하며 먹고 있다. 예전에는 아침 안 먹고 어떻게 다니나 몰랐을까 싶을 정도다.

"어디로 간다고 하셨죠?"

"어디더라. 강원도 어디라고 하던데요. 가평인가.... 아마 무슨 강 근처라던데."

"어머, 좋겠네요. 거긴 벌써 물놀이를 할 수 있나보죠?"

천진하게 묻는 리사의 표정이 무척이나 해맑다.

"물놀이라.... 아직은 좀 춥지 않을까요. 그래도 들어가는 녀석들은 있겠지만요."

"추운데 왜요?"

"왜긴요. 벌칙이다 뭐다 하면서 팔다리 잡고서 던져 넣는 거죠. 휙~ 이렇게요."

"어머, 재미있겠네요."

마리가 준비 완료를 알려 와서 리사 와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손 흔들어 배웅하는 리사를 뒤로 하고 마리와 함께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가니 제법 많은 녀석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아는 얼굴들에게서 인사를 받는다. 4학년이라고 안 껴줄 줄 알았는데 다행이었다. 더욱 다행인건 마리가 꽤나 많은 녀석들이랑 친하게 인사를 나눈다는 점이다. 나 모르는 사이에 동기들이랑 제법 많이 어울렸던 모양이었다. 대절한 버스를 타고 출발한다.

모꼬지는 참으로 전형적으로 흘러갔다. 어디 무슨 단체에서 일괄적으로 모여서 MT 내용을 법으로 규정하는 게 아닐까 싶다. 조를 정하고 게임을 하고 그러다가 몇 명은 물에 던져 넣고..... 나는 나이도 있고 해서 조별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고 3학년들이 진행하는 걸 구경만 했다. 그런 다음 밤늦게 술 먹고 꿱꿱 거리는 녀석들을 들어다가 숙소에 던져놓는 일을 맡아했다. 어쩜 내가 몇 년 전에 신입생으로 왔을 때랑 토씨 하나 안 변하고 똑같나 싶다.

마리는 자기 동기들이랑 무척이나 잘 놀고 있었다. 녀석이 나한테만 붙어다닌다고 걱정했던 건 기우인 모양이다. 그렇게 1박 2일의 엠티가 흘러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가볼 곳이 있다고 마리를 먼저 들여보내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슬아슬하게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선영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전히 검은 옷의, 그러나 평소보다 한층 더 가라앉은 분위기의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선영이 나를 맞이했다.

"오셨네요. 그럼 같이 나가시죠."

"예."

집을 나서면서 그녀가 내게 묻는다.

"혹시 운전면허 있으신가요?"

"있습니다만...."

"잘 되었네요."

잘 되었다니.... 그게 무슨....? 자....잠깐! 으악! 차 몰고 나가는 일이었던가, 이게? 이럴 줄 알았으면 궁금한 거고 나발이고 절대 안 오는 건데.... 다시 한 번 저승의 문턱까지 내 몸을 배달하는 게 아닐까 싶은 선영의 차에서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때늦은 후회를 해야만 했다. 시내에서도 그렇지만 외곽으로 나오고 나니 난폭운전은 더 심해졌다. 어딘지도 모를 곳에 도착해서 내린 난 한참동안이나 꿱꿱 거려야만 했다. 멀미라니.... 대체 언제 적에 해보고 하는 건지 감이 안 잡힌다. 그렇게 우리가 도착한 곳은 꽤나 한적한 동네였다.

"잠시 기다리세요."

선영은 길가에 있는 구멍가게로 들어가더니 꽃 한 다발과 비닐봉지를 하나를 들고 온다. 얼핏 보니 아마도 소주인 듯 싶었다. 구멍가게에서 웬 꽃도 파는가 싶어서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그 동네는 다름 아닌 공동묘지 입구에 있는 동네였다. 안쪽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니 묘지관리소가 보인다.

"잠시만요."

선영은 관리소에 들어가더니 거기 있는 할아버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오더니 내게 손짓한다. 그녀를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간다. 늦은 오후에 출발한 터라 사방이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다. 선영은 아까부터 말 한마디 없는 터라 주변의 조용함이 더 스산하게 느껴진다. 한참 만에 그녀가 멈춘 곳은 어떤 작은 묘지였다. 그녀는 묘지 옆에 놓인 항아리에 꽃을 꽂아두고 비닐봉지에서 종이컵과 소주를 꺼냈다. 상석 앞에 무릎 꿇고 앉더니 컵을 올려놓고 소주를 따른다. 가득.

"엄마, 한 잔 받아."

물론 대답은 없었다. 낮은 소리의 바람만이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선영의 뒤에 서서 가만히 그녀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묘를 관찰한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선영은 컵을 들더니 자신이 홀짝 마셔버렸다. 그리고 다시 한 잔 따라서 묘에 붓는다.

"오늘은 대신 운전해 줄 사람 있으니까 음주운전 안 해. 걱정은 하지 마, 엄마."

다시 한 잔 따르더니 자신이 마시고 다음 잔을 또 붓는다. 그리고 또 한참을 웅크리고 앉아서 가만히 있는다. 산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빨리 어두워진다. 검은 옷의 선영은 어둠 속에 잠기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게 된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선영이 또 술을 따라 마시고 붓는다는 걸 가늠할 뿐이다.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에 그녀가 숨죽여 울고 있다는 것만 추측할 따름이다.

해가 완전히 지고 달이 떠올라서야 그제서야 선영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살짝 비틀거리기에 얼른 부축한다. 소주 냄새가 확 난다. 이 여자는 무슨 깡소주 두 병을 물마시듯이 마시는 걸까. 안주도 안 사오고 말야.

"괜찮아요?"

"그럼요. 괜찮죠. 살아있으니까. 안 죽고 살아있으니까."

그저 상태를 물었을 뿐인데 뭔가 철학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그녀를 부축한 채로 산을 내려왔다. 길이 고르지 않아 꽤나 걱정되었지만 달이 밝아서 그럭저럭 내려올 수 있었다. 내가 대체 전생에 뭔 죄를 지어서 이런 달밤에 공동묘지에서 술 취한 사람을 부축해서 걸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만 모르긴 몰라도 큰 죄일 것 같다. 힘들어 죽겠다.

관리소에 불이 켜있었다. 선영이 손짓하기에 그쪽으로 그녀를 부축한다. 그녀는 관리소 할아버지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면서 말했다.

"아저씨, 만약 그 인간 오면... 저한테 바로 전화 좀 주세요."

"그려. 조심해서 내려가라구."

그 인간이라니. 대체 누굴까. 궁금증을 풀러 와서는 새로운 궁금증만 더 쌓여간다. 간신히 차까지 그녀를 데려다 앉히고 내가 운전석에 앉았다. 1종 면허 딴 지 꽤 되긴 했지만 시골에 있을 때 몰아보고 간만이라 좀 걱정되었는데 다행히도 오토였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한적한 국도를 달려가고 있노라니 선영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매우 잘 들렸다.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선영의 오피스텔까지 운전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돌아보니 선영은 잠들어 있었다. 깨울까 하다가 하도 곤히 잠들어 있어 그대로 들쳐 업고 방으로 올라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문 앞까지 간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문을 열기 위해서라도 깨워야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 귓가에 대고 선영이 속삭인다.

"0213"

뭐야. 이 여자 안 자고 있었잖아. 괜히 무겁게 업고 왔네.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알려준 대로 번호를 눌러 문을 연다. 현관에서 내려놓으려는데 선영이 내 목을 끌어안고 바싹 달라붙는다. 등 뒤에 와 닿는 풍만한 물체의 무게감이 새삼 느껴진다.

"침대로."

내 몸 균형 잡는 일도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간신히 선영을 떨어뜨리지 않고 침대까지 운반하는데 성공했다. 그녀를 침대에 놓고 몸을 일으키려고 하였지만 그녀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키스하세요."

청유형과 명령형의 중간 쯤. 어쩐지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선영의 표정 때문일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저 여자라면 환장하는 남자라는 어리석은 짐승의 슬픈 숙명 때문이려나.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한다. 방금 전까지 혼자서 소주를 들이마시던 여자의 입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달콤한 맛이 난다. 혀가 엉키고 입술이 겹치고 타액이 교환된다. 나는 한잔도 마시지 않았건만 그녀의 입으로부터 넘겨온 느낌에 취한다. 몇 번이고 입맞춤을 나눈다. 수십 번 혀를 섞는다.

"벗겨요."

이번에도 반쯤 청유형. 반쯤 명령형. 마찬가지로 거부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녀의 옷을 하나씩 벗겨낸다. 검은 색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하나 끌러낸다. 프론트 후크로 잠겨있던 검정색 레이스 가득한 브래지어를 풀어낸다. 뽀얗고 탄력 넘치는 가슴이 도드라지게 튀어나온다. 보기 좋은 윤곽을 자랑하는 살 언덕의 끝에는 옅은 갈색의 유두가 꼿꼿하게 세워져 있다. 그녀의 협조를 얻어 검은색 면바지를 벗겨낸다. 정말 어울리지 않게도 검은색 리본이 앙증맞게 가운데 자리한 레이스 팬티가 나타난다. 얇은 끈으로 둘러진 그것을 벗길 때는 나도 모르게 숨이 거칠어졌다. 삽시간에 선영은 나체가 되었다. 알몸이 된 그녀 앞에서 나 역시 서둘러 알몸이 된다. 아직 시키지도 않았는데 침대에 올라가 그녀의 몸에 혀를 댄다.

"하으윽......"

침으로 젖은 혀가 매끄러운 살 위에서 춤을 춘다. 유두를 물고 흡입한다. 목덜미를 살짝 문다. 두 손은 혀가 미치지 못한 곳들을 주무른다. 얼음보다 차가운 그녀라고 생각해왔건만 속살은 뜨겁기 그지없다. 목덜미와 귀 뒤를 핥을 때 선영은 손을 뻗어 나를 끌어안았다. 온 몸 구석구석을 핥아나가는 동안 자신을 아낌없이 열어주었다. 늘 검은 옷에 감싸였던 그녀의 몸은 이제 아무것도 거칠 것 없이 오로지 나에게 열려있었다.

"넣을게요."

손가락을 넣어 만져본 그녀의 다리 사이는 이미 충분히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 다리 사이의 물건이 너무 커져서 빨리 어딜 들어가고 싶다고 성화다. 내 속삼임에 선영은 눈을 꼭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물건을 붙잡고 그녀의 다리 사이를 조준한다. 무성한 털이 숲을 이루고 있다. 내 목표는 그 안에서 자리 잡고 있는 옹달샘. 미끄러지듯, 전혀 거칠 것 없이 그녀의 안으로 내가 들어간다. 뿌리까지 깊숙이 박아 넣으며 선영의 거친 숨소리를 즐긴다.

"하아아아악...... 흡......."

아랫입술을 깨물며 숨을 참는 그녀의 얼굴이 미치도록 사랑스럽다.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아래쪽에서 내 물건을 사정없이 조여 대는 동굴의 주인의 이름을.

"선영 씨....."

몸을 밀어 넣으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실눈을 뜨고 팔을 뻗어 내 목을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너무 딱딱하게 부르지 마요."

"네?"

"편하게 불러보세요."

조금 부담스러운 주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를 깨고 싶지는 않았다. 편하게라... 그녀와 내가 편한 사이였던가. 물론 몸을 섞은 적은 있지만 그렇다고 아주 편한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왔는데....

"선영아......"

선영은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들은 걸까 싶기도 하지만 아래쪽의 조임이 장난이 아니었다. 선영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좀 더 애틋하게 불려줘요."

이번에는 나도 주저하지 않는다,.

"선영아...."

오늘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뭐랄까. 의외였다고나 할까, 생소하다고 해야 할까. 평상시에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던 그녀가 모친의 묘 앞에서 꼼짝도 안 하고 앉아있던 모습은, 그 뒷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내 마음 속 한편에 잔잔한 파장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사실 지난번의 차에서의 일만해도 난 그저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을는지 모른다. 어차피 이 여자는 술집여자니까, 유진이라면 자기 몸까지 내어놓는 이상한 여자니까.... 그러나 지금 처연한 목소리로 자기를 불러달라고 하고 있는 그녀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가련하고 가장 여자다웠다.

"선영아... 선영아......."

살결의 마찰이 가져다주는 흥분을 만끽하며, 또한 평소에 제대로 불러보지 못한 이름을 마음껏 불러본다. 허리를 흔들며 몸을 부딪친다. 치골과 치골이 미친 듯이 충돌하며 쾌락을 이끌어 낸다.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은 정말 미칠 듯한 흡입력의 동굴이었다. 죽을 것처럼 조여 댄다. 그 자체로 살아있는 양 빨아댄다.

"선영아.... .... 흐으....."

"박아줘, 자기야. 나한테 어서....."

"선영아! 흐윽......."

피치를 점점 올린다. 피스토닝의 극한으로 치닫는다. 결코 눈을 뜨지 않는 선영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손가락이 입술에 닿자 그 붉은 입술이 살짝 벌려지더니 매끈하고 끈적끈적한 혀가 나와 손가락을 핥는다. 빤다. 살짝 깨문다. 손가락을 넣을락 말락 하자 마치 아래쪽에서 이뤄지고 있는 피스톤질처럼 거기서도 흡입을 해댄다. 허락한다면 이따 내 물건을 이 붉은 입술에 다시 한 번 박아 넣고 싶다.

"선영아... 선영아.... 나 지금....... 더 이상은......."

"싸줘요..... 하악.... 괜찮아.... 싸요......"

"하악..!!"

그 안으로 나를 쏘아낸다. 가득 끌어안고 거친 숨을 헐떡인다. 숨을 고르며 선영을 끌어안고 있으려니 선영이 손을 가만히 뻗어 내 등을 도닥여 주는 게 느껴졌다. 얼마나 그렇게 한참을 있었을까. 두 사람의 숨소리가 다소간 평온해졌을 무렵, 그녀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오늘 수고했어요."

.....하아. 뭐랄까. 그녀 스스로의 위안에 내가 동원되었다고 해야 하나. 아까까지는 우울의 극한에 빠져있었던 듯 한 그녀였는데 지금은 제법 목소리에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애초에 그녀가 소주 두 병에, 그것도 묘와 나눠 마신 것 정도로 취했을 리 없었겠지만 그녀가 돌아오면서 보여준 모습은 정말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양기를 충분히 흡입해서 그런지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답지 않게 경쾌하다고 할 정도로 회복되어 있었다.

"내가 왜 검은 옷을 입는지 궁금하다고 했죠?"

".......검은 옷이 아니라 왜 사납게 하고 다니는 지였는데요."

"그거나 이거나죠."

천장을 보며 누운 채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한 팔을 베고 나란히 누운 선영이 이야기를 천천히 꺼낸다.

"남편 잘못 만나서 평생을 불행하게 보낸 우리 엄마가.... 고생만 하다가 병으로 돌아가신 게 꼭 3년 전이에요. 제 나름의 3년상을 치룬다고 생각했어요. 오늘로 탈상을 한 셈이죠."

"3년상이요?"

요새 그런거 하는 사람도 있던가. 설마 그래서 검은 옷이었나?

"원래 탈상하기 전까지는 금욕도 해야 한다면서요? 그렇다고 제가 하는 일이..... 아예 안할 수는 없으니까."

그녀는 중간에 말을 잠시 흐렸다. 생략된 말이 어떤 것일지, 짐작은 간다만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유미 언니에게 부탁해서 되도록이면 초이스를 안 받도록..... 얼굴을 굳히고 있었어요. 화장도 사납게 보이도록 했구요. 원래 술집 여자들은 웃는 얼굴처럼 보이도록 화장을 해요. 그래야 손님들에게 더 좋게 보일 수 있으니까. 저는 그 반대로 한 셈이죠."

어처구니 없는 이유이긴 하지만 나름 합당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로써 내 궁금증은 풀렸다. 그렇지만 아까의 그 궁금함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 인간"이라니. 대체 누구일까? 묻고 싶었지만 선영은 오늘 일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얼굴을 굳히고 살다보니 어느 순간 제 마음까지 굳고 있더라구요. 그러고 싶진 않은데...."

선영은 내 쪽을 향해 돌아누웠다. 그녀의 손이 내 가슴과 배를 어루만지는 게 느껴졌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쑥스럽다는 듯이 살짝 웃는다. 그 모습이 참 곱다.

"제가 원래부터 그렇게 딱딱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일부러 그러다보니 굳어버린 거죠."

"선영 씨는 웃는 모습이 참 예뻐요. 처음 봤을 때는 좀 놀랐어요."

쿡 소리를 내며 내 겨드랑이에 얼굴을 묻은 채로 웃는다. 얼굴을 보이는 게 겸연쩍다는 듯이.

"빈말이라도 고마워요."

"빈말 아닌데...."

"아무튼, 오늘 고마웠어요. 한석 씨 아니었으면 또 혼자서 술 먹고 거기서 잠들었을지도 모를 텐데."

"묘지에서요?"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엄마 옆인데."

"예에....."

은근 무서운 여자다. 이 여자. 감탄 아닌 감탄을 하면서 시계를 올려다보니 시간이 꽤 늦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선영이 내 어깨를 가볍게 잡아당긴다. 돌아보니 그녀가 약간 쑥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늦었는데 자고 가요."

"괘...괜찮나요? 그래도?"

그러자 시선을 살짝 내리깔며 조용히 대답한다.

"한 번 더 해도 괜찮기도 해요."

가슴을 어루만지던 그녀의 손은 어느새 아래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리고 말랑말랑해진 녀석이 다시 단단해지도록 돕고 있었다. 분명 그녀가 말하기를 내가 원할 때 그녀의 몸을 제공한다고 했었는데 어째 점점 거꾸로 되어가는 기분이다. 뭐, 이러지 저러니 해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말이다. 나 역시 선영 쪽을 향해 몸을 돌린다. 그리고 다시 한 번의 행위를 하면서 이제 완전히 그녀와 말을 놓기로 합의했다. 도장은 아래다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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