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52화 (52/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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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Route

병태라는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인 녀석이었는데 희한하게도 성은 기억이 안 난다. 별명은 변태. 그런 강렬한 별명을 가지게 된 데에는 이름도 이름이거니와 하는 짓이 정말 기가 막혀서 그렇기도 했다. 녀석은 생리대 감촉이 궁금하다고 직접 슈퍼에 가서 생리대를 사와서 교실에서 뜯어보기도 했고, 용돈 받으면 곧장 남들이 잘 모르는 어떤 곳으로 가서 비디오테이프며 책이며 하여간 이상한 물건들을 사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물 건너 영상물들을 어떻게든 입수해서는 그 내용이 궁금하다고 학교 공부는 도외시하고 영어 공부와 일어 공부에 매진을 할 정도니 말 다했다. 녀석이 가져온 것들을 친구들끼리 돌려보며 시시덕거리던 게 엊그제 같다.

그때 병태가 가져온 것들 중에서 그런 내용도 적잖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자가 혼자서 자기 몸에 대고 응응응하고 있을 때 남자가 등장하면, 여자가 황홀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달려들며 "오, 마이갓! 이걸 원했어! 이 길고 단단한 걸로 어서 날 쑤셔줘! 퍽 미!" 라는 판에 박힌 대사와 함께 둘이서 응응응 하는 걸로 돌입하는 내용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서....선배?"

황급히 이불을 그러모아 몸을 말아버린 마리 앞에서 난 얼음땡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불 바깥으로 나와 있는 녀석의 발목에 팬티로 추정되는 어떤 천이 걸려있는 것까지는 보았는데 내 시선이 거기에 닿자마자 후다닥 이불안으로 다리가 감춰진다. 녀석은 마치 갑옷처럼 이불을 꽁꽁 싸매고 나를 굉장히 경계하는 눈초리로 살핀다. 똘똘 말린 이불이 마치 공격자를 만난 아르마딜로를 연상시킨다.

"여....여긴 우짠 일로....."

아직까지 신음소리의 여운이 가시질 않는 마리의 목소리. 그걸 쥐어짜면 당황이라는 액체가 줄줄줄 흐를 것 같다. 붉게 상기된 표정은 잘 익은 홍시를 연상시킨다.

"바.....밥 말이야. 밥 먹자고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서....."

덩달아 나까지 당황하고 만다. 솔직히 말해 녀석을 소리 높여 부른 적은 없지만,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고 만다.

"지....지는예... 생각이 없어가....."

"그...그러냐? 아, 알았어."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마리는 이불만 내려다보며 아무 말도 않고 있었고 나는 어느 타이밍에 빠져야 되는가 고민하면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그럼 난 밥 먹으러 갈게."

뒷걸음치듯이 방에서 나와, 도망치듯이 그 집을 벗어나, 바람처럼 단골 음식점까지 뛰어간다.

"으아아아아! 난 머저리야!!!!"

벌거벗고 유레카를 외치던 아르키메데스는 금관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 부피 측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환희에 넘쳤겠지. 반면에 나는 전혀 벗지 않았음에도 벌거벗은 기분을 느끼며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쪼다 멍청이인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어처구니없음에 진저리 치며 비명을 질렀다. 거기서 바보처럼 왜 그러고 있었는지 나 자신에게 몇 번이고 묻는다. 설마 남자답게 돌진했었어야 하나? 아아. 정말 모르겠다. 마리, 이 녀석은 사람 심란해지게 왜 그러고 있었을까. 도무지 알 수 없다.

답도 안 나오고 해결 방법도 전혀 모를 생각만 연신 거듭하다가 나중에 쪽팔릴 일을 안 당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성장기의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내용의 영상물과 출판물을 접하게 해야 한다는 진지한 결론도 도출했다. 머리통을 감싸 쥐고 이마를 테이블에 쿵쿵 박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음식점 아줌마한테는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번개같이 준비하고는 집을 나선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오늘부터는 교생실습이라 당분간은 마리를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 앞집 문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애쓰며 빌라를 빠져나온다. 문득 지혜가 떠오른다. 지금쯤 신혼여행가서 재미나게 잘 지내고 있을 그녀. 그러고 보니 그 때 지혜랑 잘 안 되고 나서 "앞집 여자랑은 절대 하지 말자"라는 내 나름의 원칙을 세웠던 것 같기도 한데 말야. 어제는 내가 뭐에 홀린 것 같다. 그 전에는 리사에게 홀린 거고.... 한숨을 푹 쉰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우리 학교 공대 옆에는 야트막한 동산이 하나 있고 그 너머에는 부속고등학교가 딸려 있었다. 동산에 올라 학교 쪽으로 가는 길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사온 빵과 우유를 먹었다. 항상 리사가 차려주던 아침밥을 먹다보니 아침을 먹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새삼 리사가 그리워진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예린에게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할 일이 있다고 저 멀리 부산까지 내려간 사람이니 너무 귀찮게 하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한참을 서성인다.

"어? 김한석? 일찍 나왔네?"

언덕 아래에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요 근래 교생준비 한다고 교생 나갈 사람끼리 사전에 모임을 몇 번 가진 적이 있었다. 그 때 봤던 박태근이라는 체대생이었다.

"태근이 형, 안녕하세요. 근데 전 김한석이 아니라 최한석이라니까요."

"아, 그러냐? 어차피 남자이름이야 대충 기억하면 되지, 뭐."

"이건 명백한 성희롱..."

"푸하하. 성 틀리게 불렀다고 그게 성희롱이야? 이 자식 엄청 썰렁하네."

그는 몹시 쾌활하게 웃으면서 내게 악수를 청했다. 커다란 손이다. 나는 가볍게 쥐었는데도 그쪽은 와락 붙잡고 세게 흔든다. 살짝 아프다.

"우리 말고도 몇 명 더 있지?"

"저희 말고 두 명 더요."

"여자였지?"

"예."

"흐음. 2대 2라. 딱 좋은데. 한석 군 혹시 여자 친구 있어?"

"아뇨. 없는데요."

"그럼 잘 됐네! 우리 이번에 어떻게 잘 엮어보자. 응?"

"....저희는 교생 실습하려고 모인 거 아니었습니까?"

"푸하하. 그렇다고 고등학생을 꼬실 순 없잖아. 응? 안 그래?"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굉장히 친한 척이다. 그러나 기분은 나쁘지 않다. 사람이 말투와 행동에서 여유가 있고 붙임성이 상당히 좋았다. 덩치는 곰처럼 커다랗고 말투가 지극히 남자다우면서도 대단히 호쾌하다. 상대방의 성(姓) 같은 사소한(?) 거에는 별로 얽매이는 스타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군대 갔다 복학하고 지금 4학년이라 나보다 나이도 많았다. 첫 만남에서부터 대뜸 형이라 부르라고 할 때부터 성격을 알아봤다. 담당과목은 체육. 정말 딱 보기에도 체육선생 같은 인상이다. 지금 입고 있는 정장은 살짝 쫄려 보여 절대 안 어울리고 트레이닝복에 호루라기 물고 있으면 정말 잘 어울릴 테다.

"한 명은 스타일이 마음에 들던데 나머지 한 명은 영..."

"별로던가요?"

"뭐랄까. 나쁘지는 않은데 내 맘에 안 든다고 해야 하나."

남자끼리의 대화의 오랜 화두, 여자 이야기로 대화의 꽃을 피운다. 부속고등학교에 실습 배정 받은 사람은 네 명이었는데 나를 빼고 나머지는 여기 태근이 형과 두 명의 여학생이었다. 그 두 명은 영 딴판이었는데 키가 크고 스타일이 좋은 쪽이 국어교육학과의 박은애였고 키가 작고 수수하며 얼굴만 놓고 봤을 때 여고생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여학우가 수학과의 양현아였다. 아마도 형이 말한 건 글래머한 몸매의 박은애를 말하는 거겠지. 일단 여자 둘은 나와 같은 4학년이었다. 나이도 나와 동갑.

"양반은 못 되는 아가씨들이네. 저기 온다."

우리 두 사람은 벤치에서 일어나서 두 여학생을 맞이했다. 오늘은 첫 출근이다 보니 다 같이 모여서 들어가기로 약속을 정한 터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학교로 향한다. 나와 태근이 형이 앞장서고 두 여자가 뒤에 따라오는 모양새가 되었다. 태근이 형은 나에게 살짝 귀띔한다.

"야, 저기 은애라는 애는 내가 찜할 테니 잘 좀 밀어줘 봐. 알았지?"

힐끔 뒤를 살핀다. 두 사람의 스타일은 확연히 달랐다. 여동생이 자기 언니 옷 빌려 입고 면접 보러 가는 복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안 어울리는 현아와는 달리 화사한 색상의 원피스를 차려입은 박은애는 키도 늘씬하니 스타일이 참 좋았다. 태근이 형에게 대답했다.

"둘 다 하셔도 전 상관없으니 알아서 하세요."

"크크. 진짜지? 나중에 무르기 없기다?"

일단 저 둘의 의사는 제쳐두고서라도 태근이 형은 이미 혼자서만 핑크빛 모드다. 이 사람아. 우린 지금 실습하러 가고 있다고. 사랑의 스튜디오 찍으러 가는 게 아니라!

행정실에 들러 수속을 마치고 실장의 안내를 받아 교장실로 향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느글느글한 교장에게서 20여 분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교무실로 갔다. 교무회의에 앞서 전체를 향해 소개된다. 태근이 형이 먼저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그 다음이 나였다.

"기술, 가정을 맡은 최한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수가 터져 나온다. 몇몇 아줌마 선생님들이 나와 태근이 형을 번갈아 보며 쑤군거리더니 더욱더 열렬하게 박수를 친다. 어쩐지 불안하다.

"수학을 맡은 양현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맨 앞자리의 사람에게도 들릴까 말까한 목소리의 현아. 다들 박수를 반쯤 치다 만다. 그 다음이 박은애였다.

"국어를 맡은 박은애라고 합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현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우렁찬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환호에 휘파람까지.... 은애가 그래, 좀 늘씬하고 나올 데는 나오고 들어갈 데는 제대로 들어간 훌륭한 몸매에 나름 멋을 부린 화장까지.... 남자들이 보면 몹시 좋아할 스타일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선생님이라는 분들이 저렇게 팔을 흔들어가면서까지 좋아할 필요는 없지 않나? 이래서 남자는 남자인가 보다. 나도 좀 그렇지만. 흠.

"야, 쟤가 박은애 였냐?"

태근이형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묻는다.

"네. 왜요?"

"아, 난 또 쟤가 현아인줄 알았지. 그랬구나."

이 사람은 진짜.... 남의 성을 갈아치우질 않나, 이름을 바꾸질 않나. 자기 이름은 어째 안 까먹고 다니나 모르겠다. 그나저나 현아가 자기 스타일이라고? 방금 사람들의 반응을 봐도 알겠지만 대개의 남자들이라면 현아보단 은애를 선택할 텐데 취향 한번 독특하다. 그 이후 이어진 뭔 소리일지 하나도 못 알아먹을 교무회의가 어찌어찌 끝나고 각각 담당 사수에게 인계되었다. 내 담당은 송지애라는 여자 선생님이었다.

"안녕하세요. 최한석입니다. 한 달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송지애라고 해요."

손을 척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여자가 먼저 악수를 청하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예쁜 여자이긴 한데 그와 동시에 말투가 몹시 남자답다. 나이는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데 짧게 친 머리도 그렇고 입고 있는 옷도 그렇고.... 굉장히 단조로운 차림이었다. 그 흔한 목걸이나 귀걸이 하나 안 달고 있는 모양새가 퍽이나 특이했다. 그녀는 내게 서류더미를 안겨주며 말했다.

"앞으로 4주간 저희 반 부담임을 맡게 되실 겁니다. 오늘 안으로 이 출석부의 이름과 사진을 외우세요. 3주간은 제가 하는 수업의 참관 및 수업 보조를 하실 거구요, 마지막 1주차에는 최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시게 됩니다. 그 전까지 수업계획서 및 교안 작성을 마치세요. 질문 있습니까?"

......에, 있어도 왠지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은 분위기랄까. 자기 하고 싶은 말만 일사천리로 끝낸 송 선생은 나보고 따라오라고 이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미새를 따라가는 아기새처럼 나는 그녀를 졸졸 따라가야 했다. 뭐랄까. 말투가 몹시 철두철미한 게 마치 군인 같은 스타일이다.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신병훈련소에 갓 입소해서 고참을 대하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교생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선생님입니다. 우리는 소수이고 학생들은 다수죠. 학교에서 혹은 인근 지역에서의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감시하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시고 모든지 한 번 더 생각하고 움직이기 바랍니다. 단순히 저와 교감 선생님의 평가만이 최 선생님의 실습 평가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 명심하세요."

"네."

"만에 하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나면 실습은 전면 중지입니다. 해명 따위는 먹히지 않아요. 학교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시끄러워질 심산이 보이면 바로 손을 떼니까요. 선생님들이야 노조도 있고 경력이 있으니 상관없지만 교생은 전혀 다른 입장이라는 거, 알고 있죠?"

"아, 예."

"좋아요. 앞으로 4주간 잘 해내길 빕니다."

"옙."

교무실을 나설 때 수업 종이 울리고 있었다. 복도에서는 교실로 복귀하려는 학생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요만한 녀석부터 이따만한 녀석까지 참 다양했다. 내가 최근에 보아온 고등학생이라고는 유진이와 소란이 둘 뿐인데 걔들은 원체 조그마한 녀석들이라 고등학생은 다 그럴 거란 착각 아닌 착각을 하고 있었다.

"1층이 교무실 및 행정동. 2층이 3학년, 3층이 2학년, 4층이 1학년 교실입니다. 건물의 양쪽 끝에 화장실이 있고 과학실, 음악실, 체육관을 비롯한 각종 시설은 별채에 모여 있습니다. 남교사 휴게실은 1층 끝에 있구요, 여교사 휴게실은 아직 없습니다. 전부터 설치해달라고 계속 요청중인데 이놈의 학교행정은 도무지 발전이라는 게 없군요."

"아, 예."

어쩐지 나라도 대신 사과해야할 것 같은 박력이다.

"다행히 별채에 연구실은 있으니 기가 담당 선생님들과 계약직 선생님들도 거기에서 대기하고 쉬곤 하죠. 이따가 점심시간에 그쪽에 안내하겠습니다. 이 밖에 질문 있습니까?"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오르고 교실을 찾아가면서 이어진 그녀의 설명을 놓치지 않기 위해 꽤나 노력해야 했다. 발음은 꽤나 명료했지만 말투가 워낙 빨랐기 때문이다.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던 터라 그녀가 우뚝 멈춘 것을 몰랐고 하마터면 그녀의 뒤통수에 코를 들이박을 뻔 했다. 왜 멈췄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여기가 그녀의 반이었다. 지애는 날 돌아보더니 재차 묻는다.

"질문 있냐고 물었어요."

"없습니다."

"좋아요. 들어가죠."

송 선생이 앞장서서 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갔다.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제자리로 찾아 돌아가고 송 선생이 교탁 앞에 섰다. 나는 뻘쭘함을 애써 감추며 교탁에서 2미터 떨어진 곳에 섰다. 남녀 도합 사십 여명의 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혹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이 정도의 시선이라니. 몸이 배배 꼬일 지경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난 꼬이던 몸을 바로 펴게 되었다. 낯선 시선들 사이에서 낯익은 이를 발견했기에.

"반장, 인사해."

송 선생이 지시하자 교탁 바로 앞 2분단 첫 번째 자리의 여고생 하나가 일어난다. 하얀 얼굴에 동그랗게 뜬 눈이 어디서 많이 보던 녀석인데 말이다. 게다가 방금 일어나 반장 옆 자리에 앉은 또 다른 쪼끄만 녀석은 날 알아보고 활짝 웃으면서 살짝 손까지 흔들고 있었다.

"차렷. 경례."

반장의 구령에 맞추어 학생들이 한 목소리로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면서 인사한다. 송 선생은 내게 손짓하여 자기 쪽으로 오게 한다.

"자, 오늘부터 4주간 교생실습을 하면서 우리 반 부담임을 맡게 되실 최한석 선생님입니다. 최 선생님? 이쪽으로 오세요."

"예."

교단에 올라서서 학생들을 둘러본다. 각양각색의 표정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런 자리에, 이렇게 서 있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안녕하세요. 최한석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하자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소란이가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박수소리는 반 전체로 퍼졌고 이내 나를 환대해주는 아이들의 각종 환호로 뒤바뀌었다. 처음 보는 나를 이렇게나 반갑게 맞아주다니. 참으로 고맙구나, 얘들아. 딱, 한 사람.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고 팔짱을 낀 채로 나를 째려보고 있는 유진이만 빼고 말이다. 넌 좀 반갑다는 표정 좀 지으면 어디가 덧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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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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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대 부속고등학교 1학년 3반, 출석번호 3번, 양소란

K대 부속고등학교 1학년 3반, 출석번호 4번, 진유진

키 순서로 번호를 매겼으니 유진이가 소란이보다는 좀 큰 편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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