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83화 (83/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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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봐요. 형. 처음부터 현아가 이걸 넣으려고 한 게 아니에요."

"뭔 소리야, 그건 또."

"다른 사람이 시킨 거예요. 현아는 일종의 장난... 뭐, 그런 것처럼 생각하고 한 거란 말이죠."

"그렇다면 설마 시킨 사람이..."

형은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떴다.

"은애냐?"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하...하핫. 하하하...."

형은 이마를 짚은 채로 한참을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결코 웃겨서 웃는 게 아니다. 처연했고 음산했다. 한동안 그렇게 웃다가 고개도 들지 않고 내게 말을 건넸다.

"한석아."

"네, 형."

"사람이 말야.. 가진 게 많아지면 뭐가 제일 좆 같은지 아니?"

"글쎄요. 많은 적이 없어서....."

좆같아도 좋으니 돈 좀 많아봤으면 싶은 적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짓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다가가는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 다가오는 사람은 일단 싫어진다. 이게 날 좋아해서 다가오는 건지 아니면 내가 가진 것을 좋아해서 다가오는 건지 몹시 헷갈리거든."

"그런가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이면을 생각해보니 끔찍하기 짝이 없다.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의심해야 하다니. 그렇게 잔인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은애, 그 년은 그래. 어처구니 없지만 그냥 귀엽게 두고 보고 있었다. 아예 대놓고 내가 가진 게 좋다고 다가오는 걸 숨기지 않고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했지. 하도 흔해 빠진 년이라 별로 신경을 안 썼어. 근데 이딴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하하하. 내가 좋아하는 애를 이용해서 나를 엿 먹여? 푸하하하하."

"형...."

형은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 내면에는 썩은 고름이 줄줄 흐르는 것 같다. 그걸 감추기 위해 애써 더 웃는 것 같다. 한참을 그렇게 웃던 그는 어느 순간 웃음을 뚝 그쳤다.

"아아, 사람이 그냥 웃고만 있으면 말야. 호구처럼 보인다는 게 사실인가봐. 난 예전부터 인상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가지고 되도록이면 항상 웃고 있으려고 노력했거든. 내 동생도 마찬가지고..."

"효진이가요?"

"그래. 그런데 이젠 그게 어려울 것 같다. 이 씹어먹을 년이 날 우습게 보도록 두고 볼 수는 없지."

형은 남은 잔을 훌쩍 마셔버렸다. 씹어먹을 년이 누군지는 따로 묻지 않는다. 500CC 잔을 거칠게 내려놓고 형은 나를 보며 말했다.

"2차 가자. 내가 아주 재미있는 걸 보여줄게."

형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호프집을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형은 택시를 타고 가면서 핸드폰을 꺼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무언가를 준비하라고 지시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우리 두 사람을 태운 택시는 종로 모처의 카페촌에 도착했다.

"여긴... 왜요?"

형은 별말 없이 나를 한 카페로 데려갔다. 근데 우리의 목적지는 카페가 아니었다. 화려한 카페 바로 옆에는 간판도 없는 어떤 조그만 문이 달린 검은 색 건물이 있었다. 입구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덩치 한 명이 서 있었고 우리가 다가가자 그는 형을 알아보고 눈인사를 나누었다. 형은 내게 말했다.

"먼저 들어가서 내 이름 대고 룸 잡고 있어. 난 뭣 좀 준비해 갈테니까."

"혼자... 들어가라구요?"

"미리 이야기는 해두었으니까 매직룸으로 달라고 해."

더 이상 설명도 않고 어깨를 가볍게 밀기에 어쩔 수 없이 먼저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귀신의 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두운 조명이 드리워진 작은 홀이 있었다. 안쪽으로는 좁고 긴 복도가 나 있었고 그 옆에는 접수처 같은 곳이 있었다.

"어머, 어떻게 오셨나요...?"

카운터에 기대 앉아 있던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눈가에 주름이 살짝 잡힐 듯 말 듯한 중년의 여인이었다. 검은 색의 롱원피스로 온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워낙 착 들러붙는 옷이라 나이를 잊게 하는 육감적인 몸매를 선보이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내부 인테리어도 그렇고 여인의 옷차림도 그렇고... 내가 츄리닝 차림으로 막 들어올 그런 곳은 결코 아닌 것 같았다.

"저기, 태근이 형이... 그러니까 박태근 씨가 방을 하나 잡고 있으라고..."

"아아, 작은 박 사장님? 전화는 받았어요. 이쪽으로."

여인은 매력적인 미소를 띄우며 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아, 매직룸으로 달라고 하던데요?"

"맞다. 그랬지요? 내 정신 좀 보게. 매직룸이라... 남는 게 있으려나...."

그녀는 카운터로 돌아가더니 무언가 확인하고 돌아왔다.

"이쪽이에요."

라고 말하곤 나를 다른 쪽 복도로 안내했다. 노래방처럼 개별적인 방이 각각 따로 있는 것 같았지만 육중해 보이는 검은 문만 달려 있을 뿐, 창문 같은 건 전혀 달려있지 않았다. 대체 뭐하는 곳인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복도를 꺾어 들어가다가 한 방에 도착하더니 여인이 먼저 열고 들어갔다. 그곳은 ROSE에서 보았음직한 접대용 룸이었다. 한쪽 벽 전체가 거울로 되어 있고 바닥과 소파가 훨씬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게 차이점이랄까.

"두 분이신 거죠?"

"네? 아마도요."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방 사용법은 알고 계시죠?"

"네? 사용법이요?"

방을 사용한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싶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거울이 있는 쪽 벽 한 부분을 누르게 했다. 그러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거울 벽 한 부분이 똑 떨어져서 미닫이 문처럼 옆으로 스르륵 열리는 게 아닌가. 입이 떡 벌어졌다.

"필요한 게 있으면 여기 인터폰을 사용하시면 되구요, 그럼 일단 기본적인 것부터 준비할게요."

"아, 예...."

말도 안 되는 현상이 눈 앞에서 펼쳐진 것에 깜짝 놀라있는 터라 여인이 무어라 하는지도 잘 들리지 않았다. 여인이 방을 나가고 난 후에도 자동문을 몇 번이고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해서 해 보았다. 정말 대단한 건 대체 어떤 모터를 쓰는지 모르겠지만 거의 소음도 없고 약간의 유격조차 없이 딱 맞아 떨어져서 닫았을 때 전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을 여는 스위치조차 벽면에 매립되어 있어서 위치를 아는 사람이나 누르지 모르는 사람은 전혀 알 도리가 없게끔 되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설계한 공돌이가 정말 고생깨나 했을 성 싶다. 대체 어떤 모터나 포지셔너를 쓰는 건가 싶어 궁금해 구동부를 보고 싶었지만 마감처리도 완벽해서 일체 드러나지 않는다.

'잠깐, 그런데 저 문을 열어서 대체 뭐하는 거지?'

호기심이 일었다. 자동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안에도 바깥 못지 않게 고급스러운 내부장식이 되어 있었고 작은 테이블과 소파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좁은 편이라 답답할 것 같았다. 그러나 우연히 안쪽 벽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리?'

다시 밖으로 뛰쳐나와 확인해본다. 이쪽 벽에서는 거울로 되어 있는 부분이 저쪽에서는 유리로 되어 있다. 그제서야 이 방의 이름인 "매직룸"의 의미를 이해했다. 바로 매직미러(Magic Mirror)를 사용하여 둘로 나뉜 방. 그것이 이 방의 정체였다. 비밀 방에서는 이 방을 마음껏 볼 수 있지만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 대체 이런 방은 뭐에 쓰는 걸까 싶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여자, 아니, 여자애들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활기차게 인사를 하기에 나도 마주 보고 얼떨결에 인사를 하긴 했지만.... 어쩐지 떨떠름했다. 겉옷이랍시고 시폰 재질의 망사로 된 란제리를 입었는데 그건 겉옷의 기능을 전혀 다하지 못하는 그런 옷이었다. 그들의 몸매는 물론 안쪽에 입은 화려한 레이스 달린 브래지어와 팬티를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치렁치렁하게 달린 용도불명의 끈과 머리띠는 예쁘다기 보단 조금 천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떨떠름한 이유는 이런 고마운 복장을 입은 이들이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못 생기거나 몸매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얼굴도 귀엽게 생겼고 몸매도 그만하면 훌륭하다. 그러나... 나이가 너무 어려 보였다. 진한 화장으로 애써 가린다고 가렸지만 잘해야 이제 고등학생쯤 되었을까 싶었다.

"저기, 누구시죠?"

쟁반이나 음식을 가져오지 않은 걸로 보아 서빙 하는 애들은 결코 아닌 것 같고 이곳의 분위기를 볼 때 접대하는 애들임에 분명했지만... 어려도 너무 어리고 복장도 야했다. 얘네들에 비하면 ROSE의 아가씨들은 완전 노땅에다가 복장도 수녀님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는 열여섯 살 수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열여섯 살 유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아이들은 이런 식의 인사를 대체 몇 번이나 해온 걸까. 이름보다 나이를 먼저 말하는 건 아마도 이들을 찾는 이들이 이런 나이의 여자를 좋아한다는 반증이겠지. 게다가 두 번째 아이의 이름이 몹시 거슬렸다..... 그 이름을 가진 애는 너보다 훨씬 예쁘고 똑똑하단 말야. 그 이름을 이런 데서 쓰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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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유진"이란 이름이 흔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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