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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의 목소리는 굉장히 건조했다. 사무적이고 투박했다. 어떤 위로나 감상도 담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양소란은 오늘 아침 사망했습니다. 빈소는 지하 장례식장에 차려져 있습니다."
지애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다리가 풀린 것 같았다. 그녀를 부축해서 안아들고 직원에게 재차 확인해본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대답하는 직원의 이야기는 변하지 않았다.
양소란 사망.
사망.
죽었다는 말이다. 지애는 통곡했고, 나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나도 함께 울고 싶었지만 그 자리에 쓰러져 눈물을 흘리는 지애를 부축해야만 했다. 연락을 받고 내려온 담당 형사를 만났더니 다른 의미로의 신원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도 따라갈까 싶었는데 그녀가 만류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나 대신 학교에 연락해줘."
내가 전화를 걸러 간 사이, 지애는 영안실을 다녀왔다. 무엇을 보고 온 것일까. 그녀의 눈은 그저 퀭할 뿐이었다. 빈소는 경찰병원 지하에 있는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장례업을 전문으로 하는 곳들과는 다르게 최소한의 공간과 추모만을 허락한, 간소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이었다. 다행히도 옷을 빌려주는 곳은 있어서 검은 정장을 빌려 입을 수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아직 사진도 채 들어있지 않은 영정의 빈 틀을 보며 침묵했다. 좌우에 있는 다른 빈소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곡소리를 들으며 비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나라도 곡을 하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아까 한참 울었던 지애는 벌게진 눈을 비비고 있었다. 그 옆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 물어보았다.
"유진이...."
"응?"
"유진이한테도... 연락해야 하는데...."
"반장 말이구나. 학교에서 비상연락망도 돌릴 테니 연락이 갔겠지."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 끝에 있는 공중전화로 가서 유진이네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ROSE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자동응답기가 아닌 사람이 받았다. 유미였다.
"유미 씨, 저예요. 한석이."
"어머, 선생님. 안 그래도 저도 몇 번 연락했었는데... 통 연락이 안 되어서 말이죠. 가게 비어있었을 텐데 헛걸음 하지 않으셨나 몰라요."
어쩐지 유미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늘 웃던 그런 목소리가 아니다.
"주말에 무슨 일 있었어요? 유진이도 학교 안 나오던데... 그리고 저도 일이 좀 있어서 전화를 드렸었거든요."
"아... 그게 말이죠...."
유미는 다소 주저하다가 선영의 부친상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깜짝 놀란 내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그녀는 지난 몇 주 동안 선영이 어디에 가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는 십 년 넘게 만나지 못한 부친을 만났다고 했다. 그는 산 속에 있는 요양원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선영은 그런 아버지를 보살폈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난 토요일 새벽에 선영의 아버지께서 임종하셨고 그 연락을 받은 ROSE 사람들과 유진이는 충남과 벽제 장지에 다녀왔다고 한다.
"2일장이라서 일요일 저녁에 집에 오긴 했는데요... 먼 길 다녀오느라 유진이가 하도 피곤해 보여서 오늘은 학교에 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거 때문에 전화 하신 거예요?"
"아뇨.. 딱히 그게 문제는 아닌데..."
유미한테 이야기를 해도 되려나 한참 고민했다. 혹시 유진이가 거기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전화를 건 것 뿐이었다. 소란이 이야기까지 꺼내는 건 괜한 이야기를 하는 건가 싶어서 그냥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유미가 묘한 소리를 했다.
"선생님 잘못이 아니에요."
"네?"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지금 내 상황이, 지금 내 마음이 그녀의 말을 결코 가벼이 듣지 못 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사람이다.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무 자책하거나 슬퍼하실 필요 없어요. 사람의 운명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노력이나 행위로 인해서 바뀌는 경우는 아주 드물어요. 그저 거대한 물줄기에서 흘러나오는 하나의..."
소란이 이야기는 그녀에게 꺼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마치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말이다. 무례한 줄은 알지만 말을 끊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건, 보이는 사람으로서의 의견입니까? 그런 거예요?"
유미는 선선히 대답했다.
"네."
수화기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던 분노가 여기에 쏟아진다.
"그러면.... 왜! 왜.... 말해주지 않았어요... 다 보고 있으면서.... 구덩이가 있는 줄 알면서....그러면서도 어떻게....그 애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을 거라는 걸....왜! 왜!"
유미의 목소리는 지극히 차분했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정말 차분하고, 차가웠다.
"제가 말했죠. 저는 그저 보고 있을 뿐이라구요."
"보고 있었다면... 보고 있었다면... 미리 말해 줄 수도 있었잖아요. 위험이 있으니 피하라고...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리고 또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죠. 어떻게 그렇게.... 당신은 정말이지..."
"잔인한가요?"
"그래요. 잔인해요! 당신은 보고 있으면서 웃고 있었겠죠. 그렇겠죠?"
유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나를 더 화나게 했다.
"그렇게 언제나 웃고 있으면서.... 이런 참혹한 일이 있을 거라는 걸... 어떻게 이야기 해주지 않을 수 있죠? 어쩜 그렇게 잔인한 건데요. 게다가 이 아이는 유진이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는데...."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어린 아이가... 대체...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괴로웠으면.... 스스로..... 흑....."
운다고 해서 떠난 소란이가 돌아오진 않는다. 죽은 아이가 살아나지 않는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뜨거운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내 울음을 잠자코 견뎌내고 있던 유미가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먼저 말했잖아요.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삶이 이렇게 흘러가 버린 것에 대해서 그 누구도 탓할 순 없어요. 물론 사람의 죄는 남아요. 그 죄는 당사자의 몫이죠. 그리고 슬픔은 나눌 수 있어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미래라고 하는 거예요. 설령 제가 보았고, 제가 미리 이야기했다고 해도 변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오직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간순간이 진실이에요. 제가 보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래도....그래도....."
유미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한숨을 쉬는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만약 그 아이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선생님이라면, 저 아이가 살아나는 대신 선생님이 평생 고통 받는 길이 있었다면 선뜻 택했을까요? 그걸 말로 해준다고, 알아듣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을까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말했잖아요. 우리는 각자 보는 것이 다르다고... 보는 것이 다른 사람끼리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건 말도 안돼요. 미안하지만 먼저 끊겠어요. 다음에,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 하고 싶네요."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더 이상 아무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그저 끊어진 신호음만 내고 있는 수화기를 들고 한참을 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힐끔거렸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얼마 후, 반 아이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눈물을 닦아내고 그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유진이는 보이지 않았다. 졸지에 반친구를 잃은 아이들이 내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선생님들도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었다.
남자 선생님 몇 분이 나를 불러내어 장례식장 후문에 있는 벤치로 나갔다. 담배를 권하기에 사양할까 하다가 한 개비 받아 물었다. 대학 신입생 때 술 마시다가 기분 삼아 몇 개비 피워본 이후 처음이었다. 한 모금 빨아본다. 쓰디썼다. 그러나 뱉어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담배 연기로 가슴을 채우면, 비어버린 허전함이 채워질 수 있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다른 남자 선생님들은 참 열심히도 뻑뻑거리며 피워대었다.
"후우. 그래서, 자살...이라고?"
"...네. 간호사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천장에 드러나 있는 배관에는 베갯잇과 수건을 묶어 만든 끈이 매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끝에는 .....하아.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해 줄 물건을 직접 만들면서 그 아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누구를 원망하고 또 누구를 찾았을까.
"대체 그 교회가 뭐하는 곳이기에 그렇게 난리랍니까?"
누군가의 질문에 사회 선생님인 박 선생이 대답했다.
"내년 초에 휴거가 온다고, 휴거가 오면 말세라고 외치면서 직장이고 가정이고 다 버리고 들어간 사람들이 잔뜩 있는 교회라고 하더군요. 이상한 마약 같은 것도 할 정도로 막장이라고 하는데 어떤 검사가 잠입수사 끝에 일망타진 했다고는 합니다.... 다만, 정작 중요한 담임목사는 도망갔다고 하더군요. 나머지 교인들은 종로서 앞에서 종교탄압 그만하라면서 계속 시위 중이고..."
다들 어이없다고 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이상한 곳에 있던 소란이가 대체 어떤 꼴을 당했을지, 그리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까지 하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이 세상에 대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절망감에 빠진 것이었을까. 도무지 알 수 없다. 매캐한 담배 연기 사이로 그 때 종로에서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찬송가를 부르며 자신들의 믿음을 부르짖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소란이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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