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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담배 두 대째를 피우고 있는데 장례식장 직원이 와서 영정사진과 제사상은 어떻게 할 건지를 물어왔다. 소란이네 집과는 이전부터 계속 연락이 안 되고 있었다. 선생님 한 분이 생활기록부에 있는 소란이 사진을 가져오셨다고 했다. 그걸 건네받아 직원에게 주었다. 주기 직전, 잠깐 들여다본다. 입학하면서 찍었을 게 분명한, 교복을 입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작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은 못내 고통스러웠다. 직원에게 그 사진을 확대해서 영정사진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제사상은 기본으로 해 달라고 했다. 종교는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기에 무심코 스님 있냐고 물어봤다. 근처 포교원에서 불러 줄 수 있다고 하기에 축문이나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직원이 알았다며 물러났다.
"다들 여기 계셨네요."
"아, 송 선생님..."
지애가 문을 열고나오며 옆에 있는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다들 지애를 위로했다. 담당하는 학생이 이렇게 되는 경우도 꽤 드문 경우라 지애의 충격이 몹시 커 보였다. 나와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대에서 그 사실을 들었을 때, 그녀의 놀란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애는 날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최 선생... 원래 담배 태웠어?"
"아뇨. 오늘만..."
"그래, 그럼 나도 한 대 줘 봐."
나에겐 담배가 없었다. 대신 사회 선생님이 담뱃갑을 내밀었다. 지애가 그걸 받아들고 한 개비를 뽑아 불을 붙인다. 일련의 폼이 전혀 서툴지 않았다. 학교에서 남자 선생끼리 모여 담배를 피우는 일은 흔하지만 거기에 여자 선생이 거기에 끼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지금의 모습은 몹시 이색적인 광경이었지만 누구 하나 그녀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지애의 표정은 착잡했고 서글퍼 보였다. 잠시 후,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들어갔다.
"내 탓이야."
지애와 나 단둘이 남자, 그녀는 담배 연기를 길게 뽑아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렇게 무단결석이 이어지고... 집에도 연락이 안 되고.... 걔 엄마한테서 이상한 전화가 왔을 때 알아차렸어야 하는 건데... 그러질 못 했어."
"송 선생님...."
그녀의 자책에 가슴이 미어졌다. 나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녀석의 사연을 듣고 그것에 대해 함께 고민해 줄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질 못 했다.
"위에서는 인성교육해라, 전인교육해라... 이딴 소리 수시로 해대는데 고작 한 명의 선생이 해봐야 얼마나 커버할 수 있겠어. 애들 받아서 다시 내보낼 때까지 사고 안 치고... 문제 안 일으키고.... 엄한 일에 엮이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게 고작이라고."
"......"
"실망스럽지?"
"뭐가요?"
"최 선생이 교육에 어떤 뜻이 있어서 교생을 하겠다고 나섰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이것도 하나의 직업일 뿐이야. 하루하루 문제 생기지 않고 지나가면 그럭저럭 월급 나오고 먹고 살만한... 그런 뻔한 직업 중의 하나라고. 교육에 정말 열정이 있어서 오는 사람보다는 그런 점에 끌려서 오는 사람이 더 많을걸? 아니다. 오히려 열정을 가지고 온 사람도 식게 만드는... 그런 곳이야."
자조 섞인 웃음을 맥없이 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너무도 처연해보였다. 십년은 더 늙어보였다. 나 역시 교육에 어떤 큰 뜻이 있다기보다는 해두면 나중에 도움이라도 되겠다는 생각에 교육학점을 이수했을 뿐이라 매우 뜨끔했다.
"이런 일이 아주 드문 건 아니야. 재학중이 아니더라도 아주 가끔은 졸업하고 대학 잘 보냈다고 생각한 애가 술 먹다 죽고 놀러 가다 죽고... 그런 연락이 가끔 와. 그럴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 난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어차피 죽어 없어질 아이들을 가르친답시고 폼이나 잡고 있는 나는 대체 뭐 하는 년일까."
"송 선생님....지나친 생각이에요."
"아아, 걱정 마. 그렇다고 내가 이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일을 그만두겠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그저 앞으로 내 후배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안 좋은 면을 먼저 보여주게 되어 푸념을 했을 뿐이야."
필터까지 다 타버린 담배를 들고 있던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거기에 소란이가 있는 것처럼. 그러나 거기에는 흘러간 방향도, 흘러온 방향도 알 수 없는 담배 연기만이 어지러이 엉켜 춤추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그 화려한 춤도 아주 잠시 뿐, 이내 공기 속으로 흩어져 사라져 가고 담배 냄새만이 흐릿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아련하고 서글픈 광경을 보고 느끼면서, 문득 유미가 바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제가 느끼는, 아니, 이 경우에는 맡는 거라고 해야 하겠죠? 미래라는 건 아까 말한 그런 어렴풋한 냄새가 적어도 수만 배 정도 희석된 정도의 냄새라고 보시면 되요. 게다가 냄새라는 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실려 다니잖아요?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모를 바람에 쓸려 갑자기 사라졌다가 또 나타나기도 하고... 그런 거예요.
구덩이의 비유를 들며 이야기 하던 그녀가 보았다는 미래는 대체 어떤 모양일지 가히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 희미한 냄새 같다고 하는 그런 것도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방금 전 눈앞에서 사라진 연기조차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데 과연 그녀가 본다는 모습은 또 어떤 형상을 하고 어떻게 냄새가 날지 모르겠다. 그제서야 조금 후회가 되었다. 그녀를 그런 식으로 다그치면 안 되는 거였다. 그녀는 신이 아니니까 말이다. 나중에 보면 사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들어가지. 최 선생. 일단 오늘 밤샘은 내가 할 테니 최 선생은 내일 부탁 좀 할게. 그 다음에 발인하고 장지는 내가 아는 사람에게 물어볼 테니까. 하아. 진짜 이런 경우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도 지애는 나보다 아는 게 많았다. 나 역시 장례 같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것 투성이었으니까. 소란이의 가족은 여전히 연락이 되질 않았고 친척 같은 것을 알아보기도 당장은 곤란했다. 복도를 따라 빈소로 돌아가면서 여기서의 비용이나 앞으로 들어갈 장례절차 등,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그런데 저쪽이 뭔가 굉장히 시끄럽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빈소 입구에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 빈소... 아니, 소란이의 빈소였다.
"무슨 일이야?"
인파에 밀려난 학생 하나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안에서는 고성과 뭔가 깨지는 소리 같은 게 이어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녀석은 택용이었다. 녀석의 표정이 몹시 일그러져 있었다. 녀석은 날 보고 다급하게 말했다.
"아, 선생님! 지금 안에서.."
"안에서 뭐?"
"이상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스님을 끌어내고...."
"뭐라고?"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 안쪽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하나하나 헤치고 간신히 몸을 비집으며 들어간 내 눈에 첫 번째로 비춰진 것은 우선 깨어진 목탁이었다. 아니, 한 때 목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반동가리 구 모양의 나무토막... 목탁이 원래 두드리는 건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게 깨질 정도로 두드리는 건 아니지 않나? 황당한 생각에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닥에 주저앉은 스님 한 분을 둘러싸고 욕을 퍼붓고 있었다. 욕의 내용은 주로 마귀니 사탄이니 하는.... 무척이나 기독교스러운 욕설이었다. 게다가 욕설뿐만 아니라 발길질도 스님에게 쏟아지고 있다.
"이봐요! 지금 당신들 뭐하는 거야! 그만두지 못해?"
개중에서 가장 열심히 발길질을 하고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여자의 어깨를 짚었더니 고개를 홱 돌려 이쪽을 바라본다. 어쩐지 낯이 익다. 어디서 본 얼굴이다. 몹시 못 생긴 그 여자는 쇠그릇이 깨지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지금 우리 성도를 보내는 성스러운 곳에서 삿된 패악을 저지르고 있는 악마를 처단하는 중입니다. 방해하지 마시죠."
기가 막혔다.
"악마? 저 분은 사람입니다. 악마가 아니라."
그러자 여자는 태어나서 그런 헛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이적이 있어도 믿지 않나니!! 불교라는 미신은 한낱 인간의 육체를 벗어나지 못 한 사람을 우상으로 섬기면서 대대손손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는 사이비 무속입니다. 그런 분이 이런 성스러운 자리에서...."
기가 찼다. 그래, 이제서야 니가 누군지 똑똑히 기억났다. 종로에서 본 군중의 맨 앞에 있던 여자. 그 여자가 바로 이 여자였다. 나는 여자의 헛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면서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스님을 부축하여 자리에서 일어나시게 했다. 이미 한쪽이 시퍼렇게 부풀어 오른 것은 물론 입술이 터지고 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스님의 얼굴을 보니 속이 뒤집혀 졌다. 내가 비록 불교를 믿는 사람도 아니고 이 분이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스님이라거나 그런 것도 아니지만... 인간적으로 인간이 인간에게 이런 몰매를 가해도 되는 건가? 그것도 여러 사람이 한 사람에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나 같으면 분통이 터져서 때린 사람들에게 욕이라도 퍼부어야 마음이 풀릴 텐데... 스님은 꿋꿋한 표정으로 눈을 지그시 감으며 합장을 했다.
"허허... 나무관세음보살...."
다시 이쪽을 향해 달려드려는 교인들을 등으로 밀쳐내고 스님을 바깥으로 모셨다.
"스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만.... 나중에 다시 모시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시죠."
입구에 나타난 장례식장 직원에게 스님을 인계했다. 가사 귀퉁이가 박박 찢어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부셔진 목탁을 주워들었다. 등 뒤에서는 악마를 몰아냈다고 외치는 인간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할렐루야!" 그들은 소란이를 위한 예배를 하겠다며 둥글게 둘러앉더니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담대하게 싸울지라 저기 악한 적병과~ 심판날과 멸망의 날 네가 서 있는 눈앞에 곧 다가오리라."
아아. 역시 찬송가는 말이다. 운율이 아주 정직한 것이.... 앞부분만 들으면 뒷부분도 저절로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라서 참 좋다. 소싯적에 동네에 있는 교회에 부활절 달걀 얻으러 갔을 때나, 얼마 전에 노예 생활하면서 교회 끌려 다닐 때도 곧잘 그런 식으로 따라 불렀지.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곧 승리하리라~"
후렴을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다. 그러면서 손에 든 목탁의 무게를 가늠해보고 아까 그 여자의 어깨를 다시 두드렸다. 그 여자가 무표정하게 이쪽을 돌아보기에 싱긋 웃어주었다. 그리고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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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찬송가. 제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함께 부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