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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나한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지만 난 그게 다 빤히 보이기 때문에 그냥 코웃음치고 말아요. 가게 언니들이나 선영이 언니는 저한테 잘해주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냅둬요. 학교의 친구들은.... 절 재수 없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 별로 기대도 없구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평소와는 달리 말이 많았다.
"근데 이상하게도... 아저씨한테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계속 딴 여자들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맨날 정신 제대로 못 차리고 있고... 그러다가 또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아저씨였기 때문에.... 이상하게 아저씨한테만은 제가 너무 물렀어요. 선영이 언니 일이나 엄마 가게 일, 저랑 데이트하기로 한 날 아침에 다른 여자랑 있었던 일... 그런 건 다 아무래도 좋아요. 그냥 그러려니 했어요."
유진이는 다 알고 있었다. 정말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데....이 일만큼은 아저씨를 용서할 수 없어요. 소란이를... 소란이를 이렇게 허망하게 보냈는데도 난 아무 것도 못 하고 있었단 말이죠. 근데 아저씨는 알고 있었어요. 그렇죠?"
"유진아. 사실은 소란이가..."
"알아요. 소란이 성격상 분명히 저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겠죠. 그랬을 거예요. 워낙 속이 깊은 아이였으니까.... 그렇지만 아저씨는 저에게 말했어야 해요. 내가 아저씨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아저씨가 저를 특별하게 여겼다면 말하지 않았을 리가 없어요. 그래요. 난 그래서 아저씨를 원망하고 있는 거예요. 나를... 나를 제대로 보아주지도 않고 끝까지 속이고...."
격앙된 유진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떨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진은 독하게도 자신의 눈물을 뒤로 삼켰고 해야 할 말을 끝까지 쏟아냈다.
"제가.... 아저씨 고용했던 거 생각나죠?"
벌써 반 년 가까이 되었다. 이 녀석을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린다. 인형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날 올려다보며 과외일정을 따박따박 말하던 이 녀석의 모습.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내게 이런저런 다양한 표정을 보여준 게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인형 같은 표정이 사람다운 표정으로 바뀌어 가던 건 또 언제부터였을까. 기억이 드문드문하다. 어지러운 머릿속을 가라앉히며 겨우 대답한다.
"응."
"나한테 필요도 없는 과외였지만, 엄마 욕심 때문에 겨우 하던 거지만...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아저씨가 그냥 제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랬었어요. 근데... 이제는 아니에요."
녀석이 품고 있던 나에 대한 마음, 그 절절한 고백과 이별 통보를 동시에 들었다. 왜 이제서야 그런 말을 하고 왜 이런 상황에서 꼭 그런 모진 말을 하는 거니.
"유진아!"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유진이는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날 올려다보았다.
"제 이름, 부르지 말고.... 제 눈에 띄지도 말고..... 그냥 그대로 가주세요. 원래부터 없던 사람처럼, 그렇게.... 그렇게 우리 이제 보지 말아요."
유진이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작지만 아주 단단한 등을 내보이며 그렇게 걸어갔다. 쫓아가 어깨를 짚었더니 돌아서서 내 가슴을 밀쳐내고는 마구 달려 나갔다. 다시 쫓아갈까 싶다가 그만두었다. 돌아선 순간 녀석의 눈에 반짝인 눈물에 가슴이 먹먹하다. 남에게 약한 모습 보이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녀석의 성격을 알고 있는 나는, 지금 녀석을 향한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이제 유진에게 완전한 남이 되었다. 언제는 남이 아니었겠냐만은... 그래도 녀석은 날 남이 아닌 그런 것과 비슷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아니, 이젠 그것도 과거가 되었다. 이제 나는 유진이가 곁에 있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되었다. 참담했다. 차마 빈소로 돌아갈 생각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학교에서 유진을 보지 못 했다. 전날 빈소에서 밤을 새웠다는 지애도 출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시 부담임을 맡고 있는 내가 조회를 치렀다. 아이들의 표정이 많이 좋지 않았다. 여자아이들의 경우에는 아침 내내 엎드려 있기도 했고 중간 중간 울음소리도 새어 나왔다. 최대한 소란이의 자리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작은 유리병에 꽂힌 국화꽃 한 송이만이 대신하고 있는 그 빈 자리는 너무도 컸다. 게다가 그 옆자리까지 비어있으니 그 황량함이 수십 배가 되었다.
"한석아."
"아... 형.."
점심시간에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있는데 태근이 형이 다가왔다. 형의 뒤에서는 현아가 쭈뼛거리며 따라왔다. 둘 다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이야기 들었다. 이따... 퇴근 후에 우리도 가볼게."
"고마워요, 형. 그리고 현아 너두."
"하아...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냐."
형은 몹시 우울한 어조로 말했다. 현아도 빨개진 눈으로 나에게 힘내라고 말했다. 나와 형, 현아 이렇게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저쪽에서 누군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외부인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손에 종이를 들고 오면서 운동장에 있는 학생들에게 뭔가를 물어본다. 질문을 받은 학생 중 한 명이 이쪽을 가리키는 걸로 보아 저 사람들은 우리에게 볼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 예상은 맞았다. 젊은 남자와 중년 남자 둘이 우리 앞에 도착하더니 뭔가 꺼내서 보여주었다.
"최한석 씨 되십니까?"
"그런...데요?"
그들이 내민 것은 경찰 배지가 달린 신분증이었다. 두 사람은 경찰이었다. 젊은 경찰이 내 팔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는 동안 중년 경찰이 매우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최한석 씨. 당신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지금부터 하는 말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뭐지?"
그러자 내 뒤에 서 있는 젊은 경찰이 이어서 말했다.
"변호사 선임할 권리랑 국선 변호사요!"
"아아. 맞다. 그거였지."
중년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제대로 대답도 못 하고 있는 동안 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옆에 있는 태근이 형이었다. 그는 경찰에게 항의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체포라뇨?"
"고소가 접수되었습니다. 최한석 씨가 어제 저녁 김은혜 씨를 흉기로 위해한 특수폭행 사건 말이죠."
그제서야 내가 어제 때려눕힌 사이비 신앙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김은혜. 그게 그녀의 이름이었다. 참도 은혜 충만한 이름이구나, 싶었다. 젠장. 빌어먹을.
"그래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잡아가는 게 어디 있습니까? 구속영장 내놔봐요!"
"어허. 이 사람이, 왜 이래?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안 그래도 덩치가 커다랗고 흉흉한 인상의 태근이 형이 흥분하니까 아주 공포 분위기가 제대로 조성되었다. 게다가 영장을 보자며 달려드니 나름 논리적이기도 하다. 옥신각신 하다가 젊은 경찰이 형을 밀쳐내며 말했다.
"실질심사 받게 할 테니까 이러지 마시죠. 정 억울하면 변호사를 부르시던가요."
그러자 형이 더운 콧김을 뿜어내며 말했다.
"부르라면 못 부를 줄 알아? 한석아. 너 일절 아무 것도 대답하지 말고 그냥 있어. 알았지? 당신 어디 서 소속이야? 엉?"
"어디 소속인지 알아서 뭐하게?"
"뭐하다니! 내가 찾아가려고 그런다, 왜?"
"어허,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들이대? 뒤로 물러나슈."
어쩔 줄 몰라 하는 현아와 흥분해 있는 형을 뒤로 하고 그대로 연행되었다. 교문 밖에 세워져 있던 경찰차에 올라탄다. 운동장에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구경하는 통에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은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 아무리 내가 반쪽짜리 교사인 교생이라도 그렇지... 최소한 애들 앞에서 체포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을까. 그대로 차가 출발했다. 경찰서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서는데 입구에 대문짝하게 쓰여 있는 글씨가 날 몹시 웃게 만들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민주경찰]
봉사가.... 그 봉사냐? 심봉사 할 때 봉사? 하아... 궁시렁 거리면서 형사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이름."
"....."
"이봐, 이름 대라고, 이름."
컴퓨터 한 대가 놓인 책상을 마주 두고 날 연행해온 젊은 경찰이 조서를 꾸미기 시작했다. 태근이 형의 이야기도 있고, 나 역시 이 일이 몹시 부당하다 생각되었기에 고집을 피웠다. 몇 번이고 날 채근하던 경찰은 계속 대답이 없자 점점 짜증을 냈다.
"하, 이 양반 답답한 사람이네. 정말 변호사 올 때까지 말 안 하게?"
"네."
.....이런, 대답을 해버렸다.
"벙어리는 아니구만.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내가 이 일 하면서 변호사 어쩌고 하는 놈들 진짜 많이 봤지만 정말 변호사 온 사람은 한 명도 못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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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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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씀드릴 것은 저는 결코 종교에 악감정 같은 건 없는 사람입니다만 종교의 탈을 쓴 이상한 단체까지 다 포용하는 마음 넓은 사람은 아닙니다... 향후 나올 내용에 대해 정말 신실되고 복된 종교생활 하시는 분들이 언짢아하지 않으시길 바랄 뿐 입니다.
........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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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