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블데이트-96화 (96/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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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Route

차가 경찰서를 떠나 도로로 접어들었다. 점점 가속해 가는 차 속에서 아까부터 궁금하던 걸 물어본다.

"혹시 하영 씨도 교회 다니세요?"

그러자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교회를 다닌다.....다닌다.... 그것만큼 영혼이 없는 말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저 몸만 왔다갔다 하며 시간을 길바닥과 교회에 쏟아 부으면 그게 믿음인 줄로 착각하는 인간들이 참 많죠. 저는 교회에 다니지 않아요. 믿음이 있고 그리스도처럼 살고 싶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지."

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결론은,

".....그냥 교회 다닌다고 하시면 되지 참 어렵게 말씀하시네요."

"아, 쫌!"

바른 생활 하시는 그리스도인께서는 기분이 언짢았는지 차를 좀 거칠게 몰았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을 보고 여기에 가면 밥이 있을 거라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그곳은 소란의 빈소였다.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태근이 형을 만났다. 차에서 내리자 형이 몹시 반기며 말했다.

"여어. 큰일 치르고 왔네."

"형, 정말 고마워요. 형이랑 하영 씨 덕분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려는데 형은 그걸 헤드락 걸어달라는 의사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걸 원치는 않았는데 말이다.....

"짜식. 사내새끼가 원래 치고 박고 그러면서 크는 거지, 뭐."

".....이 나이쯤 되면 다 큰 거 아니었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들어가자."

형이 헤드락을 풀어주어 다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빈소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거기를 지키고 있는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태근이 형과 함께 있는 현아는 그렇다 치고 학생들도 몇 명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소란의 짝도 있었다.

"유진아..."

"...."

신발을 정리하던 유진과 마주쳤지만 녀석은 날 한 번 올려다보고 고개만 꾸벅하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안쪽으로 가버렸다. 하영은 소란의 영정 앞에 무릎을 꿇더니 두 손을 모으고 두 눈 감은 채 기도하기 시작했다. 궁금했다. 그녀는 무슨 기도를 하는 걸까. 신과의 대화를 나누는 게 기도라는데, 그녀는 그녀의 신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는 걸까. 한참동안 그러고 있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영정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렇게 있다가 앉아있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다 같이 상을 두고 둘러앉았다. 태근이 형은 내게 수저를 건네며 말했다.

"밥 안 먹었지? 식사 시켜두었으니까 곧 올 거야."

"네에...."

"반찬 중에 두부김치도 있으니까 넌 두부 먼저 먹어. 이것도 일종에 갖다온 셈이니까 말야."

"하하하...."

메마른 웃음을 억지로 지으면서 시선은 줄곧 유진을 쫓고 있었다. 검은 원피스를 입은 유진은 한쪽 구석에 무릎 꿇고 앉아 가만히 소란의 영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옆에는 커다란 키의 남자 녀석이 같이 앉아 있었다. 날 보고 고개를 꾸벅한다. 누군가 했더니 택용이었다. 가끔씩 두 사람이 무어라 말을 주고받긴 하지만 멀어서 뭐라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발인이 내일 새벽인데 사람이 너무 없어서 고민이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에는 같이 있는 사람이 좀 있어야 되는데 말야."

"친척들은 여전히 연락이 안 되나요?"

"응. 알고 봤더니 소란이 아버지나 어머니나 다들 가족이 따로 없다고 하더라. 그러니 소란이에게는 친척이 하나도 없어. 걱정이다."

형의 걱정은 다른 게 아니었다.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으려면 사람이 좀 있어야 되는데 지금 같아서는 열 명도 채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평일이라 학교에서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오기도 좀 그렇고... 당장 너나 나나 내일 아침이면 학교에 들어가야 되고 말야. 이것 참, 난감하네..."

"저는 원래 오늘 밤샘하기로 되어 있어서 내일 안 들어가도 될 거예요. 사수인 송 선생이 그러라고 했거든요."

"그래? 그럼 다행이지만..."

장례버스나 관 등의 모든 준비는 다 해두었다고 한다. 서울 외곽에 있는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고 근처 납골당에 들어가는 것까지 태근이 형이 자비로 다 준비해두었다. 금액도 금액이거니와 그런 하나하나의 씀씀이가 참 고마웠다. 내가 거듭 고맙다고 하자 형은 손사래 치며 말했다.

"나도 아예 관계가 없는 게 아니잖아. 체육 수업 할 때 맨 앞에 서 있던 그 조그만 녀석이 눈앞에 아직도 어른거린다.... 참나. 휴우. 씁쓸하다."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태근이 형이 술을 가져왔다. 형과 현아, 나와 하영, 이렇게 넷이 둘러 앉아 있는데 형이 빈소를 지키고 있는 애들에게 손짓하여 불렀다. 쭈뼛거리며 이쪽으로 온 아이들에게 맥주잔을 하나씩 안겨주며 말했다.

"니들도 고생이 많다. 이거 한잔씩 마시고 다들 집에 돌아가렴. 택시비 줄 테니까 택시 타고 가."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데 유진이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집으로 돌려보내려는데 유진이가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여기에 남겠다고 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택시비를 쥐어 보내던 태근이 형이 그런 유진에게 말했다.

"집에 들어가야지. 부모님 걱정하시잖아."

"집에 부모님 없어요. 아빠는 원래 태어날 때부터 없고, 엄마는 밤에 일하니까요."

여전히 당돌한 녀석이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유진을 내려다보며 태근이 형이 난감해 했다. 엄마가 밤에 일한다는 거야... 뭐,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아빠가 원래 없다는 말은 좀 그렇지 않은가. 형은 겨우 말했다.

"그래도... 내일 학교 안 가니?"

"이제 안 가려고요. 꼴 뵈기 싫은 사람이 있어서."

"뭐라고? 허...거참."

이쪽을 쳐다보며 말한 것도 아닌데 굉장히 뜨끔했다. 유진이 돌려보내기를 포기한 형이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말했다.

"쟤, 너네 반이지? 반장이었던 거 같은데?"

"네. 소란이 짝....이었어요.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고요."

"그랬구나. 애는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너무 모가 났어. 친구가 변을 당해서 그런가..."

".....글쎄요..."

유진이가 모가 난데에 있어 원인제공자로서 이 자리가 가시방석 마냥 굉장히 불편했다. 유진은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줄곧 소란의 영정만 지켜보고 있었다.

"형은 안 들어가세요?"

"응. 지금 교대해줄 사람 기다리고 있어."

"교대요?"

"응. 금방 올 거야."

형이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동생, 효진이였다. 늘 입고 다니는 편한 차림이 아니라 제대로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효진이였다. 혼자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젊은 여자와 함께 도착했다. 내게 가볍게 눈인사를 보내고 영정 앞에 향을 피웠다. 소란이에게 절을 하고, 맞절은 나와 했다. 자세를 바로 하고 선 효진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래. 와줘서 고맙다."

효진과 같이 온 사람의 이름은 선미라고 했다. 이제 갓 스물이 되었을까 싶은 아가씨였는데 수수하게 생긴 얼굴이 무척이나 단정해보였다. 누구냐고 물어보았더니 효진이네 집에서 일하는 분이라고 했다. 그녀는 주변을 치우고 음식을 준비하는 일을 도맡아서 하기 시작했다. 유진이를 제외한 학생들은 진작 다들 돌아갔고 효진이가 도착한 다음 태근이 형과 현아, 하영도 돌아갔다. 그러고 나니 빈소에는 이제 나와 효진, 유진이와 그 선미라는 아가씨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나 말야."

"응?"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마른안주 두어 접시를 가져다 놓고 효진과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녀가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에는 장례식장 가면 어른들이 진짜 이해가 안 되었거든. 남은 죽었다는데 거기서 술 마시고 화투치고 시끄럽고.... 근데 지금은 좀 이해가 갈 것 같다. 그렇게라도 하고 있어야 슬픔이 좀 덜할 것 같아."

"그러냐."

깊이 동감했다. 이따금 다른 빈소에서 들려오는 흐느낌과 곡소리뿐인 이곳은 너무도 황량하고 너무도 쓸쓸했다. 그랬기 때문에 고인 생전에 못 다한 일들이 생각나고 아쉽고 더 후회가 된다. 그렇게 안으로 고민에 빠져 있는데 효진이 제안을 꺼냈다.

"우리라도 고스톱 한번 쳐볼까? 떠들썩하게?"

...그럼 그렇지. 얌전히만 있으면 그게 또 효진이겠냐. 내가 피식 웃으면서 그녀의 제안에 있는 중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고스톱은 원래 네 명이 치는 거야. 세 명이 못 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 광을 못 팔잖아."

"그런가?"

술상 앞에 둘러앉은 사람은 나와 효진, 그리고 선미 뿐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효진은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유진을 발견하고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무어라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쪽으로 데리고 왔다.

"자, 이렇게 하면 네 명이잖아."

".....미성년자를 데리고 화투를 치자고?"

"뭐, 어때. 판돈 쎄게 걸 것도 아닌데."

선미가 나가서 담요와 화투패를 구해왔다. 고스톱 방향으로 나, 선미, 유진, 효진 이렇게 앉다보니 유진이와 마주 앉게 되었다. 날 한번 스윽 올려다보고 말 뿐, 유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옆에서 효진이나 선미가 물어보는 말에는 대답을 잘 했지만 내가 하는 말에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에휴....

"그럼, 점당 얼마로 할까. 백 원?"

능숙한 손놀림으로 패를 섞으며 효진이 묻자 다들 찬성하는 듯 했으나 유진이는 반대했다.

"점당 만 원이요."

"....뭐?"

"그 이하로는 안 쳐요."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녀석을 쳐다본다.

"너... 돈은 있어?"

효진이 묻자 유진은 지니고 있던 작은 손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더니 담요 위로 툭 올려두었다. 아주 두툼했다.

"원래 여기 식장비랑 장례비 하려고 가져왔었는데 아까 체육선생님이 다 내셨다고 하더라구요. 어차피 다 제 돈이니까 이거 다 쓸 때까지 치겠어요."

선미가 손을 뻗어 봉투를 열어보더니 눈대중으로 '두께'를 가늠했다.

"200장 정도 되는 군요. 맞나요?"

유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고등학생이.... 어이가 없어진 내가 입을 열어 반대의사를 표명하려 하는데 효진이가 먼저 나섰다.

"호오. 좋아. 너 뭘 좀 아는 애구나? 선미 씨. 가서 돈 좀 찾아줘. 오늘 밤 제대로 불태워보자."

.....어이, 이보셔요들. 난 효진에게 소리쳤다.

"야, 인마! 넌 지금 미성년자 데리고 치는 것도 모자라서 판돈을 그렇게나 한다고? 제정신이야? 지금 농담이지?"

"아니? 난 진담인데? 재미있잖아. 돈 걸고 쳐야 다들 칠 맛도 훨씬 나고 말야."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지! 이 정도면 무슨 하우스에서 전문 도박꾼들이 치는 정도라고! 단속 뜨면 다 잡혀 가!"

"에이~ 꾼들이면 오히려 고스톱 안 해. 섯다를 하지."

씨알도 안 먹히는 효진을 나무라고 있자니 유진이가 날 보며 말했다.

"돈 없고 쫄리면 죽으시던가요."

.......아오, 진짜 저걸 그냥, 확! 내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니 효진은 신바람이 나서 선미에게 부탁하여 돈을 찾아오게 했다. 그 전에 나를 한 번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한석이니까 무이자로 빌려줄게. 어때?"라고 제안하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내가 미쳤지. 미치지 않고서야 점당 만 원짜리 고스톱을 칠 리가 있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지만 판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결국 일인당 200만원씩 판돈을 끼고 점당 만 원짜리 고스톱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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