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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100화 (100/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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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Route

다음 날, 둘 다 알몸으로 서로 꼭 끌어안은 채 잠에서 깨어난 우리는 못내 아쉬워 아침에 한 번 더 어울리고 나서야 겨우 떨어졌다. 옷을 입고 학교로 갈 채비를 하는데 그녀는 나에게 자신이 읽던 책 몇 권과 곰 인형 몇 마리를 담은 상자, 그리고 손수건을 넘겨주었다. 이번만큼은 거절할 도리가 없어 손수건을 받아 뒷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이것도."

뒤이어 그녀가 내민 것은 열쇠였다. 자동차 회사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그것은 그녀의 차키였다. 엉겁결에 받아들며 물어보았다.

"이걸... 나한테?"

선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구청에 가서 양도증명서 같은 것도 작성해야겠지만 그건 나중에 하도록 하고 일단은 자기가 타고 다녀. 연식은 좀 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차야."

"넌 어떻게 내려가게? 거긴 산 속에 있는 오지라면서?"

"불러놓은 용달 좀 있다가 오면 짐 실어서 같이 갈 거야. 이불이나 가구, 생활용품 같은 건 전부 돌봄의 집에 기증할 거거든. 거기서는 이런 물건들이 참 요긴하게 쓰여. 워낙 없어가지고.... 오피스텔은 지나에게 처분을 부탁해 놓았어. 나중에 자기가 확인해줘."

서울에서의 자신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려 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젯밤의 그 처절한 몸짓들도 그녀의 마지막 미련을 떨치려는 것이었을까. 그녀는 다소 떨리는 음색으로 천천히 말했다.

"나 보고 싶으면 거기에 한 번 와봐. 그러라고 차 주는 거야. 그렇지만 .... 바로 오지는 말아줘. 적어도 1년...아니면 2년? 그 동안은 자기도 나한테 연락하지 말고 나도 따로 연락하지 않을게. 결심이 흔들리지 않게 말이야."

"한 두 달도 아니고, 1,2년? 무슨 군대도 아니고...."

"그 길이 그냥 편한 마음으로 다녀오고 말고 하는 곳이 아니니까 그래. 만약 내 기도가 제대로 응답받을 수 없다면 차라리 돌아올게. 그럼, 나 기다려 줄 거야?"

어쩐지 심통이 났다. 순순히 응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흔들었다. 선영은 그런 나를 탓하기 전에 그냥 웃어버렸다.

"그래. 그 정도 시간이라면 우리 자기를 누군가가 채가겠지. 그만한 시간이면 말이야. 일단 유진이부터 가만 안 둘 테니 말이야."

"정말... 니가 그런 식으로 말할 정도라니..."

말 그대로 몸을 던져 유진을 지키려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이젠 그것까지 포기하고 자신의 길을 가려한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애써 고개를 숙이고 짐을 뒤적거리다가 차키를 다시 본다. 고리에 달린 로켓 펜던트를 열자 거기에는 유진이와 선영이가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이 들어있었다. 그걸 선영에게 내밀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내 마음 속에 있으니까 이젠 괜찮아. 자기라면 그 펜던트도 맡길 수 있어."

울컥하는 마음에 그녀를 안으려고 하자 이번에는 미리 몸을 뒤로 빼며 내 손을 피했다.

"그럴수록 아쉽잖아. 우리, 다음에 다시 볼 때까지 안녕하자."

눈매는 더할 나위 없이 슬펐지만 애써 웃어 보이는 그녀를 향해 나 역시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준 선물을 안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짐을 차에 실어두고 주차장까지 함께 온 선영과 악수를 나눈 후 차에 시동을 걸었다. 사이드 미러에 미친 그녀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안정돼 보였다. 전처럼 검은 옷을 입지도,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지도 않았다. 평온한 표정 그대로 나를 끝까지 전송한다. 그렇게 선영과 나는 이별했다. 다음에,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대로 차를 몰아 학교로 향했다. 수업 시작 전, 지애와 함께 교장을 만났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교장은 내가 학교에서 체포되었던 사건을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무사히 합의되었다는 것과 소란이의 일에 잘 해주었다면서 그 일을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불미스러운 일이 좀 있긴 했지만... 더 큰 불행도 있었고 최 선생도 애 많이 썼으니 넘어가도록 합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세요."

감사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교장실을 나와 교실로 향하면서 지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수고했어요. 최 선생."

"아닙니다. 송 선생님이야 말로... 고생 많이 하셨어요."

"가슴은 아프지만, 우리에게는 많은 학생들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그 애들이 보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욱더 꼿꼿하게 지내고 정신 똑바로 차리면서 현실을 봐요."

현실을 직시하라는 그녀의 조언이 참으로 아프게 느껴졌다. 그녀 역시 몹시 슬퍼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이런 의연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잘, 알겠습니다."

지애가 손을 들어 내 등을 두어 번 두드렸다. 그러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살자.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그렇게 계속 사는 거야."

가슴이 무거웠다. 나에게 한 말 같지만 어쩌면 그녀 자신에게 한 말 같기도 했다. 지애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울림이 담겨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리이지만 그 당연한 소리를 매일매일 견디며 사는 것 자체가 우리의 삶이다.

교실에 도착하자 맨 앞자리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조금 전 그녀가 했던 말을 상기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애는 교탁을 두드려 주의를 환기시키고는 유진을 찾았다.

"반장 없어?"

"유진이 등교 안 했는데요?"

"그래?"

그러고 보니 소란의 자리뿐만 아니라 유진의 자리도 여전히 비어있었다. 지애는 부반장을 불러 인사를 시키곤 조회를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었고 또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준비해간 교안대로 수업이 진행이 되지 않아 버벅거리기도 했고 아이들의 짓궂은 질문에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어떤 반에서는 숫총각이냐는 질문에 엉겁결에 아니라고 대답했다가 여자아이들의 야유, 남자아이들의 환호를 한꺼번에 받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간신히 하루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푸념을 쏟아낸다.

"하아... 요즘 아이들, 다 이런가요?"

"크크크. 그렇죠. 뭐. 조숙하기가 이를 데 없는 애들이죠. 암튼 수고했습니다. 숫총각 아닌 총각 선생님."

"정 선생님, 제발...."

"하하하. 평가에도 좋은 이야기 써놓을게요. 일단 숫총각은 아니라니깐."

평가를 위해 지애와 함께 들어왔던 정 선생이 그렇게 날 놀리며 교무실로 먼저 내려갔다. 지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게 말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거기에 대답을 하는 건 또 뭐예요?"

"일전에 저한테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건 교사의 의무라고...."

"퍽이나!"

그녀의 앙칼진 반응에 나도 모르게 정자세를 취하고 만다.

"넵. 주의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속으로는 계속 궁시렁 거렸다. 내가 숫총각이 아닌데 왜 자기가 화를 내지? 거참... 알 수 없다. 그렇게 교무실로 돌아와 퇴근 준비를 하던 나는 종례를 위해 올라가는 지애에게 한 가지 사실을 물어보았다.

"저기, 혹시 진유진 학생 집에는 연락 해보셨나요?"

"유진이? 우리 반 반장?"

"네."

그러자 지애는 고개를 저었다.

"친구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 충격이 있어서라도 당분간 쉬는 게 아닐까? 난 이해가 될 것 같은데?"

유진이가 소란이와 친하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일단 짝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녀석의 성적이 좋기도 하거니와 반장까지 할 정도로 평소 행동거지가 올바르기에 오늘의 결석을 크게 나쁘게 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일단 지금은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세요? 알겠습니다."

지애는 종례를 위해 교실로 올라갔고 난 오늘 한 수업에 대한 결과 보고서를 쓰는 일에 착수했다. 화요일 오후와 수요일 하루 종일 이런저런 이유로 빼먹은 수업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했던 수업에 대한 보고서라도 착실히 쓸 필요가 있었다.

"어이, 한석 군! 숫총각이 아니라면서?!"

난데없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이 황당무계한 소리. 고개를 홱 돌려서 쳐다보니 싱글벙글 웃고 있는 태근이 형과 얼굴이 빨개져 있는 현아가 나란히 서 있었다. 아니, 이놈의 학교는 무슨... 프라이버시는 국 끓여다가 도시락으로 해먹었나 싶다. 애초에 내가 실언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하루도 지나기 전에 이런 사람의 귀에까지 들어가다니 말이야.

"아아, 그렇다면 한석 군의 상대는 당연히 쭉쭉빵빵에 가슴 큰 분이겠지? 난 알아봤다. 네가 전에 그렇게 확고한 여성관을 가지고 있을 때부터..."

가만히 두었다가는 이 사람 많은 교무실에서 무슨 흰소리를 더할지 몰라 서둘러 달려들어 형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형은 키도 있지만 덩치도 있는 사람이라 가볍게 날 밀쳐내었고 자신의 헛소리를 결코 멈추지 않았다.

"너도 물론 나이가 있으니까 숫총각이 아니라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는 않지만.... 네 성격이 하도 물러서 말이야, 좀 어려울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할 건 다 하고 다니는 구나. 장하다.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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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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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에 대해 공략을 해달라는 목소리도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별로 제 타입이 아니라서 패~~쓰... 하기도 했구요, 스토리 진행상 얘는 퍽 애매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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