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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105화 (105/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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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 그...글쎄다."

그러고 보니 누가 그랬지? 지애는 유진이가 친구 일로 충격받고 학교를 나오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고 했고 유미는... 아, 그래. 유미가 그랬다. 유진이가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걸 미루어 짐작한 나는 당연히 유진이가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유미... 그러니까, 네 어머니가 말이야."

유미, 라고 이름을 꺼낸 순간 무섭도록 번뜩이는 유진이의 눈매를 보았다. 하이고.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다.

"네가 다른 공부를 한다고.... 하시더라고."

"다른 공부요?"

"응... 난 그래서 네가 검정고시를 하는 걸로...."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래서 지금까지 어디 있다가 오는 건데요? 설마 우리 가게에 갔다 온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고 오늘 교생 끝났다고 회식했거든. 그래서 그거 끝나고 나서 ROSE에 잠깐..."

형사 콜롬보가 범인을 밝혀내기 직전에 저런 눈빛을 하곤 했지. 어쩐지 이 테이블이 취조실의 테이블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우리 엄마 이름을 엄청 친근하게 부르네요? 전에도 그렇고. 대체 둘이서 요새 뭐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말이야, 요새 가게 나오지 않는 선영이 대신해서 ROSE 일 도와드리고 있는 거야....여기 이 노트북도 일 도와드리고 받은 거야."

항상 메고 다니는, 지금은 옆에 내려놓은 노트북 가방을 가리킨다. 그러자 형사 콜롬보가 외통수를 둔다.

"정말, 일만?"

"........."

입을 열면 또 내 특유의 정제되지 못한 헛소리가 나올까봐 아예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러나 나보다 더 영리하고, 남녀 문제에 있어서는 훨씬 더 예민한 레이더를 가지고 있는 이 녀석은 나오지도 않은 대답을 모두 캐치한 모양이다. 녀석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진짜 선영이 언니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했는데 엄마까지..... 됐어요, 됐어. 난 이제 정말 아저씨한테 이제 아무런 생각 없으니까 이제 앞으로 마음대로 하고 다니세요."

"미안하다, 유진아."

"됐다니까요. 뭐가 미안해요? 아저씨랑 나랑 언제 뭐 무슨 사이라도 됐어요? 기껏해야 그냥 아는 사이지."

유진은 굉장히 마음에 안 드는지 입을 삐쭉 내밀고 굉장히 오래 툴툴거렸다. 그러다가 날 딱 보고 위아래로 훑어보며 또 잔소리를 해댔다.

"정말 내가 걱정되었으면 목요일 날 결석한 거 보고 당장 왔어야죠. 지금이 대체 무슨 요일이에요?"

"....금요일."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요!"

.......하아. 분명 니가 내 앞에서 엄청 분위기 잡고 절절하게 슬픈 표정으로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해서 충격받고 겁먹어서 못 보러 왔다고 하면 또 엄청 갈궈대겠지. 그래, 다 내가 죄인이고 내가 죽일 놈이다. 내가 유진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보고 여자 마음을 모른다고,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말한 분이 있었지. 오, 신이시여. 부디 쪽집게인 그녀가 걷는 길이 평탄하기를 기도합니다. 제 기도가 그녀에게 닿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무릎 꿇고 기도를 하는 대신 유진에게 확언을 받는다.

"정말... 학교 그만두는 건 아닌 거지?"

"당연하죠."

"그런데 유미는 너가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고..."

"또! 내 앞에서 엄마 이름 그딴 식으로 부르면 가만 안 둬요!"

너 말이야, 아주 조금 전에는 나랑 너랑 아무 사이 아니라면서 그냥 아는 사이라고 하지 않았니? 내가 너희 어머니랑 친하다고 해서 네가 그렇게 열을 내거나 버럭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흠흠, 암튼 네 어머니께서 너 다른 공부 하고 있다고 하셔서 난 네가 검정고시라도 준비하고 있는 줄 알았지."

"그런 걸 제가 왜 해요? 수능도 잘 나오고 있고 내신도 거의 탑인데."

딱히 잘난 척하는 것도 아니고 유진이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조금 재수없지만 사실이니 어쩔 수 없다. 아까 커피를 마실 때부터 눈여겨보던 테이블 위의 신문을 집어 든다. 이곳저곳이 오려져 있어 너덜너덜했다.

"무슨 스크랩을 하고 있는 거야?"

"....알아서 뭐하시게요?"

"아니, 뭐... 네 말마따나 아는 사이니까 그냥 관심을 보이는 것도 안 되니?"

유진은 코웃음을 치더니 자기 앞에 놓인 두툼한 파일 한 권을 내밀었다. 주황색 표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펼쳐본다. 그리고 몇 장 넘기기도 전에 이게 대체 무얼 위한 파일인지 알아차리고 말았다. 족히 수십 페이지는 넘어갈 스크랩 파일은 빼곡하게 어떤 정보들을 담고 있었다. 단순히 기사와 관련 정보를 모아둔 것만이 아니라 곳곳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에는 이걸 수집한 사람이 부가적으로 덧붙이는 메모가 가득 있었다. 이 파일은 얼마 전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고, 그것의 이면에 있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재림예수대비말세찬양교회...."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유진이가 학교에 나오고 있지 않은 기간 동안 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 알고 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신의 단짝 친구 빈소나 화장터 앞에서 결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던 이 녀석은 장례가 끝나자마자 친구의 죽음에 대해 파헤치고 있었다.

"애초에 소란이가 간 곳이기도 하고 나중에 소란이 가족이 전부 증발해버린 거에 대해서도 분명 관련이 있는 곳이에요. 얼마 전 종로에서 대규모로 시위를 벌인 곳이기도 하구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는 유진의 태도는 정말이지 어른스러웠다. 그저 한 아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거기서 더 어찌할 바를 몰랐던, 어리석은 날 탓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스크랩은 근래의 것만 있지 않았다. 대형 도서관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신문연감까지도 모두 뒤졌는지 몇 년 전의 기사도 심심치 않게 포함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팩스 감열지임에 분명한 종이에는 어떤 숫자와 목록 같은 것도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대체 이런 걸 어디서 난 거지?

"거기 담임목사인 원종서 목사는 2년 전에 출소한 이후로 말세교를 세웠고 그 이후로는 각종 단체에서 상임이사나 간사 같은 것도 역임하면서 굉장히 잘 나가고 있었어요. 청소년 단체 같은 곳에서 상도 많이 받았구요."

"출소...? 감옥에 갔다 왔단 말이야?"

"네. 그 전에 있던 어떤 교인단체에서 고발한 횡령 및 공무집행 방해죄에 유죄판결을 받았었어요. 3년형을 받았는데 모범수로 가석방했구요 지금 체포 되어있는 부목사 김태윤과 감방 동기였어요. 같이 출소했고, 같이 교회를 세웠죠."

유진의 설명을 들어가며 페이지를 넘기는데 문득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였다.

"어? 이 여자는...."

흑백이고 신문에 난 사진이라 또렷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이 못생긴 얼굴을 잊을 순 없다. 원종서, 김태윤과 나란히 서 있는 그녀는 분명...

"김은혜 권사요. 지금 말세교의 실질적인 수장이에요."

눈을 아래로 깔고 조용히 말하던 유진이 고개를 들어 날 한 번 보았다.

"아저씨가 그 여자 때려눕히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용서 안 했을지도 몰라요."

"으음.... 그러냐."

"남자가 여자 때리는 것만큼 몰상식은 없지만.... 이번만큼 봐 드릴게요. 저도 속이 후련했으니까."

"허어, 이것 참..."

한순간의 분기를 못 이겨 저지른 일이고 게다가 뒷수습을 위해 고생하며 잔뜩 후회했었는데 유진의 이런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근데 깽값은 누가 내 준 거예요? 우리 엄마?"

".....깽값... 아주 가끔 네 단어 선정에 대해 교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느껴."

"깽값이나 합의금이나. 암튼요."

"태근이 형이 내줬어."

"체육 선생님?"

"응."

유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선생님이 생긴 건 그렇게 안 보이는 데 돈이 많은가 보네요."

"뭐... 그렇지."

가진 건 많지만 딱히 그래 보이지 않는 태근이 형을 향해 잠깐 묵념해준다. 그러다가 돈 이야기가 나왔기에 내 가방에 넣어 다니고 있는 봉투가 생각났다. 황급히 가방을 열어 그걸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유진이 이걸 보고 말했다.

"이게 뭐예요?"

"뭐긴... 너랑 지난번에 화투치다가 잃은 돈 있잖아. 네가 다음에 만날 때까지 가져오라면서."

그러나 유진은 봉투에 손도 대지 않고 날 빤히 쳐다봤다. 어쩐지 불안하다.

"왜....그렇게 쳐다봐?"

"이 돈은 또 어디서 났어요? 이것도 박 선생님이?"

"아니, 너두 봤잖아. 그때 같이 치던 효진이가...."

"효진? 그때 학교 앞에 아저씨 데리러 왔던 안경 쓴 여자가 물건 어쩌고 하면서 언급하던... 그때의 그 효진?"

"응."

그러자 유진이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가만히 손을 뻗었다. 봉투를 집어드나 싶었는데 갑자기 내 손을 잡는다. 두 손으로 내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리더니 그 작디작으면서도 붉은 입을 한껏 벌려...

"아야아아아아!!!!"

손등이 뜯기는 줄 알았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손등에 이빨자국이 선명하다. 영화의 거리에 영화인들이 손발자국 남기는 것보다도 더 선명하다. 얼얼한 손등을 부여잡고 한참을 낑낑거렸다. 무슨 짓이냐고 소리지르는 날 가볍게 무시하고 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부엌 쪽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뭔가 꺼내더니 내게 다가와 내민다.

"이거 올려놔요. 그럼 좀 가라앉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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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103, 104회의 교정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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