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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110화 (110/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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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Route

채 검사와 만나고 돌아온 내게 중간고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4주간 교생을 하면서 밀린 학습 진도를 따라잡느라 애먹었다. 몇몇 수업은 강의 노트와 참고할 만한 리포트, 족보 등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과목은 밤을 새워 가며 교과서와 참고 자료를 읽어야 했다. 교생을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만약 교생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수업 진도를 놓쳐 시험을 코앞에 두고 고생스럽지 않았을 것이란 이유였다.

교생을 하면서 알게 된 대부분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소란이와 같은 뼈아픈 이별도 있었다. 유진이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녀석을 볼 때마다 소란이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딱히 약속한 것도 아니지만 소란이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내가 여자 검사를 만나러 간다고 눈에 쌍심지를 켜던 녀석이었는데 다녀오고 나서도 딱히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자신이 모았던 자료를 내게 넘겨주면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던 것 같아 보였다.

일단 유진의 과외를 다시 시작했다. 약속대로 다시 학교에 나간 녀석은 만날 때마다 나한테서 다른 여자의 냄새가 나나 안 나나 검사하는.... 아주 의부증 마누라처럼 굴고 있었다. 특히 자기 엄마를 어찌나 견제하는지 무서울 지경이다. 간신히 설득하여 일이 있어 ROSE에 나가는 건 합의를 보았지만 유미하고는 그때 한 번의 관계 이후로 하지 않고 있다. 내가 유진이 눈치 때문에 못 하겠다고 했더니 유미는 쿨하게, "그러지 뭐."라며 더는 날 건드리지 않았다. 종종 치곤 했던 섹슈얼한 장난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ROSE에 말 그대로 일하러 다니고 있다. 나는 아쉬운 걸까? 글쎄다. 그걸 모르겠다. 유미의 본심이 대체 어떤 건지 모르겠는 것처럼.

마리와 리사는 그때 리사와 결별한 이후로 전혀 보질 못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집은 완전히 비어졌고 얼마 뒤에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후배들에게 지나가다 넌지시 물어보니 마리는 부산에 있는 대학으로 편입하기 위해 자퇴하고 내려갔다고 한다. 녀석도 녀석이지만 리사가 가끔은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커다랗고 선량한 눈망울에 한가득 실망을 담게 한 사람이 바로 나이기에 차마 보고 싶다는 내색은 할 수 없었다.

선영에게서는 어떤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와 유진은 가끔 선영에 대해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본격적인 대화주제로 삼을 수도 없었다. 유진은 선영을 그리워하면서도 질투했고 나는 선영을 그리워하면서도 내색할 수 없었다.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여기고 살아갈 뿐.

중간고사를 코 앞에 둔 어느 날, 날 찾는 한 통의 전화가 과사로 걸려왔다. 이 전화를 내가 직접 받은 건 아니었다. 시험 때문에 정신없이 지내느라 집에도 잘 들어가지 않았고, 과사에도 갈 일이 별로 없었다. 후배 한 명이 내가 지내던 연구실로 찾아와 과사에 전화가 왔으니 와서 받으라고 전해주었다. 후배를 따라 과사로 가면서 물어보았다.

"누군데?"

후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녀석의 표정이 조금 이상하다.

"모르겠어요. 정부 기관이라던데요?"

깜짝 놀랐다.

"에에엑? 정부 기관?"

"선배 무슨 사고라도 치셨어요?"

후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되묻기에 나도 살짝 겁이 났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법 없이도 살, 그런... 그런... 사람은 못 되려나. 허어. 이것 참. 조금 찔리기도 하는데? 과사에 도착하니 과순이가 수화기를 건네주었다. 받아들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최한석입니다."

".......저예요."

"네?"

정부 기관에서 왔다는 전화를 받아드니 웬 여자가 다짜고짜 "저예요."한다. 이게 뭐야. 설마 성이 정 씨고, 이름이 부기관인 녀석인건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다시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누구...시죠?"

나는 정말정말 몰라서,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갑자기 저쪽에서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진다.

"뭐라구요? 어떻게 내 목소리를 못 알아들을 수 있죠? 당신이란 사람은 대체...."

......귀 떨어지는 줄 알았다. 나보고 파렴치범이니 어쩌니 하는 상대의 말을 계속 듣고 있자니 어쩐지 기분이 좀 안 좋았다. 조심스럽게 따져 묻는다.

"저...저기요. 전화를 거셨으면 본인이 누군지를 밝히고 용건을 말씀하세요. 저는 원래 전화 목소리만으로는 누군지 잘 모른단 말이에요."

"......모른다구요?"

"네. 누구세요, 진짜."

답답하리만큼 상대는 대답을 주저했다. 마음 같아서는 확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명색이 정부기관에서 걸려왔다는 말에 인내심을 발휘하여 참고 기다린다.

"......화예요."

"네?"

"채...송화라구요. 중앙지검의..."

"아... 채 검사님!"

안 그래도 정부기관에서 최한석을 찾는다는 사실에 과사에 있는 사람들끼리 수군거리며 날 보고 있었는데 방금 내가 내뱉은 호칭을 듣고 다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제 한석이 감방 가는 거야?' '저 선배, 그렇게 안 봤는데 대체 뭘 어떻게 하고 다니신 거지?' 하는 수군거림은 애써 무시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등 뒤가 몹시 따갑다.

"갑자기 연락하셔서요. 제가 못 알아뵙네요. 그리고 저 원래 전화로는 사람 잘 구별을 못 해요. 심지어 가끔은 엄마 목소리도 못 알아듣고 그런다니까요."

"그러시군요. 전 또...."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지 힘이 없었다. 수사가 잘 안 되는 걸까. 내가 가져다준 자료가 도움이 안 된 걸까 싶었다.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그 자료 출처라면 아직도 저도 잘..."

"....그건 아니고.. 일단 만났으면 하는데요."

"지금요?"

"네. 긴급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검사가 긴급한 일이라고 하니 바싹 긴장이 된다. 지금 바로 나가겠다고 하니 그녀는 한 장소를 불러주었다. 근데 그 장소라는 게 좀 묘했다. 난 좀 주저해서 되물었다.

"저기 검사님... 그러니까 저보고 지금...."

"수사에 꼭 필요한 일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수사니 협조니 하는 말이 나오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다. 전화를 끊은 후 같은 수업을 듣는 후배에게 일러 리포트 좀 대신 제출해 달라고 부탁했다.

"선배.. 출두하시는 거예요?"

"출두라니?"

내가 생각하는 출두라는 건 암행어사출두야... 인데 다른 출두가 있는 건가? 그러자 후배가 몹시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힘내세요."

"....으응? 응."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손을 들어 보이는 후배를 뒤로 하고 공대 주차장으로 갔다. 집과 학교가 그리 먼 것도 아니어서 집 앞 길거리에 주차해 놓는 것보다는 학교에 놓는 게 더 안전했다. 그래서 선영의 차는 대부분 여기에 있었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송화가 말한 곳으로 향한다. 시 외곽으로 나가서 좀 더 나가자 넓은 호수가 하나 나타나고 라이브 가수들이 나오는 걸로 유명한 카페들이 주욱 나타난다. 그걸 좀 더 지나 작은 야산 하나를 돌아가니 아니 풍경이 장관이다.

"이것들이 다 장사가 되는 거야?"

이건 무슨 아파트 단지도 아니고... 크고 작고, 높고 낮은 모텔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걸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중에서 민들레라는, 아주아주 어울리는 이름이 있기에 거기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차를 세우고 기어를 파킹으로 바꾸기도 전에 누군가 총알처럼 튀어나와 판때기 하나를 들고 차번호판을 가려준다. 이걸 고맙다고 해야 되나 뭐라 해야 하나.... 안에 들어가니 카운터에 있는 남자가 물어본다.

"어서 오십시요오 사장님. 특실 드릴까요, 아니면 준특실로?"

내가 왜 사장님이지? 여기 오는 사람을 일단 사장님, 사모님으로 불리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아예 일반실은 없는 거냐? 그러나 나는 다른 걸 물어본다.

"여기 405호실이면 4층이죠?"

"아, 일행이 먼저 와 계신 모양이죠? 엘리베이터는 저쪽입니다."

좋은 시간 되시라는 남자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걸 타고 4층에 도착하여 표지판을 따라 복도 끝에 가니 5호실이 보인다. 문을 두드린다. 그러자 잠시 후, 문이 빼꼼히 열렸다. 살짝 열린 틈을 통해 안에 있는 사람이 내 얼굴을 확인했다.

"오셨군요. 들어오세요."

문에 걸린 체인을 풀고 나를 안으로 들여보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채송화였다. 여기 모텔 이름이 민들레였지. 그래서 정말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둘 다 꽃 이름 아닌가. 그녀는 이전과 비슷한 세미 정장 차림이었고 얼굴에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실내에서 선글라스라니.... 예전에 저런 사람을 하나 알고 있었지. 지금은 볼 수 없지만...

"그래서 무슨 일이죠? 수사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게?"

창문에 덧문이 달린 데다가 조명도 그리 밝은 편이 아니었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방 안은 어두웠다. 게다가 침대는 뭔가 공주풍으로 하늘하늘 거리는 무언가로 잔뜩 치장되어 있어서 분위기 자체가 요상해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수사에 뭐가 필요한 게 있어서 이런 곳에서 나를 보자고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방 한 쪽에 놓인 티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녀와 내가 앉았다. 그녀는 자신이 쓰고 있는 선글라스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제가 수사하던 건 재림예수대비말세찬양교회... 그러니까 우리가 말세교라고 줄여 부르는 그곳에 관해서입니다. 처음부터 제가 그 교회를 수상히 여겨서 조사한 건 아닙니다. 이야기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처음의 시작은 부산이었습니다."

부산이라.... 그 이름만으로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그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내가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저는 2년 전 초임 검사시절부터 중앙지검 마약조직부에 배정받아 정체불명의 약쟁이를 수사하고 있었죠. 그의 배경이 뭔지, 출신이 어디인지, 심지어 본명이 뭔지도 아무도 모릅니다. 약의 종류를 미루어 보아 그가 약학과 화학에 있어서 무척 조예가 깊다는 정도만 추측할 따름이죠. 그가 만든 약은 부산 전체를 중독시키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산에서의 행적이 뚝 끊겼습니다. 아마도 부산의 토착 조폭 세력과 충돌한 걸로 생각합니다만 확실한 건 알 수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부산의 토착 조폭"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리사를 떠올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환하고 밝게 웃는 모습의 그녀를 왜 이렇게 흉악한 단어와 연계시켜 떠올리는지 알 수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근래 그놈이 서울로 왔다는 첩보는 입수했지만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그렇지만 틀림없이 그놈의 약은 서울에도 풀리고 있었죠. 그걸 역으로 추적하다 보니 그 교회, 말세교가 나오는 겁니다. 워낙 폐쇄적인 종단이라 도무지 수사할 엄두가 나질 않아... 제가 다른 신분으로 위장하고 그곳에 들어갔었습니다."

깜짝 놀랐다.

"검사님이 직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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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이벤트 알림>

이제 1회차 엔딩까지는 약 260KB 남았습니다. 평균 연재 분량이 10KB 전후이므로 이제 앞으로 1회차 엔딩까지 약 스무편~서른편 정도 남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벤트 내용은 다른 게 아니라 독후감 혹은 리뷰 모집입니다. 블로그나 게시판에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을 써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형식은 자유이고, 좋았던 점이나 아쉬운 점, 이런 캐릭터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 혹은 공략 안 된 캐릭터 누구를 공략했으면 좋겠다 등을 기탄없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데나 쓰시고 저에게 어디다 썼다고 댓글이나 트위터 멘션 @realkaracha 로 링크를 알려주시면 찾아가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관적으로 평가하여, 그 중에 한 분께 <옆집누나 엔솔로지> 한 권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쓴 단편 말고도 많은 분들의 이야기가 실린 책입니다. 아주 재미있습니다.

기한은 대충 1회차 엔딩이 끝날 때까지이며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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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1. <더블데이트> 곧 1회차 엔딩.

2. 감상문 모집.

3. 당첨자에게 단편집 책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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