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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111화 (11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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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외부에 수사관과 병력을 미리 대기시켜 두고 제 연락이 끊기거나 혹은 비선을 통하여 출동 명령을 내리면 언제든지 덮칠 수 있도록 해놓았죠. 거기서 그놈을 찾긴 했습니다만 수사관들이 교회를 덮치기 직전, 놈은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놈은 도망가기 직전.... 저에게 자신이 만든 약물을 주입하고 가버렸죠."

송화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때 경찰에서 얼핏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중독되었다던 교회의 여자들... 그중에는 소란도 있었다. 송화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갈라지고, 또 떨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약을 한 인간들이 또 약을 하는 거나.... 그 약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는 걸 항상 보아오면서.... 그것만큼 나약한 인간들이 없다고 생각하고... 또 멸시하고... 그러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약의 기운이 제 몸을 침식해 들어가더군요. 처음에는 아주 황홀하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약 기운이 떨어지면 아주 조그마한 일에도 짜증을 내고, 무언가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자꾸 들고.... 그리고.... 그리고....."

그녀는 다음 말을 하는 것을 퍽 힘들어했다. 보고 있는 내가 다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끝내 가슴 속에 담겨있는 말을 털어놓는다.

"날 가장 괴롭힌 건... 미칠 듯한 성욕, 그래요. 그건 분명 성욕이었어요. 저는 필사적으로.... 제 사회적 지위와 입장을 생각하면서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러다 폭발한 게 바로 그 화장실이었어요. 뭔가 찾아서... 스스로... 위로할까도 싶을 정도였죠. 근데... 근데... 거기에....."

아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날, 그녀가 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괴로워하다가 날 발견하고 덮치게 되었는가 말이다. 한 가지가 이해되었지만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그럼, 소란이는, 소란이는 왜 자살한 겁니까?"

소란이는 자살이 명백했기에 특별히 부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송화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머릿속에서 굉장히 불쾌한 추측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아이도 약물에 당했겠지요."

약물... 송화가 당했다는 약물. 그녀가 말한 부작용 중에는 "성욕"도 포함되어 있었다.

"설마... 그럼 소란이를...."

작디작은 아이였다.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밝게 웃기도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기도 하고, 그리고, 그리고... 아무도 안 보는 구석 진 곳에서 남몰래 눈물짓고 있던 그런 작은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대체 무슨 약물을 주입한 거냐.

"분명... 죽은 그 아이도... 이런 고통에 계속 시달리고... 또 시달리고 있었을 겁니다. 듣기로.... 원 목사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는 약을 한 아이들을 불러다가..."

"그만!"

"약에 취하게 되면... 절제력이라든가 도덕적 판단이라든가... 그런 게 불가능해집니다.... 욕망의 노예가 되고.... 약에서 깨어나면 그걸 그대로 기억하게 되니...."

"그만하라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양잿물을 귀에 들이부어서라도 방금 들은 소리를 씻어내고 싶다. 속에서 열불이 났다.

"그만해요! 당신이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모두 끝난 거죠? 그런 거죠? 그러면 빨리 그 나쁜 놈이나 잡아 달라구요. 도움이 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그런 것도 가져다주었잖아요. 그런데 당신은 여기서 지금 뭐하고 있나요. 이 바쁜 시국에 당신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구요!"

격앙된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양어깨를 붙들고 소리친다. 그녀는 잘못이 없다는 거, 나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오히려 누구보다 그 불행을 더 잘 알고 그것을 초래한 이들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그래,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소란이의 불행이 ... 그 이면에 이런 추잡한 일까지 얽혀 있다는 걸 듣고 나니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힘이 들었다. 너무 힘이 들었다. 그렇지만 힘든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미안해요...미안해요...."

너무 거세게 흔들어서 일까. 그녀의 선글라스가 얼굴에서 벗겨져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녀의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눈빛이 몹시 혼탁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목소리가 몹시 떨린다.

"그 아이에게 미안하고... 또 모든 피해자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그 약 기운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어요.... 난, 나는... 지금도 힘들다구요."

아아, 그 순간. 아주 짧디짧은 그 순간. 나는 뭔가 깨달아 버렸다. 이 여자가 나에게 원하고 있는 게 무엇인가. 대체 왜 날 이리로 불러들였고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가를 말이다. 말은 길었지만 내 판단은 짧고도 신속했다. 그녀는 지금 내가 자신을 비난해 주길 바라고 있다. 내 자의적 판단이라고 해도 좋다. 그녀는 지금 약의 기운이든 수사에 진척이 없어 괴롭든 간에 몹시 약해지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가진 초인적인 인내심과 절제력으로 쓰러지려는 자신을 붙들고 일으켜 세우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평생 그렇게 서 있을 수만은 없다. 한 번은 자리에 앉아 쉬어야 한다. 쓰러져 잠이 들어야 한다.

"이리 와."

난 그녀의 팔을 잡고 거칠게 일으켰다. 그녀는 내 팔에 이끌려 오면서도 저항하지 않았다. 그대로 침대로 끌고 간다. 밀어 눕히고 내 옷을 거칠게 벗어던진다.

"미안하다고 했지? 대체 누구한테 미안한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나한테 빌어봐. 그러면 너 하는 걸 봐서 용서해주지."

내가 알몸이 되는 동안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날 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 옷을 벗긴다. 저항은 없었다. 그녀 역시 순식간에 알몸이 된다. 다리 사이는 이미 젖어있었다. 별다른 애무도 없이 내 물건은 그녀의 살덩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몸 자체는 달궈져 있었던 그녀가 급격하게 고양된 기분을 교성으로 표현하며 내게 매달렸다.

"하아악... 하으.... 하악...... 하악...... 아아앙...."

철썩거리는 살의 푸닥거리 소리와 애정이 없는 인간들이 외치는 짐승과도 같은 교성. 소리의 합집합이 이 방을 채우고 몸과 살의 교집합이 은밀한 접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사정에 임박한 성기를 뽑아들고 그녀의 배에다 정액을 뿌렸다. 내 아래 깔려 허덕이던 그녀는 몹시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걸 보고 있었다.

"하아...하아...."

육체적인 피로도 피로거니와 정신적인 피로감이 몰려와 참을 수 없었다. 송화의 옆에 드러누워 대자 자세를 취하고 만다. 나란히 천장을 보고 있다가 귓가에 들려오는 그녀의 숨소리가 좀 차분해졌기에 물어보았다.

"....이거...이거 하자고 저 부른 거 맞죠?"

"........."

침묵은 긍정에 가까울까 부정에 가까울까. 그녀의 대답을 굳이 기다리지 않고 내 생각을 말해본다.

"그러니까... 송화 씨 몸에는 그때 교회에서 당한 약의 영향이 아직 남아있고... 그것 때문에 발정이 일어나게 되면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다.... 제가 이해한 게 이게 맞나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팔을 들어 내 머리를 문지르며 말했다.

"하아. 이게 무슨 긴급한 일이고 수사에 협조되는 일이랍니까. 대한민국 검사가.... 이렇게 일반 시민에게 뻥을 쳐도 되는 거예요? 저는 당장 다음 주부터 시험기간인데..."

너무 푸념조로 말한 걸까. 상체를 일으킨 송화가 약간 불만 섞인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담당 검사가 수사에 집중이 안 되는데... 그걸 해소하는 게 수사에 협조되는 일이 아니면 뭔데요? 내가 진짜 이런 이야기까지는 안 하려고 했지만 그때 당신이 화장실에만 안 들어왔으면..."

"안 들어왔으면요. 어쩌시려고 그랬는데요?"

".......모르죠. 나도. 하아."

그녀는 다리를 모아 두 팔로 그러안고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 등을 보고 있자니 조금 애잔한 느낌이 들어서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는다. 나는 누워있던 터라 그녀의 자세가 스르륵 무너져 내게 안긴 꼴이 된다.

"정말, 제가 이렇게 해주는 게.... 송화 씨에게 도움이 되는 건가요?"

그녀는 상당히 주저하면서 천천히 말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최소한 아까보다는 마음이 편해지고 머리도 맑아지고 있어요."

누가 들으면 무슨 길거리에서 약 파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그녀의 변화 전후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반박할 도리가 없었다. 큰 맘 먹고 이렇게 말한다.

"좋아요. 협조하겠어요. 최소한 그 원 목사 새끼를 잡을 때까지는..."

"정말요?"

화색이 된 그녀가 날 돌아본다. 표정이 엄청 밝아졌다. 그러다가 자기 얼굴이 어떤 모양인지 깨달은 모양이다. 애써 정색하더니 평소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나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녀의 표정을 혼자 보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는 그렇게 슬프고 괴롭고 안타까운 심정이었지만... 조금 전 그녀의 표정은 너무도 웃겼기에 나는 크게 웃고 말았다.

"푸하하하하하."

"왜... 왜 웃어요?"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리고 꼭 안아주었다. 슬금슬금 기지개를 켜는 아래쪽을 가리키며 한 번 더 하자고 했더니 그저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반대하지도 저항하지도 않았다. 목과 어깨에 입을 맞추기 시작하자 그녀는 눈을 꼭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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