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6 / 0471 ----------------------------------------------
Main Route
"어? 왔어? 사장님한테 보고는 다 끝난 거야?"
룸에 들어서는 날 알아보고 손을 흔드는 형을 보고 있자니 할 말이 없어진다. 원래 형이랑 둘이 마실 생각이었고 잘 해봐야 옆에 아가씨 한 명씩 붙이고 마실 생각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형이 자리한 방은 단체 손님 받을 때 쓰는 대형룸이었다. 게다가 형의 좌우로는 각각 열 몇 명 씩, 도합 스무 명이 넘어가는 아가씨들이 방 가득 우글거리고 있었다. 입에서 입으로 휴지 옮기기 게임을 하고 있던 중인 모양이다. 이 많은 인원이 서로 웃고 떠드느라 시장바닥이 따로 없다. 가장자리에 앉은 지나가 내게 손을 흔들며 얼른 이쪽으로 오란다. 나는 투덜거리며 자리에 엉덩이를 걸쳤다.
"뭔 소란이에요, 이게 대체? 게다가 룸은 또 왜 이걸.... 13번방 정도면 되는데."
13번 방은 4인 손님이 왔을 때 쓰는 방이었다. 지나가 깔깔거리며 말했다.
"아니, 우리는 그냥 선생님 친구 왔다고 하길래 구경이나 할까 했는데... 아까 마담언니 말 들으니까 이제 선생님이 우리 사장님도 된다면서요. 그래서 그거 축하도 할 겸 있는 애들 다 불렀죠."
아직 아가씨들이 본격적으로 출근할 시간이 안 되긴 했지만 여기의 규모가 제법 되다 보니 지금 있는 아가씨들만 해도 수가 제법 되었다. 그 많은 사람이 모두 내 쪽을 보며 박수를 치고 환영을 한다. 개중에는 은근히 나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는 분들도 제법 있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운데 앉아 있는 형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야, 한석아. 너 그냥 여기서 알바나 하는 사람이라고 나한테 그러지 않았어? 사장이 되었다는 게 무슨 소리야?"
"저도 오늘 처음 들어서 아직 얼떨떨해요. 받아들일지 어떨지 결정도 안 내렸고..."
내가 주저하며 말하자 형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인마. 공동명의로 올려줬다면서. 그거면 끝난 거지 뭘 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대체 여기 사장님이 어떤 분이길래 널 그렇게 높이 평가하냐? 쥐뿔도 없는 놈인데."
쥐뿔이야 당연히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저런 소리를 들으니 발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는 당신은 쥐뿔 가지고 있는가!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나름 반박해보지만 형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더 심한 소리를 시작한다.
"아니, 뭐... 니가 인물이 훤칠하기를 하냐, 집에 돈이 많기를 하냐. 잘하는 거라고는 앉아서 공부하고 이유 없이 여자 꼬이는 거 딱 두 개 잖아. 키 큰 거, 요거까지 치면 세 개인가?"
너무도 노골적인 표현이지만 그만큼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딱히 내가 무어라 답변을 못하고 있자니 형의 양옆에 있는 아가씨들이 호들갑을 떤다.
"어머, 우리 선생님한테 여자가 잘 꼬인다구요? 정말?"
"어쩜, 어쩜~"
그러자 형이 기가 살아서 또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아가씨들 들으라는 듯이 아주 큰 목소리로 말한다.
"말도 마라니까. 내가 알기로는 우리 동생도 저 녀석 은근히 좋아하거든. 게다가 동생 친구 중에 가슴 딥따 큰 애가 있는데, 아, 딱 요 언니 정도 되겠다."
...라고 하면서 형은 한 사람 건너에 있는 수지라고, 우리 가게에서 왕가슴 베스트 3에 들어가는 아가씨의 가슴을 덥석 쥐었다. 그 아가씨는 물론 좌우의 아가씨들도 까르르 웃어넘어간다. 아니, 저런 걸 당하면 화를 내야 정상이 아닌가. 그러나 형은 이런 분위기, 그러니까 여자들 끼고 술 마시는 분위기에 무척이나 능숙했고 분위기를 잘 이끌어 가고 있었다. 형은 그것을 몇 번 주물럭거리다가 놓았다.
"음... 이 정도면 살짝 부족할 지도? 암튼 그런 애도 쟤한테 잠깐 코 꿰었었지, 우리가 학교에서 교생할 때는 쟤 담당인 선생이 여자였는데 그 선생도 은근히 쟤 좋아하고 막 그랬다니깐."
자기 동생에 대해 저렇게 언급하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지혜가 그랬던 건 대체 어떻게 알았으며 지애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자기가 어떻게 저렇게 확신하는 거야! 반박문을 발표하려고 머릿속에서 표현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보다 먼저 형이 급소를 찔러온다.
"게다가 너 지금 하영이 친구 중에 검사 하는 애랑도 종종 만나고 있지?"
깜짝 놀랐다. 송화는 자신이 나를 만나는 것을 항상 감추고 싶어 했다. 뭐, 정식으로 사귀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섹스파트너로 만나고 있는 건데 어찌 자랑하냐 싶은 그 심정을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나도 뭐,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 그런데 형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대체?
"헉... 그걸 어떻게...."
"다 아는 수가 있어. 인마."
전부터 느꼈지만 형은 겉보기와 달리 전혀 둔탱이가 아니다. 그냥 보기에는 곰 같지만... 아니, 그냥 곰이지만 속에는 틀림없이 사람이 들어앉아 있는 곰이었다. 그것도 아주 예민하고 영민한 사람 말이다. 형의 이야기에 흥미로운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던 아가씨들은 이내 자신들이 아는 나의 여자관계를 떠들기 시작했다. 난 깜짝 놀랐다. 이들이 말을 안 하고 있어서 그렇지 그들은 내가 이전부터 선영이와 관계가 있었다는 걸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또한 상당수는 내가 유미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워낙 그쪽으로 투철하게 발달하신 분들이다 보니 그런가.
"저...여기서는 제 프라이버시 같은 건 존중되지 않는 겁니까?"
손 하나를 들고 가련하게 물어보지만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왁자하게 웃으면서 넘어갈뿐이다. 형은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맞다. 너 지금 유진이 과외도 하고 있다고 했지? 야, 저거 진짜 잘 지켜봐야 돼. 저런 무서운 놈의 마수에 귀여운 여고생이 훌렁 넘어가 버리면 어쩌란 말이야. 이건 국가적 손실이라고."
국가의 손실이 그런 곳에서 발생하는지는 미처 몰랐습니다만... 애써 형의 약점을 생각해내어 반격해 본다.
"형은 겉보기에 딸뻘로 보이는 현아를 꼬셔서 다니잖아요!"
"그래서, 부럽냐?"
"아뇨!"
"그렇겠지! 나는 겉보기에 여고생으로 보이는 여대생이지만 너는 진짜 여고생을 꼬시는 중이니까!"
반격의 창 끝은 무뎌지고 나는 낙마를 하고 만다. 그렇게 다시 또 바보가 된다. 늘 쓸데없는 소리 잘하고 날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리길 잘하는 형이야 그렇다 치고 이 아가씨들은 대체... 테이블이나 옆 사람을 두드려 가며 웃는 건 물론 허리를 잡고 아주 그냥 신명나게 웃어 제끼고 있다. 어쩌면 자기들 사장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을 두고 너무 신나게 웃는 거 아닐까 몰라. 나중에 따로 불러다가 엄히.... 아, 잠깐. 은연중에 내가 사장이 되리란 것을 전제하고 있었다. 으으. 아, 안된다. 좀 더 심사숙고 해봐야 돼. 내 얼굴에 드러난 고민을 읽은 걸까. 형은 내게 재차 물었다.
"아, 그래서 말이야. 정말 여기 사장 안 맡을 거야?"
"아직 결정 안 했어요."
"야, 왜 이렇게 좋은 걸 마다해. 내가 사장 되면 말이야, 여기 아가씨들이랑 일단 하루에 한 분씩 개별 면담을 하겠어."
그러면서 형은 자기 옆에 앉은 아가씨 한 명을 지목하더니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묻는다.
"음, 이름이?"
"민지요."
"좋아요. 민지 양. ROSE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신임사장 최한석입니다. 지금부터 면접을 시작하죠. 일단 자신에게 있어 가장 자신 있는 부위가 어디죠?"
형이 펼치는 혼신의 연기에 다들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는다. 민지도 형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눈치챈 모양이다. 그녀는 자신의 양 가슴을 두 손으로 받쳐 들며 말한다.
"수지보단 좀 덜하지만 그래도 크고 이쁜 가슴?"
아가씨들의 야유가 쏟아진다. 개중에는 "내가 더 이뻐!" 라든가 "내가 더 커!", 아니면 "너 실리콘 팩 넣었잖아!" 같은..... 소리가 섞여 다수 섞여 있었다. 어쩐지 낯설지가 않은 저 자세와 이런 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때 카페 여종업원의 몸매에 이상하리만큼 눈을 번뜩이던 유진의 행동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 녀석은 사춘기 이전의 사고 형성 과정부터 이런 아가씨들이랑 지냈을 테니까 말이다. 형의 연기는 계속 되었다.
"좋아. 그러면 어디 민지 양의 가슴을 검사해볼까. 자, 까~세요."
여태 근엄하게 이야기하다가 막판에 아주 느끼하게 변모하는 형의 목소리에 또다시 다들 까르르. 저게 뭐가 그리 웃기다는 거야. 난 도대체 적응이 안 된다. 민지 역시 깔깔 웃으면서 형을 살짝 밀쳐낸다.
"어유, 사장님 변태~!"
그러자 형은 껄껄 웃으면서 앞에 있는 잔을 들었다. 아가씨 한 명이 얼른 맥주로 채워준다.
"그러니까 나같이 이상한 놈이 사장 되는 것보다는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은 성실한 한석이 같은 애가 되는 게 좋지 않겠어? 그렇지?"
아가씨들이 한 목소리로, "네~"하고 외친다. 네네, 아유, 감사합니다. 감사해서 눈물이 다 날라 그러네. 다른 건 몰라도 아까 형이 날 놀려 먹을 때 아주 크게 웃고 있던 아가씨 면면을 기억해둔다. 형은 아가씨들을 재촉하여 다들 잔을 채우게 했다. 그 많은 인원들이 잔을 채우느라 좀 부산해졌다. 지나는 글라스 하나를 가져다가 내 앞에도 맥주 한 잔을 놓아주었다. 형이 건배사를 소리 높여 외친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즐거운 만남과 신임 사장님의 취임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형의 건배제의에 모두 맥주를 꿀꺽꿀꺽. 역시 다들 잘 마신다. 누구 하나 빼는 사람 없이 잔 전부가 아주 말끔해졌다. 사람이 많다 보니 테이블에 잔 내려놓는 소리만 해도 아주 난리도 아니다. 탁- 탁- 탁- 탁- 탁-
그리고 짝짝짝.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돌아보니 방금 문에 들어선 사람이 가볍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유미였다. 그녀는 살짝 웃으면서 지나를 향해 말했다.
"이제 슬슬 영업 시작할 준비 해야 되지 않나? 선영이 없다고 다들 군기 너무 없어지는데?"
"어머, 마담언니."
지나가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간다. 아무래도 선영이 없고나니 그녀가 그다음인가 보다.
"우리 가볍게 맥주만 하고 일어나려고 했어요. 그치? 얘들아, 가자."
지나의 선동 아닌 선동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우루루 빠져나갔다. 나가기 전에 우리 쪽을 향해 인사를 살포시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순식간에 룸에는 나와 태근이 형, 그리고 유미만 남았다.
"왜, 유미도 한 잔 하게?"
내가 잔을 들어 보이며 권하자 유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우리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형, 여기가 이 가게 원래 사장님이신 유미 씨..."
유미를 형에게 소개하려고 돌아보는데, 뭔가 형의 표정이 이상했다.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잔뜩 일그러진 형의 표정이 몹시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다. 마치 굳어있는 입을 억지로 비집어 연 것처럼, 형은 아주 힘겹게 말을 꺼냈다.
"미자 누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