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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데이트-151화 (15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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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난 하영과 유진이 청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장면을 멍하니 쳐다보며 코스별로 나오는 요리를 조금씩 집어 먹었다. 그렇게 근 한 시간짜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오전처럼 다시 또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오후가 되자, 유진이는 또 먼저 가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그렇게 가는데?"

"비밀이요."

유진은 씁쓸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 먼저 나가버렸다. 나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하영의 서슬 퍼런 감시 아래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집에 들어가면 유진이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은 내가 안아주길 원했다. 그냥 안아주는, 그냥 포옹 말고... 깊은 곳까지 안아주는 그런 것 말이다. 때로는 저녁 식사조차 건너뛴 채 서로 미칠 듯이 탐닉하고 맛보았다.

그런 식으로, 또 일주일이 지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에 돌아온 나는 유진이와 함께 찐한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같이 집을 나가 사무실에 가고,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도 전혀 이런 내색을 하지 않는 녀석인데, 저녁만 되면 성욕이 불타오르는 모양이다. 나야 좋기는 하지만... 가끔은 좀 과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 번만 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두 번, 세 번 거듭되곤 하니까... 조금 피곤하기도 했다. 솔직히는.

새벽이다.

두 번째인지 세 번째인지 모를 행위 후에도 유진이는 내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알몸을 서로 착 붙인 채로, 유진이는 내게 말했다.

"엄마에 대해 말해줘요."

"엄마? 유미?"

"네."

뜬금없는 타이밍에 뜬금없는 주제다. 게다가 자기 엄마 이야기를 남에게 묻는 딸이라니. 내가 이상하다고 하자 유진이는,

"엄마는 나한테 뭔가를 제대로 말한 적이 별로 없어요. 항상 웃는 얼굴로 이상한 소리만 한 걸요. 자라면서 느낀 건데, 엄마가 했던 말은 절반이 거짓말, 나머지 절반이 뻥이었어요."

라며 고개를 저었다. 유미의 평소 언행을 생각해보면, 자기 딸에게라도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 같았다.

"어떤 이야기를 해 달라는 거야?"

"전부 다요. 아저씨가 어떻게 하다 우리 엄마를 만났고, 또 내가 없을 때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리고..."

유진이는 이쯤에서 내 가슴팍을 살짝 할퀴었다. 아주 조금 아팠지만 큰소리로 엄살을 피웠다. 유진이는 할퀸 부분을 쿡쿡 찌르면서 말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하다 우리 엄마랑 선을 넘었는지도 말이에요."

"크흠... 그걸.. 꼭 이야기해야 되는 거야?"

난감하기 짝이 없다. 비록 유진이가 눈치가 빨라 내가 자기 엄마랑 그렇고 그런 행위를 했다는 걸 이미 짐작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걸 내 입으로 고해야 하다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엄마인데!! 그 딸한테!! 생각해보니 난 진짜 어마어마하게 비윤리적인 짓을 하고 있는 놈이었구나....

"이제 와서 뭘 빼는 거죠? 그리고 말했잖아요. 나한테 숨기는 게 있으면 절대 안 된다고."

"그래도 그 사실은 좀...."

"이거, 깨물까요?"

유진이가 가리킨 것은 내 다리 사이에 반쯤 기지개를 켜고 있는 철없는 녀석. 넌, 인마. 지금 본체가 절체절명의 순간인데도 불구하고 말랑거리는 여자 몸이 나한테 닿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발기하고 있는 거냐? 그런 거냐. 그러니까 남자들이 동물이란 소릴 듣는 거야, 인마......라는 식의 쓸데없는 생각만 하다가 유진이에게 한 번 더 할큄을 당했다.

"아, 알았어. 근데 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되는 거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래. 작년 2학기 기말고사를 끝내고 진호 선배에게 과외를 소개받으면서다. 유진이는 자기 엄마가 과외를 신청했다고 했다. 자식의 과외 선생을 구하기 위해 인근 대학의 학생회 등에 연락하여 대학생을 소개받는 일은 흔한 일이지만, 유미의 능력을 생각해보면 참 묘하게 다가온다. 왜 굳이 우리 학교고, 우리 과사에 연락해서 사람을 구했을까. 그녀가 이미 진작에 나를 "보았기" 때문일까. 게다가 그때... 그 날 밤, 비행기에서 그녀를 두고 떠나지 못하던 나를 향해 그녀는 말했다.

- 부탁이야. 유진이를 살려줘. 내 마지막 부탁이야.... 그러니 어서 가!

그녀가 가라고 한 건 그저 곧 폭발할 비행기를 떠나라는 이야기였을까.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어서 가라고 외치는 거 아니었을까. 그녀에게 있어 미래는 정해진 불변의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소위 변곡점이라 할 수 있는 나를 유진이에게 붙여주었다. 왜일까. 나로선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니. 음.... 생각 정리 좀 하느라."

한참 주저했지만, 결국은 가능한 한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유미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해주었다. 전화통화로 과외를 승낙받고 유진이를 만나게 되었다. 월급을 받으러 갔다가 처음으로 유미를 만났고, 훗날 선영을 통해 그녀가 보았다는 내 미래의 모습에 대해 전해 듣게 되었다. 지애와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유미가 난입하였고, 그 날 그녀에게서 그녀의 능력에 대해 직접적으로 전해 들었다. 소란의 변고 이후 그녀에게 폭언을 했다가 그걸 사과하는 과정에서 덮쳐지게 되었다.... ( 여기에서 유진이는 내 물건을 아주 아프게, 세게 쥐기는 했지만 물어뜯거나 깨물지는 않았다. ) 그러면서도 그녀는 나에게 유진이에게 가보라고 일렀고, 결국 우리 셋은 여행을 떠났다...

"여기까지야."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유진이는 고개를 저었다.

"말했잖아요. 전부 다 말해 달라고. 그러니.... 그 박 회장이라는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도 전부 해줘요."

박 회장을 만나고 온 날, 유미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주긴 했지만 상세하게 말해주진 않았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유진이의 생부에 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다 이야기해줬잖아. 그때 다녀와서 이야기한 게 다야."

유진이는 내 가슴팍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아니라는 거 알아요. 그러니까 빨리 말해줘요."

"으...응?"

"아저씨는, 아니,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죠? 오빠는 말할 때 보면요. 있는 그대로 밖에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거짓말을 하면 티가 대번에 나요. 그리고 굳이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있는 이야기를 감추려고 해도, 그것도 티가 나요. 아주 심하게. 속마음 얼굴에 써 붙이고 다닌다는 소리 살면서 안 들었어요?"

듣지. 아주 많이 듣지. 너무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굉장히 뜨끔했지만, 그래도 필사적으로 저항해본다.

"내가... 뭘 숨겼는데?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했다니깐?"

"아뇨. 분명히 그 이야기가 나왔을 거예요. 박 회장이랑 우리 엄마랑 같이 살았던 시기에 날 가졌잖아요. 근데 그 사람은 내가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했죠. 그럼 전 대체 누구 자식이죠?"

"그...그야...."

이렇게 정곡을 찌르고 들어오니 차마 대답을 못 하겠다. 유진이의 속사포 같은 공격은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닥쳤다. 이 녀석,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다.

"생각해봐요. 결혼 중에 자기 부인이 다른 남자의 애를 가졌어요. 그러고 헤어졌다면 정말 철천지원수나 마찬가지라고요. 그런데 그 여자가 낳은 아이에게 자기가 이름을 붙여줘요? 거의 이십 년이 지났는데, 그런 식으로 헤어진 전 부인이 죽었다고 장례식에 굳이 찾아와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요. 엄마 장례식 이후 계속 생각했지만 난 도저히 납득이 안 되었어요. 근데 우리가 서울에 돌아오고 나니 아예 오빠를 불러다가 자기 일을 물려준다잖아요. 자기 부인이었던 사람의 곁에 있던 남자를 말이에요. 대체... 우리 엄마가 박 회장에게 어떤 존재였길래 그렇게까지 대우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 전 한 가지 결론을 내렸어요. 박 회장은 엄마의 상대가, 그러니까 제 생부가 누군지 알고 있어요. 그 사람과 엄마의 관계를 알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숨은 좀 쉬고 말해..."

"아저씨!"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유진이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여태껏 마음속에 가득 담고 있던 의문을 한꺼번에 쏟아놓느라고 말이다. 이쯤 되니, 더는 감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한숨을 내쉬고, 손을 뻗어 유진의 손을 잡았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박 회장은 자신의 사업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유미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걸 나한테 넘긴다고 한 거야. 이유는 나도 몰라. 그는 유미가 날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했어. 그리고..... 나한테 네 아버지가 누군지 말해줬어."

유진의 손이 조금씩 떨리는 게 느껴졌다.

"누구...죠?"

녀석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젖어있었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라는 건, 세상 대부분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유진이는 지금부터 그걸 지금부터 직면해야 한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너도, 아는 사람이야."

바로 말해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표현한 건, 내가 모자란 탓이다. 그러나 유진이는 나보다 훨씬 똑똑한 녀석이고, 영리한 녀석이다.

"아는... 사람?"

유진의 눈이 커졌다. 안 그래도 큰 눈이, 거기서 더 커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커진다.

"설마...."

입안이 탄다. 목이 마르다. 맞잡은 손에 힘을 준다. 녀석도 힘이 들어간다.

"설마... 아니겠죠? 그 무식하게 생긴 사람이...."

미안. 태근이 형. 유진이가 무식하게 생긴 사람이라고 하는데, 난 형을 떠올리고 말았어. 그리고 고개까지 끄덕이고 말았어. 미안해, 형. 나중에 진짜 좋은 데서 술대접하면서 사과할게. ...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말도 안 돼..."

유진이는 웃었다. 결코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는 걸, 내가 아무리 둔탱이라고 해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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