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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장미정원
정석은 피식 웃고 말았다.
"왜? 간택을 못 받아서 서운해? 그래도 안면 익히는 건 확실히 성공했잖아."
"그래. 쟤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나 같이 늙은 년 먹자고 위험부담까지는 끌어안지 않겠지."
"위험부담?"
"그래. 어차피 이제 앞으로 계속 일할 건데, 괜히 뒷날 나오면 곤란하지 않겠어?"
인애의 말투로 보아 다른 건 몰라도 계약을 위한 밑 작업은 확실히 된 모양이다. 술자리에서 은근히 흘러나오던 사업 계획의 규모를 접한 정석 역시 구미가 당긴 참이었다. 정석은 인애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밤늦도록 아이들을 돌봐주던 춘희는 정석의 귀가를 확인한 후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정석은 춘희의 정성이 너무 고마워 택시를 불러 그녀를 태워 보냈다.
그 이후로도 정석은 인애가 부르는 술자리에 몇 번이고 불려 나갔다. 그리고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정석은 우경건설과의 계약을 무사히 따냈다. 계약금만 해도 큰일일 정도로 그에게는 큰 계약이었다. 주변에서는 그가 이 계약을 따낸 건 거의 기적이라고 수군거렸다. 정석은 본인도 알고 있었다. 인애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해낸 것이다.
정석은 은근히 불안해졌다. 인애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돕는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차라리 그녀가 자신의 회사 지분을 요구한다거나 하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그런 기색도 없다. 회사를 나와 집으로 향하며 인애와 자신의 관계를 생각했다. 그녀와 자신의 첫 만남을 생각해본다. 몇 달 전의 일이 아니다. 십 년도 더 된 일이다.
12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정석의 첫 직장이 바로 승화물류였다. 회사 사장이 정석의 고등학교 선배였다. 그리 크지 않은 회사였고 직원이라고는 다섯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곳에서 정석은 운전을 배우고, 물류에 대해 배웠다. 점심시간이면 회사 바로 옆에 붙어있는 사장의 집에 가서 다 같이 밥을 먹었다. 사장의 부인이 인애였다.
그녀는 퍽 너그럽고 살가운 솜씨로 남편의 내조는 물론, 직원들까지 돌봐주었다. 총각이었고 당시 하숙집을 나와 회사 근처에 집을 얻어 혼자 살기 시작한 정석은 인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이로 치면 거의 이모뻘이었다. 남편과 결혼한 지도 거의 십여 년이 돼가는데도 아이가 없던 그녀는 정석을 마치 자기 동생이나 아이처럼 돌봐주었다. 처음에는 정석도 이런 호의가 퍽 불편했지만 나중에는 점차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회식이라고 해봐야 사무실에 모여 진탕 술을 마시는 게 고작이었다. 2차를 간 곳은 사장의 집. 밤늦게 몰려온 불청객을 반갑게 맞이한 인애는 술과 안주상을 거하게 차려내 대접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그녀나 직원들이나 다들 익숙했다.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 모두 쓰러졌다. 거실 곳곳에 적당히 흩어져 자고 있는데, 정석은 누군가 자신의 몸을 더듬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렴풋하게 잠에서 깬 정석은 자신의 몸을 만지는 이가 누구인지 물었다.
"쉿-"
낮은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낸 인애는 누워있던 정석을 올라탔다. 창밖에서 흘러들어오는 희미한 달빛이 그녀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펑퍼짐한 티셔츠에 마찬가지로 펑퍼짐한 치마 사이로 그녀의 살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감춰진 육향이 물씬 풍겨온다. 그리고 바싹 올려묶은 머리카락. 그중에서 미처 묶이지 못한 머리카락 일부가 아래로 내려와 정석의 얼굴을 간지럽힌다. 입술끼리 부딪칠 때, 정석은 이게 꿈이 아니란 걸 알았다.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정석은 떨리는 목소리로 상대를 불렀다.
"사...사모님...."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마."
이미 정석의 바지는 벗겨져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이미 번들거리고 있는 양물이 허공을 향해 고개를 꺼떡이고 있었다. 아플 정도로 팽팽해져 있던 정석의 물건은 그날 처음으로 여자의 비부를 경험하게 된다. 정석은 혼비백산했다. 아직 덜 깬 술이 단번에 날아갈 만큼,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흐읍....흐으....."
인애는 낮게 신음을 흘렸지만, 정석은 그게 천둥소리보다도 더 크게 들렸다. 바로 옆에는 술에 취해 코를 골아대는 선배들과 사장이 있었다. 인애는 사장의 마누라였다. 정석은 자신을 짓누르는 이 거대한 무언가가 첫 섹스의 쾌감인지, 아니면 들킬 경우 맞게 될 파국에 대한 두려움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공포를 이겨내기 위하여 정석은 인애의 젖가슴을 미친 듯이 핥고 빨았다.
"하아...하으.....흐으...."
낮은 신음소리와 미칠 듯한 쾌감 사이에서, 정석은 사정하고 말았다. 뺄 생각이나 다른 엄두는 내지도 못했다. 인애의 안으로 그대로 쏘아진 정액이 주르르 흐르는 느낌이 정석을 혼란스럽게 했다. 어디선가 휴지를 가져온 인애는 뒤처리를 말끔하게 해주고 정석의 바지를 도로 입혀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게 정석의 첫경험이었다.
인애는 정석을 마음에 들어 했고, 이후에도 종종 불러내어 정석을 올라탔다. 정석은 이런 만남, 즉 불륜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 만남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인애가 두려워서 거절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다. 바로 인애의 남편, 사장 때문이었다. 정석은 자신을 아끼고 잘 돌봐주는 사장을 상처입힐까 봐 두려웠다. 사장은 정석에게 여자까지 소개시켜준 고마운 분이었다.
"총각 생활 길어지면 별로 좋지 않아."
라고 말하며, 오지랖이 넓은 사장은 자신이 직접 정석의 중신을 서주었다. 선 자리에 나온 얇은 인상의 여자는 다름 아닌 인애의 고향 후배라고 했다. 정석은 사장이 소개해 준 은주가 마음에 들었다. 은주는 약간 수동적인 태도이긴 하지만 정석이 결혼을 밀어붙이자 이내 허락했다. 정석이 결혼을 서두른 까닭은 달리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인애에게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은주는 결혼 전에 이미 임신했다. 정석은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했지만 은주는 괜찮다고 했다. 가진 것도 별로 없었기에 정말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회사 사람들과 정석의 친척 몇 명이 찾아왔다. 그중에서도 묘한 웃음을 지으며 축하한다고 말하던 인애의 표정이 정석에게는 가장 인상 깊었다.
결혼 이후, 인애는 정석을 부르지 않았고 정석 역시 인애를 따로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석의 아내인 은주는 자신의 고향 선배인 인애를 언니라고 부르며 곧잘 따랐다. 가끔 인애의 집에 초대되어 부부동반으로 밥을 먹으면서도, 정석은 인애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 후, 승화물류의 사장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인애가 회사를 물려받았다. 정석은 아무래도 인애 밑에서 회사 다니기가 껄끄러워 사표를 썼다. 자신이 가진 돈과 부인이 마련해온 지참금을 보태어 작은 회사를 차렸다. 그 무렵, 아들이 태어났다. 이름을 태근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태근이 돌잔치를 하기도 전에, 몸이 약했던 은주는 병으로 죽고 말았다. 아내의 황망한 죽임 이후, 정석은 한 가지 알게 되었다. 아내가 가져온 지참금이라고 생각했던 돈은 다름 아닌 인애가 빌려준 돈이었다. 결과적으로 정석이 세운 회사는 인애의 지분이 들어간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장례가 끝나고 정석은 인애를 찾아가 고했다. 이 빚은 언제고 갚겠노라고. 인애는 그런 건 필요 없다고 하며 은근히 정석을 탐하였지만 정석은 그녀를 뿌리쳤다.
핏덩어리인 태근을 안고 어쩔 줄 몰라하던 정석을 도운 건 집주인 윤 씨였다. 그의 주선으로 두 번째 아내인 양숙을 만났다. 그녀는 효진을 낳고 두 아이를 잘 키워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정석의 곁에 없다. 두 번째 아내를 잃은 정석의 내면은 너무도 쉽게 무너졌다. 다시 찾아온 인애의 손길을 뿌리칠 만큼 정석은 강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가 주는 낚싯밥은 너무도 달콤하여 덥석 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애의 물질적 지원이 계속될수록 정석은 괴로웠다.
지난날을 떠올리던 정석은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차 소리를 알아차린 아이들이 달려 나와 정석을 맞이했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태근이보다도 효진이가 먼저 뛰쳐나와 정석에게 덥석 안긴다. 이제 다섯 살인 효진의 몸은 예전처럼 마냥 가볍지 않았다. 두 팔로 안아 번쩍 들어 올리려던 정석은 "어이쿠-" 소리를 일부러 내며 무겁다는 시늉을 해 보였다. 신발도 채 신지 않고 뛰어 나온 효진은 제 아비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까르르 웃었다. 정석은 뒤따라 나온 태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쪽 팔로는 효진을 안아 들은 채 마당을 지나 집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자 집주인 윤 씨가 있었다.
"어르신. 어쩐 일로..."
요즘 집세를 밀린 적이 없는데 집주인이 찾아온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윤 씨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애들끼리만 있으니 걱정되어서 내려와 보았네그려. 오빠가 동생을 아주 잘 돌보는구먼."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내 이만 가보겠네."
윤 씨는 지팡이를 짚고 쪽문으로 향했다. 그는 나가기 전, 허리춤에서 꼬깃꼬깃한 오백 원 짜리 지폐를 꺼내더니 효진에게 쥐여주었다.
"혼자 있을 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먹거라."
정석은 깜짝 놀랐다.
"아니, 어르신. 애한테 무슨 이렇게 큰 돈을..."
"허허. 괜찮대두. 그냥 내가 귀여워서 주는 걸세."
윤 씨는 정석이 돌려주는 지폐를 마다하고 서둘러 나가버렸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정석은 고마움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그가 넌즈시 말한 제안이 자꾸 떠올랐다. 효진이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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