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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장미정원
정석은 거절하지 못했다. 어찌 된 노릇인지 도무지 미자의 말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정석은 일어나려고 했지만 비틀거리며 다시 넘어졌다. 그러나 넘어지기 전에 미자가 손을 뻗어 정석의 겨드랑이를 잡았기에 완전히 눕지는 않았다. 그렇게 부축을 받고 마루에 오른 후, 건넛방에 들어갔다. 거기에는 이미 이부자리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정석은 어쩐지 전혀 놀랍지 않았다. 아랫목에 미리 놓인 이부자리, 꿀물 등... 마치 정석이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와 이곳에서 잠이 드리라 알고 있었다는 듯한 미자의 태도. 정석은 미자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가 짬뽕을 미리 주문했던 일도 떠올렸다. 미자는 정석이 자리에 눕는 걸 보고 방을 나갔다.
잠시 후,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미자가 다시 방 앞으로 돌아왔다.
"자리는 어떠세요? 안 불편하세요?"
미닫이문 너머 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석은 괜찮다고 대답했다. 자기 집을 바로 목전에 두고 남의 집에서 자는 자신의 처지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미자가 워낙 자연스럽게 준비해놓은 터라 정석은 별다른 거절도 표하지 못하고 그대로 휘둘리고 말았다. 미자는 자리끼를 준비했다며 쟁반 하나에 물 주전자와 컵을 담아 방으로 들어왔다. 정석은 머리맡에 그걸 내려놓는 미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여태 궁금했던 걸 묻기로 했다.
"미자 양.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
"뭘요?"
"내가... 늦게 오리란 걸, 술을 많이 마시고 오리란 걸... 어떻게 알았지? 난 연락도 안 했는데?"
"글쎄요."
미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묶지 않고 길게 드리워진 그녀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리며 은은한 향을 퍼트린다. 미자는 말했다.
"그냥 여자의 육감이라고 해두죠."
살짝 미소를 띠며 눈을 내리까는 미자의 모습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고혹적이었다. 불이 꺼진 방안의 조명이라고는 창밖에서 흘러들어 오는 달빛뿐이었다. 예로부터 달빛에는 마법의 힘이 있다고 하던가. 달빛 아래 드러난 미자의 몸은 묘한 느낌을 뿜어내고 있었다. 약간 가는듯하지만 제법 강인해 보이는 팔다리는 매끈하기 그지없었다. 몸에 달라붙는 옷감은 잘록한 허리와 봉긋한 가슴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정석은 거기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여자의 육감?"
"그런 거 안 믿으시나요?"
"안 믿는다기보단.... 이제 겨우 열여덟인 자네가 여자 운운하니..."
그러자 미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정석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눈빛이 마주친 채로, 서로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있었다. 눈싸움도 아니었다. 정석은 시선을 돌리려고 했다. 으슥한 시각에, 그것도 여자와 단둘이 방에 있는 건 아무래도 불편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미자는 달랐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이 뻗어와 정석의 손 하나를 가만히 잡았다. 놀란 정석은 미자가 자신의 손을 이끌어가는데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정석의 손이 미자의 가슴에 닿았다. 브래지어를 하고 있지 않았다. 얇은 레이스로 되어있는 잠옷 너머, 뭉근하면서도 단단하게 느껴지는 풍만한 느낌이 정석의 손바닥 전체에 전해진다. 둥글고 풍만한 언덕 맨 꼭대기에는 약간의 돌기가 있었다. 그것이 오똑하게 서 있었다. 정석이 어루만질 때마다 미자는 나직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뗐다.
"충분히 여자랍니다. 박정석 씨."
다음 순간, 두 사람의 입술이 서로 맞닿았다. 누가 먼저였는지, 정석은 알 수 없었다. 평소처럼 태근이 아버님이라는 호칭도 아닌, 이름 석 자를 갑작스럽게 부른 미자가 먼저 원한 것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여자를 굶어온 자신의 절제력이 무너진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단순히 자신이 취한 것 때문인지. 정석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오로지 이불 위에 놓인 미자의 몸이, 완연한 여자의 것이라는 것과 그 앞에 놓인 정석의 몸은, 그런 여자를 갈구하는 하나의 남자라는 사실이다.
"하아....하윽....."
정석의 키스가 입에서 떠나자 미자는 낮은 한숨을 뱉었다. 정석의 입맞춤은 입을 떠나 귀를 지나는 것으로 시작하여 목을 타고 아래로 내려간다. 잠옷 너머에서 가슴을 주무르던 손은 위로 향한다. 가느다란 어깨끈을 살짝 당겨 내자 미자의 눈부신 살결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느다란 목과 유려한 선이 자리한 어깨. 그리고 그 라인을 따라 아래로 이어지며 봉긋한 언덕을 이루어내고 있는 가슴까지도. 단 한 번의 손짓에 그대로 드러나 정석의 앞에 놓인다.
"흐음... 흐으...."
정석의 손가락이 미자의 유두를 희롱한다. 말랑하던 그것이 점차 단단해진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유두를 놓고 가볍게 비비자 미자는 그에 화답하듯 낮은 비음을 흘렸다. 한 손에 꽉 차게 잡히는 가슴을 주무르면서 정석은 가슴 사이를 핥아 내려갔다. 배꼽을 지나 아랫배에 이르자 아까 미처 다 벗기지 못한 잠옷이 걸리적거린다. 두 손으로 잠옷을 잡고 아래로 당기자 미자의 허리가 슬쩍 들린다. 순백의 팬티가 나타난다. 손바닥만 한 그 천을 벗겨내자 엷은 음모가 소복하게 자리한 낮은 살둔덕이 보였다. 정석은 거기에 입을 가져다 댔다. 조금 더 아래, 살주름이 살포시 잡혀있는 곳에 입술을 대고 가볍게 위아래로 문지른다. 혀를 내밀어 아직은 메마른 조갯살을 적시고 두 손으로는 허벅지를 짚어 가볍게 양쪽으로 벌린다.
츄릅- 추릅- 추릅- 추릅-
정석의 혀가 입술 사이를 들락날락 거리며, 세로로 난 입술을 위아래로 핥아낸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혀끝에 은은하게 느껴지는 감촉에서, 정석은 미자의 비부가 몹시 젖어있다는 걸 알았다. 정석은 옷을 벗었다. 팬티를 벗는 동안 미자의 얼굴을 살폈다. 두 손을 모아 가슴 앞에 올려둔 미자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정석이 물었다.
"처음이야?"
미자의 고개가 위아래로 살짝 움직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의 유혹하는 팜므파탈과도 같은 눈빛을 보여주던 미자였지만, 두 눈을 꼭 감은 지금은 그런 눈빛이 보이지 않는다. 정석이 그런 미자를 보며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자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뻗었다. 목을 끌어안은 그녀는 정석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가까이 가져오면서 말했다.
"계속하세요."
목소리만으로 정석의 허리를 감아 움직이게 할 것 같은 미자였지만, 정석은 그런 그녀에게서 몸을 떼어냈다. 정석은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미자 양. 아무래도 이건 아닌 거 같아."
그러자 미자가 눈을 떴다. 정석은 주저하며 말을 이어갔다.
"미자가 예쁘고... 우리 아이들도 잘 봐줘서 평소에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이럴 순 없을 것 같아. 결코 네가 싫어서라기보단..."
남녀가 야밤에 단둘이 벌거벗고 있는 와중에, 발기된 성기를 두고 이런 소리를 하는 정석의 마음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미자를 안기 직전, 정석의 머릿속에는 인애와의 일이 떠올랐다. 그게 그를 멈춰 서게 만들었다. 첫 경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던 미자의 얼굴도 그의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미자는 그런 정석을 두고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까지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녀의 표정에 살짝 미소까지 걸린다. 그녀는 정석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많이 봤지만.... 저 역시 긴장되긴 했어요."
"봤다니...?"
정석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미자의 포옹이 너무도 아찔하여 그대로 자리에 눕고 말았다. 알몸끼리 맞닿아있으면서도 미자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듯 정석에게 몸을 찰싹 붙여왔다. 그리고 말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정석의 품에 얼굴을 묻는 미자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정석은 그냥 그대로 할 걸 괜히 주저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정석의 발기된 물건은 미자의 매끄러운 허벅지에 여전히 껄떡거리며 비벼지고 있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정석은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잠을 청했다. 술기운이 온몸을 지배하는 가운데 몹시 나른하면서도 몸 구석구석이 긴장되는 이유는 정석도 잘 알고 있지만, 억누르며 잠들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인애와 오랫동안 곁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감춰온 춘희, 어느 날 불쑥 나타나 그의 생활에 끼어든 미자. 각자 다른 매력과 분위기를 가진 여자들이었다. 예로부터 열 여자 마다할 남자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석은 단 한 명도 버겁다고 생각했다. 그가 짊어진 두 명의 아이와 삶의 무게를 나눠 감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문득,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을 생각한다. 병과 불의의 사고로 떠난 그녀들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보려고 했다. 이름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이런 놈이었구나. 이런 놈이었어.'
정석은 끊임없이 자책하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우는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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