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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장미정원
"그...그래. 맞는 말이긴 한데 어째 확인 방법이 좀 거칠군."
미자는 배시시 웃으며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그녀가 차를 마시는 것을 기다린 정석은 오후 내내 자신이 생각했던 한 가지 가설을 미자에게 묻기로 했다.
"자네의 육감이라는 건.... 대체 어떤 거지? 설마, 앞날을..."
"네."
대답이 너무 빨랐다. 정석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미자는 먼저 대답을 마쳤다. 마치 정석의 질문이 뭔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게다가 너무도 선선히 인정해버리는 탓에 정석은 뒤이어 물어볼 말도 잊고 말았다. 미자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동시에 아니기도 해요."
"뭐?"
"예를 들면, 방금 제가 태근이 아버님이 물어본 말에 아니라고 대답을 하면 말이죠. 태근이 아버님은 저한테 재차 물어봐요.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처음에 미자를 만났을 때 일어날 시간에 맞추어 식사를 시켜놓았던 일부터 시작해서, 어젯밤에 술 먹고 늦게 들어오리란 것까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는데, 미자 너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늘 경마장에서의 일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 거냐, 라고 물어보면, 저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하고 시치미를 뚝 떼죠. 그러면 태근이 아버님은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 저에 대해 실망을 하고 그대로 이 집을 나가버려요. 그리고 인애라는 여자를 불러내어 그녀에게 빚진 돈을 갚으려 하다가 격분한 그녀 손에 죽고 말죠. 그래서 저는 그냥 네, 맞다고 인정해버린 거예요."
태평한 목소리로 엄청난 소리를 늘어놓는 미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석은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는 분명 인애의 이름을 미자에게 말한 적이 없다. 아이들에게도 말한 적조차 없으니 전해 들었을 리도 만무하다. 그러나 그는 미자가 인애의 이름을 알고 있고, 그녀에게 자신이 빌린 돈이 있다는 사실을 미자가 알고 있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게... 사실이야?"
"약 3분 전까지는 사실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사실이 아닌 거짓말이에요. 왜냐하면 제가 다른 선택을 했으니까요. 이제 당분간, 저는 평소처럼 '앞'을 보지 못해요. 아마도 앞으로 며칠, 길면 몇 달 정도는 일반인이랑 똑같아질 거예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죠. 제 능력에 대한 일종의 부작용 같은 거예요. 아니면 제가 죽을지도 몰라요. 보통 사람들이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처럼, 저 역시 제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게 돼요. 아주 무섭죠."
미자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녀가 말하는 '앞'이라는 것이 공간적 의미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란 것을 정석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미자는 눈을 감은 채, 천천히 말했다.
"앞을 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는, 마냥 신났어요. 그래요. 지금 태근이 아버님이 생각하는 그런 것과 똑같아요. 이런 막대한 부를 손쉽게 손에 넣을 수도 있고, 보통 사람이라면 당하고 말 위험한 일 같은 것도 쉽게 피할 수 있죠. 네,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죠.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시는 장면을 보았을 때, 그 때는 겁에 질리고 말았어요."
평소의 웃음기가 사라지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미자의 옆모습은, 정석에게 있어 꽤 낯선 모습이었다. 텅 빈 밤, 까맣게 어둠이 내려앉은 정원을 향해 흘러들어 가는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고요했다. 일체의 감정이 담기지 않은 무감각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더 보았어요. 더 보고, 또 보고, 다시 보고..... 그래서 동창회에 나가려는 엄마를 막았어요.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그저 짜증만 부리고 엄마를 붙들었죠. 그 동창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에 치인다는 이야기는 차마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저 동창회에 가면 안 된다고만 이야기했어요. 모처럼 여고 동창생들을 만날 생각에 기분이 부풀어 있던 엄마는 몹시 기분이 상했고, 그런 엄마를 달래기 위해 아빠는 엄마를 데리고 연애시절 잘 가던 곳으로 커피를 마시러 갔죠. 그게 크리스마스였고, 그곳이 대연각이었어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이야기를 듣던 정석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대연각호텔. 한 때는 서울 중심부의 호화 호텔의 대명사였지만, 이제는 대형참사의 동의어나 마찬가지인 이름이다. 지옥의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던 거친 불길은 거기서 나오려는 사람까지도 순식간에 태워버릴 정도로 악랄했다.
"고아가 된 저는 깨달았죠. 제가 본 것은, 말 그대로 정말 일어날 일들을 본 것이었어요. 그렇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죠. 제 선택에 의해서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다른 일이 일어날 수도 있죠. 내가 모를 다른 일이 원래의 일보다 더 나쁜지 좋은지는.... 저는 알 수 없어요. 제가 보는 것은 오직 한 가지가 아니에요. 그건 계속 바뀌고 또 바뀌어요. 그러니 본다는 사실 자체는 의미가 없어요. 제가 봤다고 그대로 일어나지도 않고, 제가 보지 않았다고 그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어요."
"대체 무슨 말인지..."
"더 쉽게 설명하자면, 결국 제가 보는 건, TV너머의 드라마나 마찬가지예요. TV를 켜면 여러 개의 채널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제가 안 본다고 해서 그 방송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그 중에는 제가 출연하는 방송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극 내용을 함부로 바꿀 수 없는.... 그런 이야기죠."
너무도 놀라운 이야기였다. 평소 소설이나 영화 같은 창작물을 즐기지 않는 정석이었다. 그의 평소 스타일상 허황된 이야기는 딱 질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자의 이야기는 믿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랬기에 그녀의 참담함이 정석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한참을 주저한 끝에 한마디 했다. 어떻게든 미자를 위로할 말을 건네기로 했다.
"말 그대로.... 그래서 미래인가 보군."
"미래요?"
"응. 한자로 풀자면, 아직 아니다라는 의미로 미 자를 쓰고, 온다는 뜻으로 래 자를 쓰는 거야. 둘을 합쳐서 미래라고 하는 건데, 미자가 보는 건 정말 말 그대로 미래로군.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미래."
정석의 뜻풀이를 들으며 미자는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래.... 미래라...."
"자네가 본 미래가 전부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면, 결국은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거군. 보통 사람들도 미래는 예측해. 지난 시간동안 겪어온 일들을 바탕으로 앞을 내다본다고. 물론 그 일이 생각대로 될 때도 있고, 되지 않을 때도 있어. 그렇지만 자네가 보는 미래가 그러하다면, 보통 사람과 다를 게 뭔가."
그러자 미자가 가만히 눈을 떴다. 그녀의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럼 .. 태근이 아버님은, 제가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세요?"
미자의 눈을 들여다보며 정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미자가 활짝 웃는다. 달맞이 꽃이 피어난 듯한 그 환한 웃음을 보며 정석은 한마디 덧붙였다.
"큰 돈을 남에게 덥썩덥썩 넘길만큼 손이 크다는 것만 빼고 말야."
미자는 그 대답이 만족스러웠다. 두 팔을 벌려 정석의 목을 끌어안고 그의 입술을 찾았다. 깊고 진한 키스가 이어진다. 한참 후, 입술이 떨어지고 난 뒤 미자는 정석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제가 본 것 중에서는.... 제가 정석 씨의 부인이 되는 장면도 있었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잘록한 미자의 허리에 두 팔을 두른 정석은 팔에 살짝 힘을 주어 자신 쪽으로 당기며 말했다.
"지참금을 선불로 낸 신부라..."
미자는 정석의 대답에 까르르 웃고 나서는 상체를 조금 뒤로 젖혔다. 이미 그녀는 정석의 허벅지 위에 앉아있어 하반신은 서로 딱 붙은 채였다. 미자는 두 손으로 정석의 얼굴을 감싸고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제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어떤 소리를 하더라도 제게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결혼 해줄게요."
정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키스가 이어졌다. 잠시 후 정석은 미자를 안고 방으로 돌아갔고, 이날 밤은 지난번처럼 중간에 멈추지 않았다. 미자는 처녀를 잃었지만, 남편과 두 아이를 얻게 된 밤이었다. 지난번 미처 하지 못한 일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밤이었다. 식은 따로 올리지 않았다. 미자의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 동안은 그녀가 정석의 집에 들어와 살았고, 현대식 집으로 개축이 완료된 이후에는 그녀의 집에 정석과 아이들이 들어가 살았다. 아이들은 미자를 좋아했고, 미자 역시 아이들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녀는 정석과의 섹스 역시 좋아했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면 두 사람은 어김없이 어울렸다.
"하악....하악....하악....."
욕조 가장자리를 짚고 엎드려 있는 미자의 뒤에서, 정석이 거칠게 허리를 밀어붙일 때마다 욕조의 물이 찰랑거렸다. 집을 새로 지으면서 일본에서 따로 주문하여 설치한 대형 욕조였다. 미자는 커다란 욕조에 들어가 있는 것을 좋아했고, 정석은 거기서 뒤로 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앙... 하아....하으....."
철썩- 철썩- 철썩-
정석의 성난 물건이 미자의 동굴을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 같이 살고 처음에는 자주 했지만 요 근래는 정석이 집을 비우는 일도 잦고 바쁘기도 해서 퍽 오랜만의 교접이었다. 애들도 이미 모두 재운터라 미자는 마음껏 교성을 지르며 정석의 삽입을 온몸으로 환영했다.
"미자...."
"흐윽....흐...."
절정에 다다른 정석은 미자의 엉덩이에 자신의 아랫도리를 꼭 붙인채 사정했다. 부르르 떨리는 미자의 몸에 자신의 몸을 포개어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다시 욕조 안으로 쓰러지듯 눕는다. 두 사람이 누워도 충분히 널찍한 욕조인지라 미자는 그런 정석의 곁에 나란히 누워 정석의 가슴팍을 만지작거렸다.
"휴우...."
"왜 한숨이에요?"
"너무 오랜만이라... 심하게 했나 본데. 얼얼할 정도야."
물 속에 잠겨 있는 물건을 가리키며 정석이 엄살을 부리자 미자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가슴께를 만지던 손을 아래로 내려 정석의 물건을 만지작거린다.
"호오~ 라도 해줄까요? 효진이 놀다가 넘어지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저한테 쪼로로 달려와 호오 해달라고 조르는데."
"내가 효진이랑 같은 등급인거야?"
"하지 말까? 아저씨?"
정석은 껄껄 웃었다. 같이 살게된 이후, 미자는 전처럼 정석에게 깍듯하게 굴지 않았다. 호칭은 아저씨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 은근슬쩍 말을 놓기도 한다. 정석은 미자 나이의 거의 두 배에 가까웠지만 그녀의 그런 살가운 태도가 어쩐지 싫지 않았다.
"아냐. 해줘."
그러자 미자는 정석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정석이 허리를 슬쩍 들어 올리자 그의 엉덩이를 자신의 무릎으로 받쳤다. 미자가 상체를 조금 숙이자 정석의 물건은 미자의 가슴 사이에 끼어졌다. 미자는 욕조 옆에 있는 바디로션을 조금 풀어 자신의 가슴에 발랐다. 매끈매끈해진 가슴의 표면이 정석의 육봉을 감쌌다. 사정을 마친 터라 바로 단단해지지는 않았지만, 뭉클한 감촉이 노곤한 몸 전체에 전해지는 기분은 정석으로서도 가히 나쁘지 않았다. 정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아무리 봐도 호오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뭐라 부를까요."
"글쎄. 미끄덩...정도?"
미자는 정석을 올려다보며 마주 웃었다. 그러면서 양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하나씩 쥐고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밀면서 둥글게 문질러대었다. 가슴 사이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짝 밀어 넣는다.
"흐음....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어디일 것 같아요? 한번 맞춰봐요."
"음... 모르겠는데..."
예민한 곳에 가해지는 적당하면서도 부드러운 압박은 사정 후의 나른함을 더욱 부채질했다. 따뜻한 물로 채워진 욕조에서 피어오르는 은은한 장미향은 마치 여기가 위락업소인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정작 정석은 그런 곳에 가본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태근이 서랍에 들어 있던 잡지에 이런 게 나오던데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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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한 태근이...